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작 <내쉬빌> <퀸테트 살인게임>
로버트 알트먼은 70년대 미국영화 비평계의 자랑이었다. 알트먼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내쉬빌 Nashville>(1975)이 나왔을 때 <뉴요커>의 영화평론가 폴린 카엘은 이렇게 썼다. “당신은 이 영화의 이미지에 취하지도 압도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 그저 의기양양한 기분을 느낄 뿐이다. 순수하게 고양된 감정, 영화가 끝나도 그 감정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 영화는 영화광을 위한 잔치다.” 알트먼은 다른 어떤 감독보다 미국 비평계의 바람을 대변한 감독이다. 할리우드영화의 관습적인 표현 스타일을 벗어나 새로운 영화스타일을 개발한 감독을 평가하는 비평적 수사로 알트먼 영화가 ‘영화광을 위한 잔치’라는 말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했다. 제임스 모나코는 알트먼이 영화라는 탁자에 차려놓은 풍부한 표현성이 알트먼 영화의 특징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알트먼의 영화가 할리우드라는 미국적 전통보다는 유럽영화의 영향을 받아들여 그것을 흉내내면서도 꽤 잘난 체하는 영화에 불과하다는 평가절하도 물론 있었다.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의 할리우드>라는 책에서 우드는 알트먼을 ‘잰 체하는 멍청이’로 평했다.
알트먼은 57년에 첫 장편영화 <전과자들>과 역시 같은 해에 <제임스 딘 이야기>라는 기록영화를 찍었는데, 두편 모두 반응이 신통치 못했다. 텔레비전으로 간 알트먼은 <전투> <보난자> <앨프리드 히치콕 특선>과 같은 텔레비전 시리즈 드라마의 연출자로 일했고 마흔다섯살이라는 장년의 나이에 미국영화의 중심에 진입한 것은 <야전병원 매쉬 M*A*S*H>(1970)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야전병원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군대의 관료주의에 대항하는 주인공들의 행각을 블랙코미디식으로 풀어내면서 당시의 반전 분위기에 적극적으로 호소한 풍자극이었다. <야전병원 매쉬>는 대단한 흥행 성공을 거두었고 미국 내에서의 비평적 평가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칸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다. <야전병원 매쉬>의 성공은 70년대 내내 알트먼이 할리우드에서 입지를 보장받는 안전판이 됐다. 알트먼은 <야전병원 매쉬>의 성공 이후로 산만하긴 하지만 거의 모든 장르에 시비를 걸어보는 것으로 70년대를 보냈다. <매케이브와 밀러 부인 MaCabe and Mrs. Miller> (1971) <버팔로 빌과 인디언 Buffalo Bill and the Indians>(1976)은 서부영화, <길고 긴 이별 The Long Good Bye>(1973)은 필름누아르, <우리같은 도둑 Thieves Like Us> (1974)은 갱영화, <캘리포니아 불화 Califor-nia Split>(1974)는 요즘 유행하는 남성 버디영화(두명의 주인공이 한쌍을 이뤄 얘기를 진행시키는 영화), <내쉬빌>은 일종의 변형된 뮤지컬, <퀸테트 살인게임 Quintet>(1979)은 공상과학영화였다. 그리고 간혹 아주 개인적인 흔적이 묻어나는 유럽 예술영화 스타일의 영화, <세 여인 Three Women> 등과 같은 작품을 찍었다. 이런 전 작품의 경력을 통해 알트먼은 일관해서 장르영화가 기초하고 있는 미국적 신화의 기저를 흔드는 작업을 했다.
70년대가 알트먼의 전성기였다면 80년대는 알트먼의 시련기였다. 1977년부터 라이언 게이트라는 영화사를 설립, 제작자로도 활동했던 알트먼은 자신이 연출하고 제작한 작품의 거듭되는 흥행 실패로 인해 1981년에는 영화사의 문을 닫아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대제작자 디노 데 로렌티스와 같이 하기로 돼 있었던 <랙 타임>의 감독직에서도 해고당했다(이 영화는 결국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아마데우스>로 유명한 체코 출신의 감독 밀로스 포먼이 감독했다). 알트먼은 80년대 내내 연극 무대를 연출하면서 영화는 주로 소규모 독립영화영화사와 작업했다.
