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강론>(2024. 2. 15. 목)(루카 9,22-25)
복음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22-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22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십자가의 길 - 나 자신을 위한 길』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루카 9,22).”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예고 말씀’에 있는 ‘반드시’ 라는 표현과
‘... 해야 한다.’ 라는 표현 때문에,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표현하신 것으로 오해하기가
쉬운데, 그 표현들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나타내는
표현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나타내는 표현들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하느님의 섭리, 또는 하느님의 인류 구원
계획으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인간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목숨을 속죄 제물로
바치신 일인데, 허무하게 죽음으로 끝난 일이 아니라
부활로 마무리된 일이기 때문에, 부활에 초점을 맞춰서,
예수님 말씀을, “나는 많은 고난을 겪고 살해당하겠지만
‘반드시’ 되살아날 것이다.”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사도들이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의 우리도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예고 말씀’을 대할 때 수난과 죽음만 생각하고
부활은 생각하지 않거나 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분명히 큰 사건이고,
중요한 사건이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훨씬 더 큰 사건이고,
훨씬 더 중요한 사건입니다.
신앙인은 십자가 뒤에 있는 부활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는 목적지가 아니라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루카 9,23-25)”
신앙인의 신앙 여정에서
‘십자가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 여정 자체가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길 자체가 십자가의 길입니다.
‘누구든지’ 라는 말씀은, 십자가를 면제받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 길은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길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내 뒤를 따라오려면”은 “내가 주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입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이 곧 십자가입니다.
“자신을 버리고”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방해하는
내적인 걸림돌들을 모두 제거하라는 뜻입니다.
가장 먼저 치워야 할 걸림돌은
‘지금 당장’ 편하게 지내고 싶은 욕구입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고 있고, 목적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지만, 그곳까지 가는 길은 힘들고 어렵고 불편한
길로만 보이고, 그래서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 지금은 그냥 편하게 살고 싶어 하는 것,
그런 욕구나 충동부터 버려야 합니다.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고, 자신을 버리는 일에 포함됩니다.
<‘자신을 버리고’는 그 모든 ‘버림’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날마다’ 라는 말씀의 핵심은 ‘끝까지’입니다.
중간에 멈추는 것은 처음부터 출발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제 십자가’는 신앙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신앙생활의 모든 일,
즉 특별한 희생이나 봉사나 헌신이 아니라,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나를 따라야 한다.” 라는 말씀은,
당신이 걸어가신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살리려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지만,
나는 나 자신이 살려고 그 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니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일은 희망과 기쁨입니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에 대해 집착하는 사람입니다.
“목숨을 잃을 것이고”는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입니다.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을 모두 버리는 사람”입니다.
“목숨을 구할 것이다.”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라는 말씀은, “이 세상의 허무한 것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에 아무 소용이 없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에서 ‘온 세상’은 먼지처럼 허무하게 사라질 것들,
하느님 나라에 가지고 들어갈 수도 없고,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믿음, 희망, 사랑 같은 것만
하느님 나라에 가지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는 것’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허무하게 사라질 것들’인데도 그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욕심 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죽기 전에라도 깨닫는다면
다행인데, 끝까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그 경우에는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욕심 부렸던 그것들과 함께
그 자신도 허무하게 사라질 것입니다.
무엇이 영원한 것이고, 무엇이 허무한 것인지를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 그리고 영원한 것만 추구하고 허무한 것은
버리는 것, 바로 그것이 ‘신앙인의 지혜’입니다.
그 지혜는 머리가 좋다고 또 공부를 많이 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답게 충실하게 생활하는 신앙인들에게
성령께서 내려 주시는 은사입니다.
[출처]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