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자 수필 문득.1347 --- 독립운동가 이태준은 누구인가
울란바토르에는 한국과 몽골로부터 동시에 추앙을 받아 마땅한 분이 있다. 한국에서는 꼭 필요했던 독립운동가이었고, 몽골에서는 불과 7년여 동안 거주하면서 빈곤과 질병으로 시달림을 받을 때 슈바이처 같은 의사였다. 그러나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머나먼 외국 땅에서 순국했으며, 눈부신 활약에도 불구하고 미처 알려지지를 않았다. 그가 바로 이태준 선생이다. 대암 이태준(1883~1921) 선생은 경남 함안에서 출생하여 세브란스 의학교를 졸업하였다. 대학 시절 안창호 선생을 만났다. 중국 난징으로 망명하고 김규식 선생을 만나 1914년에 비밀군관학교를 설립할 목적으로 울란바토르로 이동하였다. 이태준 선생은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개설하여 독립운동 연락 거점으로 이용하면서 상해의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운반하였다. 의열단에서 활동하면서 몽골인에게 아낌없이 인술을 베푼 한국인 독립운동가였다. 당시 몽골에 만연하던 전염병을 근대적인 의료 기술로 퇴치하여 몽골 사람들로부터 ‘하늘이 내린 신의’라는 칭송까지 받으며 몽골의 마지막 황제였던 ‘복드 칸’의 주치의로 활약하였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서 1919년에 몽골 정부로부터 1등급의 국가 훈장을 받았다. 독립운동가이며 위대한 의사였던 이태준 선생은 일본군과 내통하던 러시아 백군에 의해 38세 젊은 나이에 피살 순국하였다. 이태준 선생은 죽어서도 그리운 고향에 돌아가지를 못했다. 2,000km(5천 리) 떨어진 머나먼 이국땅 몽골의 초원에 쓸쓸하게 묻혔다. 뒤늦게 매서운 눈초리에 쫓기며 이태준 선생의 묘소를 수소문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이런 훌륭한 독립운동가가 있는 줄조차 까마득히 몰랐다. 뒤늦게 가까스로 그 혁혁한 공로를 인정하면서 순국 70년이 지난 후인 1990년에 대한민국 정부는 “우리나라 자주독립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크므로 대한민국헌법의 규정에 따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한다.”라고 하였다. 어쨌거나 부끄러우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태준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한국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