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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정신병>
선조(宣祖) 어진
선조(宣祖, 1552년 선조~ 1608년)는 조선의 제14대 국왕이다. 휘는 연(昖),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작호는 하성군(河城君)이었다. 어린 시절 총명하고 겸손했다. 명종이 여러 왕손들에게 자신의 익선관을 써보라고 했을 때 하원군과 하릉군은 바로 써보았지만 막내였던 하성군은 왕의 관은 함부로 쓰는 게 아니라고 물러났다. 이후 명종은 사려 깊은 하성군을 총애했다.
돌아보면 진심의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익선관을 받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었다. 조선 최초로 서자가 왕이 되었다. 그는 눈물의 왕이었다. 그는 심지어 연산군, 광해군보다 더 많이 욕을 먹는 왕이다. 유달리 많은 인재들이 선조 때 나타났다. 무엇보다 그는 넘치는 인복으로 치명적인 덫에 걸려 상처뿐인 세월의 올가미에서 비명만 지르다 갔다.
어벤저스급 스타 신하들이 나타났다. 선조가 똑똑해서 인재 등용을 잘한 건지 하늘이 내린 건지,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는 우주의 법칙 때문인지! 이순신, 이이, 이황, 정탁, 류성룡, 이원익, 이항복, 이덕형, 권율, 김시민, 곽재우, 허준, 정철, 신립, 이일, 정인홍, 정기룡, 윤두수, 황진이, 서산대사, 사명대사, 한석봉, 조식, 기대승 등 조선 최고의 학자, 명기, 명장, 명의가 다 선조 때의 인물이다.
조선 역사상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그 어떤 시대도 능가할 수 없는 화려한 진주 망사를 뒤집어쓴 영욕의 세월이었다. 정철이 그토록 애타게 노래한 임이 바로 선조이다. (복도 많아라!)
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포에 상륙, 파죽지세로 북진해 오자 조정은 보름 만에 한성을 버리고 개성으로 피난했으며, 이어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퇴각했다.
그는 가슴을 치고 "어디로 가야 하냐?"라고 외쳤다. 선조는 임진왜란 중 수시로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허준은 그의 병을 전광증으로 진단했다. 미친 듯이 노래 부르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나랑 비슷한 증상이 있어서 그의 마음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조선은 왕이란 그 나라를 다스리라고 하늘이 내린 하늘의 대변자라고 여겼다. 가뭄이나 홍수 천재지변이 생기면 왕이 먼저 하늘을 향해 기도해야 하고 모든 것이 왕의 탓이었다. 유난히 망상에 시달렸다. 그는 헛것을 보고 소리를 지르고 성격장애를 보였다. 심질, 광질 두 가지 요즘 말로 조현병이 이었다.
선조 임진왜란 몽진
수백 년 동안의 평화 후, 처음으로 겪는 전쟁의 공포 속에서 이리저리 떠돌던 원조 밉상 선조는 온갖 불안증에 시달리던 애달픈 정신병 환자였다. 총 들고 달려드는 일본군 앞에 활을 든 조선군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그는 이리떼 같은 신하 앞에서 눈물을 질질 흘렸다. 남자의 눈물, 왕의 눈물을 생각하면 치명적인 상처가 떠오른다. 심장이 마늘 쪽처럼 갈라진다.
정신이 혼암하고 심기가 약하다고 토로했다. 재위 기간에 전쟁과 역병(마마, 천연두)도 함께 겪었다. 참고로 이순신은 전쟁보다 역병에 더 많은 병사를 잃었다. 큰 아들 회도 역병으로 잃었다. 그의 인생은 피로 짠 피륙이었다. 가끔 궁금하다. 그의 힘의 원천은 궁극적으로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조선 최고 극한의 직업은 농사꾼도 머슴도 심마니도 백정도 아니었다. 왕이라는 이름 아래 자유롭지 못한 자, 마치 쇠사슬에 묶여 생간을 뜯기는 무능하다 못해 저능해 보이는 선조는 사실상 정신병자였다. 참고로 난 선조의 후손이 아니라 이순신을 죽음에서 구한 좌의정 정탁의 30대 후손이다. 명나라로 망명하고자 한 민폐 왕인 그를 옹호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인간 이연(선조)에 관해 쓰고자 함이다.
“임금 노릇 안 할게. 나 좀 살려주라” 선조는 원래 원기가 허약한 체질이었다. 비위도 약했다. 본래 심열(心熱·화기가 뻗치는 병) 증세가 있었다. 임진왜란 발발 4년 전인 1588~89년(선조 21·22년) 사이 반복적으로 심질의 증세를 말하며 물러날 뜻을 밝혔다..
