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의 똥을 누다
- 박만진
변비로 고생을 해 본 사람들은
그 어려움을 잘 알고 있으리라
열려라, 참깨! 주문이라도 외우고 싶은
변비도 참 무서운 병이다
분명 뱃속 어디에서 똬리를 틀고 있을
마냥 점잔을 빼는 변便, 그래, 똥!
제발 덕분에 똬리를 풀고
용감무쌍한 대가리 번쩍 쳐들고
나와라, 나와, 비손하듯
끙끙거리는 짓도 정말 죽을 맛이다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에
산파의 도움을 받는 것처럼
변비 애꿎은 변비 또한
대변인大便人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 적 있다
대변인大便人과 대변인代辯人은
동격으로 서로 일맥상통하다
우왕좌왕 모양새는 아니지만
우향우 좌향좌 줄서기 하는 정치판에
말씀의 똥을 누는 대변인이 있다
똥의 말씀을 누는 대변인이 있다
국민의 머슴, 국민의 심부름꾼,
국민의 종이 되겠다고 하는 입후보자에게
절대로 표를 던져줘서는 안 된다
신바람 나는 정치 운운은
국민이 아니라 자기들 얘기인 것이다
참 벼르고 별러 끙끙거리던
말씀의 똥을, 똥의 말씀을 누니
초록빛 들녘이 바다처럼 드넓은 것을
너나없이 어눌한 말씀의 똥을
똥의 말씀을 눌 수가 없다면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더부룩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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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긴 낭송시입니다
옮기다보니 글씨 크기가 들쑥날쑥입니다만...
찬찬히 살펴보면 시의 똥을 누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나는 누구의, 어느 집단의 대변인이 되어 있는지 헤아려봅니다
갑자기 속이 부글거립니다
더부룩한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