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클래식
“촬영은 본능적 욕구”
1974년 존 알론조는 오슨 웰스 감독의 <위대한 앰버슨가>를 촬영했던 스탠리 코테즈로 인해 때아닌 횡재를 하게 된다. 이는 <차이나타운>의 촬영을 맡게 된 코테즈와 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견해 차이에서 기인한 것으로, 여배우 페이 더너웨이를 자연스럽고 어둡게 보이려 했던 폴란스키와 달리 코테즈는 디퓨전 없이는 촬영할 수 없다며 감독의 의견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결국, 해고된 코테즈의 자리를 대신할 역할이 알론조에게 주어졌다. 그는 디퓨전 없이 촬영하길 원하는 감독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 2.35 대 1의 비율을 갖춘 아나모픽 렌즈에 적격인 40mm렌즈로 촬영할 것을 제안함으로써 곧, 작업에 합류하게 된다.
일견 지루해 보이기도 하는 <차이나타운>은 복잡한 화면이나 잦은 시점의 변동없이 일관되게 주인공 자이츠(잭 니콜슨)의 행로를 따라간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이나 과잉은 절제되고 꼭 필요한 그만큼을 보여주는 알론조의 카메라는 암울하고 극적인 영화의 스토리를 차분하게 그려내려는 감독의 의도와 맞물려 그 안에 존재하는 인물을 한층 더 비참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40년대 필름누아르의 형식을 빌려왔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세련됨으로 무장한 이 영화에 기여한 공로로 알론조는 이듬해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라슬로 코박스, 윌리엄 프레이커, 빌모스 지그몬드와 같은 쟁쟁한 촬영감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주류감독의 대열에 들어선다.
영화가 유일한 오락거리였던 텍사스 댈러스 출신의 존 알론조는 카메라맨이 되는 비결로 집요함을 드는데, 이는 그가 걸어온 길과도 멀지 않다. 노동자의 아들로 대학진학이 어려웠던 그는 댈러스의 WFAA-TV에서 직업을 구한다. “일자리를 줄 때까지 찾아갔다. 처음엔 바닥청소를 했지만, 곧 비디오카메라의 오퍼레이터가 되었다.” 스스로 자신을 끈질기다고 여길 정도로 매달린 것이다. 이후 자신이 개발한 캐릭터를 어린이용 TV쇼로 개발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로 가는데, 직접 인형의 목소리를 연기했던 그는 이 경험을 살려 연기 생활을 하게 된다. 이때 그는 동료배우들의 사진을 찍어주며 부수입을 벌고, 시간을 쪼개 촬영을 배움으로써 나중에 촬영으로 전향하게 된다. 주로 저예산 광고나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던 그는 자신의 예술적 기질을 표출하기에 앞서 촬영에 필요한 기본적인 기술을 익히는 데 주력하였다. 당시의 경험들은 자연스러운 빛에 충실한 그만의 시각을 연마시켜주었으며, 신속함을 요하는 다큐멘터리의 특성은 빠른 촬영 능력을 길러주었다. 극영화로는 첫 작품인 로저 코먼 감독의 <기관총 엄마>(1970)에서도 이러한 특징은 십분 발휘되었으며, 90% 이상을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한 마틴 리트 감독의 <노마 레이>(1979) 또한 예상보다 빨리 작업을 전개함으로써 경제성에 기여를 했다. 빠른 촬영과 필요한 만큼의 예산만 요구하는 그의 방식이 제작자나 감독에게 신뢰감을 심어준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차이나타운>의 성공은 이후 스필버그 감독의 <미지와의 조우>(1977) 등 할리우드의 굵직한 작품들의 제의로 이어졌으며, 왕성한 실험정신이 바탕이 되어 <블루썬더>(1983)에서는 하이 스피드 카메라와 고감도 필름을 사용하여 적은 조명으로도 헬리콥터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 신을 살려내는 대담한 도전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TV를 통해 연출가로도 두각을 나타내던 알론조는 지난해 67살로 타계하였다. 촬영감독으로 지내온 30년간 그는 유머, 공상과학, 드라마, 액션 등 60여편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으며, ‘Photography by 존 알론조’라는 크레디트는 감독이 곧 그의 예술적 기여에 수혜받았음을 보증해준다. 물론, 그는 그러한 치사에 동요하지 않았으며 촬영에 대한 정열과 성의를 끝까지 잃지 않았다.
