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든 사람과 창조일이 분명한 유일한 글자, ‘훈민정음’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문화유산은 한글이다. 조선왕조실록 종묘제례악 강릉단오제 조선왕릉등 유형 무형의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들이 있지만 ‘훈민정음’이야말로 창조성, 독창성, 과학성, 편리성등 모든 면에서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칭송받을 만하다. 이것은 국수주위적 관점이 아니라 세계적인 언어학자, 문화학자들이 인정하는 바다. 이미 몇 곳에서는 한글을 자기말을 표기하는 문자로 채택하기도 했다.
한글의 독창성이란 세계문자 가운데 한글만이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등이 특정한 사람들이 만든 문자라는 것이다. 세종때 측우기 혼천의 자격루등 여러 과학기기들이 만들어졌지만 장영실작품으로 남아있지만 훈민정음은 세종이 유일하게 ‘친제’(親製)라고 발표했다. 세상에 나라별, 부족별로 언어는 많지만 이를 적는 글자는 몇가지 안된다. 구미의 알파벹, 중동의 페르시아문자, 중국의 한자 정도다. 고대의 이집트 마야 수메르 만주어등 그림, 성형문자는 있었지만 더 이상 발달되지 않고 고대문자로 사장됐다.
제일 많이 쓰는 글이 로마자 알파벹이다. 유럽과 미국, 중남미등의 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포루투칼어등 언어는 많지만 글자는 모두 알파벹을 쓴다. 이 알파벹은 중동의 지중해연안 페니키아에서부터 시작해 그리스 로마를 거쳐 각 나라의 말에 조금씩 형태를 달리해 발달된 문자다. 한자도 기원전 2천년경부터 황허하류지역에 있었던 은나라의 갑골문자에서부터 상형문자가 점차 변형돼 지금의 글자꼴로 된 것이다
그나마 그리스어의 변형인 동구나 러시아에서 쓰이는 키릴문자가 유일하게 만든 사람과 시기가 어느 정도 전해온다. 9세기경 비잔틴에서 지금의 세르비아지역인 모라비아에 선교사로 파견된 키릴로스수사 형제들이 그리스어를 슬라브계말에 맞추어 변형한 것이다. 이 글자가 지금의 러시아 알파벹이다. 영어 알파벹과 비슷하지만 발음도 바뀌고 글자도 조금씩 다르다. 농담으로 이유가 전해온다. 키릴로 수사가 겨울에 로마글자를 상자에 담아 가져가다 눈밭에 미끌어져 글자가 흩어졌다. 바삐 주워담아 민스크공작에게 바쳤더니 알파벹순서가 뒤바뀐 그대로 지금의 러시아문자가 됐다는 것이다.
불경을 적은 산스크리트어(梵語)가 오래된 문자다. 고대 수메르지방 즉 유프라테스 티그리스강유역인 메소포타미아지방인 고대 페르시아에도 여러 말이 있었지만 함무라비법전을 비롯한 문헌은 진흙에 끌로판 설형문자가 주류였다. 이것이 발전해 산스크리트문자가 됐고 고대 페르시아의 페르시어, 예수시절에 썼던 아람어등으로 이어졌다. 지금의 이란 이라크 시리아등 중동의 문자다. 모하메트가 612년 메카에서 신탁을 받아 이를 ‘꾸란’(코란)으로 정리했지남 아라비아어는 말만 있지 문자가 없어 페르시아어로 쓴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태국어이다. 태국의 주종족인 터이족은 지금의 중국 광서자치구쪽에 살다가 라오스를 거쳐 차오프라야강을 따라 수코타이,아유타야등을 지나 방콕으로 수도를 옮겼다. 그래서 라오스말과 태국말이 비슷하다. 그런데 스리랑카로부터 소승불교를 받아들인 다음 12세기 수코타이왕조의 람캄행대왕이 불경을 적은 산스크리트어를 축약해 지금의 태국어를 만들었다. 그래서 타이글자도 아랍어처럼 ‘라면땅 부서진’듯한 형태의 글꼴을 갖고 있다. 한자의 한부분을 따 발음을 표기한 일본의 가나처럼 남의 문자를 변형했지만 창제한 사람이 분명하다는 점만이 한글에 버금간다.
‘훈민정음’은 말을 그대로 글자로 표현하는 ‘신비로운 문자’다. 훈민정음(訓民正音) 즉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말이다. 훈민정문이 아니고 ‘정음’이란 문자가 아닌 말이다. 세종 대왕당시 모든 관공서나 지식인들은 한자로 한문을 썼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은 자신이 말하고 싶은 내용을 관청에 민원을 할 수도 없었고 상소를 통해 임금에게 호소할 수도 없었다. 세종대왕이 “백성에게 누명을 씌운 관리는 엄벌하되 임금에게 험담한 백성은 용서하라”라고 말한 것만 봐도 위민정신과 백성과의 소통을 얼마나 원했는지 알수 있다.
한글의 과학성도 놀랍다. 유일하게 한글만이 글자를 만든 원리까지 알기 때문이다. 자음은 발성기관, 모음은 천지인을 인용한 것이 밝혀졌다. 이는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에서 밝혀졌고 간송 전형필선생이 이를 사들여 지금도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한글’이란 말은 1910년경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자 주시경선생등 한글학자들이 ‘큰글’이란 뜻으로 만들었다 .일본의 ‘가짜 글자’가 아닌 우리의 우수한 글이라는 자부심이 배어있다.
훈민정음이 1443년 세종이 반포했지만 공식적으로 백성에게 허용한 것은 451년후인 1894년 갑오경장때 부터라는 것이 부끄럽다. 일본군이 동학혁명을 진압하고 고종에게 강제로 시행한 이 개혁조치에 양반제, 노비제도의 폐지와 한글의 공식허용이 들어있다. 세종당시에도 최만리같은 관리는 훈민정음 창제를 ‘오랑캐짓’이라고 비난해 하루밤 감옥에 가기도 했지만 그만치 양반의 기득권층이 조선시대 내내 ‘한자’로 백성위에 군림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