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과 신랑의 비유 / 마태복음 9장 12-15절 (89,474)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의 주류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이 해성처럼 갑자기 등장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자신들을 서슴없이 비판하자 바리새인들이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예수님을 무너뜨리려고 했습니다. 아마 예수님이 벼락스타처럼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그들의 꾐에 넘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그들을 넉넉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비판에 자신이 왜 죄인과 교제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12-13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교제하신 이유는 그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병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차별) 율법의 정신은 죄인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와 긍휼의 마음을 갖고 그들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13절입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바리새인들은 말씀에 무지했기 때문에 율법의 정신을 모르고 세리와 창기를 정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원의 예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좋은 의사가 필요치 않고, 대학병원도 필요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건강하데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병색이 깊을수록 좋은 병원, 좋은 명의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인간을 죄인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병들었다는 것입니다. 병들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병든 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잠언:창조자를 기억하라). 긍휼이 무엇이지 모릅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생명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교제를 하지 않습니다. 헌신과 충성의 중요성을 잘 모릅니다. 모르니까? 병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명의니까(치료자) 내게로 와서 치료를 받고 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4절입니다.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행동을 보니까? 자기들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 스승과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강조하는데 당신은 왜 금식을 강조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금식:신앙의 척도) 이런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진지함, 경건함, 자기 성찰이 떨어져 보인다는 말입니다. 깊이가 없어 보인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평범하면 깊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달콤한 것을 찾습니다.(한국교회“당뇨환자/아메리카노/성경공부,부흥회) 여러분, 세례요한의 제자들의 말이 틀립니까? 틀리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간과한 것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생각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지은 우리와 함께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금식보다, 경건함보다, 자기성찰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5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나는 지금 신랑으로 이 세상에 와 있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막 결혼을 해서 혼인잔치가 열렸는데 금식을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금식할 때가 오는데 금식할 때는 신랑을 빼앗길 때 하라고 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고 싶어 하십니다. 문은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곧 문이 닫힐 때가옵니다. 기회가 있을 때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