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불천탑(千佛千塔)의 성지로 불리우는 전남 화순의 운주사(雲住寺)
서울에서 제법 먼 거리에 있어 하룻만에 쉽게 다녀오기에는 조금은 버거운 곳...
그러나 한번 쯤 들려보아야 할 곳으로 추천하고 싶은 아름다운 절집이다.
운주사는 신라 말에 도선국사가 산이 많은 영남에 비해 호남에는 산이 적어 한 쪽으로 기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룻밤 사이에 도력으로서 천불과 천탑을 조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마지막 와불만은 닭이 우는 바람에 일으켜 세우지를 못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돌로 된 석불석탑(石佛石塔)이 각각 일천개씩 있었다는 운주사에 현재는 93구의 석불과 21기의
석탑이 남아 있지만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것을 보면 조선조까지는 실제로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곳의 석불상들은 10m의 거구에서부터 수십cm의 소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평면적이고 토속적인 얼굴모양, 돌기둥 모양의 신체, 어색하고 균형이 잡히지 않은 팔과 손등의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고려시대 석불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커다란 바위에 새긴 누운 불상(臥佛)은 특이하게도 부부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 불상이 일어서는 날 세상이 바뀐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
석탑 21기도 산야 여기 저기에 즐비하게 서있는데,
원형탑같은 특이한 모양도 있으며, 층수도 다양하다.
천불 천탑에 대한 독특한 신앙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주차장 앞 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일주문이 나타난다.
운주사 입구는 그 흔한 식당이나 가게들이 별로 없이 넓다란 주차장만 덩그러니 펼쳐져 있고 포장마차가
한두개 있을뿐이다.
그만큼 찾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가 되기도 하지만 번잡스럽거나 지나친 장사들 호객에서 벗어날수 있어
좋다.
<운주사 일주문...>
일주문을 들어서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운주사 앞마당이다.
산 길이나 오르막 길도 없이 그저 평탄한 길이며 회랑처럼 길게 이어진 앞마당에는 입구의 9층석탑부터
시작해서 큼직한 석탑 몇 개가 눈길을 끌고 있으며, 그 좌우로는 크고 작은 석불이 기대는 자세로 석벽에 놓여지거나 세워져 있으며 자칫 지나치기
쉬운 자리에 뜬금없이(?) 석탑과 석불이 놓여져 있으니 보물찾기 하는 자세로 하나하나 찾아나가는 것도 재미있을듯 하다.
<운주사 배치도...>
가장 먼저 내방객을 맞는 9층석탑 (보물 제 796호)은 탑 높이 10.7m로 운주사에서 가장
높고 화사하고 수려한 탑이다.
옥개석(지붕돌)과 처마 끝이 백제 목조건물처럼 치솟아 세련미가 느껴지며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 형식과 같아서 백제계 석탑이라 한다.
일설에는 이 탑을 운주사 중심탑이라 하여 돛대탑이라 부르기도 한다는데 애초부터 땅바닥에 놓여있던 커다란
바위에 적절하게 홈을 파서 탑을 세운 방식이 눈에 띄는데 운주사내 많은 석탑들이 이런식으로 세워진것들이어서 관심을 끈다.
<9층석탑의 미끈한 자태.... 그 뒤로 2개의 7층 석탑이 연이어
보인다>
미끈한 자태로 서있는 9층석탑의 오른편에는 석불 여러개가 모셔져 있는 石佛群이 있는데
운주사에는 이런 石佛群이 6곳이나 있다.
초입에 있는 첫 石佛群은 운주사를 나타내는 사진에 자주 나와서인지 낯설어 보이지 않고 매우 친근한
모습으로 느껴졌으며 이곳 뿐 아니라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는 불상들 대부분이 어쩐지 어설퍼보이거나
아마추어들이 조각을 한것처럼 세련되어 보이지 않는데, 그런 모습들이 묘하게도 정겨움으로
다가오는.... 편안함으로 느껴지는.... 거부감이 들지 않는게 참 이상하다.
운주사 마당을 들어서면서 두개의 石佛群이 이어져 있는데 여럿의 불상들을 그저 바위벽 밑에다 세워놓은것이
아니라
가만히 보면 비바람을 피할수 있게 바위절벽을 어느정도 손질해서 그 밑에다 부처님을 모신 치밀함이
엿보인다.
<오른쪽이 石佛群 '가'...왼쪽이 石佛群 '나'....>
그러나 이렇게 절 마당에 늘어서있는 늘씬한 9층, 7층석탑들과 모여있는 石佛群들만을 보며 안으로
들어가다가는 자칫 놓칠 수 있는 석탑이 있으니 석불군의 절벽위에 감추듯 서있는 매우 투박한
석탑이 그것이다.