“촬영을 한다는 것은 미술이나, 음악, 본성에 대한 끊이지 않는 욕구와도 같다. 결코 만족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며, 협력을 통해서만 작품이 이루어짐을 알아야 한다.” 이에 알론조는 많은 감독들이 촬영의 기술을 갖춘 연륜이 있는 촬영감독을 필요로 하고 있고 이로 인한 힘을 행사하여, 자칫 촬영감독이 전권을 쥐게 될까 우려를 표한다. 정작 필요한 것은 자신만의 자존심이 아닌 서로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협력적인 관계라는 것을 스스로 작업한 감독들과 함께 겪어왔기 때문이다. 또한 기술에 예술이 제압당해서는 안 되며, 먼저 기술의 완전한 이해만이 이러한 미적인 추구를 위해 집중할 수 있는 자유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들려준다. 이화정/ 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John Alonzo 필모그래피
<프라임 기그>(The Prime Gig, 2000) 그레고리 모셔 감독
<다시 사랑할까요>(Return To Me, 2000) 보니 헌트 감독
<페일 세이프>(Fail Safe, 2000)(TV)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
<댄싱 카우>(The Dancing Cow, 1999) 테즈 골드스타인 감독
<랜스키>(Lansky, 1999)(TV) 존 맥노튼 감독
<킬러가 보낸 편지>(Letters From A Killer, 1998) 데이비드 카손 감독
<그래스 하프>(The Grass Harp, 1995) 찰스 매튜 감독
<스타 트렉 7-넥서스 트렉>(Star Trek: Generations, 1994) 데이비드 카손 감독
<클리포드>(Clifford, 1994) 폴 플래허티 감독
<유성맞은 슈퍼맨>(The Meteor Man, 1993) 로버트 타운젠드 감독
<킴 베이싱어의 쿨 월드>(Cool World, 1992) 랠프 백시 감독
<결혼 만들기>(HouseSitter, 1992) 프랭크 오즈 감독
<네이비 씰>(Navy SEALS, 1990) 루이스 티그 감독
<가디안>(The Guardian, 1990)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
<유혹은 밤 그림자처럼>(Internal Affairs, 1990) 마이크 피기스 감독
<철목련>(Steel Magnolias, 1989) 허버트 로스 감독
<물적 증거>(Physical Evidence, 1988) 마이클 크라이튼 감독
<환상의 커플>(Overboard, 1987) 게리 마셜 감독
(Real Men, 1987) 데니스 팰드만 감독
<죠죠댄서>(Jo Jo Dancer, Your Life Is Calling, 1986) 리처드 프리어 감독
<톰 행크스의 광고 대전략>(Nothing In Common, 1986) 게리 마셜 감독
<아웃 오브 컨트롤>(Out of Control, 1985) 앨런 홀즈만 감독
<지능범죄 001>(Runaway, 1984) 마이클 크라이튼 감독
<테러 인 더 에일>(Terror in the Aisles, 1984) 앤드루 쿠엔 감독
<크로스 크리크>(Cross Creek, 1983) 마틴 리트 감독
<스카페이스>(Scarface, 1983)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블루 썬더>(Blue Thunder, 1983) 존 바담 감독
<블랙 로드>(Back Roads, 1981) 마틴 리트 감독
<사랑의 검객 조로>(Zorro: The Gay Blade, 1981) 피터 메닥 감독
<벨 스타>(Belle Starr, 1980)(TV) 존 알론조 감독
<톰 혼>(Tom Horn, 1979) 윌리엄 위어드 감독
<노마 레이>(Norma Rae, 1979) 마틴 리트 감독
<챔피온>(Champions: A Love Story, 1979)(TV) 존 알론조 감독
<케이시의 그림자>(Casey's Shadow, 1978) 마틴 리트 감독
<칩 디텍티브>(The Cheap Detective, 1978) 로버트 무어 감독
<비욘드 리즌>(Beyond Reason, 1977) 텔리 사발라스 감독
<위치 웨이 이즈 업?>(Which Way Is Up?, 1977) 마이클 슐츠 감독
<블랙 썬데이>(Black Sunday, 1977)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1977)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아 윌, 아 윌… 포 나우>(I Will, I Will… for Now, 1976) 노먼 파나마 감독
<꼴찌 야구단>(The Bad News Bears, 1976) 마이클 리치 감독
<포천>(The Fortune, 1975) 마이크 니콜스 감독
<페어웰 마이 러브리>(Farewell, My Lovely, 1975) 딕 리처드 감독
<원스 이즈 낫 인어프>(Jacqueline Susann’s Once Is Not Enough, 1975) 가이 그린 감독
<차이나타운>(Chinatown, 1974) 로만 폴란스키 감독
<콘랙>(Conrack, 1974) 마틴 리트 감독
<히트>(Hit!, 1973) 시드니 J. 퓨리 감독
<왓츠텍스>(Wattstax, 1973) 멜 스튜어트 감독
<불청객 소동>(Guess Who's Sleeping In My Bed, 1973)(TV)
<벌거벗은 원숭이>(The Naked Ape, 1973) 도널드 드라이버 감독
<너의 토끼를 알게 되다>(Get To Know Your Rabbit, 1972)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레이디 싱 더 블루스>(Lady Sings the Blues, 1972) 시드니 J. 퓨리 감독
<페트 앤 틸리에>(Pete 'n' Tillie, 1972) 마틴 리트 감독
<사운더>(Sounder, 1972) 마틴 리트 감독
<해롤드와 모드>(Harold And Maude, 1971) 할 애쉬비 감독
<배니싱 포인트>(Vanishing Point, 1971) 리처드 사라피안 감독
<기관총 엄마>(Bloody Mama, 1970) 로저 코먼 감독
<내쇼널 지오그래픽 스페셜>(National Geographic Specials, 1964)(TV시리즈) 데니스 아차렐라 감독 외
자료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