“나는 반평생 신병을 지니고 있었는데, 심질이 더욱 심하기 때문에…. 반드시 광질이 발작할 것이다. 여러분들이 임금을 사랑한다면…. 물러나 쉬게 하라. 더는 번거롭게 하지 마라.”(1588년 윤 6월 1일) “심질 때문에 정신이 혼미하고 기분도 좋지 않다. 대신들은 날 가엾게 여겨달라.”(1589년 12월 21일)
선조의 심질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책임론이 비등해지면서 더욱 악화됐다. 여러 차례 ‘선위’ 혹은 ‘섭정’의 뜻을 전하면서 “제발 내 말 좀 들어달라"라고 애원한다.
“심질이 고질이 됐다. 불을 대하고도 춥고, 눈(雪)을 씹어도 되레 열이 생긴다. 때로는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 달린다. 동서를 구별하지 못한다. 유독 경들만 모르고 있다. … 내가 하루를 더 왕위에 있으면 백성들이 하루를 더 걱정하게 된다.”(1592년 11월 21일)
선조는 이후에도 ‘병 때문에 죽을 지경’ 임을 호소하면서 섭정 혹은 선위를 줄기차게 요구한다. 그의 정신병은 치사량에 가까웠다. 지구도 화병이 나면 화산으로 뿜어낸다.
"양쪽 귀가 완전히 먹었다. 심병(心病)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쓰러지기를 반복한다. 가슴속 답답한 기운은 없어지지 않는다. 하루가 1년 같고, 밤낮으로 눈물만 흘린다. 병이 갈수록 더해가는데 몸은 매여 있고….”(<선조실록> 1596년 8월 27일)
“가슴 통증 때문에 아파서 울부짖느라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그런데도 처리해야 할 업무가 밀려드는구나. 참 난감하구나. 경들도 내가 먼저 죽으면 후회하지 않겠는가. 어찌 내 고민과 병을 풀어 줄 생각은 안 하는가.”(<선조실록> 1597년 1월 6일)
무능함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선조이지만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름 자신의 업무를 열심히 했던 왕이었다. 이순신을 특급 승진시켜 해군을 통솔하게 한 사람도 선조였다. 신하들과 학문을 논하고 조선의 역사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명나라의 만력제에게 도움을 청한 것도 신의 한 수였다.
만력제는 명나라의 제13대 황제. 묘호는 신종(神宗), 시호는 범천합도철숙돈간광문장무안인지효현황제(範天合道哲肅敦簡光文章武安仁止孝顯皇帝). 휘는 익균(翊鈞). 융경제의 3남이다.
만력제(1563~ 1568)
명나라의 역대 황제들 중 가장 오래 재위한 황제이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한 황제로 가장 유명하다. 초기, 만력제도 총명하고 서예도 뛰어난 명군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타락했다. 명군에서 시작해 중국 최악의 황제로 8년 동안 파업 중이던 선조보다 더 미친 왕, 만력제가 임진왜란 문제에 있어서만은 매우 적극적으로 정책을 펼쳐, 조선에 군사를 파견하고, 조선을 재정적으로 도와 고려 황제로 별칭 되기도 한다.
조선의 사신을 우습게 여기던 만력제는 선조는 관우 만력제는 유비, 지금 관우가 어려움에 처해있으니 하루빨리 도와야 한다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8년 동안 파업 중이던 그는 선조가 장비의 환생이라고 믿고 명나라의 쌀 20만 석 5만~7만이 넘는 병사를 조선으로 보냈다. 그는 7년이나 조선을 도와주고 다시 긴 파업에 들어갔다.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것이다. 그는 방황조차 안 했다. 암군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황제이다.
역사상 가장 희귀한 인물이다. 만력제처럼 사후, 내내 욕먹더라고 하고 싶은 대로 막살고 싶다. 다음 생엔 돌멩이로 태어나려다 마음 접었다. 이리저리 발에 채고 파도한테 싸다 귀 맞고 눈, 비, 억센 바람에 해빙도 결빙도 맨몸으로 감내해야 하는 고단한 삶이었다. 생각해 보면 가슴 먹먹하지 않은 삶이 어디에 있으랴!
모든 상황을 고려해 보면 선조는 조선 최악의 임금이지만 고뇌하는 왕이었다. 질곡의 근대사를 겪으며 우리는 조선을 부끄러운 역사,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함께해야 하는 것이다.
선조는 김덕령을 처벌할 뜻이 없었다. 권율, 이순신, 윤두수 등을 사헌부, 사간원이 합심해서 며칠간 공격할 때는 한 발도 물러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선조도 강단이 있는 자였다. 여러모로 명분이 없는 상황에서도 집단으로 억지를 부린 것이다. 선조는 홀로 신하들과 힘겨루기를 하느라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분노가 변질해 징징거림이 되었을 것이다.
선조와 김덕령에 대한 기존의 편견은 사실이 아니다. 또한 이 일을 비추어 생각해 보면 선조가 시기심 때문에 이순신을 죽이려 했다는 것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참으로 역사란 알 수 없는 이야기이다.
책임 없는 권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하루 종일 나무를 하거나 땅을 파거나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우물물 한 바가지 들이켜고 고봉 가득 밥 먹고 배 두드리는 백성이 훨씬 더 행복했을 것이다.
