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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사원 42명 징계위 회부
김재철 사장, 무차별 광폭 징계 돌입
일반 조합원, 8개 직능단체장, 보직부장까지...
- 김재철 사장이 세운 또 하나의 신기록
【8개 직능단체 대표】 8명 【성명서 발표한 TV제작본부 보직부장】 12명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린 조합원】 3명 【첫 사번 성명 주도 비조합원】 1명 【조합 집행부(MBC업무직노조 포함)】 18명 ** 징계 대상에 오른 MBC 사원 총 42명 |
광폭(廣幅)징계인가, 광폭(狂暴)징계 인가. 어떻게든 MBC는 살리고 보겠다는 결단으로 총파업을 중단하고 현업에 복귀한 조합원들과 MBC 구성원들의 충정에 대한 김재철 사장의 답은 광폭 징계였다. 42명, 이름만 읽기에도 숨이 가쁠 정도로 많은 사원들이다.
창사 이래 이렇게 많은 사원들이 징계위에 회부된 적은 없었다. 지난 1992년, MBC 역사상 가장 길었던 52일 파업때도 조합 집행부 15명이 징계 대상에 올랐고, 9명만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김재철 사장은 84사번에서 04사번까지, 조합 지도부는 물론 일반 조합원과 비조합원, 보직부장까지 사상 처음으로 징계 대상에 포함시키는 또 하나의 신기록을 일궜다. MBC 사원 1028명의 성명을 보며 조금이라도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길 기대했던 MBC 구성원들의 마지막 바람을 다시 한 번 걷어 찬 것이다.
“입 열면 다친다”...무차별 징계로 입 막기
파업을 주도한 조합 집행부는 논외로 치자. MBC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뜻을 담은 성명을 발표한 8개 직능단체 대표들과, 어떻게든 사장을 설득하고 노-사를 중재해, 회사를 살려보고자 한 12명의 보직 부장들, 사원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시를 위해 열린 공간인 인트라넷 자유 게시판에 글을 올린 일반 조합원까지, 무차별적으로 징계 대상에 포함시키리라곤 조합으로서도 상상하지 못했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의 대표적 공영방송 MBC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 질수 있을까. 언론의 자유를 목숨처럼 여겨야 할 공영방송의 수장이란 사람이, 어떻게 이처럼 야비한 방식으로 사내 언론의 자유조차 무참히 짓밟을 수 있을까. MBC 구성원들에게 참기 힘든 모욕감만 안겨준 자신의 입에는 그토록 관대한 사람이, 어떻게 남의 입에는 그렇게 무자비할 수 있을까. 울분에 찬 한 조합원의 말처럼, 2010년 공영방송 MBC에서 ‘연산군 일기’라도 쓰겠다는 것인지, 참담할 뿐이다.
누가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는가
징계 명분도 치졸하기 그지없다. 성명서와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로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이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있을까? ‘정권의 말 잘 듣는 청소부로 MBC 사장에 임명돼, 큰 집에 불려가 조인트를 까이고 좌빨을 척결’한 사람이 누구인가? 그런 말을 지껄인 김우룡을 고소하겠다는 약속마저 파기해 국민들을 농락하고 공영방송 MBC의 신뢰도를 무참히 갉아먹은 사람이 누구인가? 유력 언론사 기자들을 빠짐없이 불러놓고 기자회견이란 걸 열어서 ‘영등포서 김 형사’에게 전화해 민원을 처리했던 전력을 자랑한 사람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징계 대상에 오른 42명 그 누구도 이 만큼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키진 않았다. 최소한 이런 사람부터 징계해야 사규에 맞지 않을까, 그래야 ‘회사 명예 실추’라는 말의 명예가 지켜지지 않을까.
MBC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자랑스럽게 여겨 온 우리들은 바로 그런 사장 때문에 MBC의 명예가 한 없이 곤두박질치는 걸 참다못해 입을 열었고, 언론인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이라도 지키고 싶어 일어섰을 뿐이다. 도대체 누가 MBC의 명예에 먹칠을 했단 말인가. 김재철 사장은 언제까지 자신의 명예와 MBC의 명예를 동일시하는 망상에 빠져 있을 셈인가.
황희만 부사장이 우리를 단죄하다니...
설상가상으로 42명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인사위원회(5월 25,26일 예정)의 위원장은 어처구니없게도 황희만 부사장이다. 정권과 김우룡의 낙하산으로 MBC에 들어와 회사를 두 번이나 쑥대밭으로 만들고 파업을 유도한 장본인이 회사를 살리겠다고 일어선 사람들을 심판한다니... 털끝만큼이라도 양심과 상식이 있다면 적어도 그는 스스로 위원장 자리를 내 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석 달 동안 우리가 두 눈으로 확인한 것처럼 저들에겐 이 정도의 양심을 기대하는 것조차 사치일 뿐이다.
