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 장대성
폭설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무덤이나 모래도요
떠올리면 금세 파묻히는 느낌이 드는 것들이지요
이대로 죽는구나 싶을 때
떠오르는 하나의 문장을 위해 그러는 겁니다
의지가 약하다는 말과
나약하다는 말을 들을 때의 기분이 다른 것처럼
사랑하는 무엇에 사랑해 말하지 않고
창문 바깥은 폭설이라 하고 싶은 거예요
이게 내 삶의 낙인데
오늘은 물을 너무 마셨더니
몸속에 수영장이 생긴 것처럼 말이 자꾸
어푸어푸 살려 달라고 외칩니다
보고 싶어를
마지막 장이 찢어진 책을 샀다고 한다거나
날이 정말 맑다를
세상에 그림자가 참 많다고 말한 게 그것입니다
양파에게 좋아하는 시의 구절을 읽어 줬더니
멍이 들며 썩어 버린 건 비밀이에요
이처럼 말에는 슬픔이 깃들어 있습니다
내뱉고 싶은 말을 숨기고 감출 때
슬픔은 가지를 뻗어 장면이 되고
마당에 측백나무를 심었는데
엄청난 속도로 자라 지붕을 덮었습니다
집에 그림자가 드리웠어요
창문을 열어 두고 지내는 날에
골목길 걷는 사람들은
와 저 나무 좀 봐 정말 크고 아름다워
그렇게 말하지만
그런 말 들으면 솔직히 기분 좋지만
속은 꼭 그렇지만은 않아서
숨을 참아요
안쪽이 울렁거리며 물결을 만듭니다
나는 어디로 흐르려나요
어디든
흐른 곳에서 나는 있는 것이겠죠
내가 있는 곳이
네가 있을 곳이면 좋겠습니다
이런 말 재밌죠
어감을 활용해 의미를 만드는 것입니다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을 너를
굳이 이곳으로 데려오는 것입니다
바깥은 폭설이에요,
그 말을 하려고
오래 함께 창밖을 바라보려고
―계간 《파란》(2024, 봄호), 2024년 〈파란〉 신인상 당선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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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대성 시인
1998년 광주 출생. 단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2024년 계간 《파란》 신인상 시 부문, 2024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