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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갇힌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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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日常의 自作나무길 스크랩 산수유피는 이 봄이 밉습니다.
희망으로2 추천 0 조회 163 11.03.11 17:36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이 봄이 밉습니다.

 

멀리 산에 따뜻한 기운이 가득차보입니다.

지금쯤 우리 고향에는 얕은 산마다 산수유 연두색들이 만발 할 겁니다.

해마다 봄이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논밭 사이를 지나

그늘진 곳에 아직도 언 땅이 있는 마을 산을 올랐습니다.

나무 사이로 햇빛이 따사롭고 오솔길로 걷노라면

얼마나 행복하고 생명의 기운이 온 몸을 감싸는지!

 

...그러나 벌써 몇 해 째 봄은 말 그대로 병실에서 유리창으로 내다보는

그야말로 이 되고 말았습니다. 눈으로만 오고 가는!

거리를 활개 치는 봄 빛깔 옷을 입은 사람들의 표정이 부럽습니다.

가벼운 등산복에 작은 가방을 등에 멘 사람들이라도 눈에 보이면 속이 편치 않습니다.

이 봄이 밉습니다.

누구는 저 좋은 햇살아래 산을 오르내리는 복을 주시고

우리는 어쩌자고 침대에 보이지 않는 굵은 올가미를 메어 놓으시고...

 

집사람은 또 다시 며칠째 계속되는 울렁거림과 혀와 입안의 헐어버린 상처로

삼일을 밥을 못 먹더니 오늘부터 기어이 영양제와 수액을 달았습니다.

어제 밤에는 보고 싶다는 집사람의 전화에 마음이 안 편했는지 큰 아들이

부대에서 하루 허락을 받고 와서 자고 내려갔습니다.

그저 손이나 잡아보고 얼굴이나 보고 달리 주고 받을 것도 없이!

가는 발길이 무거워져 배웅하는 내 마음도 봄이 봄 같지가 않습니다.

 

작년 이 맘때 부활을 기다리며 온갖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던 글들을

꼭 일년만에 뒤적거려 보았습니다.

어쩌면 일 년이란 시간이 짤라내고 감쪽같이 이어놓은 필름처럼

그대로 반복입니다. 제자리로 돌아와 있습니다.

그 병원 그 침대 그 병 증세, 그리고 같은 기도의 제목들...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제자리가 있을 수 있는지요?

그러니 그 무겁던 작년의 봄이 다시 재현이 될 것만 같아 두렵습니다.

이 봄이 밉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밝은 목소리는 한국다발성경화증 환우회의

상담간사님이신 정간호사님이었습니다.

그동안 집행해오던 다음 아고라 모금액 대행관리가 끝이 나서

이제 사진을 좀 찍어야 되어 연락을 하셨습니다.

어떻게하지요?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리고 웃으며 후기 보고서를 올려야

모금해주신 분들께도 도리이고 다른 모금활동에도 도움이 될텐데...“

괜찮아요. 적분에 더 안나빠지고 잘 유지했다고 하지요 뭐!‘

얼마나 믿음이 좋으신 분인지 내가 절망에 빠질 때마다 거짓말처럼 전화를 해서

제 하소연을 삼십분 한시간씩도 들어주시는 분이었습니다.

갖고 다니던 암송용 성구 카드도 그냥 다 주고 가시며 기도로 승리하자고

늘 격려해주시는 분이라 큰 위로를 받는 형편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래도 시력이 나빠지셨나봐요!“

제 말에 정간호사님은 기어코 웃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주무시지도 피곤하지도 않으시고

늘 우리 곁에 계시며 다 아신다고 하길레 제가 투정부리며 한 말입니다.

저도 그건 믿는데 아무래도 노안이 오시는 건 아닐까요? 안경을 좀 사드릴까요?

아니면 이렇게 우리가 오래 허덕거리게 하실리 없는데요. 우리가 참을만한 건덕지보다

더 심하고 오래가는 어려움을 내버려두시는걸 보면...“

아내의 몸 상태를 설명하는 걸 누운 채로 듣고 있던 집사람이 슬그머니 고개돌리고

울려고 하는 찰라에 제가 전화를 마쳤습니다.

