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 대신 깜빡이, 의견은 쌍라이트로… 사상 첫 드라이브 스루 재건축 총회
‘드라이브 스루’ 재건축 조합 총회…여긴 어디?
28일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내 공터에서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 조합 관리처분변경총회가 드라이브스루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양회성 기자
28일 서울 개포주공 1단지 내 공터에서 열린 재건축 조합의 관리처분 총회는 사진기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취재꺼리였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총회를 할 수 없던 조합은 ‘드라이브 스루’라는 방식으로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쳤다. 조합원들은 각자 차량에 탄 상태에서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총회에 참석했다. 차량 이용이 불가능한 조합원은 총회 장소 입구에서 배부한 방역 모자와 장갑을 착용하고 서로 거리를 둔 의자에 앉았다.
‘개포주공단지’, 코로나19의 위험도 무릅쓰고 조합원들이 모이는 이곳은 어떤 곳일까? 인터넷 오픈 사전의 개념으로 따지면 “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동에 대한주택공사가 1982년에 건립한 대단위 공동주택 단지”다.
1982년 3월 마무리 공사 중인 개포주공아파트. 동아일보DB
한 때 개포동을 비하하는 표현도 있었다. 대모산에 막혀 접근성이 떨어지니 강남 기준으로는 상대적으로 서민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인 그 유명한 구룡마을도 개포동 소재다.
그랬던 개포동이 이제는 상전벽해의 상징이 되고 있다. ‘접근성이 안 좋다’라는 이야기는 양재천, 구룡산, 대모산으로 둘러싸인 친환경적인 마을로 말 바꾸기 되었다. 대치동도 가까워 교육여건도 좋단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다만 동아일보 데이터베이스(DB)에는 공사가 한창이던 그 시절 사진과 이후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남아 있었다.
1982년 11월 개포지구 아파트 당첨자 명단이 붙자 부동산 소개업소에서는 즉석 인화 카메라까지 동원하여 당첨된 사람들에게 프리미엄을 주고 당첨권을 샀다. 복부인이라는 용어도 이 즈음 등장했다. 동아일보DB
영화로도 기록돼 있다. 2015년 개봉한 영화 ‘강남 1970’은 도시개발 계획이 본격화된 1970년대 초 서울 강남을 배경으로 부동산 투기세력과 정치권, 건달 사회를 둘러싸고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겪어보지 못한 강남의 시작을 보여준 이 영화 배경인 1970년대에 비해 지금 강남의 땅값은 2천 배 이상 오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위키백과가 설명하는 개요 중 핵심만 요약하면 이렇다.
“1982년 건립 5층 국민주택 1~4단지 방2개, 욕실1개. 1983년 건립 고층아파트 5~7단지 방3개 욕실 1개. 소형평면위주 대규모 5040가구. 개별 연탄난방 이후 도시가스변경. 주공2단지 5층 방1개 욕실1개”
28일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내 공터에서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 조합 관리처분변경총회가 드라이브스루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차량을 타고 온 조합원들이 주차를 하기 위해 줄지어 있다. 양회성 기자
이날 ‘드라이브 스루’를 총회로 모여든 수백 대의 차량들만 봐도 고급 대형 외제차가 상당수를 차지했다. 재건축 바람이 불자 가능성을 본 동네 밖 사람들의 돈이 이곳으로 모여들었을 것이다. 돈이 없는 원주민들은 동네 밖 사람들의 돈을 쥐고 다른 곳으로 이주했을 것이고. 이곳을 떠난 그때의 서민들은 지금쯤 어디에 보금자리를 두고 있을까?
양회성 기자
28일 서울 개포주공1단지 내 공터에서 열린 재건축 조합의 ‘드라이브 스루’ 관리처분 총회에서 차량 이용이 불가능한 조합원들이 폐교 운동장에 거리를 두며 의자에 앉아 총회 안건을 듣고 있다. © News1
“박수를 대신해서 그 마음을 담아 방향지시등을 켜주시기 바랍니다”
“의견이 있으신 분은 전조등을 켜주시기 바랍니다”
사상 첫 ‘드라이브 스루’(승차) 방식으로 열린 28일 서울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조합 총회에서는 여느 총회에서는 보기 힘든 진풍경이 펼쳐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분양가상한제까지 연기됐다. 그러나 하루하루 쌓여가는 지연 비용 부담 때문에 개포1재건축 조합은 이날 오전 승차 총회를 강행했다.
