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짚을 태우는 냄새
저녁공양 후 문앞에 서 있는데
문살사이 그물같은 방충망으로
한줄기 바람이 스며들어 왔다.
거기에는 보리타작을 하고
난 뒤 보릿짚을 태우는
연기 냄새가 묻어 있다.
그래, 지금쯤이면 온 들판에
보리타작하는 농부들의
일손이 바쁘게 움직일 테지.
고맙고 반가웠다.
그 냄새는 단숨에
유년시절의 보리타작하는
산등성이 밭으로 나를 옮겨 났다.
철모르던 시절,
보리타작하는 아버지 곁에서
나는 보릿짚을 뒤집어쓰며
마냥 뛰어놀기에 바빴다.
그러면 어김없이
온몸에 두드러기가 솟아났다.
아프고 무서워 울고 있으면
아버지는
짚을 한 묶음 묶어 끝에 불을 붙이고
불기운을 두드러기에 살짝살짝 쐬었다.
그리곤 꺼칠한 손으로
온몸을 쓰다듬으며,
"두드러기 재우자,
두드러기 재우자" 하셨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두드러기가 싸악 가라앉았다.
요즘에야 쏠모없어진
보릿짚을 태위 그 재는
거름 정도로 밖에 쓰질 못하지만,
그땐 아궁이 땔감에서
마굿간 바닥까지 버릴 게 없었다.
이젠 보기조차 힘들어진 밀도
그때는 꽤 많이 재배했었다.
밀이 여물기도 전에
동네 어귀에 있는 밀밭은
개구쟁이들의
단골 밀서리 장이었다.
밭 언덕 후미진 곳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말랑한 밀 이삭을 슬쩍
그을려 손으로 쓱쓱 비비면
파랑게 잘익은
알맹이만 빠져 나왔다.
불 냄새가 나는 그것이 얼마나
맛있는지 먹어본 사람은 알 거다.
또 그것을 오래
씹으면 껌처럼 되었다.
내 유년 시절의 오월은
그렇게 얼굴에
숯 칠을 한 채 보리밭에서
황금색으로 여물어갔다.
이제 내 나이 벌써
마흔을 넘긴
오월의 막바지에서,
한줄기 바람에
연(緣)해 몇십 년의 시공을
초월한 유년의
동산에 놀다가 온 느낌이다.
그때 함께 뛰놀던 친구들은
지금쯤 다 뭘하는지..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