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번째의 행복
원제 : The Inn of the Sixth Happiness
DVD출시제 : 여섯번째 행복의 여관
1958년 미국영화
감독 : 마크 롭슨
출연 : 잉그리드 버그만, 쿨트 유르겐스, 로버트 도낫
마이클 데이비드, 로날드 스콰이어, 피터 총
의지가 강하고 의로운 서양의 백인이 오지 느낌이 나는 미개한(그렇게 영화에서는 보이는) 동양국가에 가서 선량한 일을 펼치는 감동적 이야기....... 는 종종 등장합니다. 아시아인 입장에서 조금은 씁쓸한 느낌이 듭니다. 결국 서양인은 우월하고 동양인은 그들의 도움을 감지덕지하게 받는다는 뭐 그런 주제니까요. 물론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다룬 부분들도 많지만 어찌되었거나 반대의 이야기(잘나고 의로운 아시아인이 서구의 낙후된 곳에 가서 감동적인 선행을 하는 이야기)는 딱히 떠오르지 않으니까요.
대표적인 영화로는 록 허드슨 주연의 '전송가' 라는 작품이 있고, 그레고리 펙 초기 작품인 '천국의 열쇠' 그리고 유명한 영화 '왕과 나'가 있고 이 '왕과 나' 이야기는 몇 차례나 영화화되었습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한 '여섯번째의 행복' 역시 그런 부류의 이야기입니다. 일종의 '천국의 열쇠'의 여성 버전이라고 볼 수 있지요. 픽션소설을 각색한 '천국의 열쇠'와 달리 '여섯번째의 행복'은 실존했던 한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 여성의 이야기도 우리나라에 책으로도 나올 정도로 유명한 '선교인물'이기도 합니다. 바로 글래디스 에일워드 라는 인물입니다.
글래디스 에일워드, 고급 교육도 받지 못했고 하녀 등을 전전한 아주 평험한 영국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마치 계시를 받은 듯이 중국 선교길에 올랐고, 그곳에서 아주 헌신적인 선교활동을 하면서 존경을 받았습니다. 1957년 '작은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이 여성의 이야기가 출판되었고 1년뒤인 1958년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으로 영화화되었습니다. 거의 '성녀'같은 인물인 셈인데 잉그리드 버그만은 1948년 '잔다르크'에 이어서 10여년만에 다시 거룩한 성녀같은 인물을 연기한 셈입니다.
글래디스 에일워드가 중국 선교활동을 시작한 것은 1932년인데 이 영화는 그 몇년동안의 이야기입니다. 1936년 중국국적 취득, 1937년 중일전쟁 등을 겪으면 중국에서 헌신적인 삶을 보내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1932년 영국여성 글래디스(잉그리드 버그만)는 중국 선교활동을 지원하지만 자격이 안된다는 이유로 거절당합니다. 그 대신 일자리를 주선받아 하녀로 일하게 되는데 그녀는 중국에 갈 여비만 벌면 스스로 중국으로 떠날 생각입니다. 마치 운명의 계시처럼 여기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글래디스가 일하는 집의 주인 프란치스경의 도움으로 중국행 열차를 타게 되고, 러시아 대륙까지 관통하는 긴 여정끝에 간신히 중국에 도착합니다. 프란치스경이 소개한 선교사 제니를 만나는데 제니는 나이가 많은 여성이었습니다. 제니는 '여섯번째의 행복'이라는 이름의 숙박업소를 만들어 운영하려고 하는데 외국인에게 호기심이 많은 양 이라는 중국남자가 돕고 있었습니다. 글래디스는 두 사람을 도와서 이곳에서 정착하게 되는데 어느날 사고가 일어나서 제니가 세상을 떠납니다. 정식 선교사도 아닌 글래디스는 결국 떠나게 될 운명이었지만 그냥 그곳에 계속 남겠다고 고집합니다. 마을을 감찰하러 온 린 남(쿨트 유르겐스)이라는 장교는 마을 관청의 현감인 싱창(로버트 도낫)에게 여성들에게 강요하는 전족을 금지하라는 당국의 정책을 지시합니다 전족이란 여자의 발을 강제로 천으로 압박하여 발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관습으로 여자는 발이 작아야 한다는 여성차별 관습입니다. 이로 인하여 한창 자랄 나이에 발에 무리한 압박이 되어 신체적 부작용도 생기지요. 