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성산읍 성산리 103-1, 104-2번지 일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사건 현장(학살터)
우뭇개는 일출봉 북쪽에 동쪽을 향하여 만을 이룬 곳에 형성된 포구이다. 이곳의 서쪽에 절벽처럼 높은 곳을 우뭇개동산이라고 한다. 이 동산에서 1949년 1월 2일 오조리 주민 20여명이 다이너마이트 사건으로 집단총살되었다.
광복 후 일부 해안마을에서는 일본군이 버리고 간 다이너마이트를 어업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조리 마을에서는 다이너마이트 사용법을 아는 사람이 있어서 1948년 겨울철부터 민보단에서 마을 경비용으로 사용하려고 초소에 보관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이너마이트의 존재가 서북청년단에 알려지면서 비극이 시작되었다.
1948년 12월 29일 다이너마이트를 소지하고 있던 한 주민을 끌고 온 서청은 마을 주민들을 공회당에 모이게 하고는 집집마다 수색하면서 집합이 늦은 주민들을 끌어내 성산포 甘藷창고(고구마창고)로 데려갔다. 이 날 끌려간 사람 중에는 마을 책임자인 고태종과 민보단장 홍성강도 포함되어 있었다. 서청이 주민들을 연행한 이유는 다이너마이트로 자기들을 죽이려 했다는 것이었다. 그 후 이들은 모진 고문취조를 받다 며칠 후인 1949년 1월 2일 우뭇개동산에서 학살되었다. 당시 총살현장에서 오조리 송치배의 모친은 살아났는데 군인들이 발포하자 아들 송치배가 어머니를 감싸안아 쓰러졌기 때문에 총을 맞지 않은 것이다. 서청은 이 날 총살현장에 성산리 유지들은 모두 나오라고 해서 총살현장을 구경하도록 했다.
이곳에서 학살된 주민은 23명으로 확인되었으며 명단은 다음과 같다. 오조리 고태종(구장), 홍성강(민보단장), 강관선, 강희숙, 고봉만, 고순현, 고태현, 김봉효, 송균석, 송도선, 송원진, 송춘식, 송치배, 송태립, 오만두, 오영보, 오창희, 현서홍, 홍평형, 성산리 강승홍, 강춘신, 임재삼, 연평리 고이정
당시의 학살 현장은 오늘날 아무 흔적이 없고, 너른 초원으로 남아 있다.(2020년 『제주4·3유적Ⅱ』)
《작성 22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