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나무> 소크라테아 엑소르히자(Socratea exorrhiza)
식물 철학자
걷는 야자 (walking palm)
밀림에서 살아남기
소크라테아 엑소르히자(Socratea exorrhiza)
‘걷는 야자(walking palm)’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소크라테아 엑소르히자(Socratea exorrhiza)라는 식물이 있다. 이 독특한 이름은 걸어 다니며 묻고 답했다는 철학자 "소크라테스"에서 따온 것이다. 처음 이식물을 보자마자 난 깊이 반성했다. 더 나은 방향을 향해 더듬거리며 나아간다. 내 깨달음의 스승인 부처의 보리수 같은 나무이다.
이 나무는 2~4m까지 자란다. 중미 지역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뿌리가 외부에 드러나있다. 조금이라도 빛을 받기 위해 스스로 진화했다. 빛을 찾아 여유분의 뿌리를 천천히 움직인다. 빽빽한 열대우림에서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의 방식을 고안했다. 인간이 수동적이라 생각하는 식물들은 그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잘 살아남는다.
어떤 식물은 엄청난 독성을 지니고 있으며 가시나 특유의 냄새도 가지고 있으며 잎이 찢기고 가지가 잘려나가도 그 무엇보다 오래 묵묵히 견인의 삶을 살아간다. 걷는 야자도 마찬가지이다. 치열하고도 뜨거운 그러면서도 영악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어두운 밀림 바닥에서의 생존은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다. 일 년에 4cm에서 20cm까지 이동한다고 한다. 움직이지 않고 비명 지르지 않는다 해서 식물이 변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마치 대왕오징어처럼 스멀스멀 기어 와 배를 감쌀 것처럼 생겼다. 겉으로 드러낸 뿌리는 "난 살아야 해."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뿌리가 새로 자라고 기존의 뿌리를 퇴화시키는 방법을 생존전략으로 택했다.
늪지대에서 구조적으로 안전하고 땅속뿌리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 다른 나무보다 빨리 자라 뿌리가 외부에 드러나있다. 빛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숲이 우거진 곳에서 생존전략으로 곤충을 잡아먹는 식물도 있다. 변화하는 것들만이 살아남는다. 실제로 걷는 야자가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물 위를 걸어가는 신선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하루에도 엄청난 거리를 걷고 "빠르게 보다 빠르게 "가 모토지만 그들은 침묵 속에 더 나은 곳을 향해 "모르게 더 은밀하게" 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는 사실이 경이로운 것이며 끝없이 노력하는 모습이 감탄을 준다. 원뿌리는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태양을 향해 이동하는 우아한 동작은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언젠가 그들이 진화해서 달리기를 시작하면 우리는 그들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인간은 불멸로 가기 위해 스스로 영하 196도의 냉동인간이 되는 길을 택하기도 하지만 아직 잠에서 깨어난 자는 없다. 미래의 소생을 꿈꾸고 먼 미래를 투자해 간암 선고 후 시한부 인생을 살던 미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베드포드는 스스로 최초의 냉동인간의 길을 택했다. 그는 지금 50년 넘게 잠자고 있다.
식물은 언제든 환경이 되면 기지개를 켠다. 700년 만에 꽃을 피운 고려 시대 연꽃도 있다. 2천 년 넘게 자다가 일어난 일본의 "오가 연꽃"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씨앗은 2005년 이스라엘의 유적지에서 발견된 대추야자 씨앗이다. 2000년 전의 이 씨앗은 현재 높이가 약 3m인 나무로 자랐다. 씨앗의 생명력에 비하면 인간은 너무나 어리고 우습다. 우리의 세월은 나무가 떨어뜨린 잎사귀의 바스락 거림에 불과하다. 아! 나도 2천 년 동안 자고 싶다. 한숨의 잠이 천년을 넘나드는 경이로움을 맛보고 싶다. 나무는 무슨 꿈을 꿀까?
강제로 태어나서 고생하는 동식물들이 세상에 참 많은 것 같다. 나무 정령교를 만들고 싶다. 신의 존재가 생명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생명 그 자체가 신이다.
침대 위에 누워서 온갖 잡생각만 하는 내가 오히려 식물에 가깝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나는 오늘도 내게 주어진 험난한 길을 꾸역꾸역 걸어갈 것이다.
식물도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는데 난 무엇을 했던가? 나 자신을 죽비로 때려본다.
<걷는 사람 > 알베르토 자코메티( Alberto Giacometti)
죽음의 트라우마
변화하고자 하는 자
화가에서 조각가로
디에고와 자코메티
나는 걸어야 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자화상, 1921
알베르토 자코메티( Alberto Giacometti, 1901년 10월 10일 ~ 1966년 1월 11일)는 이탈리아계 혈통의 스위스 출신 조각가 겸 화가이다. 주네브 미술 학교에서 공부한 후, 프랑스 파리로 가서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의 제자인 조각가 앙투안 부르델(1861~1929)의 아틀리에에 들어갔다. 후에 큐비즘에 눈을 뜨게 되고 날카로운 지성과 냉철함을 키웠다.
