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명한 안양 인쉬(殷墟) 유적 바로 은허유적 발굴을 총지휘했던 푸쓰녠(부사년·傅斯年)은 일찍이 “상나라는 동북쪽에서 와서 흥했으며, 상이 망하자 동북으로 갔다”고 단정했으며 이는 중공 학계도 이런 쑤빙치와 푸쓰녠의 관점이 가장 정확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970년 이후 본격적인 만리장성 넘어 동북방의 만주 대릉하지역에서 홍산문명의 거대 제단과 옥기 유물과 이후 고조선 건국시기의 고구려 치의 원성 석성들과 이후 비파형 동검들이 잇달아 발견되기 시작합니다. 이에 중공학자 쑤빙치가 “하나라 시대에 이미 중국 동북방 발해 연안에는 하나라를 방불케 하는 강력한 방국(方國), 즉 왕국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단언하며 이 정치 세력중 일부가 남하하여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은나라를 세우게 되며 천하를 제패하다 다시 망하면서 대릉하 지역으로 흘러들어와서 고조선 중후기의 비파형 동검시대인 일명 남산근 유적을 꽃피우게 됩니다.
상나라의 유적과 유물에는 서쪽 내륙의 화한족과는 다른 문명인임을 보여주는 생생한 그림들이 담겨 있습니다.
“인쉬 유적에서는 상나라 귀족들의 묘가 발견되었는데, 발굴된 대다수의 시신들이 동북방 인종의 특징을 갖추고 있었어요. 인골들의 정수리를 검토해보니 북아시아와 동아시아인이 서로 혼합된 형태가 나타난 거지. 이것은 황허 중하류의 토착세력, 즉 한족(漢族)의 특징과는 판이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어요.”-인쉬(은허) 유적에서 출토된 인골들을 분석한 인골전문가인 판지펑(반기풍·潘其風)

또하나, 인쉬(은허) 발굴자들이 인정했듯 상나라 사람들이 동북방의 신앙을 존숭했다는 것이다. 즉 상나라 왕실에서 고위층 귀족들에 이르기까지 동북방향을 받들었는데, 이는 고향에 대한 짙은 향수와 숭배를 나타난 것이라는 해석에서.
하나라는 흑색을 숭상하여 군사행동때는 흑마를 탔고, 제사 때는 흑생 희생물을 바친다. 은나라는 백색을 숭상하여 군사행동 때는 백마를, 제사 때는 흰색을 바친다. 주나라는 적색을 숭상했는데~.”(예기 단궁상·禮記 檀弓上)
< 하나라는 농업을 바탕으로 하는 왕권 국가의 형태이지 은나라와 앞서의 동북방의 홍산문명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세력은 거대제단과 일인 매장 모티브와 형이상학적 옥기등 하늘을 숭상하는 신권국가로서 근본 성격부터가 고고학적으로 다르게 출발하고 있습니다.>
이 발해만 지역 요서 대릉하 지역은 우리가 토기나 기타 청동기 제품이 일제당시의 시베리아 경로라는 통설을 다 뒤엎고 이
요서 대릉하 지역의 매우 밀접한 영향력하에서 여러 토기나 적석총, 그리고 비파형동검등의 영향력을 받으며 이후 고구려가
이 문명의 진정한 계승자로 동북아를 리드하는 국가로 올라오게 됩니다
현재 학계의 고조선의 인식은 중후기적 유물을 토대로 매우 한정적 시기에서 고조선을 봄으로서 고조선의 전기적 역사에 대한
이해와 도출의 한계가 있으며 정치적 실체에 대해서도 확연하게 설명할 길이 없지만 이 곳 대릉하는 매우 밀접한 공간이면서
차후 고조선의 전기 시대를 풀어줄 매우 중요한 유적과 유물지역으로서 학계의 연구가 좀더 깊어지면 조만간 어느 정도의 우
리의 인식을 체계화 할수 있는 성과가 나올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동북방의 세력이 남하하여 활동을 넓히는 경과가 가
히 상상을 불허할 만큼 넓다는 점이며 이로 인해 화한족의 서쪽 내륙이 이 동이족에 의해 엄청난 영향력을 받으면서
그속에서 나온 인물이 공자라는 것입니다. 즉 공자가 한국인이라는 것은 애매한 부분이지만 분명한 것은 공자의 예
법이 공자 스스로 창안한 예법이 아니라 동이족 은나라의 예를 근간으로 하며 은나라는 동북방의 강력한 정치세력
인 우리 동이족 고조선 문화와 이후 우리 부여와 고구려로 분명히 이어지는 문명과 매우 밀접한 정치 세력의 문명적
생활 양식이었다는 것입니다
제 주장은 간단합니다. 노나라든 청나라든간에 중국역사 맞습니다. 원나라는 중국과 몽골 공통의 역사겠지요. 그리고 현재 중국에 사는 사람들 중국인맞구요. 하지만 중국역사고 후손들이 중국인이라하여 그 선조까지 일괄적으로 중국인은 아니라는거지요. 역사에선 분명 민족구분하잖아요. 강희제는 만주족이고 수양제는 선비족이고 진시황제는 강족(맞나??)이죠. 역사에선 분명 이렇듯 구분하는데 왜 공자는 그런거 구분할필요도 없이 무조건 중국인이 되는거죠? 저는 공자가 그 민족구분이 잘 안된다는겁니다. 알려진게 없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공자가 한국인이라고 주장한적 없습니다. 공자가 중국인이라고 단정 못짓는다가 왜 공자는 한국인이다가 돼죠?? 설마 왜인은 아닐테구요, 그가 한족인지 강족인지 선비족인지 동이족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토끼님은 그가 중국역사속인물이고 후손이 중국인이니 그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시는거구요, 저는 그렇게되면 그당시 선비족이니 동이족이니 한족이니 하고 구분하는것이 무의미하게된다는거죠. 그런식으로 따지면 다 중국인이니까요. 중국 5호16국시대는 이민족의 침입이 아니라 중국내 중국인끼리 내전이 되어버리죠. 민족 구분 무의미한겁니까?