그저 자연석을 척척 쌓아 얹은듯한 모습이지만 어쩐지 석공의 손길을 피하여 만들어진 그 모습이 더욱
관심이 간다.
9층석탑과 7층석탑을 지나면 커다란 부처님 좌상(坐像)이 하나 있는데 이름하여 '광배를 갖춘
불상'이다.
보통 부처님 신체만을 조각하여 새기는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불상은 마름모꼴 형태의 네모난 커다란 바위에
부처님을 양각하여 새겼으며 나머지 부분은 여백의 의미와 배경의 의미를 갖추어 동글동글한 구름모양의 문양을 새겨넣은 특이한
모습이다.
얼굴의 길다란 코와 입술, 커다란 귓바퀴가 두드러져 보이며 옷자락은 간략하게
표현하였다.
'광배를 갖춘 불상' 뒤로는 3번째 7층석탑이 서있고 이어서 '석조불감'과 '원형다층석탑'이 있는데
이들역시 매우 특이한 모습인지라 발길을 멈추고 오랫동안 바라보며 살피게 된다.
석조불감(보물 제 797호)은 맞배지붕 형태의 돌집을 지어 그 안에 부처님을
모신것인데
두분의 석불이 서로 등을 맞대고 각각 남과 북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모습은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작품이라 한다.
석조불감 뒤에는 원형다층석탑(보물 제 798호)이 서있는데
앞서 얘기한대로 운주사 이곳저곳에 서있는 여러가지 다양한 석탑의 모습중 대표적인
원형석탑이다.
버섯모양의 옥개석(지붕)을 갖춘 7층의 원형석탑.... 사찰의 석탑으로는 참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이렇게 절마당 초입부터 9층탑과 2개의 7층탑, 광배를 갖춘불상, 7층탑, 석조불감, 원형다층석탑이
줄지어 이어지며 서있고
진입로 오른편으로는 石佛群 가, 나에 이어 다, 라가 비슷비슷한 모양으로 계속된다.
그밖에도 여기저기 풀숲에, 땅 바닥에, 동백나무 앞에 크고 작은 불상이 서 있으며
그저 머리만 놓여져 있는 모습도 발견된다.
이제 마당은 끝나고 절집이 나타나는데 건물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왼쪽편 언덕위에 와불이 있다하여 먼저
올라보기로 하였다.
계단을 올라가면 커다란 바위 위에 7층과 5층, 2개의 석탑이 서있고 그 바위 아래 절벽밑으로는
또하나의 石佛群이 있었다.
커다란 자연석에 탑 바닥크기의 홈을 파고 수평을 맞춰 탑을 세운 특이한 모습이었다.
<와불님 뵈러 가는 길...>
이곳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그 유명한 운주사 와불(臥佛)이 모셔져 있는데 입구쯤 되는곳에 머슴부처가
세워져 있으니
아마도 부부 부처님이 누워계신것을 지키는 호위부처님이신듯 하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와불... 거대한 자연석을 부부의 모습으로 새겼는데
도선국사가 하늘의 석공들을 불러내려 하룻만에 천불천탑을 조성하던중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일에 지친
동자승이 닭소리를 내자 날이 샌 줄 알고 석공들이 모두 하늘로 돌아가버려 와불만이 누운상태로 남아있다는 전설이
있다.
<세계적으로도 유일한 와불....부부의 모습으로 누워있다>
<운주사 대웅전...>
<공사바위라 불리는 절 뒷편 높다란 큰바위에 올라 내려다 본 운주사
일원......>
입구에서 좁은 회랑형태로 들어오면 절 마당에 석탑과 불상들이 늘어서 있고, 오른쪽 언덕위에 와불이
있다.
운주사는 골이 깊거나 산이 높은것도 아니고... 입구에서 절집까지 그다지 멀다거나 험한
산길도 아니다.
그저 아담한 전원주택처럼 오붓하고 평온하게 자리 잡은 작은 절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참으로 아기자기하고 아담하며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된 석탑과 석불들이
존재한다.
꿈과 전설이 깃들어 있다.
서울에서는 호남고속도로로 광주까지 내려가 동광주에서 접어들어 화순가는 29번 국도를 따라가면
된다.
아래 약도에서처럼 능주에서 817번 도로를 따라 가는 방법도 있으나
초행길인 경우에는 계속 29번 도로를 타고가다가 춘양으로 가는 818번도로가 갈라지는 '석정삼거리'로
가는게 편하다.
다만 계속되던 운주사 안내 표지판이 이 석정삼거리에서는 실종되어버린채 '고인돌 공원'표지만 되어있으니
조심해야한다.
자칫 계속내려가다보면 보성까지 갈 판이다....
(화순군에서는 이곳 석정 삼거리에 운주사 안내 표시를 해주기 바란다)
-풍경 달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