420명을 징계해도 MBC는 바뀌지 않는다
김재철 사장이 왜 광폭 징계에 들어갔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미 바닥난 자신의 권위를 다시 세워보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뜻에 거스르면 이렇게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무엇보다 ‘큰 집’에 MBC를 이렇게 요리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권위라는 건 결코 징계로 세워지는 게 아니다. 더욱이 MBC는 42명이 아니라 420명을 징계한다 해도 결코 정권의 놀이터가 될 수 있는 언론사가 아니다.
오히려 김재철 사장의 광폭 징계가 보여주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의 바닥난 권위와 신뢰, 불타오르는 MBC 구성원들의 분노일 뿐이다. 얼마나 급하면 42명을 징계해서라도 입을 틀어막으려 하겠는가. 84사번에서 04사번에 이르는, 일반 조합원에서 보직부장에 이르는 그의 광폭 징계는 자신을 향하고 있는 MBC 구성원들의 분노와 불신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보여주는 하나의 편린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칼로 입을 막은 자들의 최후를 똑똑히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조만간 우리 앞에 다시 한 번 현실이 돼 나타날 것이다.
..........이상 MBC비상대책위 특보 21호(2010년 5월 19일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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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익명)의 전면전에서 기명(記名)의 국지전으로!!
지난 4월 5일, 자랑스러운 우리의 일터 MBC를 지키기 위해 총파업 투쟁의 깃발을 높이 든 우리는 39일 동안 온 몸을 던져 싸웠다. MBC를 정권에 상납하려는 김재철 사장을 퇴진시키고 현 정권의 MBC 장악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가 됐다. 정년퇴직을 앞둔 고참 사원에서 갓 입사한 새내기까지, MBC 구성원 1028명은 이름을 걸고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영방송 MBC 사수’라는 불같은 의지를 성명에 담아 발표했다.
그러나 김재철 사장은 ‘더 이상 선배로 인정할 수 없다’는 후배들의 외침에 부끄러움조차 못 느끼는 뻔뻔함으로 버텼고, 현 정권은 ‘MBC가 망하면 금상첨화’라는 무언의 협박으로 MBC만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국민들의 절박한 요구를 보란 듯이 걷어찼다. 우리는 치를 떨며 울분을 삭였지만,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저들을 몰아낼 수는 없었다.
결국 우리는 5월 14일 39일 동안의 총파업 투쟁을 일시 중단하고, 우리의 일터로 돌아왔다. 저들에게 우리의 일터를 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키기 위해서 돌아왔다. 치미는 분노를 가슴에 담고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공정방송’사수라는 또 하나의 싸움을 이어가기 위해 돌아왔다.
39일간의 총파업이 익명(匿名)의 전면전이었다면, 공정방송 강화를 위한 우리의 현장 투쟁은 기명(記名)의 국지전이 될 것이다. 그 만큼 한 명 한 명, 깨어있는 우리의 더 많은 결의를 요구하는 싸움이다. 이것이야말로 저들이 진정 두려워하는 질긴 싸움이자, 다시는 물러섬이 없을 끝장 투쟁을 준비하는 전초전이 될 것이다.
5대 특위와 김재철 사장 불인정, 재파업 결의
조합은 현장 투쟁으로 총파업 정신을 이어가고, 향후 예상되는 재파업을 준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활동을 조직화하기로 결정했다. 또, 구체적인 투쟁 내용은 부문별 조합원 간담회 등을 통해 계속 보강해 나기기로 했다.
공정방송 강화를 위한 5개 특별위원회 구성
1) 공정보도 강화를 위한 특별위원회
나준영 보도부문 부위원장(위원장), 양효경 보도 민실위 간사, 민실 위원
▷ 보도 민실위 대폭 강화, 민실위 간사 선배 기수까지 대거 포함
▷ 6.2 지방선거 공정선거보도 감시단 구축
▷ 공정보도를 훼손하는 뉴스 편집 및 내용에 대한 체계적 모니터와 재발방지 시스템 구축, 민실위 보고서 매주 공표, 긴급 현안 발생시 긴급 보고서 발표
▷ 공정방송 침해사례 발생시 보도국 차원에서 즉각 대응, 공방협 활성화, 뉴스의 권력 감시 기능에 충실한 의제를 미리 제시하는 사전적 대응 강화
2) <PD수첩> 사수 및 프로그램 공영성 강화 특별위원회
신정수 편제부문 부위원장(위원장) 안준식 편제 민실위 간사, 민실 위원
▷ 민실 위원 신규 임명 등 편제 민실위 대폭 확대, 강화
▷ <PD수첩> 폐지는 물론 약화를 노린 진상조사위, 부당한 인사조치 등 저지
▷ 시사 및 비판적 프로그램들에 대한 부당한 간섭 저지
▷ 정권 홍보용 프로그램 및 캠페인 거부
3) 노조탄압 분쇄 특별위원회
이정상 경영부문 부위원장(위원장), 이세훈 교섭쟁의국장, 각 지부 교섭쟁의부장
▷ 사측의 노조 집행부 형사고소와 인사 징계 등 노조탄압 파괴 책동 분쇄
▷ 공정방송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인 단체협약 사수
▷ 서울지부 규약 개정(조합원 범위 확대), 업무직 노조 통합
4) 지역 MBC 사수를 위한 특별위원회
홍유선 부산지부장(위원장), 심병철 대구지부장, 최상석 포항지부장, 이재우 대전지부장, 이학준 정책국장
▷ 마산, 진주 MBC 등 지역 MBC 강제 통폐합 저지
▷ 미디어렙 입법 대응
▷ 지역 MBC 사장 선임 관련 제도 개선
5) 방문진 개혁 및 MBC 장악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신용우 사무처장(위원장), 오준혁 대외협력국장, 이학준 정책국장, 이해승 조직국장
▷ 구조조정 칼부림이 예상되는 김재우 신임 방문진 이사장의 행보에 선제적으로 대응
▷ 현행 방문진 체제 문제점 정밀 분석 및 대안 마련
▷ 김우룡 고소 및 MBC 장악 진상규명 투쟁
▷ 방문진 개혁, MBC 장악 진상조사를 위한 정치권, 학계 연대 틀 구성
김재철 사장, 황희만 부사장 불인정 투쟁
모든 조합원들은 김재철 사장과 황희만 부사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결의에 따라 다음과 같은 행동 지침에 따른다.
