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의 맛
강 정
돌과 흙의 맛을 본 자들은 스스로 우주의 구멍이 된다 뱀의 똥과 짐승의 이빨이 몸속에서 자라고 눈에선 물과 불이 뒤섞여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 자신의 억장이 무너지면 강물의 피리 소리가 피 맛을 내고 오래 되씹다 뱉어낸 말들이 다시 고요한 돌이 되어 물가에서 잠잔다 깊은 잠 속엔 오래도록 뜨여진 눈이 있고, 눈 속을 헤엄치는 사람들은 잃어버렸던 비늘들이 자신의 진짜 정신이었음을 깨닫곤 돌 위에 맨살을 문지른다 우주의 말이 탁본 되는 것이기도, 말을 잃은 생명이 스스로 문자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물살이 휩쓸고 간 도시는 그렇게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돌과 쇠와 나무의 원형 그대로 얹어 죽음도 삶도 온전히 믿지 말라며 하늘이 내린 철퇴를 축복이라 믿게 하고, 아이들은 유유히 뱃놀이하며 죽거나 미치러 간다 이곳에 독사와 승냥이와 전갈들을 풀라 야수의 무늬와 늑대의 이빨과 지네의 정교한 다리들로 새 도시를 단장하라 고속高速으로 찍어낸 문자들도 물과 돌의 교섭보다 치밀하지 못하니 망한 나라의 국기처럼 축축하게 늘어진 인간의 옷들이 뒷일 보다 들켜버린 국가원수의 치부와도 같다 불 지르러 갔다가 오줌 세례로 돌아온 아이의 꿈은 언제나 정직하다 물속에 물을 보태면 불이 된다는 걸 아는 수학 선생은 어디서 잠들었는가 이것은 그러니까, 지구가 완전히 형성되려다 만 찌그러진 별이라는 알리는 것 말고 별 뜻 없는 우주의 농간이다 돌과 흙의 맛을 본 자는 제 식탐에 스스로 잡아먹힌 신의 맹점이다
—월간 《현대시》 2023년 6월호 -------------------- 강정 / 1971년 부산 출생. 1992년 《현대시세계》로 등단. 시집 『처형극장』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 『키스』 『활』 『귀신』 『백치의 산수』 『그리고 나는 눈먼 자가 되었다』 『커다란 하양으로』 등. 문화비평집 『루트와 코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