전족감찰을 섣불리 하려는 사람이 없자 신창은 외국인안 글래디스를 불러 일을 지시하고 그로 인하여 글래디스는 마을에 계속 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글래디스가 중국에 우여곡절끝에 와서 어렵게 정착하는 과정까지는 그냥 평범한 영화입니다. 그런데 몇년 후 다시 마을에 나타난 린 남이 글래디스를 다시 만난 이후에는 훈훈한 감동과 헌신을 주는 이야기로 변화합니다. 몇년 동안 글래디스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되었습니다. 글래디스는 매우 헌신적으로 중국인들을 보살피며 살아갔고 그로 인하여 1936년에 중국국적을 얻을 수 있었고 중국인들에게 젠아이(사람들을 사랑하는 여자)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됩니다. 그녀에게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권유했던 린 남은 이렇게 성공적으로 정착한 글래디스를 보고 놀랍니다. 린 남은 독일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남자로 어머니의 나라 중국을 택한 인물입니다. 그는 글래디스의 헌신적인 삶에 감동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글래디스는 몇 명의 아이를 입양까지 하여 '여섯번째의 행복 여관'에서 키우고 있었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고 중국 북부지역까지 일본군이 점거해오는 상황이 되자 글래디스의 마을까지 위협이 됩니다. 이곳 저곳에서 피난민이 발생하고, 버려진 아이들까지 많아지고, 결국 글래디스는 100명의 아이들을 이끌고 일본군이 점거한 도로를 피해 높디 높은 산을 넘어 아이들을 트럭에 싣고 데려갈 수 있는 신안마을까지 긴 여정을 떠나게 됩니다. 추위, 굶주림, 험난한 지형이라는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100명의 아이들을 이끄는 글래디스는 온갖 역경을 딛고 산을 넘는 강행군을 시작합니다.
헌신적이고 불굴의 의지를 가진 영국여성 글래디스의 일대기입니다. 영국츨신 백인여성이면서 중국인들을 따뜻하게 사랑하고 전쟁이 터지자 여러 아이들을 돌보고, 그들을 데리고 험난한 피난길을 함께 하면서 헌신과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삶을 살아간 여인입니다. 후반부 30분은 매우 감동의 도가니로 영화를 끌고 갑니다.
스웨덴 출신의 미모의 여배우로 1940년대에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입성, 톱배우로 활동하던 잉그리드 버그만은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과 '스트롬볼리'라는 영화를 찍다가 사랑에 빠졌고, 둘 다 기혼자였기 때문에 이 스캔들은 유럽을 발칵 뒤집었고, 이후 잉그리드 버그만은 할리우드에서 추방당하기에 이릅니다. 로셀리니 감독과 결혼하여 유럽영화에만 출연하던 잉그리드 버그만은 1956년 추상(Anastasia) 이라는 영화로 다시 할리우드에 복귀할 수 있었고, 그 영화로 두번째 아카데미상을 받으며 다시 성공적인 미국복귀를 하게 됩니다. '여섯번째의 행복'은 이런 상황의 잉그리드 버그만에게 이미지 개선의 기회가 될 수 있는 헌신적인 성녀 같은 역할이었습니다.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상 드라마부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합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잉그리드 버그만은 어울리는 캐스팅은 아닙니다. 우선 실제 글래디스 에일워드에 비해서 나이가 너무 많았고(1932년에 글래디스는 30세였고, 중일전쟁 당시 37세입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의 나이는 43세였지요) 스웨덴 출신인데 영국여성을 연기한 것이지요. 출신지나 나이, 분위기를 고려하면 사실 데보라 커나 '스파이 전선'의 버지나아 맥켄나 같은 배우가 적역이었을테고, 데보라 커는 '왕과 나'에 이어서 아시아에 헌신하러 간 영국여성을 연기하는 것도 자연스러웠을텐데 의외로 잉그리드 버그만이 캐스팅된 것입니다. 물론 워낙 일급 배우라서 무난한 연기를 보였지만.