1) 공정방송을 훼손하는 사장과 부사장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다.
2) 사장과 부사장 동정 취재를 거부한다.
3) 사장, 부사장 주재 행사, 회식, 집단 상견례 등을 거부한다.
4) 공정방송 사수 의지를 담은 스티커 부착, 매주 수요일 파업 티셔츠 입기 등
재파업 결의 - 시점은 비대위에 일임
향후 김재철 사장이 PD수첩 폐지나 단체협약 파기, 노조 집행부 중징계 조치 등 공정방송을 훼손하고 조합을 본격적으로 파괴하기 위해 나설 경우 모든 조합원은 비대위의 지침에 따라 일시 중단한 파업 투쟁을 전면 재개한다.
> > 3박 4일 총회투쟁이 남긴 것 1
■ 위원장의 편지
불처럼 타고, 물처럼 흘러갑시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결정을 한다는 것은, 불가피하게 평가와 책임이 따르는 일입니다. 비난도 따르는 일입니다.
지난 10일 노동조합 비상대책위원회는 ‘총파업투쟁을 현장투쟁으로 전환’하는 결정을 했고, 각 지부별로 격정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총파업투쟁 지속론’이나 ‘현장투쟁 전환론’이나 다 ‘선택할 수 있는 결정’이라고 봅니다. 어느 경우이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회한은 남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이번 결정이 ‘총파업 지속이 올바르다’라는 생각을 하는 동지들에게는 아쉬움과 상처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 또한 그 점이 마음 아픕니다.
그러나 조합원 동지 여러분.
저희가 분열한 것입니까, 이른바 ‘勞-勞갈등’의 나흘을 보냈던 것입니까? 아니라고 저는 믿습니다. 지난 40여일의 투쟁이 우리 모두를 하나 되게 했듯이, 총회(總會) 또한 하나되는 투쟁이었습니다. ‘공영방송MBC 사수’를 위한 방법론의 차이였을 뿐, 그 순수성과 열정은 매 한가지였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전개될 현장투쟁에서나, 또 기나긴 ‘MBC사수 투쟁’의 도정(道程)에서 변치 않는 에너지로 작동하리라 믿습니다. 역시 MBC노동조합은 대단하다, 그러한 외부의 평가는 결코 입에 발린 말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하셨으면 합니다.
저를 비롯한 8기 상임집행부가 사퇴했었습니다.
결과적인 다수결원리로 보면 비록 소수일 수 있다 하더라도 총파업지속을 요구하는 동지들을 결코 ‘힘의 논리’로 밀어붙일 수 없었습니다. 설득하고 싶었고, 상처없이 함께 가는 길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미래의 주인이니, 최대한 존중하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리더십을 조합원들이 스스로 구축하고, 다시 모두가 어깨 걸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슴 뿌듯하게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집행부에 대한 재신임은 참 아쉬운 것이었고, 받아들이기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지부 마지막 조합원 총회에서 말씀드렸듯, 조합을 책임진 자들에게 진퇴(進退)의 자유는 기실(其實) 없습니다. 다만 조합원 대중의 요구에 복무(服務)할 뿐인 것입니다. 그것이 저희 집행부가 결정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던 유일(唯一)한 이유입니다.
