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녀기사 김성래 4단(오른쪽)과 딸 김채영 양이 환하게 웃고 있다. | 국내 두 번째 부녀기사가 탄생했다. 김성래 4단의 장녀 김채영(덕수고1ㆍ15) 양이 입단했다.
4월 9일부터 28일까지 한국기원에서 제40회 여자입단대회가 열렸다. 결승3번기에 오른 김채영 양은 김신영(20) 양을 2-0으로 누르고 좁은 관문을 통과했다. 첫 번째 부녀기사는 권갑용 8단(父)ㆍ권효진 5단이다.
김성래 4단의 가족은 바둑가족이다. 김 4단은 지난해 6월 헝가리에서 보급 기지를 구축하고 한국 바둑의 보급에 힘쓰고 있고 부인 이소윤(46) 씨는 서울 광진구 구의동 ‘킹스바둑’에서 바둑입문자를 교육한다. 김채영 양의 동생 김다영(충암중ㆍ12) 양도 여자연구생 1조에서 유망주로 이번 대회 8강까지 진출했었다.
김채영 초단이 입단함에 따라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는 252명(남자 205명, 여자 47명)이 되었다.
올해부터 한국기원은 새로 개정된 입단제도를 통해 매년 12명씩을 선발한다. 과도기인 2011년에는 남녀 내신 입단자 1명씩 이외에 하반기 일반입단대회를 통해 7명을 선발하며 연구생입단대회 1명, 지역연구생입단대회 1명, 여자입단대회에서 각각 1명을 선발한다.
내년부터는 1∼2월 열릴 예정인 일반입단대회에서 7명을 뽑고, 7∼8월 개최될 여자입단대회에서 2명, 만15세 미만을 대상으로 하는 영재 입단대회에서 2명, 지역연구생 입단대회에서 1명을 뽑게 된다.
◆ 김채영(金彩瑛) 초단 - 생년월일 : 1996년 1월 15일(서울) - 김성래(47)‧이소윤(45) 씨의 2녀 중 장녀 - 지도사범 : 이정우 7단 - 출신도장 : 충암바둑도장 - 기풍 : 두터운 바둑 인터뷰/ “바둑 그만 두게 하실까봐 조마조마 한 적도 있었죠”
김채영 양에게 - 아버지가 프로기사라 그동안 바둑을 같이 많이 두었겠다. “아주 어릴 때는 때때로 두었다. 호선이 되고 나서부터는 거의 두지 않는다. 아버지께서 해외 보급 때문에 바쁘시기도 하고….한 번도 내가 먼저 두자고 조른 적도 없다. (왜일까?) 하루종일 도장에서 바둑과 씨름하고 나서 아버지와 집에서까지 바둑을 두고 싶진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평소엔 한없이 자상하신데 바둑판 앞에서는 도장의 사범님처럼 엄격하게 변하셨다.”
- 김채영 양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인가? “자상하신 분이다. 무척 가정적이셔서 기념일 같은 건 빠짐없이 챙기신다. 지난 발렌타인데이 아니 화이트데이 때는 엄마, 동생, 나에게 사탕과 선물을 주셨다.”
- 프로를 지향하고 있다면 가족 중에 프로기사가 있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프로세계가 낯설지 않게 된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프로기사 야유회 때면 나를 데려가시곤 했다. 아버지께서 이창호 9단이나 김승준 9단과 테니스를 즐기시는 것도 많이 보면서 자랐다.”
김성래(父) 4단에게 - 애초 자녀에게 바둑을 가르치려는 생각이 있었나? “억지로 시킬 마음은 없었다. 어릴 때는 취미로 배우도록 했고, 진로를 정해야 할 시점에 선택을 본인에게 맡겼다.”
- 기재가 보였나? “본인에게 미안하지만 기재가 정말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고 프로수업을 그만 두게 하려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규병 사범이 ‘노력을 정말 열심히 하지 않는가. 노력도 일종의 기재다’라고 말해주곤 했다. 난, 전엔 기재가 없으면 프로기사가 될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살아왔는데 우리 애가 프로기사가 된 걸 보고 ‘그게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조금 들기 시작했다.”
김채영 양에게 - 결승3번기에선 여자연구생 랭킹1위로 시드를 받아 기다리고 있던 김신영 양과 바둑을 두게 됐다. 순간순간 어땠나? “나는 랭킹2위로 시드를 받아 4강에서 3개 대국을 두고 결승에 올랐다. 그 3판의 내용이 모두 좋지 못해 역전한 바둑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결승에 오르니 마음이 편안했다. ‘여기서 떨어지면 어떡하지’하는 부담감이 사라지고 없었다.”
- 입단 준비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것들이 많을 텐데… “가장 해보고 싶은 건 학교생활이다. 거창한 게 아니라 친구들과 수업시간에 같이 공부하고 어울리는 것이다. 수련회 같은 것이 있을 때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바둑에 모든 걸 쏟느라 포기했던 피아노도 다시 배우고 싶다. 이르면 다음 달부터 학원에 등록하려 한다.”
- 바둑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순간 바둑을 배우고 있었다(하하). 아버지께서 바둑교실ㆍ도장을 하고 계시기도 했고.”
- 프로를 지망하게 된 때는? “7살에 단수부터 배우기 시작했고 10살에 양재호 연구실에 들어가면서 프로기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15살 때부터는 유창혁바둑도장으로 옮겼다. 지금이야 통합됐지만…”
- 혹시 특이한 버릇이 있나 ? “어릴 때 생각하다 눈썹을 뜯는 버릇이 있었다^^ (조치훈 9단은 성냥개피를 부러뜨리기도 했는데 그 정도는 양반인 것 같다;기자) 후후, 지금은 그런 버릇은 없다.”
-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다면? “성적이 너무 안 좋았을 때 아버지께서 ‘그런 식으로 할 거면 그만 두라’고 말씀하셨을 때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괜한 엄포였던 듯 싶은데, 당시에는 그게 진심인 줄로 알고 조마조마했었다.”
- 존경하는 프로기사는? “유창혁 9단이다. 두텁고 공격적이다. 나도 바둑이 두텁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유 사범님의 스타일을 본받고 싶다.”
- 어떤 프로기사가 되고 싶은가? “꾸준히 노력하는 기사가 되고 싶다.”
- 여자기사들의 과제는 남자들과 대등하게 겨룰 기량을 기르는 것이라고들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나 역시 남자 상대와의 경쟁에서 아픔을 겪기도 했다. 내게 선에 안 되던 남학생이 1년 사이에 나보다 앞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럼에도 여자기사들이 언젠가는 남자기사들에게 특별히 밀리지 않을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시간이 흐르면 가능해질 것이다.”
- 그 밖에 하고 싶은 말은? “부모님, 양 실장님, 최규병 사범님, 양재호 사범님(이전), 유창혁 사범님을 비롯한 모든 사범님들께 감사를 드리고 특별히 현재 나의 지도를 맡고 계신 이정우 사범님께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 입단이 결정된 28일 딸과 아버지가 기쁨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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