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동 사궁두미
겨울 막바지 엊그제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날씨도 봄날처럼 따뜻했다. 그런데 이월 셋째 월요일 아침 최저기온은 전국이 빙점 아래로 곤두박질 쳤다. 아침 방송 기상 게스트는 두꺼운 외투와 장갑을 끼고 찬바람이 부는 거리에서 날씨를 전했다. 시장 골목엔 전기난로가 등장하고 간밤 곳곳에서 일어난 화재 소식도 이어졌다. 봄방학 기간이라 평일임에도 자유로운 시간이 허여되었다.
아침 일찍 댓거리로 나가 수정으로 가는 녹색버스를 탔다. 가포를 지나 덕동 생활하수처리장을 앞둔 정류소에서 내렸다. 올망졸망한 남녘 해안선에 아직 내 발자국을 남기지 않은 곳이 있어 들려볼 참이다. 매립지 정류장에서 산비탈로 난 도로를 따라 걸었다. 창원시 생활폐기물 매립장이라는 표지가 있는 산비탈 길에는 차들이 뜸하게 다녔다. 일반인의 산책로가 아니라 되돌아 나왔다.
덕동마을에서 포구를 지나 해안선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저만치 생활하수처리장이 보였다. 덕동 일대는 마산 창원 시민들이 생활하수를 처리하고 폐기물들이 매립되는 곳이었다. 이른바 혐오시설이 들어서면서 한 때 지역민과 행정 당국이 갈등을 겪기도 했다. 이제 님비현상을 극복하여 오히려 다른 지역보다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마을엔 여러 복지시설들이 있었다.
포구에서 해안선 따라 난 길을 따라 걸으니 외양이 아름다운 찻집이 나왔다. 끝이 어딘지 모를 길을 계속 걸었다. 포구 건너편은 달포 전 찾았던 골매마을이었다. 산모롱이를 돌아가니 작은 포구가 나왔다. 포구 이름이 ‘살개’였다. 살개는 무당들이 굿을 하는 동네였다. 용왕 굿당을 비롯해 굿을 하는 집이 네댓 되었다. 조용한 갯마을에서 요란한 징소리가 들려오고 북소리도 들려왔다.
마을 뒤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굿당 뒤 마늘과 시금치가 자라는 밭에는 허수아비도 독특했다. 알록달록한 무당 옷을 입은 허수아비 셋이서 밭을 지키고 있었다. 살개에서 또 어딘가 모를 곳까지 포장된 길이 있어 계속 걸어갔다. 아까 덕동 포구부터 종점이 어디이며 무슨 마을이 있다는 안내 표지가 없어 더 궁금했다.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 바깥은 거가대교 연륙교 구조물이 보였다.
해안가 수산물 가공 공장을 지나 좀 더 들어가니 작은 마을이 나왔다. 논밭이 전혀 없는 전형적인 어촌이었다. 횟집과 펜션이 몇 집 보였다. 방파제 가건물 안에서는 홍합을 까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웅성웅성 들려왔다. 건너편 바다는 진해 군항 지구로 붉은 부표가 일직선으로 진해만 바깥까지 뻗쳤다. 포구 가까운 갯바위에는 그림 같은 등대가 있었다. 잘록한 합포만 바깥 지점이었다.
마을 뒤를 감싼 산자락으로 마산 시가지는 보이질 않았다. 빤히 쳐다보이는 곳은 진해 군항이고 그 뒤로는 장복산 산등선이 시루봉으로 이어졌다. 해돋이 명소인 듯해 새해 첫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지 싶었다. 방파제 끝난 지점에 봉고를 타고 온 낚시꾼이 있어 마을 이름이 뭐냐고 물어도 잘 몰랐다. 마산에서 온 그들은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려고 자동차에서 몇 가지 장비를 챙겼다.
마을이 작아 회관이나 노인정도 없었다. 아마 덕동 본동에 딸린 마을인 듯했다. 마침 한 할머니가 빗자루를 들고 방파제로 나와 물을 묻히려했다. 할머니에게 마을 이름이 뭔지 여쭈니 사궁두미라고 했다. 마을 이름이 특이해 그 유래를 물었더니 자세히 몰랐다. 어디 더 물어볼 곳은 없었다. 한동안 방파제에서 진해만을 바라보다가 아까 왔던 해안선을 따라 포장된 길을 되돌아 나왔다.
굿당이 있는 살개에 이르러 해안선 따라 가 보았다. 굿당은 한 집이 아니고 여러 집이었다. 길가 어느 굿당에는 돼지머리와 과일을 층층이 쌓아놓고 무속인이 징을 두드려댔다. 바다 속 용왕한테 간절한 염원과 기운이 전해지는지 궁금했다. 방파제엔 굿을 의뢰한 가족들이 타고 온 차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해안선 모롱이를 돌아가니 덕동 포구였다. 볕 바른 자리서 한 어부가 어망을 손질했다. 2016.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