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기도 161001. 영적 무지
민요세비
알지 못하는 것은 무지無知라고 합니다. 영적으로도 알지 못하는 것을 영적靈的무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리는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진리는 누구에게나 밀착해서 보면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이런 불편함을 수용하지 않으면 진리는 내 안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행동으로 옮기기 어렵게 됩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라는 말은 진리에 가까운 도덕율법입니다. 그러나 착하다는 말에는 손해 볼 수도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이익을 포기하거나 배려해야 할 때 희생을 강요하는 것들은 불편하고 회피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는 말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할 정도로 힘든 권유입니다. 하물며 지상과 하늘의 왕으로 떠 받들던 예수님이 죽어야 한다고 했을 때, 또 부활한다고 했을 때 믿기에는 마음이 매우 불편했을 것입니다
모르는 것도 죄가 될까요? 현행 법에서도 죄가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도덕적으로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인데 몰랐다고 하면 죄이겠지요. 교장 선생님이 전봇대에다 소피를 했다면 말입니다. 이 경우 법은 모든 이에게 평등합니다. 그런데 몰라서 짓는 죄도 있습니다. 법의 해석을 다르게 해서 나타난 결과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정상참작은 있겠지만 벌이나 보속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지요.
영적인 무지라고 한다면 진리를 외면하려는 마음입니다. 빛이 되거나 성화(聖化)되거나 착해 지려고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자기가 만든 기준인 자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을 믿거나 자신이 믿는 것을 진리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그런데 그 진리가 문제가 아니고 자신이 믿는 진리가 누구에게 향하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나를 죽이면 불편해지고 타인을 죽이면 해방감을 맛봅니다.
진리는 자신이 불편해 집니다. 그래서 회피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아는 것만으로 진리라고 믿거나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평가가 아닌 심판을 합니다. 그것이 영적무지입니다.
영적 무지도 죄가 됩니다. 우리는 진리를 알아 들었으나 그것을 회피한 것이기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