의사결정의 시기(時期)와 절차(節次)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조합이 대의제(代議制)를 통해 대부분의 의사결정을 하면서도, 조합원 대중이 그 위임된 권한의 행사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하느냐 여부가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주권자이면서 동시에 피지배자일 수밖에 없는 현대 민주주의의 딜레마와 같은 문제입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조합원 대중 모두가 ‘모든 과정에 참여하고 모두 책임지는’ 직접민주제적인 방식이 가능한 것인가, 그리고 그럴 의지들을 실천할 의지들을 각인(各人)은 갖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MBC 노동조합은 ‘희생(犧牲)과 헌신(獻身) 그리고 무한신뢰(無限信賴)’의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해 올 수 밖에 없었는가,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이상(理想)과 현실(現實)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의 어려운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은 민주주의의 원리를 실천해야 하는 일상조직(日常組織)이면서도, 동시에 비상한 투쟁을 전개해야만 하는 전투조직(戰鬪組織)이라는 측면에서, 조만간 전국대의원대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이 문제를 조직적으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이들 아시겠지만, 이 시(詩)가 여러분들의 마음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함께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녁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라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다시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全文)
현장으로 돌아간 조합원 동지여러분.
물길은 여러 갈래여도 결국 하나로 모입니다. 방법은 달라도 우리의 목표는 하나입니다. 공영방송 MBC를 지켜내는데 우리는 하나입니다. 지금 당신이 일하는 순간, 당신은 투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의 시간은 또 옵니다. 힘을 냅시다. 감사합니다.
- 이근행 올림
> > 3박 4일 총회투쟁이 남긴 것 2
‘진압’과‘투표’... 그리고‘역사의 죄인’
걱정했습니다. ‘총파업 일시 중단과 현장 투쟁’으로 싸움의 방식을 급선회하기로 결정했을 때, 두 가지를 걱정했습니다. 조합원들이 열패감에 빠져 비대위의 방침을 ‘침묵으로’ 승인하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또 하나, 비대위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하면 어쩌나, 무엇보다 결정 과정 자체가 ‘반민주적’이라고 비판하지 않을까, 우리가 조합원을 그저 ‘지도의 대상’, ‘동원의 대상’으로만 보는 낡은 패러다임에 빠져 있다고 반발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해지려 합니다. 두 번째 걱정이 ‘크지는’ 않았습니다. 오만하게도 소수의 조합원들이 적당히 반발하고, 적당히 넘어갈 것으로 선험적으로 판단했습니다.
걱정한 미래, 그 이상의 현실
당황했습니다. 현실은 우리의 상상을 언제나 초월한다는 진리를 다시금 곱씹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건 아닌데, 우리의 판단과 결정이 그렇게 잘못 됐나’ 반문했습니다. 사방에서 날라 와 가슴에 꽂히는 무수한 ‘말 표창’을 맞다보니 상처가 패이기 시작했습니다.
“말장난이다... 파렴치하다... 김재철과 무엇이 다르냐... 파쇼다...” 상처가 깊어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조합 집행부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 돌아와 흥분하고 있는 자신을 봤습니다. 격한 감정을 못 이겨 조합원들을 향해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봤습니다.
‘진압을 하라’.....‘. 투표를 하라’
어쨌든 상황을 ‘정리’하는 건 우리의 몫이었습니다. 화를 낸다고 정리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정리의 방식을 놓고 상반된 두 가지 조언을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좀 거친 용어를 쓴다면 ‘진압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의 전제들이 깔려 있었습니다. “이런 판단엔 언제나 거센 반발이 있다. 다수의 반발이 아니다. 후배들이 조합의 운영원리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이번에 투표를 하면 앞으로도 비대위의 결정에 대해 매번 총회를 열고 투표하자고 할 것이다. 이는 집행부의 헌신과 조합원들의 무한 신뢰로 만들어 온 MBC 노조를 뿌리부터 허무는 것이다.” 또 다른 조언, ‘투표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제는 이랬습니다. “소수라고 무시하기엔 적지 않은, 정말 싸움에서 이기고 싶어 하는 진정성에서 비롯된 반발이다. 후배들을 버리고 갈 셈이냐. 이견이 있을 때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다수결뿐이다.”
“우리가 물러나는 게 답이 아닐까”
‘이에 대한 결정이야 말로 이번 싸움의 미래뿐만이 아니라 조합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겠구나’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결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진압이나 투표가 아닌 ‘설득’과 ‘동의’로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진압’없이 누르길 원했고, ‘투표’없이 승복하길 원했습니다. 그렇게 ‘정답 없는’ 고민을 하던 중 저희들은 ‘지금의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는 우리가 과연 다음 싸움을 이끌 수 있을까?’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맞닥뜨렸습니다. ‘결국 우리가 물러나고, 모든 걸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이 새로운 투쟁을 이끌어야 하지않나’ 고민했습니다.‘ 그럴 수 있겠구나, 어쩌면 우리야말로 구시대의 막내일지 모른다. 우리가 물러나면 조합도 변하고 조합원도 변해서 새로운 출구가 나올 것이다.’ 그래서 던지자고 했습니다.
