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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두부류의부르심과가르침의차이
#제자부는즉시따랐고일반인부는조건부의가르침을따랐습니다
AMI교회 (missions)
15시간 전
2026년 8월 7일 황용현 칼럼
우리가 요즈음 '크리스천 가정관'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두(2) 종류의 가정관이 있음이 발견됩니다. 모든 크리스천이 다 같은 가정관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제자들'에게 주어진 가정관(마10:34-37; 눅14:26-27)과 '일반 크리스천들'에게 주어진 가정관(엡5:21-6:4; 골3:18-21; 벧전3:1-7) 입니다. 이것이 서로 다르다고 성경이 가르칩니다. 다르다고 하기보다, 서로 상충됩니다. 상당히 소화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혼돈되기도 합니다. 한 성경 안에 서로 상충되는 가르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가르침이 어떻게 상충되나요? 이렇게 상충됩니다. '제자들을 향한 가르침'입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로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며,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10:34-37). 그리고 계속해서 이 제자의 가정관에 대하여 더욱 구체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가정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6-27) 라고 하셨습니다.
반면 이와 정반대 되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바울과 베드로를 통해서입니다. '일반 크리스천들을 향한 가르침'입니다. "아내들아, 남편께 복종하라. 순종치 않는 남편을 선행으로 구원시키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라. 아내는 연약한 그릇이다.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는 자다. 귀히 여기라. 자녀들아 부모께 순종하며 공경하라. 아비들아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엡5:21-6:4; 골3:18-21; 벧전3:1-7) 입니다. 아이로니 하게도 이는 상기 '제자들을 향한 가르침'과 상충되는 가르침입니다. 왜 이렇게 상충되는 가르침을 하셨는지에 대해, 제가 지난 칼럼에서 자세히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해결책도 제시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질문이 있습니다. 무슨 이유로 교회 안에 이런 두(2) 상충된 '가족관'이 존재하는가?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디자인인가요? 아니면 우연히 발생한 것인가요? 입니다. 우리가 압니다. 하나님에게는 결코 우연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하나님의 디자인임이 틀림없습니다. 창조목적 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입니다. 이 프로그램('두 부류의 학생들', '제자들과 일반 성도들')을 창세 전에 이미 디자인하셨음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 디자인이 바로 로마서 8:29-30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제자들을 창세전(엡1:4)에 (1) '예지'(헬. proegno, 영. foreknew, 부정과거형) 하셨으며, (2) '예정'(헬. Proorisen, 영. predestined, 부정과거형) 하셨으며, (3) '부르셨으며'(헬. ekaresen, 영. called, 부정과거형), (4) '의롭게 하셨으며'(헬. edikaiosen, 영. justified, 부정과거형), 그리고 '영화롭게 하셨음'(헬. edoxasen, 영. glorified, 부정과거형)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롬8:29-30). 모두가 '부정과거형' 동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과거 어느때(창세전, 엡1:4)에, 이들 제자들을 향한 이 은혜가 이미 디자인되었다는 기록입니다.
이때가 바로 창세전(엡1:4) 입니다. 인간이 창조(창1:26-27) 되기 훨씬 이전입니다. 예수님이 예레미야가 모태에 형성되기 전에 이미 그를 아셨다고 하셨습니다(렘1:5). 예수님은 전지하신 하나님(omniscient God, 마10:30; 롬8:29-30) 이십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가 자신의 주권으로(롬9:6-23), 창세전에 이미 제자 될 사람들을 이렇게 예지하시고 예정하시고 부르셨으며, 의롭게 하셨으며, 영화롭게 하셨다는 가르침입니다(롬8:29-30). 이것이 '예수님의 주권적 디자인'입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할말이 없습니다(출33:19; 마20:15; 롬9:15).
이 '예수님의 주권적 디자인'에 의해, 같은 크리스천에게, 서로 상충된 '두 개의 가족관 구룹'을 예비하셨습니다. (1) '제자 가족관 구룹'과 (2) '일반 성도 가족관 구룹'입니다. 창세전 이미 디자인된, '하나님의 예지하심과 예정하심과 부르심과 의롭게 하심과 영화롭게 하심'의 디자인 속에서 입니다. 이 디자인 속에서 이 '두 구룹'을 만드셨습니다. 이 두(2) 구룹이 서로 다른 가족관을 가지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가족보다 더 사랑하는 가족관'('제자 가족관')과, 그 반대로 '가족을 우선 더 사랑하는 가족관'('일반 성도 가족관')입니다. 이 예정적 디자인을, 예수님이 성경에서 실제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 보여주심이 이러합니다.
