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성산읍 성산리 171-26번지
사대 ; 대한민국
유형 ; 4·3 사건 현장
서청특별중대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잡아온 사람들을 수용했던 곳이다. 당시 이곳은 한재옥 소유의 절간고구마 창고였다. 이곳에는 교사들도 많이 끌려와 고문을 받았다. 1949년 1월 9일 성산서국민학교(現 동남초등학교)에서 등사판을 분실했는데 서청은 ‘폭도의 삐라 제작을 위해 빼돌렸다’는 혐의를 씌워 교장과 교사를 연행해 모진 고문을 가하다 총살했다. 당시 교장은 김영택(32세)이었으며 교사 오달송, 정맹존, 홍창수, 성산동국민학교(現 성산초등학교)의 교사 김두옥, 정양심씨 등 6명이 희생되었다. 이곳에 잡혀와 고문을 직접 겪은 분들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시흥리 강인옥(1928년생) ; “한 40평 됐어. 그 때 내가 들어갈 때는 105명이 있었지. 각처에서 잡아온 사람들이야. 고문하고 했지. 조서라고 하는 거는 살려줄 거는 머리 위에 동그라미(○)를 치고 살려두지 않을 거는 가위표(×)를 쳤어. 그러다 총살할 거면 오후 2시나 3시쯤 터진목에 데려가서 팡팡 쏘아 버렸지. 사람 하나 죽이는 게 문제라? 뭐, 이유가 없어. 여자들도 같이 가면 죽었어. 여자들, 서북청년한테 몸 희생당한 사람 많았지.”
∎이기선(이곳에 여러 차례 잡혀가 고문당한 분) ; “심지어 성산 사람 하난 죽이러 가면서도 걷지 못하니까 당가(들 것)에 들고 가 죽였단 말이야. 그렇게 취조를 해 놨으니 제 발로 걸을 수가 없었지. 서청이 성산포 감저공장에 한 백여명을 잡아다가 취조해서는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사람, 사진이나 그런 거 안 산 사람들을 따로 죽일 사람으로 구분했지.”(이기선씨는 지금도 고문후유증이 남아 있다.)
당시의 고구마창고는 허물어져 없어졌고 그 주변에 다른 신축건물이 들어섰다.(2020년 『제주4·3유적Ⅱ』)
《작성 22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