조합원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지지한다’면서도 총회의 진행과 운영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내비쳤다. 일부에서는 조합원들이 총회 운영에 항의해 진행 요원들과 말싸움으로 언성을 높이는 모습도 포착됐다.
총회는 계획한 오전 11시보다 20분 정도 늦게 시작했다. 개인 차를 타고 참석하는 승차 총회인 만큼 일대로 차량이 몰리면서 교통혼잡으로 조합원들이 제시간에 모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근 매봉터널부터 총회장인 개포주공1단지까지 총회에 참석하려는 차들로 통행이 원활하지 못했다. 20년째 택시를 운행한다는 택시기사 A씨는 “평일 이 시간대에 이렇게 막혀보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1단지 주변에 도착하더라도 입장을 위해 대기하는 차량 행렬은 구룡터널 인근에서부터 개포우성3차 아파트까지 1단지를 우측에 끼고 둘러졌다. 도보로 참석한 조합원들은 인근 개포고등학교에서부터 줄을 섰다.
조합 측이 방역을 이유로 단 1개의 입구와 출구만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출입 인원과 차량 탑승자의 온도를 체크하고, 조합원 유무를 확인하는 과정 때문에 출입 행렬은 단지를 끼고 길게 늘어섰다.
총회 진행 중에도 진풍경은 이어졌다. 진행자는 이 지역 현역인 전현희 의원 등에게 공로패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단상 앞에 주차된 차들을 향해 “박수 대신 방향지시등으로 환영해달라”고 했고, 주차된 수백 대의 차량은 이른바 ‘쌍깜박이’로 화답했다.
진행자는 안건에 대한 의견을 수렴할 때도 ‘발언권 요청을 전조등을 켜서 해달라’거나 ‘전조등을 미처 파악하지 못하면 클랙슨을 울려달라’고 했다.
총회장이 된 공터에는 사륜 바이크도 등장했다. 차량 수백 대가 동시에 주차돼 총회를 지켜볼 만큼 넓은 부지를 한정된 진행요원들이 도보로 챙기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진행요원 B씨는 “30~40대 사륜 바이크를 대여해서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참석한 차량은 노란색과 빨간색 스티커로 구분됐다. 노란색 스티커를 부착한 차량은 단순 총회 참석 목적, 빨간색 스티커 부착 차량은 현장에서 총회를 보며 투표한 차량이다.
정장을 차려입은 진행요원들이 사륜 바이크 뒷좌석에 기표가 된 표를 수령하기 위한 투표함이나 조합원에게 제공할 물병과 떡 등 요깃거리를 실은 채 흙먼지를 일으키며 차량 사이를 오가는 모습도 총회 내내 목격됐다.
도보 참석 조합원은 1단지 한가운데 위치한 개원초등학교 공터에 마련된 일정 거리를 띄운 좌석에 앉아서 총회를 시청했다. 이날 총회에는 낮 12시30분을 기준으로 접수자 수가 2200명을 넘겼다.
일부에서는 진행요원과 조합원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번호표 배부가 아닌, 진행요원들이 일일이 차량을 찾아다니며 접수를 하고, 기표를 수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일부 조합원들은 주차 이후 40분이 넘도록 차 안에서 기다리기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다.
총회 시간 중간에 입장한 조합원이 이미 투표를 마치고 빠져나간 차량의 자리를 대체해 순서가 꼬이고, 투표를 마친 차량과 하지 않은 차량의 식별이 힘들어지면서 생긴 해프닝이다.
한편 총회를 지켜본 조합원들은 대체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총회 개최를 지지했다.
도보로 총회에 참석했던 70대 여성 조합원 C씨는 “총회를 이런 식으로라도 열고 재건축 일을 진행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다만 불만사항도 제기됐다. ‘이런 식의 총회가 대의성을 띌 수 있느냐’는 비판도 나왔던 것. 40대 남성 조합원 D씨는 “조합원 의견을 제대로 청취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고, 출석 체크만 겨우 하는 정도로 대의가 제대로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촌평을 남겼다.
접수 과정에서의 아쉬움을 토로하는 조합원도 있었다. 조합원 E씨는 “줄을 서서 접수하는 과정에 접수자들은 방역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갖춰 입고 우리는 다닥다닥 붙어서 접수했다”며 “자기들(진행요원)만 안 걸리면 된다는 총회지 이게 무슨 방역에 철저한 총회냐”고 혀를 찼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