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부친 한창석(2009년 작고)씨는 서울 공대 재학 도중 미국 코넬대로 유학을 떠났다가 7년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백방으로 찾았으나 아무도 그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10년 뒤 한대수가 17세 되던 해, FBI가 찾아낸 한창석씨는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하워드 한'이름으로 백인 여자와 결혼해 살고 있었다. 핵물리학자였던 그는 인쇄회사 사장이 돼있었다. 한대수의 가족이 찾아갔을 때 부친 한씨는 가족을 알아보긴 했으나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몰랐고 지난 10년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핵물리학자였던 아버지… 美 유학중 실종…
10 년후 찾고 보니… 한국말 다 잊어버려…
―실종됐던 세월에 대해 한마디도 들은 게 없습니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마지막 소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지만 영어로 '과거는 잊어버리세요. 미래를 생각합시다'라고 말했죠. 한번은 아버지와 취하도록 술을 마시다가 내가 물었죠. '아들로서 알 권리가 있다'고 말이죠. 그때 아버지는 '늦었다. 이제 집에 가자'고 말했어요."
―뭔가 추측하고 있는 건 있겠죠.
"아버지가 코넬대에서 촉망받는 핵물리학자였고 에드워드 텔러 박사(수소폭탄의 아버지)가 선발한 학생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추측이야 해볼 수 있죠. 핵무기 개발에 중요한 인력으로 일한 뒤 그 기술을 한국에 가져갈까 봐 브레인워싱(brainwashing· 특정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을 당해 자신의 과거를 전혀 모르는 상태가 됐다…. 그렇지 않고야 어떻게 대학 다니다가 유학 간 사람이 한국말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나요.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어머니를 무척 사랑했다고. 그런데 난데없이 백인 여자와 결혼해서 나타나다니, 뭐 다 추측일 수밖에 없지만…."
한대수의 할아버지 한영교는 1930년대에 학위를 따러 미국에 건너간 초기 유학생으로 호레이스 언더우드의 주도 아래 백낙준 박사와 함께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를 설립했다. 그리고 연희전문 신학대 초대학장과 대학원장을 지냈다. 아버지 한창석은 서울대 공대 출신이며 어머니는 부유한 사업가 집안의 맏딸이자 피아니스트였다. 한대수는 전통 명가에서 장손으로 태어난 셈이었다.
그의 조부 한영교 박사는 언더우드 박사와 함께 연세대를 설립한 사람으로, 이 대학의 초대 학장과 대학원장을 지냈다. 한대수가 생후 100일 됐을 때쯤 부친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또 실종됐기 때문에 그는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이 밖에도 한대수의 가계에는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뛰어난 업적을 쌓은 사람이 무척 많다. 그의 조부의 형제만 따져도 부산 최초의 양의(洋醫)이자 독립운동가 한흥교 선생, 부산 최초의 고아원인 '애린원' 원장으로 '고아의 아버지'란 칭송을 들은 한정교 선생이 있다. 한흥교 선생의 아들 한형석은 '독립군가'를 작곡한 항일예술가이며, 연세대 조한혜정(63) 교수 역시 한대수의 외육촌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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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랍기도 하고, 너무 드라마틱하기도 해서 도저히 하루로는 끝날 것 같지 않아서 오늘 다시 모셨습니다. 이틀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핵물리학을 공부하러 가셨다가 실종된 아버님을 만나신 이야기를 어제는 못 들었거든요.
제가 16살에 부산에서 경남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미국 FBI에서 아버지를 찾았다는 연락이 온 거예요.고모님이 미국에 사셨기 때문에 확인을 해달라고 했더니 우리가 할아버지와 함께 처음 살았던 뉴욕 맨해튼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인 롱아일랜드에 아버님이 살고 계셨더라고요.고모님이 가서 ‘오빠’ 하면서 부르니까 처음에는 어리둥절하시다가 고모님이 우시니까 그때서야 희미하게 기억을 하시더래요. 확인하고 연락을 하다가 온 가족이 다시 미국으로 갔고 그때부터 아버님과 함께 살았어요.
▶ 아버님은 왜 실종이 되신 건가요?