“역사의 죄인이 되고 싶은 것이냐”
그런데도 상황은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투표를 원하는 조합원들의 상당수는 집행부의 판단은 문제 삼았지만 집행부에 대한 신뢰는 여전하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한 편에서는 그런 조합원들을 향해 ‘해도 해도 너무한다. 목을 조르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를 숨 막히게 만든 건‘집행부 총사퇴로 조합이 위기에 빠졌다. 역사의 죄인이 되고 싶은 것이냐’라는 무서운 암시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조합원들은 파업 지속 여부를 놓고 투표를 했습니다. 총사퇴로 집행부가 없는 상태에서 투표로 결정하는, 결과적으로 이견이 해소되지 못한 상태에서 가장 ‘현실적인’ 타협책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리고 조합원들은 우리들에게 사퇴의사를 번복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그러나 기우에 그친다 해도 ‘역사의 죄인’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몸은 여전히 아주 건강하다’
며칠이 흘렀습니다. 깊게 패인 상처도 많이 아물었고, 우리가 무엇을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풀지 못한, 어쩌면 풀지 못하는 게 당연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섣불리 ‘정답’이란 걸 내 놓고 강요해선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문뜩 이런 말이 떠올랐습니다. 상처를 아물게 하는 최고의‘명약’은 역시 시간이다. 물론 한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몸’이 건강하지 않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상처는 덧나기만 하겠죠. 자연스럽게 이런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우리 조합의 몸은 여전히 아주 건강하다.’
이것도 ‘말장난 아닐까, 파렴치한 자기만족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봤습니다. 적어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퇴를 결심하면서‘다시는 조합원들 앞에 서서 얘기할 자신이 없다. 그런 사람들이 무슨 조합 집행부를 하겠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휴대 전화로 무수히 쏟아져 들어오는 조합원들의 문자 메시지를 보면서 며칠 사이에 생각이 또 바뀌었습니다. “다시 한번 믿고 맡기신다면 ‘쌩까고’ 그냥 하겠습니다.”
> > 3박 4일 총회투쟁이 남긴 것 3
우려할 일도 비관할 일도 아니다
한재희 편제부문 97사번
10년쯤 지난 일로 기억된다. 당시 노조 집행부가, MBC 노조에 관한 어떤 기사를 문제삼아 <미디어오늘>지를 배부대에서 모두 걷어 간 일이 있었다. 보고 판단할 기회까지 빼앗아 갔다는 사실에 분개하여 인트라넷에 비판 글을 올렸다. 동기 2명이 잇달아 동조하는 글을 올렸다. ‘동지’, ‘투쟁’ 같은 다소 민망한 표현을 써가며. 10년전, 내가 입사 4년차이던 때이다.
파업 일시 중단. 이런 결정을 비대위가 먼저 내리고 총회에서 추인 받는 과정은 비민주적인가? 집행부가 이 결정을 자신들의 진퇴와 결부시키는 행위는 비합리적인가? 5주간의 파업투쟁을 훌륭하게 이어 오던 우리는, 갑자기 등장한 이 무거운 질문들 앞에서 혼란스러워 했다. 이른바 나흘간의 총회 투쟁, 정제되지 않은 무시무시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고, 정신이 없었다. 잠을 이루지 못했고, 많이 마셨고, 많이 아팠다. 다시 8기 집행부가 걸어 나오던 마지막 총회의 순간, 몇몇은 차마 그들을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숙였고, 몇몇은 아예 자리를 피했으며, 참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 자리에서, 10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어쩌면, 필연이겠구나, 생각했다.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경계는 현실 속에서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가. 나는 집행부의 결단 과정이 반민주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 생각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것을 반민주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미있는’ 규모로 존재했다.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점차 세대간의 논쟁으로 뚜렷이 발전해 갔다. 예상하지 못했다. 투명한 표결을 요구하는 사람들과 토론으로 총화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부딪혔다. 집행부는 사퇴했다. 투쟁하는 조직으로서 노동조합은 굳건한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다수결을 통해 일시적으로 봉합할 수는 있겠지만, 의미있는 수준의 균열이 있다면 제대로 된 리더십은 발휘될 수 없다. 집행부의 결정은 불가피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조직한 것이 아닌데도, 젊은 세대들의 주장과 90년대 사번들의 주장이 뚜렷이 갈라진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합리적 절차에 대한, 그리고 노동조합의 운영원칙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파업과 상관없이 오래전에 배태되어 온, 집단적인 차이이다. 때론 사소한 수준일 수도 있는 이런 차이가, 파업 일시 중단 이라는 상황 앞에서는 격렬하게 현실화되었다.