반복되는 죽음의 트라우마, 그럼에도 희망을 가지고 걸어야만 했다. 어느 날 여행 중 기차에서 우연히 뫼르소라는 노인을 만났다. 자코메티의 총명함과 상냥함이 뫼르소의 마음에 큰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그와의 추억이 좋았는지 신문광고를 내서 자코메티를 찾았다. 뫼르소는 모든 경비를 다 지원해 줄 테니 같이 이탈리아 여행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그들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에게 평생의 트라우마를 남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걷는 남자 1960
여행 다음날, 고령의 뫼르소는 고열이 났고 밤새 심장마비에 죽어갔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어린 소년은 지인의 죽음을 보면서 공포의 밤을 함께 보냈다. 화가 천경자가 독사에 물려 죽어가는 친구의 모습을 평생 가슴에 담고 그림을 그린 것과 같다. 삶은 고통의 여행이다. 반복되는 죽음의 트라우마, 그럼에도 희망을 가지고 걸어가야 한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위험하고 아슬아슬해 보이는 삶을 조각에 투영했다. 고대 이집트 미술이나 르네상스, 바로크 예술을 탐구했다.
피카소가 질투한 화가이다. 초현실주의 작가이다. 심지어 돈마저 초월했다. 그는 유명해지고 나서도 여전히 낡은 작업실에서 작품을 만들었으며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바로 파기시켜 버렸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철저했다.
그의 작품엔 가녀린 몸체와 앙상한 뼛조각만이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 식신이 먹고 버린 뼈만 남은 사람이 조각의 특징이다. 그는 썩고 문드러지고 곪은 살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삶의 군더더기를 벗어 버리고 가볍게 길을 떠나는 모습으로 변모시켰다. 처음엔 혐오스러웠지만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되는 묘한 작품들이다. 그의 삶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의 줄타기만큼 아슬하고 아찔했다. 1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분하기 어려운 힘든 시간이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고난과 고통을 다 보았다.
2차 세계대전에 인간의 숙명과 수많은 죽음을 보고 작품 속 사람의 살점을 한 점 한 점 발라냈다. 인간의 본질과 고독의 실존만을 남겼다.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었다. 상실의 정점에 섰다. 전쟁과 상실의 아픔에 온몸의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가도 무조건 걸어야 한다. 걷는다는 건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한없이 약해 보이고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존재가 인간이다. 실존적 고뇌를 작품에 고스란히 담았다. 힘들지 않은 예술가는 예술가가 아니다. 살아있는 존재의 취약성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우리는 붉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고스란히 담았다. 고흐에게 동생 테오가 있었다면 자코메티에겐 동생 디에고가 있었다. 그는 형의 조수이자 모델 역할을 했다. 디에고도 놀라운 예술적 재능이 있었지만 평생 형만을 위대한 예술가라 칭하고 본인은 조수로 남았다. 전쟁 중에도 작업실을 지키며 형의 작품을 잘 보존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 1947
아름다움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예술가가 진정한 작가이다. 미술은 완성이 아니라 언제나 물음표(?)이다.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걸어야 하는가? 걷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우연히 술집에서 만나 사르트르와도 평생 절친으로 지냈다 사르트르의 실존적 철학이 자코메티에 대한 탐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자코메티를 "아무도 그보다 더 멀리 갈 수 없다."라고 평했다.
1960년 자코메티는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대표 작품을 완성했다. 그 어느 누구도 생각해 보지 못한 고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걸어왔을 것 같은 너덜하고 앙상하고 피폐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렇다. 인간은 걷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걷기를 포기한 어느 날부터 우리는 죽어가는 것이다.
죽기 전까지도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의 조각품을 남기고 갔다. 마치 김밥 먹고 남은 은박지로 주물러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독특한 작품들이다. 인생이 너무 힘들다. 하수구에 버려진 부식된 녹슨 대못으로 연결해 만든듯한 느낌의 작품들이다. 죽음은 그의 작품의 모든 것이었다.
마치 최초의 냉동인간 제임스 배드퍼드가 죽음을 이겨내고 부활한듯한 모습이다. 이미 시신이 많이 변색되고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린 자국이 있다. 고독과 우울이 느껴지는 앙상한 그의 작품들이 내면의 나를 보는 것 같아 더 애착이 간다. 좀비 같지만 세상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가는 자가 보인다.
인간의 본질을 꿰뚫은 예술가이다. 자코메티의 작품엔 그만의 독특한 향이 있다. 죽음의 고통을 이겨내고 짓무르고 썩은 살을 도려낸 본질의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진흙의 늪을 뚫고 연꽃처럼 피고 싶다. 지구는 뜨거운 불을 가슴에 품고도 침묵한다. 우주는 수많은 폭발이 있어도 요란 떨지 않는다. 고뇌와 원한의 사무침이 내 뇌를 짓이겨도 난 수많은 발에 밟혀도 살아가는 민들레처럼 살 것이다. 새로운 시작의 힘을 믿고 싶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스스로 택하지 않은 삶이지만 걸어가고 싶다.
삶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