더 이야기를 하다간 아무래도 오늘 저녁에 또 달래기 힘든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안그래도 군인 아들 하루 밤 재우고 보내고 안 좋은 마음 뒤인데 불안합니다.

 

지루합니다.

이 길고 긴 업치락 뒤치락 투병의 시간들이...

온몸의 여기저기를 끝도 없이 계속 망가뜨리고 오늘도 진행되는 이 행군이

견디기 힘들도록 지치게 만듭니다.

눈이 안보이다가 귀에서 피가 흐르고 발톱이 살을 파고들어 제거하니 머리와 어깨가 또 고장,

온갖 주사와 치료로 가라앉히니 이제 구토와 어지러움으로 이비인후과를 가고,

그 사이 운동치료는 올스톱, 팔다리의 근육은 몇 달에 걸려 손톱만큼 올려놓은게 수포로 돌아가버렸습니다. 담당치료선생님들조차 한숨을 쉽니다.

몇 달을 회복시켜 놓으면 불과 일주일에서 열흘이면 원점으로 돌아가지않나,

걸핏하면 과로라고 링겔을 달고 치료 중단을 반복하니 무슨 의욕이 생기겠습니까?

오히려 송구하고 미안해져서 할 말이 없습니다.

 

봄은 왔건만 봄이 아니로구나! 춘래불사춘! 이라고 어느 시인이 말했다지요?

우리에게 봄이 왔다가 목전에서 방향돌려 가버리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는지 모릅니다.

이 봄이 밉습니다.

다들 새로 무엇을 한다고 의욕이 넘치고,

묵은 겨울 살림치우고 산뜻한 봄장단을 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는데

햇빛 쏟아지는 산속 오솔길 산책은 고사하고 병원 안에서 조차 웅크려드는

이 봄이 밉습니다.

 

다시 일어서고 잘지내는 듯 웃다가 다시 침울에 빠지는 반복의 제가 밉습니다.

저는 믿음이 좋은 사람이 아니고 감정의 기복이 너무 심한 사람일 뿐인가 봅니다.

그래서 어느 때는 밑도 없는 의욕을 주체 못하고,

어느 날은 아무 이유도 없어도 푹 주저 앉아 온 세상을 짊어지고 허덕이는

다만 감당할 수 없는 체질을 가졌을 뿐인 전형적인 AB형 철부지입니다.

곧 시작 될 고난주간에 작년의 기도를 토씨하나 다르지않게 다시 하게 될까봐

그것도 염려됩니다. 리바이벌은 싫어하시는 하나님앞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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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3.12 09:54

    첫댓글 희망으로2님!
    아직도 멈추지않는 시련앞에 많이 힘들고 앞음이 글 속에 선명하게 비춰집니다.
    오죽하심, 산수유 꽃 피는 이 봄이 밉다고 하실까요.
    그 심정 정말 이해 합니다.
    제가 그랬어거든요.다만 그 미움의 대상이 산수유 꽃이 아닐뿐이죠.
    힘든 인생의 여정에서 모든게 싫고 미워질때, 욥의 고난을 떠올리며 인내 했드니....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하나님의 심오하신 그 뜻을 깨달았어요.
    조금더 소망중에 인내 하시므로 기도의 줄을 놓지 마시길 바랍니다.
    절대자이신 윗분의 역사가 진행 될테니까요.
    믿으면 믿는대로 되리라 하셨아오니, 오직 믿음으로 꼭 승리 하시고,
    지금부터 저 산수유 꽃 사랑해 주세요.

  • 작성자 11.03.12 13:23

    산수유 꽃이 왜 밉겠습니까.
    제 자신이 밉지요.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기의 짐을 지고 잘도 살아가는데
    힘들다 무겁다 내내 기어다니는 제 인내심이 밉고 믿음의 분량이 밉지요.
    ...그러게 왜 좀 씩씩한 신앙의 사람을 이 짐을 주고 저는 작은 보따리를 좀 주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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