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노
원제 : Fury
1936년 미국영화
감독 : 프리츠 랑
원안 : 노만 크라스나
음악 : 프란즈 왁스만
출연 : 실비아 시드니, 스펜서 트레이시, 월터 에이블
브루스 카봇, 에드워드 엘리스, 월터 브레난
프랭크 알버트슨, 조지 월코트
프리츠 랑 감독의 국내 개봉작 중에서 '격노'라는 제목으로 상영한 작품은 두 개 있습니다. 물론 개봉제목이 같고 감독이 같은 것이지 내용은 전혀 다르고 원제도 다릅니다. 1953년에 만든 글렌 포드 주연의 'Big Heat'가 '격노'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고 그보다 훨씬 빠른 1936년 스펜서 트레이시 주연의 'Fury'도 '격노'라고 상영되었습니다.
스펜서 트레이시와 실비아 시드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만든 영화 '격노'는 프리츠 랑 에게 굉장히 남다른 작품입니다. 프리츠 랑은 아시다시피 나치에 반대하며 2차 대전이 벌어지기 훨씬 전에 미국으로 이주한 인물입니다. 1941년에 만든 '인간사냥'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직접 히틀러와 나치를 겨냥하기도 했지요. 1936년 작품 '격노'는 독일에서 이미 '메트로폴리스' 'M'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프리츠 랑이 마국으로 망명하여 할리우드 배우를 기용하여 영어로 만든 첫 번째 영화인 것입니다. 프리츠 랑은 이후 완전히 미국에 정착하면서 1956년까지 미국에서 20년간 영화를 꾸준히 만들었습니다.
캐서린(실비아 시드니)과 조(스펜서 트레이시)라는 남녀의 로맨스 영화로 시작됩니다. 교사인 캐서린은 조 라는 순박한 남자를 사랑합니다. 둘은 간절히 서로를 원하지만 일단 조가 작은 부엌이 딸린 방을 얻을 자금을 마련할때까지 결혼을 미루기로 하고 헤어집니다. 캐서린은 자신이 일하는 서부로 떠나고 조는 주유소에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드디어 열심히 저축한 돈으로 캐서린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서부로 가는 조에게 드닷없이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캐서린과 만날 생각에 미소를 지으며 운전을 하던 조를 막아서는 한 남자, 그는 경찰서에서 나온 벅스(월터 브레난) 였습니다. 그 마을의 이방인인 조는 납치범의 혐의를 받고 수감됩니다. 조가 범인이라는 결정적 증거가 아직 없어서 신중한 보안관, 그렇지만 벅스가 무심히 발설한 '납치범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체포'는 발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처럼 이사람 저사람을 통해서 순식간에 마을에 퍼지고 확대 재생산됩니다. 분노한 마을 사람들은 조가 수감된 경찰서로 떼를 지어 몰려갑니다. 이성을 잃은 마을 사람들, 보안관이 막아서지만 이미 그들은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인간들이 아닌 무자비한 폭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조가 수감된 경찰서를 습격하고 심지어 불을 지릅니다. 최루탄등으로 방어하던 보안관 일행은 역부족으로 몰리고..... 뒤늦게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현장에 온 캐서린은 충격으로 실신합니다.
일시적으로 떨어져 살지만 곧 결혼하게 될 것을 희망하는 행복한 남녀이야기, 무고한 한 시민이 낯선 마을에서 납치범으로 몰리고 그 마을 사람들이 폭도로 변해서 저지르는 만행, 그리고 이어지는 세 번째 단락은 폭도혐의로 기소된 사람들에 대한 재판입니다. 이 재판과정이 굉장히 재미있고 많은 대사가 등장하는데,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최근 개봉한 이영애 주연의 '나를 찾아줘'가 연상되었습니다. 뭐가 닮았냐고요? 법과 질서를 무시하는 마을 집단의 '단합'입니다. 검사가 검찰측 증인으로 부른 사람들, 검사는 끈질기게 그들에게 폭도의 정체를 추궁하지만 그들은 모두 오리발을 내밀기 바쁩니다. 수백명의 폭도들이 있었지만 목격자는 단 한명도 없는 마을, 심지어 그들에게 당한 보안관 조차도 뒤에서 붙잡혀서 아무도 못봤다고 증언할 정도입니다. 의기양양한 변호인과 마을 사람들, 하지만 검사가 그런 불리한 증언을 하는 마을 사람들을 굳이 증인으로 내세운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검사는 그들에게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위증을 하고 폭도들을 감싸고 허위 증언을 하는지를 생생기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나치를 피해서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 온 이방인 프리츠 랑, 프리츠 랑의 눈으로 본 미국의 모습, 1930년대는 한창 경제 대공황으로 많은 미국인들이 고통을 겪고 자포자기하고 그랬던 시기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이미 1885년을 배경으로 벌어진 '옥스보우 사건' 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무고한 사람에 대한 '단죄'에 대한 비판이 되기도 했는데 '격노'는 20세기에 벌어지는 내용입니다. 이렇듯 우르르 선동되어 법과 질서를 위배하고 집단 폭도가 되는 미국인들의 성향을 이민자인 프리프 랑의 시선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프리츠 랑은 미국사회에서 뭘 느끼고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요? 나치의 광기와 선동에 질려 바다건너 미국에 정착한 그는 그 사회에서도 똑같이 집단의 선동과 광기를 본 것일까요? 마치 북한이 싫어 탈출한 탈북자가 대한민국 내에서 벌어지는 선동과 폭력을 비판한 듯한 느낌이 드는 영화입니다.
