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참선교육의 내용
1. 기본교육
(5) 생활선 이해(묵조선)
○ 본 마음․참 나(강의 및 좌선) : 셋째 날 오전 8:00~11:30(210분간),
묵조선과 생활선에 대한 강의 및 좌선 실수를 한다.
○ 강의내용 : 18) 나는 하루 동안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가?
19) 도는 닦는데 속하지 않는다.
20) 오직 앉아 있을 뿐
21) 일체는 중생이고 실유이며 불성이다.
22) 생명을 생기 있게
18) 나는 하루 동안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가?
홍주(洪州) 태안사(太安寺)의 주지는
경(經)과 논(論)을 강론하는 강사(座主)였는데
오직 마조스님을 비방하기만 하였다.
하룻밤은 삼경(三更)에 귀신사자(鬼使)가 와서 문을 두드리니,
주지가 물었다.
“누구시오?”
“귀신세계의 사자인데 주지를 데리러 왔다.”
“내가 이제 예순 일곱인데
40년 동안 경론(經論)을 강의하여 대중들에게 공부를 하게 하였으나
말다툼만 일삼고 수행은 미처 하지 못했으니,
하루 밤 하루 낮만 말미를 주어 수행케 해 주시오.”
“40년 동안 경론을 강의하기를 탐하면서도 수행을 못했다면
이제사 다시 수행을 해서 무엇에 쓰겠는가?
한창 목마른데 우물을 파는 격(臨渴掘井)이니,
무슨 소용이 있으랴.” ―《마조록(馬祖錄)》―
이상의 이야기는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스님의 어록인
《마조록(馬祖錄)》에 전해진다.
마조스님의 스승은 남악회양이고,
남악스님의 은사스님은 육조 혜능스님이므로,
마조스님은 곧 육조 혜능스님의 손 제자뻘이 된다.
당시 마조스님은 홍주 개원사에 계셨는데,
태안사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모양이다.
태안사의 주지는 40년 동안 경론을 강의하던 강사였는데,
오직 마음법 만을 강조하던 마조스님을 사뭇 비방하기만 하였다고 한다.
사실 가장 가까운 곳에 지내는 사람일수록
가장 큰 경쟁상대가 되는 법이다.
따라서 강사였던 주지는 자신의 박학다식함을 자랑하며
은근히 마조스님을 비하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하랴.
저승사자의 방문 앞에서는 학식과 변재가 소용이 없음을.
예컨대 불교나 참선의 이치에 대하여 학문적으로 달통 하거나
혹은 대단한 말재간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그대로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가 해결되지는 않는 것이다.
즉 이러한 학위나 말재간이 비록 생계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생사(生死)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쨌든 태안사 주지는
저승사자의 급작스런 방문을 받고서야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어,
다만 하루 동안이나마 말미를 얻고자 간청하고 있다.
말 그대로 임갈굴정(臨渴掘井),
즉 목마름에 다다라서야 우물을 파는 격이 되었다.
이것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며,
강 건너 불로 볼 수 없는 현실이다.
강사가 되었든 주지가 되었든 혹은 수좌나 재가신자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깊이 헤아려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돌연 이와 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
또한 자신의 현재 수행방법이 올바른 것인지.
그나마 이 정도라도 정신 차려
하루 동안 말미를 구할 수 있었던 것도
40년 동안 공부했던 도움이라고나 할까?
저승사자는 이러한 요청에 대하여 장황한 훈계조의 언설을 피력한 후
다음과 같이 말을 잇고 있다.
“그런데 그대는 40년 동안 구업(口業)을 지었으니,
지옥에 들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또 옛날부터 경전에 분명한 글이 있다.
즉 ‘말로써 모든 법을 말씀하여도 실상(實相)을 나타내지 못한다.’하였는데
그대는 망상(妄想)으로 입을 놀려 어지러이 말했다.
그러므로 반드시 죄를 받아야 하니,
다만 자신을 탓할지언정 남을 원망치는 말라.
지금 어서 빨리 가자.
만일 늦으면 저 왕께서 나를 꾸짖을 것이다.”
그러자 둘째 사자가 말했다.
“저 왕께서 벌써 이런 사실을 아실 터이니,
이 사람에게 수행케 해준들 무방하지 않겠는가?”
첫째 사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하루쯤 수행하도록 놓아주겠소.
우리들이 돌아가서 왕에게 사뢰어 허락해 주시면 내일 다시 오겠고,
만일 허락 치 않으시면 잠시 뒤에 다시 오겠소.”
사자들이 물러간 뒤에 주지가 이 일을 생각했다.
‘귀신 사자는 허락했으나 나는 하루 동안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가.
(鬼使則許了也 某甲一日作摩生修行)’
아무 대책도 없었다.
날이 밝기를 기다릴 겨를도 없이
개원사(開元寺)로 달려가서 문을 두드리니 문지기가 말했다.
“누구시오.”
“태안사 주지인데 스님께 문안을 드리러 왔소.”
문지기가 문을 열어주니,
주지는 곧 마조스님께로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말씀드리고
온 몸을 땅에 던져 절을 한 뒤에 말했다.
“죽음이 닥쳐왔는데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바라옵건대 스님께서 저의 남은 목숨을 자비로써 구제해 주십시오.”
스님께서는 그를 곁에 서 있게 하였다.
날이 새자 귀신사자는 태안사로 가서 주지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다시 개원사로 와서 주지를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이때 마조스님과 주지는 사자를 보았으나
사자는 스님과 주지를 보지 못했다. ―《마조록》―
나는 하루 동안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가?
이는 실로 중대한 문제이다.
과거 40년 동안의 공부가 물거품이 되어 버린 마당에,
겨우 하루 동안의 말미를 얻어내긴 하였지만,
과연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가?
우리도 함께 되짚어볼 만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의 수행을 통해 얼마만한 힘을 얻었는지,
내지는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확신은 서 있는지.
이러한 스스로의 질문에 떳떳이 대답할 수가 있다면 다행이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얼른 마조스님의 곁에 서 있어야 할 것이다.
저승사자의 눈에 띄지 않도록.
지금 마조스님은 안 계시다.
그러나 다행히 그 가르침은 남아 전하고 있다.
따라서 남겨진 가르침의 언저리라도
이해하고 실천코자 애쓰는 것으로서
마조스님의 곁에 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 편저 : 대한불교 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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