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누군가가 반야심경의 색불이공공불이색(色不異空空不異色)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을 해설하면서 만물의 공함을 역설한다면, 그것을 해명하기 위해 각종 논리를 동원하고 있다면 아직은 헤매는 중이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칸트의 말대로 물자체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조견오온개공이란 물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물자체는 알 수 없지만, 물자체가 들려주는 현상, 질료만 오온이 수납할 뿐인데, 그렇게 수납해서 인식된 세계는 일체가 공하다는 뜻이다. 하여 색즉시공이란, 오온의 활동, 풀어 말한다면 육근과 육경에 의해 형성된 육식의 세계는 모두 제각각이고 자기 입맛대로인 것이니 그렇게 형성된 我想과 我見은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뜻이다. 색즉시공의 진의다. 결코 진실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스만(세인, 혹은 속인)에 매몰된 것일 뿐이니 현존재(너 자신의 됨됨이 앞에 마주하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만물은
공하다거나 공하지 않다거나의 대상이 아니다. 모른다가 맞는 것이다. 단지 현상만 알 수 있을 뿐이고 그것도 제멋대로 아는 것이니 과연 제대로의 앎일까? 거기 그렇게 있는 것의 존재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안이비설신의라는 육근과 색성향미촉법 곧 육경의 만남에서 형성된 것은 따라서 모두 無라는 게 반야심경 법문의 요지다. 역설적으로 그럴 때 비로소 만물(오온의 활동)은 밝히 보인다. 하여 공즉시색이다. 즉, 공의 바탕에서 만물을 보게되면 색안경없이 보게 되므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는 뜻이 곧 공즉시색이다.
그러므로 색즉시공과 공즉시색은 결코 동어반복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구에서는 근대에 와서야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의 전회라는 인식론의 전환을 두고 호들갑이 있었지만, 동양의 불가에서는 이미 이천오백여 년 전 코페르니쿠스의 전회가 있었고 반야심경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런 대전환을 망각하고 반야심경을 읽으려할 때 역시 헤매게 된다. 존재는 현존재를 통해서만 드러난다. 만물에 대해 공(空)과 실(實)을 논하는 것은 월권이고 오류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거기서 무수한 도그마가 생성된다.
첫댓글 칸트 말대로 물자체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물자체가 들려주는 현상, 질료만 오온이 수납할 뿐이고 그렇게 인식된 세계는 일체가 공하다는 뜻이다? 그렇게 형성된 아상과 아견은 아무것도 아니다, 결코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 색즉시공의 진의다?? =>이런 해설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은 왜? 반야심경의 첫머리에 썼을까요? 칸트가 옳지 않습니다. // 반대로 사물의 겉모습(현상)과 오온이 모두 공하다는 것(만물의 본질=물자체)을 깊은 지혜삼매에서 비추어 보고 깨달음으로써 일체의 고액을 건넜다고 말합니다.
님은 님의 해석을 관철, 유지하시면 됩니다. 저의 해석은 저의 해석일 뿐, 님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답니다. 님의 판단은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해석은 옳고 그름의 심판의 대상이 아닙니다. 아이를 키워보면 압니다. 아이의 안목, 아이의 해석을 놓고 옳다그르다 하지 않는답니다. 그만큼으로 충분하고 족합니다.
금강경(金剛經) 사구게에서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고 했는데, 무엇을 본다는 말인가요??
금강경에서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보는 것도, 반야심경에서 오온의 본질이 모두 공(空)한 것을 보는 것도 역시 반야바라밀다의 지혜(깨달음의 지혜)로 비추어 보면서 사물의 본질(물자체)를 보는 것입니다. 견성성불 또한 사물의 현상과 질료만 보는 것이 전혀 아니니까요!!
칸트가 말하는--사물의 본질(물자체)은 알 수 없고 현상과 질료만 인식할 수 있다는 말과 너무나 다르지 않습니까?
만약 칸트의 말이 옳다고 말한다면 ? 깨달음- 견성~~이런 말들은 모두 거짓이고 인간은 사물의 본질이나 물자체를~ 아는 것이 불가능하며 결국 진리(물자체)는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을 주장하게 되고. 철학의 존재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휘오스님은 ---만물은 공하다거나 공하지 않다거나의 대상이 아니다, 모른다가 맞다고--말합니다.
그러면, 반야심경의 내용과 전혀 다른 말이 됩니다. 어떤 말이나 비유를 누구나 제각기 해석할 수 있지만, 반야심경 구절을 휘오스님처럼 풀이한다면, 반야심경의 구절을 두고 반야심경과 전혀 다른 내용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사물의 본질을 꿰뜷어 보고 계시니 그같은 견해를 말씀하시겠지요. 저는 사물의 본질을 알지 못합니다. 장미의 현상만을 알 뿐, 장미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백과사전에 정의하는 장미는 장미의 특징과 현상일 뿐 본질이 아닙니다.
저는 보이지 않으니 님이 부러울 뿐입니다. 더구나 님이 말씀하시는 진리를 저는 진리라 동의하지 않습니다.
반야심경에 대한 저의 해석일 뿐이고 님의 해석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나의 해석은 반야심경의 핵심과 다르다는 것도님의 해석이 그러하다는 것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얼마든지 비판하시고 님의 해석을 관철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저의 해석을 추구할 것이고 다른 깨달음이 찾아오면 그 때 해석의 변화도 찾아오겠지요.
여전히 만물은 공하거나 공하지 않다는 것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인식주관의 문제이고 그것을 향해 있는 사람의 문제일 뿐입니다.
반야심경 역시 사람의 문제일 뿐입니다. 물론 사물세계에 둘러쌓여 있다고 해서 사물에 대해, 만물에 대해 공하다거나 공하지 않다거나의 판단은 월권이고 오만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모든 문제는 오온이 일으키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 조견오온개공은 그를 말하는 것일 뿐
휘오스님~ 왜 저에게 말을 돌리십니까? 누가 사물의 본질을 보느냐--못 보느냐는 말이 아닙니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내용은 휘오스님이 설명하는 것(물자체는 알 수가 없고, 현상과 질료만 인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만물은 공하다--공하지 않다의 대상이 아니라 모른다가 답이다)과는 정 반대인데? 휘오스님이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니까, 반야심경의 글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얘기한 것뿐입니다. 휘오스님은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해설하면서, 칸트철학을 언급하셨고, 오히려 반야심경의 내용과 정반대로 풀이하시니까, 저는 휘오스님의 풀이가 반야심경의 첫부분에 있는 구절과도 맞지않고 또 반야심경의 전체 내용과도 전혀 다르게 얘기하신, 그 부분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휘오스님이 <만물은 공하거나 공하지 않다는 것의 대상이 아니다>고 단정적으로 말씀하신 것과 / 반야심경의 내용은 정반대 (만물은 공하다, 그 空함을 꿰뚫어 보고 일체의 고액을 건넜다)입니다. 종교 철학적인 내용--특히 불교 진리의 핵심적 내용을 설說 한다는 반야심경의 내용을 앞 뒤의 문장과 정 반대로 설명하셔서, 제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너그러이 이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