우선 '예수님의 제자팀'을 보겠습니다. '베드로'와 그 동생 '안드레'입니다. 이들이 불리움 받았을 때의 스토리를 보겠습니다(부친 요한(요나), 요1:42). 이들이 어부(마4:18)였습니다. 이들이 그물을 던지며 고기잡이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들에게 오셔서 명령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4:19) 하셨습니다. 이들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이들이 즉시(헬. eutheos, 영. immediately) 그물을 버려두고(사업을 정리하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마4:20). 이들이 예수님의 명령에 토씨를 달지 않았습니다. '즉시'였습니다. 부모님과 상의도 안 했습니다. 가족과 작별 인사도 안 했습니다. 이 명령 받자마자, 만사 제쳐놓고 기다렸다는 듯이, 토씨 하나 달지 않고 '즉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신기합니다. 그 이유가 바로 이들이 창세전에 로마서 8:29-30의 은혜를 받은 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이때 처음 만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드레'(세례 요한의 제자)가 이미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고, 자신의 형 '베드로'를 예수님께 소개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게바'(Cephas)라는 새 이름까지 지어 주셨습니다(요1:35-42). 이렇게 이 형제들이, 유대교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서, 예수님의 정체성('메시아')을 희미하게 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자마자, 가족과 의논할 여지도 없이 감사와 감격으로, '즉시'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당시 베드로는 부인도 있었는데 말입니다(마8:14). 분명 이들이 이렇게 반응한 것이 바로, 예수님이 이들에게 향한 창세전 예지와 예정과 부르심과 의롭게 하심과 영화롭게 하심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본인들은 이 사실(fact)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후 예수님이 또 다른 두(2) 형제를 제자로 차출하셨습니다. 이들이 바로 '야고보'와 '요한'(부친 '세베대', 마4:21) 입니다. 이들도 어부였습니다. 이들 형제가 부친 '세베대'와 함께, 배안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이 두 아들들을 부르셨습니다(마4:21). 놀랍게도 이들도 '즉시' 배와 아버지를 남겨두고, 예수님을 따라 갔습니다(마4:22). 신기하게도 이들의 부친 '세베대'의 반응입니다. 두 아들들을 '즉시' 예수님께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소중한 사업 파트너들을 통째로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가족들과 의논도 없이 '즉시'입니다. 토씨를 달지 않았습니다. 빌립도 마찬가지였습니다(요1:43-44). 마태도 마찬가지였습니다(막2:14). 마태는 세리 고위관리 직업을 즉시 그만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심지어 그가 예수님을 모시고, 자기 집에서 많은 세리들과 또다른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큰 잔치까지 베풀었습니다(눅5:27-29).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왜 상기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즉시'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나요? 입니다. 심지어 이들의 부친들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모친들이나 부인들까지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자신의 아들들을 가정으로 보내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가 분명합니다.
이는 이 아들들이 이미 창세전에 예수님의 제자로 예지, 예정, 불리움, 의로움, 영화로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롬8:29-30). 이 사실을 본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이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어, 이렇게 인도해 주셨던 것입니다. 분명 예수님이 이분들의 후손들에게, '수 천대'('이세상과 저세상')까지 자비를 베푸실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출20:6). 예수님의 크신 은혜로 입니다. 여기까지가 '예수님 제자팀들'의 차출 모습입니다.
이제 그 두 번째로 '서기관팀들' 차출 모습을 보겠습니다. 이들이 '일반 성도 구룹'의 예표입니다. 이들에 대하여 성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두(2) 사람들'('서기관들')을 등장시킵니다. 이들의 이야기가 누가복음 9:57-62에 있습니다. 첫번째 사람 이야기(눅9:57-58)와 두번째 사람 이야기(눅9:59-62) 입니다. 우선 첫번째 사람 이야기를 살펴봅시다. 누가복음 9:57-60에 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인 즉 이러합니다.