프리츠 랑은 그가 처한 상황, 아내와도 헤어지고 반나치주의를 택해서 망명한 그런 입장에서 아마도 집단의 무지한 광기와 선동, 그리고 폭도로의 행위를 굉장히 혐오한 느낌입니다. 은근 범죄물 장르를 많이 만든 그의 할리우드에서의 첫 행보는 이처럼 폭도의 만행과 집단의 굉기, 단합을 적나라하게 비판한 이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법에 의해서 단죄되는지 혹은 빠져나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애꿎게 간절히 기다리던 연인과의 만남이 좌절된 한 여인의 애틋한 모습을 통해서 무지한 폭도의 행위가 얼마나 선량한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착하디 착하게 생긴 실비아 시드니의 외모는 이런 설정에 굉장히 잘 어울렸습니다.
1930년대 영화이니 무지한 시대를 배경을 만든 '구식영화'일까요? 불과 우리나라에서도 얼마전 일어났던 '240번 버스기사 사건'을 기억한다면 이 영화를 보고 섣불리 영화적 설정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2017년 벌어진 240번 버스기사 사건은 인터넷에 올라온 한 사람의 일방적인 주장에 수백만명이 폭도로 변했던 사건이었습니다. 그 며칠간의 해프닝으로 애꿎은 버스기사 한 명은 '집단의 무시무시한 증오심'의 희생양이 되었고, 그 기사의 딸이 올린 글은 온갖 악플에 시달렸습니다. 지금도, 오늘 이 시간도 '21세기 문명인'을 자처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마녀사냥'과 '집단적 증오발산'에 대한 온갖 광기와 선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정치인이나 연예인을 향한 집단적 광기와 분노는 그야말로 테러행위에 가깝습니다. 프리츠 랑은 이미 1930년대에 이런 어리석은 군중심리의 폭력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제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치의 광기를 직접 목격한 망명감독의 느낌이 많이 묻어나는 영화랄까요. 결국 이런 군중의 심리를 히틀러는 잘 이용한 것이지요.
할리우드의 명배우 스펜서 트레이시가 30대 시절 출연한 영화였고, 그는 30대나 60대나 크게 외모가 다르지 않은 타고난 노안배우로서의 면모를 과시(?) 하고 있습니다. 캐서린 역의 실비아 시드니는 1930년대에 왕성하게 활동한 여배우로 프리츠 랑의 '그대는 살아있다(암흑가의 탄흔)'에도 출연하여 애틋한 연기를 보였습니다. 50년대 이후는 활동을 TV로 옮겼지만 간혹 영화에 나왔고 '화성침공'에도 출연하는 등 긴 연기생활을 한 배우입니다. 감초 조연배우의 상징격인 월터 브레난이 좀 밉상인 지역경찰로 등장하는데 결국 이 난동을 원인제공한 결정적 인물이기도 합니다. 무고한 시민을 체포한 것도 문제였지만 그 사실을 떠벌인 것도 문제였으니 어찌보면 가장 밉상인데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고, 재판 시작되면서 존재감이 실종되어 버립니다. 게리 쿠퍼 영화들에서 좋은 케미를 보인 것과 달리 이 영화에서는 그냥 밉상 조연일 뿐입니다.
아무튼 프리츠 랑의 미국 데뷔는 이렇게 사회에 대한 삐딱한 시선을 보여준 작품으로 시작했습니다. 망명을 받아주고 작품활동의 터가 된 미국에 대한 찬양이나 칭송이 아니었습니다. 이어진 영화 '그대는 살아있다/암흑가의 탄흔' 역시 어두운 범죄물이었고, 그럼에도 스펜서 트레이시, 헨리 폰다 같은 배우가 독일에서 온 거장 프리츠 랑의 영화에 출연했으니 할리우드에서 거장으로서 꽤 예우를 받은 것입니다. 잘 나가기 시작하는 젊은 배우들이 출연했으니(스펜서 트레이시와 헨리 폰다를 젊은 배우라고 표현하는 것이 영 어색하네요) 이 두 편의 영화는 '말타의 매'로 시작된 40년대 전성기를 맞이하는 할리우드 필름 느와르의 교본같은 역할을 했을 것 같은 생각도 슬그머니 드네요. 그러고 보면 독일망명 감독 두 명(프리츠 랑과 로버트 시오드맥), 이 두 사람이 할리우드 필름 느와르 영화의 깃발을 올린 셈입니다.
ps1 : 실비아 시드니는 '격노' '그대는 살아있다' 두 편의 영화에서 너무 비슷한 역할을 해서 마치 같은 캐릭터인 느낌입니다.
ps2 : 이 영화를 할리우드 낭만파 감독이 연출했다면 좀 더 명확한 결말을 냈을텐데 좀 허겁지겁 끝난 느낌입니다. 즉 프리츠 랑은 현상과 사건을 보여준 것 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나 봅니다. 물론 약간의 낭만적 엔딩 흉내는 냈지만.
ps3 : 이야기의 원안을 담당한 노만 크라스나는 코미디 영화 '선풍을 일으킨 질투'의 원작자이기도 합니다.
ps4 : 이 영화 국내 개봉당시 실비나 시드니의 사진이 신문에 크게 실렸었는데 암만 봐도 실비아 시드니처럼 보이지는 않네요. 아래 사진입니다.
[출처] 격노(Fury, 36년) 프리츠 랑 감독의 미국 첫 작품|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