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이나 한 번 가보고 죽자.
외국에 있을 때, 다른 나라에 미사와 특강을 부탁받아 간 적이 있다. 미사를 마치고 사제관으로 가는데, 어떤 자매님이 따라왔다. 사연인즉슨…. 세상살이가 너무 힘이 들어서 오늘 약을 먹고 죽으려고 했단다. 약을 꺼내놓고 먹으려고 하는데, 문득 죽기 전에 성당이나 한번 가보고 죽자는 생각이 들더란다. 그렇게 미사를 오게 되었고, 말씀을 듣게 되었다고….
자매님의 이야기를 듣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이 이 사람 참 살리고 싶으셨구나!’
그리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이 길이 얼마나 고귀한지….
성소 주일에 듣게 되는 말씀. 목자의 비유에는 예수님이 ‘착한 목자’임을 소개한다.
그리고 그 착한 목자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고 전해준다.
요한 20,31에는 복음서를 쓴 목적이 나온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세상살이 힘들어하던 그 자매님은 지금 살아있을까?
그날 대충 미사하고 강론을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착한 목자이신 주님을 닮아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요한 10,3) 줄 수 있는 목자 같은 신부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죽기 전에 성당은 한번 가보자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고귀한 삶을 살라고 많은 이들을 초대하고 있다.
우리 주님이 오늘도 그런 사람, 찾고 계신다.
글 : 趙潤濟 Thomas Aquinas 神父 | 大邱大敎區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100세 시대’가 되었지만 마흔이라는 나이는 여전히 무겁게 느껴집니다. 사회는 새것과 젊음을 우선하고 어렵게 들어간 회사도 나이든 사람을 환영하지 않으니 나이와 함께 불안이 커지죠. 이렇다 보니 십 대 시절을 얌전하게 보낸 사람도 마흔 즈음이 되면 흔들리고 방황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마흔 초반에 ‘진짜 사춘기’를 겪었어요. 살아온 세월은 제법 되고 살날도 꽤 남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일하고 살아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살면 돼?’라는 질문 앞에 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일이 잘 풀릴 땐 근본에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하던 것을 계속하고 가든 길을 계속 가죠. 허나, 브레이크가 걸리고
비상 음이 울리면 비로소 돌아봅니다. ‘이대로 괜찮은가. 바꾼다면 뭘 바꾸나.’ 마흔 무렵, 저는 제 인생의 근본을 들여다봤고
그런 끝에 일 년 휴직을 하고 ‘방황에 전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순례를 떠났죠.
비행기와 기차를 갈아타며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Saint-Jean-Pied-de-Port)로 갔고 거기서부터 꼬박 35일을 걸어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에 닿았습니다. 대성당에 도착한 날 미사에서 신부님이 “오늘 아침 꼬레아노 한 사람이 이곳에
당도했다.”고 말씀하실 때 얼마나 감격스럽던 지요. 결국 800킬로미터를 다 걸어 산티아고에 닿았지만 그곳에 가야 하는 이유는 알지 못한 채였습니다. 그때 저는 그리스도인도 아니었으니 순수한 순례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랐는데
순례 중에 지극한 사랑을 체험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카미노를 걷기 시작한 지 20여 일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마을 성당에 가 십자가를 바라보는데 눈물이 봇물 터지듯 났습니다.
눈물도 못 닦고 한참 우는 사이 어디선가 음성이 들렸습니다. “얘야,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순간 알아차렸습니다. ‘이 말씀을 들려주시려고 나를 부르셨구나.’ 마흔 넘어 맞닥뜨린 불안에 무릎 꿇고 싶지 않아서
순례 길에 나선 거라 짐작했는데 주님의 뜻은 그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예뻐진다고 하죠. 얼굴에서 빛이 나고 표정부터 달라집니다. 누군가의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자신감을 주니까요. 하물며 저는 하느님으로부터 사랑 고백을 받았잖아요? 강력한 ‘빽’을 확인한 저는 그 음성에 기대어 마흔의
사춘기를 무사히 지날 수 있었습니다.
‘목소리’를 들은 순간이 어제와 같은데 벌써 20년이 되었네요. 그분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확인했음에도 ‘시간의 이빨’ 앞에서
저는 또다시 걱정하고 방황합니다. 이를 넘어서는 방법은 부지런히 기도하고 말씀을 새기며 행하는 것이겠지요.
방법을 알면서도 행동이 적어 탈인데 그럴수록 Just do it! 사랑을 믿고 한 발 내딛는 것. 그리고 계속 걷는 것이겠지요.
글 : 최인아 Mary | creative dire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