조선은 정신질환을 귀신이 들렸다고 몰아붙인 시대이기도 했다. 악령, 마귀, 때문이라고 매도하기도 했다. 환각이나 망상이 뇌의 질환이라는 것은 최근에서야 밝혀진 사실이다. 언젠가 인간이 뇌를 정복한다면 그때 또다시 현재의 무모함을 비웃을 수도 있다. 밤새 소리 내어 울기도 했던 선조는 운명의 길 앞에서 무력했던 한 아픈 인간이었을 뿐이다.
어디서 칼이 날아올지 모르고 노골적으로 대드는 신하의 무리는 하이에나처럼 포기하지 않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요즘 같으면 요양병원에서 쉬어야 하는 순간에 그는 하고 싶지 않은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 하는 수많은 밤들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길을 잃어도 아무 걱정 없이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있고 싶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젊음과 바람과 물의 노래를 들으며 텅 빈 대지 위에 덩그러니 버림받고 조선의 울보 왕을 생각했다. 그가 힘들었다면 힘든 것이다.
Monday morning quarterback 이란 ‘지나간 일이나 문제를 그 후에 비판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미국의 인기 스포츠 football 경기는 대부분 일요일에 있다. 다음 날, 월요일에는 어제 경기를 본 사람들이 마치 자신들이 경기를 이끌어 가는 quarterback이라도 되는 양 이미 끝난 어제 경기에 대해 ‘이리 했어야 했다, 저리 했어야 했다’고 비판하기 쉽다는 데서 기인한 표현이다. 누구나 역사를 평가하기는 쉽다. 좋은 리더는 하늘이 내려야 하고 좋은 시기를 만나야 한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3천 년 전 은나라 임금도 정신병을 앓았다는 기록이 거북 껍데기랑 소 어깨뼈에 새겨져 있었다. 아! 선조의 정신병도 내 정신병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뼈대 있는 병이었다. 오랫동안 집 밖을 못 나갔다. 사람들의 조롱 소리와 교육청의 선을 넘는 행동에 신체 공황장애를 겪었다. 집 앞에서 감시하고 수시로 와서 괴롭혔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소통이 안 되는 세상에서 지천명이 넘도록 삶의 기술을 연마하지 못한 나 또한 징징거리기 좋아하는 정신병자였다.
슬픈 과거들을 제문처럼 태우고 실성한 듯이 달려간 초겨울 산등성, 왕들도 아팠다. 몸도 마음도 다 망가졌을 것이다. 왕이어서 참아야 했고 의연해야 했을 것이다. 임금은 아파도 안 아파야 했다. 나도 그러했다. 흐린 하늘도 맑은 하늘도 눈물이 난다. 불운한 시기로 인해 부서져버린 왕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분노는 십 리 왕사탕처럼 입안에 두고 조금씩 녹여버리는 것이다. 그냥 삼키면 기도가 막혀 내가 질식사할 수 있고 입안에 물고만 있으면 이가 상하고 천천히 단맛처럼 느끼면서 혀로 요리조리 굴려서 먹어치워야 하는 것이다.
공포와 광기의 시대였다. 운명의 가시에 찔려 그냥 조우하는 죽음 말고 나 혼자 씩씩하게 찾아가는 마지막이고 싶다. 어느 날 졸업 앨범을 열어 지금은 사라진 이들을 엑스 치는 연습, 삶은 잔혹동화이다. 무소식을 기다리고 기다린다. 무소식만이 희망이라는 마지막 잎새에 매달려 하루 종일 대롱거리며 보낸다. 언젠가 내 몸을 나무 아래 심게 된다면 그(선조)와 나는 도란도란 이야기하리라. 슬픔도 분노도 아픔도 정신병도 해탈하리라!
겨울철 꽁꽁 언 빨래를 방으로 데리고 오면서 난 나를 생각했다. 지구상 가장 추운 마을, 오이야콘의 겉옷들이 얼어서 달고나처럼 부서지는 것을 보면서 난 오로지 나만을 생각했다. 외롭다는 말은 나약하고 한심하다는 말과 동의어가 되어 버린 어느 날, 부서지는 내 모습을 보면서 희망이란 단어가 가장 심한 거짓말이 되어버린 오늘 뒷감당도 못할 말들을 쏟아 놓는다.
나 너무 힘들다. 나 좀 불쌍히 봐달라, 선조가 외칠 때마다 신하들은 따개비처럼 달라붙어 한심하다는 듯이 단체로 소리친다. 상상만으로 미칠 것 같다. 다들 나만 쳐다보고 동시로 까마귀 떼처럼 합창을 한다면 제정신으로 살기 어렵다.
나 자신을 통해 타인을 이해해 보려는 겨울밤, 내 아픔이 유순해지고 너그러워진다. 난 아픔도 길들여야 하는 슬픈 조련사가 된다. 서로의 아픔과 상처에 기생하면서 한 세상 그렇게 살아간다. 신박하게 같지만 다르게 망가져가는 세상에서 내 노래는 무엇과 접신할까?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