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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 24. 큐티
창세기 19:23 ~ 38
롯과 두 딸들
관찰 :
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 23절.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 롯의 가정이 소돔에서 나와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습니다. 즉, 소알은 소돔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성읍이었습니다. 롯은 더 멀리 피신했어야 했지만, 자신의 판단에 따른 간청으로 근처 성읍 소알로 들어간 것입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 얼마나 무섭게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후의 정황을 보면, 롯은 소돔에 다시 돌아갈 계획도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기에 롯의 아내는 소돔을 돌아보았던 것입니다.
- 24절.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 하나님께서 무서운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하늘에서 유황과 불이 소돔과 고모라에 비 같이 내렸습니다. 화산 폭발이 일어나 화산재가 내려서 도시가 없어지는 경우가 역사 가운데 몇 차례 있었습니다(폼페이, 앙겔레스 등).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는 불덩어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좀 다른 양상으로 보입니다. 모든 것이 불에 타버렸습니다. 살아남은 생명체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 25절.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 롯이 상상하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무서운 심판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렸습니다. 몇 시간 전까지도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 롯의 모든 재산을 소돔에 내버려 둔 채 맨 손으로 소돔을 떠날 때 그를 비웃던 사람들, 사위들 모두가 다 순식간에 다 하늘에서 내린 유황과 불에 타 죽어버렸습니다. 롯의 모든 가축들을 포함해서 짐승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 26절.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 롯의 아내는 이 상황에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자신의 재산, 하나님이 살려주신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된 남겨진 것들을 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소돔에서 겨우 생명이 부지되어 나오게 되었던 상황입니다. 그것만해도 엄청난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물질을 기억하고 아쉬움에, 원망하는 마음으로 뒤를 돌아봄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2) 아브라함도 목격하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 27절.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 소돔과 고모라에 심판이 임하고 하루가 지난 시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더불어 소돔의 구원을 위해서 논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한 행동이었습니다.
- 28절.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그 성읍들이 있던 비옥했던 들판의 온 지역에 연기가 가득한 것을 목격했습니다. 옹기 가마에는 수천 도의 열을 가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땔감을 때어야 합니다. 그래서 연기가 많이 발생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있던 온 지역에 옹기 가망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듯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장면을 아브라함이 멀리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속이 많이 상했을 것입니다. 그 땅을 구원해 보고자 하나님께 목숨을 걸다시피 사정하며 의인 오십 명에서 십 명까지 숫자를 낮추며 협상을 했건만, 그 노력이 무산되었기 때문입니다.
- 29절.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 그러나 하나님께서 롯을 피하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인정해주시는 은혜였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어떤 존재로 여기게 되셨는지에 대해서 기록이 남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이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존재로 여겨지게 된 것입니다.
3) 소알에서 나온 롯과 두 딸의 비인륜적 행위
- 30절.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 롯은 천사에게 간청해서 소알에 거주했습니다. 그렇다면 소알에서 나오게 될 때도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롯은 두려움에 가득차서 소알에서 떠났습니다. 허락받지 않고 마음대로 떠난 것입니다. 물론 천사가 진작에 가라고 했던 산으로 피신했습니다. 그리고 굴에서 두 딸과 함께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를 잃고 간신히 두 딸만 데리고 굴에서 숨어있는 롯의 모습은 비참한 상황이었습니다.
- 31절.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 구약의 학자들은 이 때 소돔과 고모라를 포함해서 5개의 성읍이 하늘에서 내린 유황과 불에 의해서 타 없어졌다고 말합니다. 하늘의 재앙이 임하고 온세상의 종말이 온 것으로 이해했을 것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롯의 두 딸이 이렇게 반응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최소한 소알은 망하지 않았고, 그곳에 사람들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롯의 두 딸은 자신들이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서 특단의 대처를 하고자 합니다.
- 32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 이런 일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롯의 두 딸이 음란한 성읍이었던 소돔에 머물면서 성적으로 기준이 무너져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모습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망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딸이 아비를 통해서 자손을 잇겠다는 생각은 정말 기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종종 인면수심의 아비들이 딸들을 성폭행하는 일로 임신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한데 딸들이 아비를 속여 술에 취하게 해서 임신을 한다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 33절.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 큰 딸은 수치를 모르고 있습니다. 롯도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하더라도 딸과 성관계를 맺은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 설득력을 갖지 못합니다.
- 34절. “이튿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 큰 딸은 자신의 죄악에 대해서 작은 딸과 공모함으로 죄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그리고 함께 그 죄악에 동참하게 합니다.