그것은 아직도 알 수가 없어요. 자의는 아닌 것 같고 제3자나 파워플레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50년대는 ‘뷰티풀 마인드’라는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브레인워싱(brain-washing), 세뇌 작업을 정부에서 많이 했거든요.그런데 본인이 직접 말을 안 하니까 증거물을 댈 수도 없고 우리가 정확하게 결론을 못 내리는 거예요.
▶ 기억상실증은 아니시죠?
기억상실 된 부분도 많아요. 그래서 제 앨범 중에도 ‘기억상실’이란 곡이 있습니다. (웃음)
▶ 가족은 다 알아보시던가요?
가족은 어느 정도 알아보시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까 명확하게 알아보셨고 언어는 완전히 잃어버리셨어요.
▶ 몇 살에 가셨는데요?
21살에 가셨는데 한국말을 전혀 못하세요. 그리고 말 뿐만이 아니라 태도 자체가 완전히 미국사람이고 행동, 사고.... 모든 것이 정말 미스터리예요.
▶ 몰라서 안 하시는 건지 알면서 안 하시는 건지 그것도 모르시는 건가요?
그것도 사실 잘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무조건 하시는 말씀이 ''''Passed is the past'', 과거는 과거라고 묻지 말라고 강력하게... 할머님이 제발 말해달라고, 너 때문에 온 가족이 고생했다고 수차례 물어도 ''''Passed is the past''... (웃음)
▶ 저는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한대수 씨 아버님이 예정대로 핵물리학을 공부하시고 한국에 오셨다면 우리나라가 미국을 제외한 최초의 핵보유국이 될 수도 있었겠구나...
48년, 50년 초반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죠. 미국 다음으로 보유국이 되는 건데 아마 CIA나 여러 정부기관에서 한국의 학위를 딴 물리학자가 자기 나라로 간다고 하니까 ''''너 어디로 가니? 다시 돌아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까... 상상은 하는데 증명할 길은 없는 거죠. 본인이 말씀도 안 하시고 지금 연세가 81세 신데 아직도 롱아일랜드에 살고 계세요.
▶ 처음 만났을 때 아버님은 어떤 일을 하고 계셨어요?
전혀 물리학과 상관이 없는 인쇄업을 대규모로 하고 있었어요.
▶ 돈을 어디서 버셨대요?
그것도 의문이에요. 인쇄윤전기 한 대에 백만 달러 넘게 하거든요. 그런 것을 여러 대 가지고 크게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 학생으로서 이해가 안 갔어요.
▶ 결혼도 하셨겠네요?
아이가 아홉 명이나 있는 이탈리아계 미국 여자와 결혼했는데.... (웃음)
▶ 정말 미스터리고 소설 같네요. 그분들 사이에 아이는 없으셨나요?
유일한 혈육은 저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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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나 나올 기묘한 이야기군요..
미국에서 사고로 죽은 이휘소에 대한 이야기는 완전 소설인데도 실화처럼 영화, 소설로도 만들어졌는데
한창석에 대한 이야기는 는 왜 안알려졌는지 의문임..
여자 골라줘도 잘 골라주지 애가 아홉명이나 딸린 여자나 골라주고...
요약하면,
일본 히로시마 폭격을 보고 한대수의 할아버지가 한국에서도 핵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고
한대수의 아버지를 미국 물리학 유학보냈더니 한국이 핵을 보유하길 원치않는 미국에 의해 인생 뒤바뀜.
어머니는 19살에 홀로되서 몇년 기다리다 재가했고, 7년만에 아버지를 찾았으나 완전 딴 사람됨.
첫댓글 혹시 이글에 나온 한대수라면? 가수 한대수는 아니죠?
이미 국내에도 흥신소나
심부름센터에서도 채권채무나
돈받고 보복용으로도 사용하고있습니다
이에 관련사진올립니다
추가사진도 올립니다!
엡 감사합니다 그런데 답변좀 부탁드립니다 여기에 나온 한대수씨는 가수 한대수님 아니시죠 동명이인이죠
가수 한대수맞습니다^^;;
근데 그것이 중요한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