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뿌리고 간 날이다. 유난스럽게 우는 새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고 살폈다. 새는 나뭇가지 위에서 매운바람 끝에 찔린 듯 파르르 떤다. 이파리 하나 없는 빈 가지에 앉은 발이 무척 시려 보이고,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이 불안하다.
그러고 보니 저 새처럼 세상도 혹독한 추위를 겪고 있다. 미국에서 일어난 금융 불안이 재앙에 가까운 수준으로 세상을 흔들어놓더니, 우리 이웃들에게도 밀려와 마음 붙일 데가 없게 만들었다. 어쩌다 같은 배를 타서 원치 않은 바늘방석에 앉게 된 것인가. 물처럼 흘러가다가 스스로 커다란 물살이 되어서 가파른 폭포 앞에 서게 된 것이리. 가난한 시절, 어머니의 반짇고리 속에 있던 꽃무늬 바늘방석이 떠오른다. 소박한 꿈을 꾸던 그 시절이 오히려 그립기까지 하다.
잠든 아이들 머리맡에서 양말의 볼을 깁던 날은, 캄캄한 어둠을 몰아내는 작고 노란 육십 촉짜리 등도 따뜻해졌으리. 둥근 모양에 꽃무늬를 새긴 바늘방석에는 이불 깁는 대바늘, 수를 놓는 실바늘, 솔기가 터질 때 깁는 중바늘로 빼곡하다. 사람들의 마음이 상하면 바늘 하나 꽃을 데가 없다는 말은 있지만, 바늘방석은 고슴도치처럼 꽂힌 바늘들로 아름다웠다. 배가 볼록하도록 감긴 실꾸리와 여기저기 불려 다닐 가위며 자투리 헝겊들이 담겨있는 반짇고리는, 가끔씩 우리들의 장난감이 되어 심심함을 덜어주었다. 어쩌다 바늘을 흘린 날에는 느닷없이 일침을 맞게 되는데 바늘방석이 왜 필요한지 실감하게 된다.
동네 처녀들은, 시집갈 때 혼수로 가져갈 조각이불과 베갯잇에 수를 놓느라 자주 수틀 알에 앉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혼자서 수를 놓는 날에는 신랑감을 그리며 달콤한 꿈에 젖어 얼굴을 붉혔으리라.
바늘방석은 예쁘고 다양해서 마음을 홀리게 한다. 어머니들의 솜씨가 어떤 천과 색깔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른 손맛을 보여준다. 고단한 일상에서도 꿈을 잃지 않은 어머니들의 마음이 정성스레 바느질되어 있다. 모양도 다양하여 호리병, 안경집, 거북이, 버선이나 방석 모양을 본뜬 것들이 다양하고도 앙증스럽다. 수를 놓거나 술을 달아서 노리개로 삼은 것은 멋과 실용을 겸비했다.
처녀들의 달콤한 꿈이나 어머니들의 요긴함과는 멀어진 바늘방석은, 규방용품을 전시하는 곳에서 감상하는 처지가 되어간다. 그중에서 휴대폰걸이가 인기가 있다고 하니 잊히지 않은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바늘쌈지, 바늘겨레, 바늘꽂이 바늘집이라는 이름마저도 낯설어 멀어지는 듯하다. 반짇고리에 두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작고 예뻐서, 노리개로 삼거나 걸어두고 감상한다든지 선물로 받았으며 한다니 못내 아쉽다.
바늘방석이 사라지고 있는 요즈음, 엉뚱한 곳에서 온통 바늘투성이들이 찌르고 있다. 바늘이 있어야 할 자리를 잃은 게다. 바늘방석은 바느질을 준비하는 정거장이다. 지아비와 아이들의 입성을 만들기 위해 꿈꾸는 방이다. 그들에게 바늘집이 필요하다. 제자리로 가는 길은 혼자 가는 길이 아니다. 실과 함께 오가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무의미한 길이 된다. 실이 있어서 비로소 빛나는 길이다.
세상을 저 혼자서 살 수 없듯이 귀를 언제나 열어두어야 하리. 설득해서 끌고 가는 길이어야겠고, 개척자의 정신으로 밀고 나가는 힘이 있어야 하겠다. 때로는 공격적이어서, 끊어지고 맺힌다. 하더라도 다시 꿰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할 때다. 저 누더기 같은 옷으로는 추위를 막을 수 없지 않은가. 해진 옷을 기워주는 실의 마음을 헤아려 인내하면서 두껍고 얇은 천의 실오리들을 하나하나 헤쳐 나와야 좋은 옷 한 벌 지어지리니.
잘 만들어진 옷 한 벌을 지어 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었으면 한다. 다가오는 봄날에 새는 둥지에서 그들의 새끼들을 잘 키울 수 있기를. 그리고 저마다의 살림살이에도 봄볕이 들기를.
(송복련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