과거 서구영화들을 보면 비중있는 아시아인 역할을 백인배우가 하곤 했는데 여기서도 쿨트 유르겐스와 로버트 도낫이 그런 역할입니다 그나마 쿨트 유르겐스는 독일, 중국 혼혈이지만 영국배우인 로버트 도낫은 온전한 중국인을 연기합니다. 당시 53였던 로버트 도낫은 선천적으로 병약한 배우였고, 그로 인하여 영화출연 편수도 매우 적었는데 1932년부터 1958년까지 26년간 극장용 영화출연 횟수가 20편 남짓했습니다. 다작출연 시대를 감안하면 매우 적은 것이지요. 이 영화도 아픈 몸을 이끌고 혼신을 다해 촬영에 임했는데 촬영을 마치고 병원에 실려갔다고 하고 그 해 결국 사망하게 되어 이 영화가 유작이 되었습니다. 병약한 체질때문에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의 '레베카'의 주인공을 비롯해서 여러 배역을 놓쳤고, '여섯번째의 행복'에서 비중있는 중국관청 현감역이었는데 보기에도 마르고 병악한 모습이었습니다. 글래디스 에일워드는 실제 중국 장교와 잠깐 로맨스를 벌였다고 하지만 영화에서는 린 난 과의 로맨스의 비중을 많이 높였는데 드라마틱한 요소를 감안해서 그랬을 겁니다.
제목 '여섯번째의 행복'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글래디스가 운영하는 중국의 숙박업소의 이름을 딴 것이고 중국인은 5가지 복을 바라는데 그게 부, 건강, 장수, 덕 그리고 편안히 죽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5가지 복에 스스로 찾는 또 하나의 행복을 더해서 '여섯번째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지요. 글래디스는 스스로 삶을 개척하여 행복을 찾았으니 그런 의미가 담긴 제목이 되기도 했지요. 원래 실제 그 여관 간판은 '여덞번째의 행복'이었다고 합니다.
'챔피언' '원한의 도곡리철교' '페이톤 플레이스' 탈주특급' 등 여운있는 영화들을 제법 감독한 마크 롭슨이 연출했고, 중국처럼 보이는 배경은 대부분 영국 웨일즈 지방에서 촬영했습니다. 베테랑 배우들 3인의 연기경연이 볼만하고 서사적인 내용이 많은 감동을 주는 잘 만든 상업영화입니다.
ps1 : 우리나라에 출시된 DVD는 너무 오타 투성이인데 아무리 비라이선스 제품이라도 고가에 판매한다면 오타 교정정도는 좀 하는 성의가 있어야겠죠. 한두개도 아니도 온통 오타 투성이니. 그리고 오프닝 장면도 약간 잘렸고.
ps2 : 그레고리 펙 주연의 '천국의 열쇠'가 정말 많이 유사한 내용입니다. 시기도 비슷하고 맨땅에 가서 고생하는 이야기도 비슷하고
ps3 : 100명의 아이들을 이끌고 변변한 식량조차 없이 몇 주에 걸쳐서 산을 넘는 내용을 보니 '사운드 오브 뮤직'이 엔딩은 정말 별 일도 아니게 느껴지네요.(사운드 오브 뮤직이 엔딩이 아마도 이 영화를 보고 영감을 얻어서 그렇게 구성한 것 같습니다. 실제는 그렇게 탈출한게 아닌데, 완전 영화적 각색이지요)
[출처] 여섯번째의 행복(The Inn of the Sixth Happiness, 58년) 감동적 실화|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