젊은 세대의 주장 반대편의 논리에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노동조합 운영원리가 한 가지 담겨 있다. 뭐랄까. ‘협치(協治)’라는 말이 어울릴까?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타협, 혹은 절충이라는 표현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MBC 노동조합은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수많은 부문이 얽혀있는 조직이다. 그리고 역시 수많은 지역이 수평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게다가 이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가치는 ‘공정방송’, ‘방송독립’이라는 정신적인 영역의 것이다. 물질적 가치가 아닌 추상적인 가치 아래 형형색색의 다양한 조직을 하나로 엮어내는 일은 권위적인 리더십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나는 그러다보니 MBC 노조가 체득해 온 방식이 절충이고 타협이며 자발적인 물러섬이라고 생각한다. 부문간 갈등요인이 있을 때, 본부와 지부간 갈등이 나타날 때, 어떻게든 스스로 봉합해 내려는 의지가 지금까지 MBC 노동조합을 이끌어 온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는 생각이다.
“이러다가는 노조 깨진다.” 아마 이번에 문제제기를 해 온 구성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한 말일지도 모른다. 조금 물러서자. 타협해 달라. 같은 말이다. 과정의 비민주성과 직접민주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을 가질 수 없는 호소였다. 역사는 종종 설득과 이해보다는 한 세력이 다른 세력을 대체해 가는 방식으로 갈등이 해소되는 걸 보여준다. MBC노동조합은 어떨까. 그것은 새로운 세대에게 달려있다. 우려할 일도 비관할 일도 아니다. 중요한 것이 노동조합 자체이고, 노동조합이 내건 가치라면, 젊은 세대는 자기 방식과 언어로 그 가치를 지켜가면 된다. 헌신과 봉사를 체득해가면 된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번 총회투쟁은 사실 매우 건강했다.
마지막 총회의 자리에서 위원장은 ‘새로운 리더십이 탄생하기를 기대했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리더십은 탄생하지 않았다. 현재 MBC 노동조합의 모습이다. 나는 이 귀결의 의미를, 사퇴를 주장한 이들이 깊이 이해해 주기를 희망한다. 한편으로, 문제제기에 따른 책임의식이 없다는 비판이 그들에게 제기되는 걸로 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열심히 투쟁했고, 충정심으로 문제제기를 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운영하는 책임은 아직 그들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노동조합과 회사조직을 이해해가는 시간과 경험 속에서 축적되어가며 책임지어질 것이다. 평가는 그 때 해야 한다. 지금 그들을 이끄는 것은 온전히 집행부와, 선배들의 몫이다. 이번처럼 어설퍼서는 어림없겠다. 특히 화요일 저녁 총회를 맡은 이들은, 처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번 총회 투쟁은, 그에 앞선 5주간의 파업투쟁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60명이 자발적으로 단식을 하고, 수많은 비조합원 선배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던 아름다운 투쟁이 없었다면 역설적으로 이 격렬한 논쟁도 있을 수 없었다. 나는 그래서 확신한다. 집행부가 해고되고 위원장이 붙잡혀 가는 날, 사퇴를 요구하며 목청껏 성토하던 바로 그들이 투쟁의 맨 앞자리에 서 있을 거라는 걸. 그들은 노조가 내건 가치에 자발적으로 몸을 던졌고, 노동조합 자체를 자기 조직으로 체화했으며, 무엇보다 그자리에 서는 것은 지금 그들에게 주어진 정당한 책임이기 때문이다.
> > 3박 4일 총회투쟁이 남긴 것 4
정말 이번만큼은 이기고 싶어서였다
임명현 보도부문 03사번
‘파업 일시 중단’이라는 비대위의 결정이 전달된 그날, 5월 10일 월요일. 갑작스럽고 당혹스러웠다. 언젠가 파업을 끝내긴 끝내야 할 터고, 6월로 넘어가면 월드컵 등의 일정이 있어서 쉽지 않겠다는 것 따위의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6주차를 맞아 새로운 투쟁의 의지를 안고 나온 첫날, 현장 조합원들의 의견 수렴이 전혀 없었던 상태에서 결정된 사안을 아무런 반발심 없이 받아들이긴 쉽지 않았다. 전체 회사 구성원들의 82%, 천 명이 넘는 이들의 기명 성명을 파업투쟁의 절정으로 본 것이 아니라 종료의 지점으로 규정한 것에도 동의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싸울 만큼 싸웠고 불가피하다’는 마음보단 ‘아직 더 싸워야 하고 싸울 수 있는데 대체 왜?’라는 반문이 앞서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복귀’를 주장하는 말들은 자의적인 논리로, 또 경우에 따라선 계몽적인 훈계로 들렸다.
