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왜 시를 쓰고, 화가는 왜 그림을 그리는가.
며칠 전 교대역에서 바둑 친구와 택시 타고오면서 이런 이야길 했다. 친구 부인이 화가다. 요즘도 그림 그리냐고 물어보니, 칠십 넘어 활동이 좀 뜸 하단다. 작품은 없냐고 물어보니 집에 20 여 점 있다길래, 바둑 친구 카톡에 작품 올려주면 좋겠다 해보았다. 그분 매화 그림을 보고싶어서다. 그랬더니 전혀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제자랑도 아니고 남사스럽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항상 내게 호의를 보내주었지만, 그 소릴 듣자 뭔가 속으로 찔끔했다. 나는 그동안 열 권쯤 수필집 내면서 친구들에게 책을 보내곤 했다. 유화 그림도 카톡에 올렸다. 詩를 인공지능(AI) 한테 부탁해 대중가요 5 편 만들고 카톡에 올렸다. 그게 제자랑이고 남사스러운 일이던가.
수필집 만들 때는 매번 아내한테 핀잔만 들었다. 책 한 권 제작비가 1만 5천 원이다. 100 권 만들면 150 만원이고, 달라고 하지 않는 친구들한테 몇 군데 보내면 발송비가 50 만원이다. 10 번 만들었으니 2천만 원 돈 나갔다. 그러나 밥은 사주면 고맙단 소릴 듣지만, 권당 2만 원 소요되는 책은 보내도 그런 소릴 들은 적 없다. 두 친구가 서점에서 책을 2십여 권 사준 적 있다. 왜 이렇게 영양가 없는 남사스런 짓을 하며 살았나?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란 소설을 쓸 때 200번이나 고쳐 썼다. 투르게네프는 작품을 일단 서랍에 넣어 두고 3개월에 한 번씩 고쳤다. 소동파는 '적벽부'를 탈고한 뒤 자신을 찾아온 친구가 감탄하며 글을 쓰는 데 얼마나 걸렸느냐고 묻자, 불룩하게 솟은 앉았던 자릴 들춰보니 퇴고한 원고 뭉치가 한 삼태기 나왔다. 두보는 ‘어불경인사불휴(語不驚人死不休)’라고 했다. 내가 쓴 詩가 사람을 놀라게 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그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이 사람들 모두 제자랑 쟁이인가. 미치광이 인가.
그림도 그렇다. 가난한 고갱과 고흐가 그림 그리다가 한 사람은 면도칼로 자기 귀를 잘라버리고, 한 사람은 타이티 섬에 들어가 그림 그리다가 일생을 마쳤다. 그들은 또 왜 그랬나.
나는 수필도 쓰고, 油畵도 그리고, 대중가요도 만들었다. 가요는 곡 만드는데 편 당 제작비가 10 만원 이다. 그래 집에 돌아와서 그 친구 말을 곰곰이 생각 해보았다. 나는 100% 남사스런 사람이었던가. 그러나 왜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시인은 시를 쓰는가. 헤밍웨이나 투르게네프, 소동파, 두보, 고갱과 고흐, 모두가 제자랑 쟁이 였던가. 평생 돈 때문에 직장에 청춘을 바치다가 은퇴해 나와서 죽을 때까지 가만히 살다가 꼭 저세상으로 가야만 하는가. 답답한 소리다. 그때 압구정동 어떤 친구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바둑 후에, '김교수는 글도 쓰고, 그림과 음악 셋 다 하니 부럽다'고 한 적 있다. 그 말이 맘을 편하게 해주었다.
첫댓글 어뗜 친구의 이이야기 인지 알만하다.그러나 김교수가 하는 일도 그만한 생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