- 35절. “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 둘째 딸마저 아버지와 동침했고 그 과정에서 롯은 여전히 깨닫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데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의심이 들게 됩니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성교로 임신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롯도 알고 있었지만 불순종에 고의적으로 동참하는 악을 행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은 몰랐다고 발 뺌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 36절.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 롯의 두 딸의 노력으로 둘 모두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어처구니 없고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을 인해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서 소돔에서 살아 나온 롯과 두 딸이 그 결과로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한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롯은 소돔에 들어가서 성문에 앉아 재판을 할 정도로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순식간이 망하게 되고, 그나마 생명은 부지했지만,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을 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롯은 부끄러운 구원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 37절.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 큰 딸은 아들 모압을 낳았고, 모압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압이 이후에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얼마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괴롭혔는지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믿음의 여정 속에서 아브라함과 갈려나온 롯의 행위가 후손들을 통해서 이렇듯 완악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모압은 “내 아버지로부터 낳은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근친상간을 통해서 낳은 아들의 이름에 그 내용을 담은 것입니다.
- 38절.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여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았습니다. 암몬 자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암몬은 언니의 자손 모압과 함께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대표적인 민족이 되었습니다. 벤암미라는 뜻도 “내 아버지로 얻은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모압과 동일한 의미라 할 것입니다. 모압과 암몬이 모두 수치스럽게 이 땅에 태어났고, 그들의 삶과 후손들의 삶은 여호와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을 괴롭히는 저주스러운 역사를 이어가게 됩니다.
가르침 :
1) 롯은 자기 마음대로 소알에서 산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소알로 들어갈 때 천사에게 떼를 써서 들어가 놓고는 이동할 때는 허락없이 자기 마음대로 옮긴 것입니다. 롯은 소돔에서 큰 거부가 되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문에서 재판을 주재하는 위치까지 올랐던 사람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자기 고집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판단을 더 먼저 생각하고 앞세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았어도 피하지 못하는 롯의 성질이었던 것 같습니다.
2) 아브라함은 자신과 하나님이 협상을 했던 소돔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를 포함한 그 일대가 모두 처참하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유황과 불로 인해서 하루가 지나도록 계속해서 연기가 솟아올랐습니다. 그곳에는 생명체가 없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심으로 조카 롯이 살아 나왔음을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으로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자로 세우셨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3) 롯의 두 딸은 도대체 어떻게 교육을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자는 롯의 아내가 소돔 사람으로서 성적으로 몹시 무너진 존재였고, 그러한 배경에서 롯의 두 딸 역시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식을 얻고자 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혹은 롯의 아내와 상관없이 두 딸이 소돔에서 어떤 성적 윤리의식을 가졌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렇기에 롯이 자신의 두 딸이 남자를 모른다고 했던 표현은 자신의 두 딸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던 아비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4) 그런데 두 딸이 자신들의 아들에게 모압과 벤암미라는 이름을 붙임으로 그 아들들이 아버지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이름에 남겼습니다. 이것이 자랑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이 문제가 롯의 주도하게 일어난 사건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은 신학적인 차원에서는 없었던 생각입니다. 차마 롯이 두 딸을 강간한 것을 표현할 수 없었던 성경 기자의 표현은 아니었기를 바라지만, 두 딸이 아비를 속여서 임신을 한 것은 사실 더 충격적인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5)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가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살게 될 때 일어나는 비극을 롯과 두 딸을 통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는데, 자신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이들의 삶은 이와 같이 더욱 비극적이고 참혹하게 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을수록 더욱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적용 :
1)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면,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다른 길을 선택하고 추구하게 되면 더욱 심각하게 망하게 됩니다. 저는 주님의 은혜로만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것은 필요없고 오직 주님의 은혜 안에 거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긍휼을 구하고 구하는 이유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에 대한 책임감을 외면하고 살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 땅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가서 하나님과 협상한 결과를 확인하고자 한 것이 바로 그러한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또 한 단계 성장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장면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제 믿음이 그렇게 장면 장면마다 성장한 것으로 기록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3)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롯과 두 딸의 비인륜적 행태는 용납될 수 있는 모습이 아닙니다. 상황이 진리를 앞서게 되면 안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상황, 세상이 멸망당한 것 같은 상황이라 할지라도 지켜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종종 이 세상의 문화에서 묘사하는 종말에 대해서 생각해 보곤 합니다. 그런 상황이 만약에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흔들리지 않고 지켜져야 할 것입니다.
4) 그런 면에서 미얀마에서 미얀마의 독특한 상황을 주장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사역을 하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중국에서 경험했듯이 위법을 행하면서 선교를 하는 것은 결국 망하는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