그래서 총회투쟁은 시작되었다. 기존의 문법대로라면, 토론 자체는 치열하면서도 풍부하게 하되 결의는 단호한 합의로 이뤄져야 했다. 집행부의 결정을 따르는 방향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번 총회의 전개는 전혀 기존의 문법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토론은‘치열하고 풍부한’이라는 언명으로 표현되는 선을 넘어설 정도로 날카로웠고, 결의의 형태는 ‘단호한 합의’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기존의 문법에선 배격되던 ‘다수결의 원칙’에 힘이 실렸다. 집행부로서도 당초 예상했던 진통의 범위와 강도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합의>와 <다수결의 원칙>. 양립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립하는 민주주의의 핵심적 운영원리다. 합의할 수 있는, 합의가 되는 사안이라면 다수결의 원칙에 묻지 않을 것이다. 합의가 불가능할 때 다수결의 원칙에 묻는다. 우리는 나흘간의 총회투쟁 끝에 결국 다수결의 원칙에 물었다. 왜일까. 집행부의 결단을 따라 현장투쟁으로 전환하는 것이든, 새 집행부를 구성해 제2의 총파업 투쟁에 나서는 것이든, 조합원들이 총의를 모아 합의했다면 그 결정은 적잖은 무게감과 상징성, 파급력을 가질 수 있었을텐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시작할 때만 해도 육박전이, 혈투가 벌어질 거라 예상한 싸움이었다. 어쩌면 피가 튀기고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싸움이었다. 그러나 실제 양상은 지구전으로 전개됐다. 체력전이었다. 싸움의 기술이 중요할 줄 알았는데 실제 요구되는 건 체력이고 정신력이었다. 모두가 일찌감치 그 본질을 알았다. 그래서 한 달이 넘게 흘러갔는데도,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갔는데도 이상하게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피하면 피할수록, 더욱 더 선명하게 목격되는 분명한 상대의 실체... 분노가 자꾸 끓어올랐다. 승리하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어느 때보다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갈수록 뜨거워졌다.
그래서다. 이기고 싶어서였다. 조합원으로서 노조의 승리에 일익을 담당하고 싶은 것뿐만 아니라, 내가, 한 사람의 언론노동자로서 이기고 싶어서였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해치는 이들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MBC 노조의 승리는 곧 ‘나’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4번째 파업이었지만 이번만큼 절박했던 적은 없었다. 집행부와 선배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터다. 자신들도 물론이거니와 후배들이 어느 때보다 이기고 싶어 하는 것을, 누구보다 이기고 싶어 하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꼭 이기게 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 때문이다. 포기한 경기라면 전략을 놓고 싸우지 않는다. 압도적으로 이기는 경기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은 비록 열세일지언정 최선을 다하면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드는 경기, 그리고 무엇보다 꼭 이기고 싶은 경기에선, 전략을 가지고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게, 앞서 던진‘왜’라는 질문에 대해 내가 찾아낸 답이다.
4일간의 총회투쟁이 남긴 것. 그건 바로 ‘이기고 싶은 마음’에 대한 서로의 확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난 4일을 거치면서 그 마음은 더욱 단단해졌다. 그러면서 한때나마 균열될 뻔했던 팀도 지켜냈다. 이제 같으면서도 또 다른 전장(戰場). 그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이 하나의 팀으로 끝까지 단결한다면, 우리는 결국 이길 것이다. 그러한 희망 또한 지난 총회투쟁이 남겨준 거라고 나는 믿고 있다.
96사번이 국장 직무를 맡은 진주 MBC
오늘(5월 17일)로 진주 MBC가 김종국 사장의 출근 저지투쟁을 시작한 지 69일째를 맞았다. 지난 3월 9일 진주ㆍ마산 겸임사장으로 발령된 이후 김종국 사장은 진주 MBC 안에 단 한 발도 들여놓지 못했다.
96사번의 유례없는 초고속 승진
4월 28일 김종국 사장은 회사 정상화를 선언하며 조직개편과 인사발령을 단행했다. 그러나 10명 중 5명은 회사 정상화를 위한 인사가 아니라며 보직을 사퇴했다. 4월 29일 노동조합은 인사 원천무효와 불복종을 선언했다. 조직 개편을 앞두고 노조와 협의가 없었던 데다 일부 인사 대상자에게는 사전에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더욱이 인트라넷에 게시된 인사발령은 관계회사부에서 직접 올렸고 인사권자의 이름도 적혀있지 않은 유령 인사발령이었다. 5월 7일 김종국 사장은 보직을 거부한 국장자리에 부장들을 겸직 발령했다. 이를 테면 보도제작국장 직무대리 겸 제작부장, 광고사업국장 직무대리 겸 문화사업부장 이런 식이다. 이번 인사로 경영기술국장을 포함해 진주 MBC의 보직국장 3명 모두가 96사번의 차장급 직무대리로 채워졌다. 본사나 계열사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초고속 승진이다. 이제 그들 5명으로 조합원 징계 등의 인사위원회 개최가 가능해졌다.