저는 황씨입니다. 제 선조는 족보에 따르면 당나라때 고위관직에도 오르신분으로 신라로 건너오신분입니다. 대부분의 황씨 공통의 조상이죠. 그리고 그 후손들 현재는 다 한국인이구요. 그럼 그분도 당연히 한국인이 되는겁니까? 심정적으로는 중국에 살던 한국인으로 생각하곤있지만 실제로는 모르죠. 한족일수도 있는겁니다. 제가 한국인이라해서 그분까지 한국인이 되는건 아니죠. 그분은 한국인일수도 있고 신라에 귀화한 중국인일수도 있죠. 만약 중국내 황씨 족보에 그분이 올라가 있다면 중국 황씨도 그분이 조상이라고 주장할수있죠. 왜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여 그분까지도 무조건 한국인입니까.알수가없는거죠.
아.. 한족의 역사가 아닐뿐이지 중국의 역사는 맞습니다. 한 민족의 후손이 남은 국가라도 있음 몰라도 우리나 몽골 같은 경우요. 나머지는 중국의 역사로 봐야죠. 뭐 왜 무슨 무슨 족으로 나누냐고 한다면 혈통과 민족의 역사죠. 지금 중국같은 경우는 다 민족 국가니. 뭐 -_-;
예전 부터 사용한 한족이라는 개념 자체도 좁은 의미가 아닌 상당히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개념의 용어 입니다. 물론 그런 한족이 허구적 족명이라는 것은 연구로서도 이미 중공학자에 의해 밝혀진바 있구요. 중공대륙은 어떤 일정한 흐름의 왕조 계승을 논할 수 없을 만큼 이민족과의 치열한 왕조교체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복왕조라는 개념도 생겨 났구요. 그러다 보니 후대에 와서 그들이 타인에게 지배받은 역사를 안지 않으면 상당한 시간을 지배받아 왔다는 역사를 스스로 드러내어야 하니 그기에 딜레마와 모순이 생기고 나아가 주변 나라와의 터무니 없는 역사적 마찰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누구 말처럼 역사는 지나간 시간입니다. 그것을 현대에 와서 각색하거나 미화하는 것은 도리어 역사적 교훈을 망각시키고 반복해서 당하는 꼴만을 만드는 것입니다. 중공의 현재의 이런 터무니 없는 역사적 인식은 결국 단기적인 자기 만족에는 좋겠지만 뼈아픈 시절을 낭만으로만 각색하고 받아 들이고자 한다면 거듭 남의 지배를 받는 역사는 반복될 것입니다.
저기 근데 동이족..동이족...이 말 자체가 중국의 한족이 중심이고 다른 민족은 열등하고 미개한 존재라는 의미가 들어있는 말인건 아시고 쓰시는건지..왜 굳이 동이족이 되고 싶어하시는 건지도 의문이고..동이랑 단어에 화살을 잘쏘는 오랑캐란 의미가 들어있는데 우리 스스로가 오랑캐라고 굳이 떠들고 다닐 이유는..ㅠㅠ
동방은 이(夷)이며, 이는 근본이다. 만물이 땅에서 나오는 근본이다. 동이의 풍속은 어질다. 천성이 유순하다. 군자의 나라요, 불사의 나라이다. (天性柔順 易以道御 至有君子 不死之國焉) 때문에 공자는 ‘중국에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나는 군자불사의 나라인 구이(九夷)에 거하고 싶다’(故孔子欲居九夷)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