알트먼은 타협을 모르는 그의 성품과 냉소적인 작품 경향 때문에 80년대에 할리우드의 변방으로 밀려났지만 90년대에 다시 비평적 관심의 전면에 부상한 것도 그런 그의 특징 때문이다. <플레이어 The Player>(1992)와 <숏컷 Short Cuts>(1993)은 다층적이고 개방적인 스타일과 사회를 냉소적으로 보는 관점이 수준 이상으로 조화된 작품이다. 태작과 수작을 오가면서 알트먼은 꾸준히 전성기 때의 미덕과 한계를 반복해서 보여주는 작품을 찍고 있다. 조각조각난 에피소드들이 주단처럼 펼쳐지는 대중문화의 산실 내쉬빌의 북새통을 이루는 풍경 속에서 미국 사회와 미국 대중문화의 어두운 이면을 본 비판적인 시선이 <숏컷>에서도 여전히 촘촘하게 이어지고 있다. <캔사스 시티 The Kansas City>(1996) <진저브레드맨 The Gingerbread Man>(1998) 등의 영화에서 알트먼은 전성기는 지났어도 여전히 다층적인 화술에 장기가 있는 감독임을 증명했다. 알트먼은 기복이 심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현대 미국영화의 뛰어난 이단자이며 또한 관객을 놀라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데 천재다. 잰 체하는 멍청이보다 한수 위에 있는 감독인 것만은 틀림없다. <b>
출처: [씨네21 영화감독사전]</b>
씨네21 리뷰
알트먼식 앙상블영화, <프레리 홈 컴패니언>
로마네스크 말고) ‘알트마네스크(Altmanesque) 벽화’라는 것이 있다. 로버트 알트먼(81) 감독의 영화 만드는 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알트먼의 재기작으로 통하는 <플레이어>(1992)와 <숏컷>(1993)에 이르러 정립된 이 스타일은 가히 ‘배우 하렘’이라 할 만한 대형 앙상블 연기, 에피소드적 서사, 상대의 말이 끝나길 기다리지 않고 겹치는 대사, 변두리를 맴돌다 치명적 행위를 저지르는 주변 인물이 특징이다. 알트먼 감독에게 필요한 재료는 적당한 공간과 배우가 전부다. 인물들은 잉글랜드 저택 파티의 손님이 되기도 하고(<고스포드 파크>), 산부인과 의사와 그의 여인들일 때도 있으며(<닥터 T>), 발레단(<더 컴패니>)이나 콘서트(<내슈빌>), 프레타 포르테 쇼의 참가자들(<패션쇼>)일 때도 있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은 한 장소에 인간 군상을 몰아넣고 가만히 기다리면 시추에이션은 저절로 ‘돋아난다’고 믿는다. <프레리 홈 컴패니언>의 무대는 30년 넘게 전파를 탄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시의 라이브 라디오 쇼 현장이다. 시나리오의 공저자이자, 쇼의 진행자 G. K.로 직접 출연한 게리슨 케일러는 1974년 출발해 32년간 장수하며 400만 청취자를 거느린 실존 버라이어티 라이브 쇼 <프레리 홈 컴패니언>의 기획자이자 진행자이기도 하다. 영화는 흥뚱항뚱 무대 위와 분장실을 돌아다니며 신세타령과 방귀 소리를 엿듣는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를 기리는 피츠제럴드 극장에서 매주 실황 생방송되는 <프레리 홈 컴패니언>은 컨트리, 포크, 가스펠, 라이브 CM송과 조크가 뒤섞여 구성지게 흘러가는 프로그램이다. 진화가 비껴간 듯한 이 고풍스런 쇼도 종막을 맞는다. 극장을 사들인 재벌이 건물을 허물고 주차장을 짓기로 한 것이다. 