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ca-Cola의 역사-10】
오스트리아의 공산주의자들은 그들 나라에 있는 코카-콜라 공장이 즉시 원자폭탄 제조 공장으로 개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자들은 코카-콜라를 마신 어린이의 머리털이 하룻밤 사이에 하얗게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코카-콜라 회사는 그들의 도발에 대응하지 않고 조용히 해외에 새로운 코카-콜라 공장을 설립해 나갔다.
코카-콜라 회사의 사장은 코카-콜라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적대감은 이 음료가 ‘자본주의의 본질’이기 때문이라고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1959년에 당시 미국 부통령 리차드 닉슨은 미국 제품만을 전시하는 특별한 무역박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소련 수상이 흐루쇼프와 서로 비방하며 설전을 벌였지만, 펩시 회사의 홍보를 위해 닉슨과 흐루쇼프는 펩시의 홍보 부스 앞에서 함께 펩시를 마시며 사진을 찍었다.
그후 1965년에 코카-콜라 회사가 소련에서의 사업 검토를 시작했을 때 즉각적인 역풍을 맞았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민간회사의 설립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소련 정부가 사업 파트너가 되어야 했고, 모든 이익은 국가 재정으로 귀속되어야 했다. 당시 베트남 전쟁이 격화되고 있던 상황에서 코카-콜라가 미국의 적인 공산주의자를 사실상 원조해주는 것이라는 비난이 있자, 코카-콜라 회사는 재빨리 그 계획을 포기했다.
이것은 펩시에 길을 열어주었다.
1962년에 닉슨은 펩시의 자문 로펌에 합류했고, 펩시를 위한 해외 홍보대사직을 맡았다.
펩시는 코카-콜라처럼 공산주의자의 공격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공산권에서 사업을 벌이기에 훨씬 유리했다.
펩시는 1965년에 루마니아에 사업처를 설립했고, 1972년에는 닉슨의 도움으로 러시아에서 독점 라이센스를 받고 코카-콜라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코카-콜라는 1980년에 모스크바에서 개최 예정인 올림픽의 공식 청량음료로 선정되면서 소련에 발을 들여놓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소련 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이에 대한 반응으로 미국의 올림픽 참가를 거부했고 코카-콜라는 다시 한 번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소비에트 블록 국가들 내에서 사업을 시작하려 했던 코카-콜라의 실패는 오히려 약이 되었다.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고, 이어서 동유럽의 공산체제가 붕괴되었으며, 1991년에는 소련이 해체되었다.
자료의 출처
세계사를 바꾼 6가지 음료
톰 스텐디지 지음,캐피털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