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6장 17 - 20절
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19.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어제 봤던 말씀처럼 우리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좋은 동역자들도 있지만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고 유혹하며 보다 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못하도록 장애물을 두는 그런 사람들도 항상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사람들은 분별을 해서 그들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지혜로운 모습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참된 동역자인지 아닌지를 분별해 낼 수 있겠느냐가 문제인데 크게 두 가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이런 사람들은 우리가 관계를 끊고서 떠나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먹기 살기 위해서 교회에 출석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잘 분별을 해서 그런 사람들의 믿음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애당초 그 싹을 자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이제는 우리의 배만 섬기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서 살아가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고, 예수님을 지렛대 삼아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영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간절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쁘고 즐겁고 평범한 생활 속에서도 그런 간절함이 계속 되어야지 문제 하나 해결 되면 또 영적으로 게을러지고 나태해 지는 모습은 배를 섬기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이용하고 성도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분별해 낼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성도들뿐만 아니라 목회자들도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 성도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분별력을 가지고 떠날 것은 떠나고 버릴 것은 버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악한 영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는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작은 혀의 권세가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 야고보서에 보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큰 배도 그 배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그 배의 크기와 비교를 하면 아무 것도 아닌 작은 키라는 사실을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혀가 우리에게 그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혀가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의 혀가 우리의 인생을 그렇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특히 말에 대해서 우리는 분별력을 가지고 듣고 또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국을 향해 가고 있는 우리의 삶이 언제 어떻게 그 방향이 틀어져서 지옥을 향해 가게 될지 모르는 것입니다.
한 목사님이 젊은 과부 집에 자주 드나들자,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좋지 않는 소문을 퍼뜨리며 목사를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과부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제서야 마을 사람들은 목사가 암에 걸린 젊은 과부를 기도로 위로하고 돌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가장 혹독하게 비난했던 두 여인이 어느 날 목사를 찾아와 사과하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는 그들에게 닭털을 한 봉지씩 나눠주며 들판에 가서 그것을 바람에 날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고 얼마 후에 닭털을 날리고 돌아온 여인들에게 목사는 다시 그 닭털을 주워 오라고 하였습니다. 여인들은 바람에 날려가 버린 닭털을 무슨 수로 줍겠느냐며 울상을 지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는 여인들에게 “나에게 용서를 구하니 용서 해주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한 번 내뱉은 말은 다시 담지 못합니다. 험담을 하는 것은 살인보다도 위험한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살인은 한 사람만 상하게 하지만 험담은 한꺼번에 세 사람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첫째는 험담을 하는 자신이요, 둘째는 그것을 반대하지 않고 듣고 있는 사람들이며, 셋째는 그 험담의 화제가 되는 사람입니다.”
우리 주변에 아첨하는 말이나 험담하는 말이나 부정적인 말이나 이간질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과감하게 떠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이 미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우리는 잘 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잘 하면 되겠습니까? 19절에 후반에 보면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이런 식으로 잘 하면 됩니다. 미련하면 사기도 못 칩니다. 악한 데에 우리는 그런 미련함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고 반대로 선한 일에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분별력을 가지고 우리가 먼저 좋은 동역자가 되고 또 좋은 동역자를 반드시 얻어서 그들과의 교제를 통해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어야 합니다. 떠날 것은 떠나고 버릴 것은 버려서 하나님 나라에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믿음의 복을 받는 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고 말과 혀도 조심히 사용하는 복된 하루가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