영화의 내레이터는 쇼의 안전요원 가이 누아르(케빈 클라인)다. 입성과 말투가 필름누아르의 진열장에서 갓 빠져나온 듯한 이 전직 사립탐정은, 천진하게 시대착오적인 쇼에 어울리는 문지기다. 장려한 낙일(落日)을 맞았건만 쇼의 진행자 G.K.는 동요가 없다. 고별사를 남기라는 동료에게 그는 추도사 같은 짓을 시작했다간 여생을 추도사만 하다가 보낼 나이라며 일축한다. 자매중창단 론다(릴리 톰린)와 욜란다(메릴 스트립) 자매는 추억에 눈을 붉히고 카우보이 듀엣 더스티(우디 해럴슨)와 레프티(존 C. 라일리)는 지저분한 농담을 기타 반주에 얹는다. 그럼에도 죽음과 소멸은 여지없이 마지막 쇼를 장악한다. 늙은 가수 척(L. Q. 존스)은 공연을 마치고 연인을 기다리다 숨지고, 욜란다의 염세적인 딸 롤라(린제이 로한)는 자살을 주제로 한 시에 사로잡힌다. 급기야 흰 트렌치코트를 입은 죽음의 천사(버지니아 매드슨)까지 공연장을 방문한다. 그녀는 <프레리 홈 컴패니언>를 듣고 웃다가 교통사고로 죽은 애청자다. <프레리 홈 컴패니언>은 죽음과 소멸을 따뜻이 환대한다. 이는 알트먼 감독과 작가 케일러의 고향인 미국 중서부의 정서이기도 하다. 극중 표현에 따르면 중서부는 비밀을 간직하는 법을 아는 고장이며 이곳 사람들은 “삶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자들”이다. 그들에게 ‘끝’은 위협이 아니라 위안이다.
메릴 스트립의 얼굴에 슬금슬금 다가서는 줌인은 감독의 편애를 감추지 않는다. 분장실에서 크고 작은 거울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조촐한 꽃밭 같다. 노래를 부르며 이완된 덕택인지 스트립은 근래 드물게 편안해 보인다. 메릴 스트립뿐 아니라 <프레리 홈 컴패니언>의 모든 배우는 즐기는 티가 역력하다. 풍자의 날이 선 알트먼의 전작 앙상블영화들과 달리 여기서는 모욕당하거나 내쳐지는 캐릭터가 아무도 없다. 근작들을 비디오로 찍어온 알트먼 감독은 이번에도 세대의 HD카메라를 아침에 켜고 밤에 끄는 시스템으로 배우들을 풀어놓았다. 반면 <프레리 홈 컴패니언>은 나쁜 의미에서도 느슨한 영화다. 낱낱의 일화들은 축적되지 않고 에필로그는 작위적이다. 영화 전체에 죽음의 테마가 드리워져 있음에도 그것을 의인화한 천사와 재벌의 하수인까지 등장시킨 것은 과잉이며 중첩이다. 현실에서는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쇼 <프레리 홈 컴패니언>을 멸종 위기의 짐승처럼 가엾게 그린 게리슨 케일러의 자기연민도 의아하다.
노장 로버트 알트먼은 심장이식 수술 이후 5편의 영화를 찍었다. 그의 무릎은 티타늄이고 신장도 손을 봤다. 언젠가 알트먼은 자신의 ‘원본’은 아주 조금만 남아 있다고 선선히 말했다. 그리고 부언했다. “나는 (영화는) 그만둘 수 없다. 이것은 하나의 과정이니까.” <프레리 홈 컴패니언>의 흥미로운 대목은 어디까지가 쇼고 어디부터가 삶인지 애매하다는 점이다. 그 금을 긋기 위해 안달하는 것은 극중 무대감독 한 사람뿐이다. 가수들은 큐 사인에 개의치 않고 마이크 잡기 1초 전까지 넋두리를 늘어놓다가 문득 노래의 첫 소절을 시작한다. <프레리 홈 컴패니언>은 태초에 “쇼가 있으라!” 하는 신의 말씀에 따라 만들어진 양 무구한 흥취를 낸다. 그가 주최한 최고의 파티는 아니지만 여전히 알트먼은 ‘마스터 오브 세리머니’다.
글 김혜리 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