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을 구한 소련인 >
지난 10.22일은 정책결정론 수업에서 으레 다루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가 극적으로 끝난 날이었다. 존 F. 케네디는 가끔 그의 지적 수준을 초과하는 그럴싸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최종적 결정의 핵심이란 관찰자들에게는 이해될 수 없으며 흔히 정책결정자 본인도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The essence of ultimate decision remains impenetrable to the observer - often, indeed, to the decider himself.").
케네디의 이 말을 인용하여 저서명을 “결정의 핵심”(Essence of Decision)이라고 붙인 명저에서 하버드 대학 앨리슨(Graham Allison)은 쿠바의 미사일 위기와 관련된 정책결정 사례를 분석한다. 우선 통상적인 합리모형(그는 사실 합리모형이라고 부르지 않고 ‘모형-1’이라고 불렀다)으로는 이 사건이 충분히 설명될 수 없음을 지적하고, 또 다른 모형-2(‘회사모형 혹은 ‘연합모형’에 가장 근사)를 동원하였는데 이 역시 불완전. 그가 고안한 다른 모형-3(정치모형)으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설명 모형들은 정책결정자가 강력한 단독의 의사결정자일 경우(모형1), 상호독립적인 몇몇 결정자들이 연합체를 이루고 있는 경우(모형2), 의사결정자가 아주 독립적인 주체들일 경우(모형3)를 동원한 것이다. 여느 ‘통합모형’의 결론들처럼 답은 거의 빤한 것이었다. 정책결정의 분석은 한 분석틀로는 불충분하다는 것.
쿠바 미사일 위기는 정책결정론 수업에서는 케네디 개인의 직관(inspiration)을 강조하는 리더십이론 으로든, 혹은 전형적인 겁쟁이(chicken) 게임이론 으로든 세계를 3차 대전 직전에서 구했던 고독한 멋진 지도자로 판정한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흐루시초프에 대해 상당한 양보한 부분들은 간과한다. 또 케네디에만 집중하면 케네디 이전에 쿠바 미사일 위기를 앞서 무마한 한 소련인을 간과하기 쉽다.
미국 소련이 쿠바 연안에서의 대치가 극한으로 치달으며 미국은 쿠바 연안의 소련 선박의 검색에 나선다. 1962녀 10.27일, 미 해군이 소련잠수함 (B-59) 을 찾아 내자 폭뢰를 투하하면서 잠수함이 수면 위로 올라와 검색받기를 강요했다. 실은 그 소련잠수함이 히로시마 원폭급의 핵 어뢰를 장착하고 있음을 전혀 모른 상태에서. 폭뢰 공격을 계속 받자 모스크바와 상당 기간 통신이 끊어져 있던 잠수함 함장은 미소 간에 이미 핵전쟁이 일어난 상태로 판단하고 미 기동 함대 모함인 항공모함 랜돌프(USS Randolf)를 향해 핵 어뢰를 발사 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핵 발사를 위해서는 3인의 고위 장교 의견이 일치해야 했다. 이때 부함장이던 ‘바실리 아르히포프’ (Vasili Arkhipop)는 다음 이유로 이에 반대한다.
핵전쟁 발발 여부는 수면 위로 올라가 모스크바와 통신이 이루어진 이후에만 알 수 있으며, 지금 미 해군은 일부러 우리 잠수함을 비껴서 폭뢰를 투하하는데 이는 우리를 침몰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거기 있는 줄 아니 물 위로 올라와 검문을 받으라는 시그널에 불과 하다는 것.
미국 영화 『크림슨 타이드』(Crimson Tide)에서 잠수함장(진 해크먼)과 부함장(덴젤 워싱턴)간 충돌과 유사한 상황.
결국 아르히포프의 반대로 핵 어뢰는 발사되지 않았고 수면 위로 부상해 미구축함을 만난다. 미구축함도 검문을 위해 소련잠수함으로 승선하지는 않았고 B-59는 소련으로 돌아갔다. 그후 13일의 대치 후 흐루시초프는 물러섰고 케네디도 쿠바를 침공않기로 약속하고 쿠바 위기는 해결되었다.
B-59가 핵 어뢰를 발사했었더라면 3차 대전으로 거의 이어졌을 것이다. 57년 전 오늘 거대한 일이 너무나 조용히 지나갔다.
아르히포프는 소련 해군에서 계속 근무하다 1975년 퇴역했고, 핵잠수함 근무로 입은 방사능 피폭으로 1999년에 73세로 사망하였다.
2002년 미국 National Security Archive 소장인 톰 블랜턴(Tom Blanton)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바실리 아르히포프라는 사람이 세계를 구했다.”
최종적 결정(ultimate decision)의 핵심은 정책결정권자 본인마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정책결정에는 어떤 초월적 섭리가 작동한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혹은, 너무나 중요한 결정에는 이름없는 자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결정권자로 나서기 때문에 공식적 결정권자 로서는 전혀 그 귀결을 알 수 없게 된다는 뜻이거나.
북핵에도 그러한 가능성이 분명 있다.
오히려 김정은이 모든 결정권을 독점한 그런 체제일수록 그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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