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여정의 시작
첫 단계는 당신이 그 길을 가기 원한다고,
또는 적어도 그렇게 해보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아픈 기억들이 사라지거나
다른 사람들 때문에 생긴 곪은 상처들이 없어지는
마법의 은혜 같은 것은 없다.
우리의 여정은 비록 용서가
지나친 요구처럼 보일 때라도
기꺼이 용서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다른 사람 때문에 깊은 상처를 입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상처를 계속 가지고 살거나
원망의 무거운 짐을 진 채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은혜를 베푸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당신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할 것이다.
“저는 심하게 상처 받았어요.”
당신이 그럴지도 모른다.
어쩌면 계산해본 결과,
당신이 받은 상처가 당신이 줄 수 있는 은혜보다
더 크다는 결론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교회에서 이 주제로 설교를 한 지 며칠 후,
50대 중반인 한 여자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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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19살 때 신체적 언어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와 결혼했다.
그녀가 자신의 참혹한 결혼생활에 대해 들려주었을 때
나는 야구방망이를 가지고 이 남자와 단 둘이
5분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 남자와 12년 동안 살다가
결국 도망쳤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원망과 분노와 노여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녀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녀가 겪은 일들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녀는 이메일에서, 자신의 벽장을 열어서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처리하도록
도전하는 나의 설교를 들으며 느낀 감정을 설명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그 사람에 대한 미움이
저의 숨통을 조이는 것 같았어요.
전혀 다른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가 저에게 한 일을 생각하면 절대 그럴 수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큰 고통을 겪다 보니,
제 마음의 응어리가 은혜의 가능성조차
들어올 틈을 주지 않았어요.
그것이 불가능해 보여서
제가 그를 용서하기 원하는지 생각해본 적도 없었어요.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제가 한 번도 용서하려고 시도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사실 하나님께서 제가 용서하기 원하신다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어요.
지금도 그것이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시도는 해보려고 합니다.
그것이 이 여정의 첫걸음이다.
즉 그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용서할 마음을 갖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때로는 용서가 필요할 만큼 그 상처가 중요한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사실은 애초에 상처받을 필요가 없었는데
누군가를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5학년인 내 아들이 속한 야구팀은
대학 팀들의 이름을 따서 팀 이름을 짓는다.
아들은 자기 팀의 이름이 무엇으로 정해질지
기대로 들떠 있었다.
스파르탄, 트로전스, 아니면 라이온스?
아이는 ‘바나나 슬럭스’(Banana Slugs) 팀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다.
‘바나나 슬럭스’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크루즈 캠퍼스 혼성팀의 비공식 마스코트로
엄밀히 자격이 있다.
2009년 타임지 ‘역대 최악의 팀명
베스트 10’이라는 기사에서
‘롱비치 스테이트 얼간이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바나나 슬럭스라는 팀명은
내 아들에게 그야말로 잔인한 농담처럼 느껴졌다.
응원하는 사람들이 “바나나!” “슬럭스!”라고
구호 외치는 것을 들어도 흥이 나지 않았다.
어제 아들은 ‘스파르타 전사들’이라는 팀과 경기를 했다.
스파르타 전사와 싸우는 바나나 슬러그라고 생각해보라.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이미 상대팀에게 심리적으로 지고 들어간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아들을 격려해주려고 하다보니,
나도 그 나이 때 했던 리틀리그 팀이 생각났다.
(글자 수 제한으로 생략된 내용이 있습니다.)
-은혜가 더 크다, 카일 아이들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