김종국 사장, 조합 집행부 10명 형사고소
5월 6일 회사는 진주 MBC 노조 집행부와 경리담당 직원등 10명을 경찰에 업무방해혐의로 형사고소했다. 5월 4일에는 이근행 위원장과 정대균 지부장 등 53명을 상대로 법원에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심리는 5월 27일 열릴 예정이다. 조합은 이에 맞서 5월 10일 사측을 임금체불과 단체협약 위반으로 노동부에 제소했다. 5월 13일에는 김종국 사장과 보직자들을 상대로 직무정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진주 MBC 사수’서부 경남 주민 똘똘 뭉쳤다
본사의 일방적인 강제통폐합을 반대하는 진주 MBC의 투쟁에 지역민들도 함께 했다. 4월 1일 출범한 진주 MBC지키기 서부경남연합의 참여단체는 모두 122개로 늘었다. 김재철 사장의 고향인 사천에서도 모두 55개 단체가 참여했다. 성명을 발표한 곳은 40여 곳이 넘고 각 단체가 매단 현수막은 진주 MBC 사옥을 가득 메웠다. 두 달 사이 노조에 직접 전달된 성금은 1천 4백만 원을 훌쩍 넘었다. 현물로는 피로회복제와 비타민제가 가장 많이 전달됐고 떡과 과일, 빵도 기탁됐다. 회사를 찾지 못하는 시민들은 통닭과 피자를 배달했고 고깃집을 운영하는 한 시민은 손수 삶은 수육을 노조에 전달했다.
5월 11일에는 삼천포 바닷가에서는 진주 MBC지키기 사천시민 결의대회가 열렸다. 진주MBC지키기 서부경남연합이 주최한 집회장은 김재철 사장을 성토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시민들은 사천출신 사장이 고향의 MBC를 통폐합하는 것은 배은망덕한 행위라며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고향의 MBC를 팔아 사장자리를 지키려는 김재철 사장은 물러나야 마땅하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소외된 서부경남지역에서 진주 MBC을 없애는 것은 시민들의 눈과 귀, 입을 막는 행위라며 지역의 소중한 자산인 공영방송을 시민의 힘으로 지켜내자고 결의했다. 시민단체들은 앞으로 진주MBC 광장에 천막사무실을 마련하고 진주 MBC지키기 활동을 강화할 계획이다.
김종국 사장과 인사를 받아들인 보직자 5명은 회사에 들어오지 못하고 외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법이 정한 사장을 인정하라며 결재와 예산집행 등의 권한을 강조한다. 하지만 진주 MBC 구성원들은 그들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서울에서 직할 통치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고 동료를 배신하고 동료를 고발한 그들을 예전처럼 마주할 수 없다. 겸임사장출근 지저를 위해 전 사원들은 출근 시간을 8시 30분으로 앞당겼다. 저녁에도 일과 후 정리 집회를 통해 결속을 다지고 있다. 방송현업은 전 사원이 참여하는 비상대책위를 중심으로 부문별 선임자와 협의 속에 운영되고 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파업을 했고 지금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하고 있다. 지역민을 위한 지역방송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진주 MBC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총파업은 일시 중단됐지만 진주 MBC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지역 주민들의 든든한 지원 속에 진주MBC의 투쟁은 본사 주도의 일방적인 통폐합이 끝나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기록으로 본 39일 파업, 20대 신기록
이번 39일 파업은 지난 92년 52일 파업에 이어 창사 이래 두 번째로 긴 파업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52일 파업때 보다 더 많은 신기록을 낳았다. MBC 역사에 길이 남을 이번 파업의 신기록들을 정리했다.
조합, MBC사원들의 신기록
- 사원 1028명 김재철 사장 퇴진 기명 성명 발표
- 84, 85, 87 사번 성명, 95, 96 사번 동조 단식 등 사번별 행동 조직화
- TV 제작본부 보직부장 12명 사장 비판 성명 발표
- 이근행 위원장 최장 기간(12일) 단식
- 39일간 파업 집회 및 선전전에 전국적으로 최다 조합원 참여
- 사측의 업무복귀 명령 시한에 맞서 서울지부 최다 인원(656명) 파업참가
- 총파업 일시 중단 여부를 놓고 4일에 걸친 총회 투쟁
- 서울지부 집행부 총사퇴 결의와 전폭적인 재신임
- 오리배, 야구장, 자전거 선전전, 일인 시위 등 다양하고 기발한 선전전 전개
- 촛불 문화제 5회 연속 개최
- 파업 뉴스데스크 1, 2탄 발표 20만명 이상 조회
- 총파업 특보 25호 연속 발행, 최다 면 발행
- 총파업 투쟁가‘또 다시 앞으로’발표, 노래사랑, SPB 최다 공연
- 사내ㆍ외 지지 성금 사상 최대 (1억 5천만원 돌파)
김재철 사장, 사측의 신기록
- 사측, 노동조합과 집행부 18명을 상대로 첫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
- 김재철 사장, 파업 기간 중 100분에 걸친 충격 기자회견
- 총파업 특보에 맞서 회사 특보 발행
- 사장, 부사장 출근 포기, 옛 경영센터 8층에 사무실 마련
- 사장, 부사장 출근 과정에 보직 국장단 동원
- ‘선임자 노조’ 김재철 사장 구원병 활약
..........이상 MBC 노보 153호(2010년 5월 17일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