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클래식
렘브란트처럼, 카라바지오처럼
쇠락의 기운이 감도는 7개 도시의 이미지를 합성해냈다는 <디어 헌터>의 마을에 들어섰다면 곧 시커멓게 녹슨 공장부지와 그곳에서 내뿜는 잿빛 분진에 맞닥뜨릴 것이다. 다닥다닥 늘어선 낡은 집들, 간판만 걸린 채 버려진 식당을 따라 들어간 선술집에서 우리는 독한 술을 털어넣으며 <Can’t Take My Eyes off You>를 불러젖히던 일단의 젊은이들과 마주한다. 자욱한 담배 연기를 사이로 그곳에 열기와 희망을 대신하여 들어찬 것은 입대 전야, 전쟁이 가져올 불안의 한 그림자였다.
흥겨운 결혼식 피로연에서도, 낯익은 사슴사냥터에서도 누추한 삶의 구석을 뚫고 들어간 카메라의 시선은 그들 심중에 깔린 불안을 놓칠세라 시종 긴장의 끈을 풀지 않는다. 이는 곧 폭력과 잔혹함으로 엉킨 베트남의 정글에서 구체화되며, 습지를 감싸안은 창백한 햇살과 한치의 가감도 없이 어우러진다. 영화라 이름붙은 것의 불가결의 요소이자 숙명으로써의 ‘이미지’. 조명을 설치하고 노출을 맞추고, 사진을 찍어낼 그 누군가 없이 영화는 그 탄생조차 명받지 못함을, 그래서 촬영감독이 존재하고 있음을 빌모스 지그몬드는 몸소 전한다. 기술과 예술 사이를 오가는 외줄에서 그는 바로 인간 내면의 ‘이미지’를 포착해냄이다.
‘헝가리인이 되기에는 아직 멀었군. 자넨 재능을 더 익혀야겠는걸.’ 그 옛날 스튜디오 벽에 쓰인 낙서에서 보이듯, 짧지 않은 영화역사에서 유럽의 작은 나라 헝가리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임에 틀림없었다. 이는 촬영분야에도 예외없이 적용되었으며, 빌모스 지그몬드를 기억하게 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카메라로 스냅사진 찍는 일, 베스트 포토그래퍼의 선집을 선물받은 일. 그를 사진작가로 이끌었던 작은 일들이 이어졌고, 1930년에서 축구코치의 아들로 태어난 지그몬드에게 이는 곧 촬영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당시 획일화된 스튜디오의 낡은 관습을 떨쳐버리고, 자연광과 독특한 카메라워크를 교육하던 부다페스트의 고르기 일리스(Gyorgy Illes)에서 수학한 지그몬드는 1956년 되던 해, 혁명의 열기를 기록한 3만피트나 되는 다큐멘터리필름을 부여안고 동료 라슬로 코박스와 목숨을 건 미국행을 감행한다. 피폐화된 고국의 현실만큼이나 이방인인 그에게 낯선 땅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카메라를 손에 대는 일은 불가능했고, 의사소통을 위해 언어를 배우는 것이 급선무였다. 현상실에서 지금은 역사가 되어버린 필 스턴의 먼로 사진을 진력이 나도록 확대하는 일이 고작이었고 이후에는 돈을 마련하기 위한 저예산 호러영화들을 닥치는 대로 찍어야 했다. 저예산 영화를 찍으려는 지그몬드 일행과 조합과의 지난한 투쟁이 있었던 것도 이때였다.
70년대 들어서면서 피터 폰다의 <고용인>(1971)을 시작으로 할리우드에서의 십년간의 고달픈 생활도 호기를 맞게 된다. 대형 스튜디오의 작품은 아니지만 로버트 알트만과의 만남 이후, <긴 이별>(1973)을 통해 보여준 우아한 카메라의 움직임을 따라 사용된 자연광과 생기있는 컬러는 줄곧 지그몬드를 수식해주는 어구가 되었으며, 점차 그의 명성도 더해진다. 이후 리처드 도너, 마틴 스코시즈, 브라이언 드 팔마 등 내로라 하는 감독들이 그에게 프로포즈를 했는데, 특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미지와의 조우>(1977)에서 보여준 지그몬드 특유의 대담하고 힘있는 시선은 그에게 오스카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또한 마이클 치미노는 필사의 사투를 건 두 작품 <디어 헌터>(1978)와 <천국의 문>(1980)에서 지그몬드와 함께 작업함으로써 다시 한번 그를 인정하게 하였으며, 안정된 촬영은 그간 무수한 할리우드의 작품이 그의 손길을 거쳐가는 발판이 돼주었다.
