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90분
이종희
아침 9시, 수술실로 가기 위해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은 채 몸을 맡겨 버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복도를 끌고 가는데도 눈 한 번 뜨지 않았다. 공포심이었을까? 두려움이었을까? 아예 눈을 뜨기 싫었다.
수술실에 다가왔는지 움직임이 멈췄다. 곧바로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이름을 확인하고 수술실 간호사에게 인계하는 듯했다. 간호사는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했다. 감옥에서 죄수의 수인번호를 확인하는 듯. 기분이 묘했다. 이어서 마취과 의사의 간단한 설명과 아울러 동의서에 서명하라는 말에 눈을 떴다. 수술 중 불상사에 대한 책임회피용 문서다.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는 보호자인 아내와 서명하는데 작고 흐릿한 글씨가 고희를 넘긴지 오래된 눈이 짜증을 낸다. 가르쳐주는 이름 옆에 서명했다. 아내는 밖으로 쫓겨나가면서 내 손을 꼭 잡아준다. 나도 지그시 힘을 주었다. 이제부터 내 생명은 내 것이 아니다.
마취과 의사가 신장과 체중을 묻더니 간호사에게 지시한다. “이팔은 십육 ㎖.” ‘체중 10kg에 2 ㎖를 투여하는 것일까?’ 그 순간에도 계산하고 있었으니 살아 있음이겠지. 간호사의 대답과 함께 마취제 들어간다는 말과 수술대로 옮긴다는 말을 들었다. 환부가 등 뒤 견갑골 부근이니까 몸을 뒤돌려야 하는데 아무런 기척이 없다.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심전도, 산소포화도 등 여러 가지 장치들을 부착하는 느낌이나 호흡을 도와주는 기도삽관을 기도 내에 삽입하는 감각이 전혀 없었다. 오로지 감겨진 눈에 보이는 것은 하얗다고 해야 할지.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와 보조의사를 비롯한 스크럽 간호사는 얼마나 있었는지, 내 몸에 들이댄 수술기구는 어떤 것이었는지, 바이탈 사인은 어땠는지도 모른다. 드라마에서 보면 집도하는 의사의 지시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는데.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처럼 집도의사의 신호에 따라 수술대 위에 올려놓은 내 몸뚱이에 메스를 댔을 텐데 전혀 깜깜이다. 관객이 되어 볼 수 없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멍하니 하얀 공간만 응시하고 있는데,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아내로부터 이제 끝났다는 밝은 목소리였다. 이때까지 죽어 있었단 말인가. 5분여나 되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허망했다. 남편을 수술실에 들여보내 놓고 전광판에 시시각각 나타나는 신호를 보면서 마음 졸였을 아내가 안쓰러웠다. 수술은 1시간여, 회복 시간 30여분정도 소요된 것 같다고 한다. 90여 분 동안 죽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맞이할 죽음의 운명도 이랬으면 좋겠다. 저 세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하얀 무감각 상태라면 두렵지 않을 것 같다.
10여 일 전부터 메리야스 등 뒤에 농이 묻었다. 2,3일 만에 갈아입는 메리야스에 세 번째 묻은 날 아내의 눈에 띄었다. 아내는 정색하며 호들갑이다. TV에서 명의를 시청하면서 피부암에 대해 방영하는 것을 보았다며 유난을 떤다. 생경한 흑색종을 의심하며 병원에 가자고 독촉한다. 어쩌다가 부스럼이나 종기가 나면 병원을 찾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나았던 살성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S피부과를 찾았다. 환부를 본 의사는 종합병원인 가까운 D병원 성형외과를 권유하는 것이 아닌가. 개인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고 종합병원에서 치료해야 한다면 문제가 있다는 걸 직감했다.
곧바로 D병원으로 갔다. 환부를 본 의사는 겁나는 말을 하는 것이다. 수술을 통해 조직검사를 해야 하며 결과에 따라 악성이면 환부 둘레에 퍼져 있는 림프절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암이 전이된 분포를 진단하기 위해 PET CT검사를 해서 항암치료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아 가슴이 철렁했다. 나름대로 건강을 유지한다고 하루에 두세 시간씩 일주일이면 4,5일은 건지산 산책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루 식사도 점심만 정식이지 아침저녁은 간단식으로 체중조절도 하고 있는 중이다. 즐기던 술도 건강관리를 위해 횟수를 줄이고, 기름진 음식도 적게 먹으려고 한다. 지금까지 공들인 탑이 맥없이 무너지는 것 같이 허탈했다.
그래도 내 몸은 내가 아니까 악성은 아닐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아내에게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겁이 난 여자의 마음이었을까? 남편의 당부는 잠깐, 아들에게 연락을 했는지 전화가 왔다. 부자간에 다정한 대화도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속내는 그게 아니었나보다. 애꿎은 아내한테만 볼먹은 소리를 하고 말았다. 내 깐에는 조직검사를 하고 좋지 않은 결과일 때나 알릴까 했는데 말이다.
설날연휴가 시작되자마자 아들네가 내려왔다. 서울아산병원에 그새 진료예약을 해놓았다는 것이다. 애비의 건강에 자식의 속이 탓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고추를 내놓고 오줌을 싸던 때가 엊그제였는데 부모를 걱정하는 자식이 되었다. 다음날 의사와 면담을 하며 서울로 가겠다니 펄쩍 뛰는 것이다. 서울로 가보았자 함께 근무한 후배들이라며 자신있게 거부하는 게 아닌가. 의사의 완강한 태도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설 명절에 고향방문도 자제해달라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정부로부터 강하게 권고 받고 있는 중이었다. 며칠 전 부모된 도리로 자식들에게 이번에는 정부의 방역대책에 협조하자고 카톡을 보냈다. 그랬는데 아들과 막내딸의 통화로 애비의 상황이 알려지게 되었다. 홀가분하게 보낼 줄 알았던 설날이 어수선함과 찝찝함이 교차된 명절이었다.
조직검사 결과는 지루각화증이라고 한다.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노화의 상징인 검버섯이다. 지루각화증은 건강상의 문제가 되거나 다른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되어 있었다. 발병되면 4,5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흑색종이 아니라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팔순 고개일 테니 크게 서운하지 않다고 자위하고 있는데, 아내와 자식들은 그게 아닌가보다. 나이를 먹어보니 하루가 다르고 해가 다르게 신체의 변화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는 참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추한 모습을 보이며 긴 시간을 뺏고 싶은 생각이 없다. 한 달여 가슴 졸였을 가족들에게 미안하면서도 내게 준 사랑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돈다.
난생 처음 내 몸에 메스를 가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지인들이 병마와 시달리며 괴로워하는 것을 가끔 보면서 하느님께 기도드렸다. 지금 죽어도 좋으니 병마의 괴로움에 빠지지만 않게 은혜를 주시라고 욕심을 부렸다. 수술을 하면서 아무것도 몰랐던 것처럼, 하얗게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