"그들이 길을 가고 있을 때, '어떤 사람'(마태복음 8:19에서는 이 사람을 '서기관'이라 했습니다)이 예수님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내가 따르겠나이다'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들도 집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도다' 하셨습니다(눅9:57-58). 아이로니 하게도 이 서기관은 상기의 제자들과 여러모로 다른 사람입니다. 서기관이란 유대교 학자를 지칭합니다. 구약 말씀에 능통한 사람입니다. 유대사회의 상류층 지식인입니다. 유대교에 박식한 종교학자들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이 예수님을 '특별한 선생님'으로 보았습니다. 따를만한 선생님으로 생각했습니다. 자청하여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이 그에게 이해하기 힘든 대답을 하셨습니다. '인자는 머리 둘 곳조차 없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이 사람이 말로는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변함없이 따르지 않을 것을 암시적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을 이용만 하고, 이용가치가 없으면 떠날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다른 서기관')이 등장합니다(눅9:59-62). 이 사람을 마태복음 8:21에서는, '상기 서기관의 제자 중 한 사람'이라 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 명령하셨습니다(눅9:59). 상기 첫 서기관은 자청하여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했는데 말입니다. 이 두번째 서기관이 이 예수님의 따르라는 명령에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지내게 하옵소서"(눅9:59) 입니다. 이에 예수님이 이 사람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마8:22). 죽은 자들로 그들의 죽은 자를 장사지내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눅9:60) 하셨습니다. 이에 이 사람이 예수님께 반응했습니다.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 그러나 먼저 내 집에 있는 가족에게 작별을 고하게 하여 주소서"라고 부탁했습니다(눅9:61). 이에 예수님이 다시 반응하셨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헬. euthetos, 영. fit for, 적합)하지 아니하노라"(눅9:62)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손에 잡힌 쟁기'는 무엇인가요? 이는 '복음 농사용 농기구'입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7대 신학 주제들과 5대 신비들'이며, '작은 책'이며, 'ABA'입니다. 이 '서기관'이 이 '쟁기'를 손에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농사 짓지 않고'('전도/선교/양육하지 않고'), '뒤를 돌아보고만'('가족 걱정만 하고') 있었습니다. 가족을 먼저 챙긴 후, 복음 농사에 참여하려 합니다. 가정이 우상입니다. '가정 십자가' 지기를 꺼려합니다. 조건부입니다. '즉시'가 아닙니다. 상기의 예수님의 제자들과 구별이 됩니다. 이들이 '서기관'(학자, 7대 신학 주제들과 5대 신비들을 공부한 사람, 작은 책 먹은 사람, ABA 공부한 사람)이지만, '즉시'가 아닙니다. 우선순위를 바꾸지 못합니다. 조건부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이 상기 제자들과 차별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창세전에 예수님의 제자로 예지 되었고, 예정 되었고, 불리움 받지를 못했기 때문에, 이런 반응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잘잘못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주권적 디자인 때문입니다. 이렇게 상기 '두(2) 팀들'('제자 팀들'과 '일반성도 팀들')의 성경적 사례들('역사적 사건들')을 통하여, 기독교 교회 안에 두(2) 부류의 서로 상충된 가정관을 가진 분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안에 이런 상충된 두 팀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절대로 서로 비평하거나 비난하면 안됩니다. 함께 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시각에서는 이 두(2) 팀이 교회 안에 모두 필요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의 초점이 '제자팀'에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신붓감들'('추수꾼들', '하나님의 아들들', '제자들', '남은자들', '예수님의 대사들', '반석 위에 집 짓는 자들', '8복의 사람들', '왕 같은 제사장들', '예수님의 창조목적 동역자들', '한 주인 예수님만 섬기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이 '두 짐승'이 난무하는 시대입니다(계13:1-18). 예수님의 공중재림이 가까운 시대입니다. 마태복음 24:14이 성취되어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한 주인만 섬기는 제자들이 많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예수님을 최우선시하는 제자들이 많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손에 쟁기를 잡은 제자들이 많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제자들이 많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가 섬기고 있는 40여개의 나라들에, 이런 신실한 예수님의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많이 예비시켜 주셨습니다. 지금도 예비시켜 주시고 계십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예비시켜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크신 은혜로 입니다. 이는 예수님 재림전, '추숫꾼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입니다. 황 목사와 AMI 명성을 높이기 위해서가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 이름만 높여져야 합니다. 본부에 있는 AMI 팀들이여, 이들 AMI 국제팀들이, 이 마지막 추수 사역에 아름다운 열매 많이 맺도록, 잊지 말고 매일 매일 기도로 이들과 동역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의 사명 중 하나입니다.
황 용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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