기실 태양과 달이 전해주는 솔직한 빛을 사랑하는 지그몬드의 시선은 그 자신의 표현대로 카라바지오나 렘브란트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다. 단순히 촬영을 기술로만 폄하하는 할리우드의 풍토에 그가 맞서려 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이다. “설사 좋지 않은 시나리오라도 표현되어야 한다. 영화의 분위기를 살려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사람, 어떤 의미에서 감독이나 작가보다 그 역할을 더 충실히 해낼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촬영감독이다.” 그래서 기술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그에게는 바로 창의적인 논의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에게 모든 역할을 혼자 다 해내려는 천재감독이 달갑지만은 않은 것도 한편의 영화가 각 부분의 결합을 통해 완성된다는 이러한 믿음의 전제일 것이다.
이화정/ 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Vilmos Zsigmond 필모그래피
<라이프 애즈 어 하우스>(Life as a House, 2001) 어윈 윙클러 감독
<아발론의 여인들>(The Mists Of Avalon, 2001) 울리 에델 감독
<더 바디>(The Body, 2000) 조나스 매코드 감독
<논쟁>(The Argument, 1999) 도널드 캠맬 감독
<불법 음악>(Illegal Music, 1998) 제인 지델 감독
<라스트 타임>(Playing by Heart, 1998) 윌리아드 캐롤 감독
<고스트 앤 다크니스>(The Ghost And The Darkness, 1996) 스티븐 홉킨스 감독
<어쌔신>(Assassins, 1995) 리처드 도너 감독
<크로싱 가드>(The Crossing Guard, 1995) 숀 펜 감독
<마지막 연인>(Intersection, 1994) 마크 라이델 감독
<매버릭>(Maverick, 1994) 리처드 도너 감독
<슬리버>(Sliver, 1993) 필립 노이스 감독
<스탈린>(Stalin, 1992)(TV) 이반 파세르 감독
<불륜의 방랑아>(The Two Jakes, 1990) 잭 니콜슨 감독
<허영의 불꽃>(The Bonfire of the Vanities, 1990)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멸망의 창조>(Fat Man and Little Boy, 1989) 롤랑 조폐 감독
<조니 투 스피릿 아일랜드>(Journey to Spirit Island, 1988) 라슬로 팔 감독
<이스트윅의 마녀들>(The Witches of Eastwick, 1987) 조지 밀러 감독
(Real Genius, 1985) 마샤 쿨리지 감독
<내 사랑 로라>(No Small Affair, 1984) 제리 샤츠버그 감독
<살아가는 나날들>(The River, 1984) 마크 라이델 감독
<테이블 포 파이브>(Table for Five, 1983) 로버트 리버먼 감독
<징크스>(Jinxed!, 1982) 돈 시겔 감독
<필사의 추적>(Blow Out, 1981)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천국의 문>(Heaven's Gate, 1980) 마이클 치미노 감독
<로즈>(The Rose, 1979) 마크 라이델 감독
<윈터 킬>(Winter Kills, 1979) 윌리엄 리셔트 감독
<디어 헌터>(The Deer Hunter, 1978) 마이클 치미노 감독
<라스트 왈츠>(The Last Waltz, 1978) 마틴 스코시즈 감독
<불타는 질주>(Sweet Revenge, 1977) 제리 샤츠버그 감독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1977)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데스 라이더>(Death Riders, 1976) 제임스 윌슨 감독
<옵세션>(Obsession, 1976)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슈가랜드 특급>(The Sugarland Express, 1974)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신데렐라 리버티>(Cinderella Liberty, 1973) 마크 라이델 감독
<긴 이별>(The Long Goodbye, 1973) 로버트 알트만 감독
<허수아비>(Scarecrow, 1973) 제리 샤츠버그 감독
<살인 괴물의 공포>(Blood of Ghastly Horror, 1972) 알 아담슨 감독
<서바이벌 게임>(Deliverance, 1972) 존 부어맨 감독
<환상 속의 사랑>(Images, 1972) 로버트 알트만 감독
<레드 스카이 엣 모닝>(Red Sky at Morning, 1971) 제임스 골드스톤 감독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McCabe & Mrs. Miller, 1971) 로버트 알트만 감독
<고용인>(The Hired Hand, 1971) 피터 폰다 감독
<파이브 블러디 그레이브>(Five Bloody Graves, 1970) 알 아담슨 감독
<모니터>(The Monitors, 1969) 잭 셰아 감독
<사이코 어 고고>(Psycho a Go-Go, 1965) 알 아담슨 감독
<테일 오브 세일즈맨>(Tales of a Salesman, 1965) 던 러셀 감독
<랫 핑크>(Rat Fink, 1965) 제임스 랜디스 감독
<데드우드 76>(Deadwood '76, 1965) 제임스 랜디스 감독
<네스티 래빗>(The Nasty Rabbit, 1964) 제임스 랜디스 감독
<생이 중단되고 좀비가 된 너무 이상한 사람>(The Incredibly Strange Creatures Who Stopped Living and Became Mixed-Up Zombies, 1963) 레이 데니스 스태클러 감독
<사디스트>(The Sadist, 1963) 제임스 랜디스 감독
<왓츠 업 프론트>(What’s Up Front, 1963) 밥 웰링 감독
자료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