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45년 70년 전 8월15일 우리민족의 자유해방을 마지하던 날
춘천에 있었습니다.
제가 춘천에 있었던 사연은 대구에서 탄생하고 13살이 되도록 살았던
대구에서 경북여고(지금의 여중)1학년이였지요.
그게 世界2차大戰 막바지엿던 해 이지요.
국민학교 5학년에 일본 우리나라에서 보면 동해쪽 어느시골의 공장에서
직공을 뽑는다고 선생님이 광고를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좋은 기회가 어데있을 까하며 손을 들고 "제가 가겟습니다."했지요.
선생이 내가 뉘집 외딸인지 알고 있으니 그러라고 할리가 없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엔 늘 형제하나없이 외로운 터에 같이 먹고 자고
얼마나 재미있는 생활일까? 하고 너무나도 가고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제친구하나가 집안형편도 어려운 애가 자원을 해서 갔지요.
그 후에 대구를 떠났으니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길이 없지만 그렇게
철딱선이가 없는 나 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모집했던 공장직공들이 위안부였을 게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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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갔으면 내가 위안부? 끔찍한 사건이지요.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그리고 전쟁막바지에 식량이 부족하니 增産 增産하며 떠들어 데니 밭에 나가서
농사도 짓고 길바닥에 떨어진 쇠똥도 줍고 거름한다고 똥지게를 지고 다녔답니다.
그리고 여중 1학년이 되엇습니다. 여학교에 들어가서는 대구사과가 유명하여 과수원이
많아 4,5,월에 사과꽃이 피고 열매가 맺은 나무에 올라가서 철과( 撤菓)라고 여러개 달린 풋사과 중
하나, 둘을 가위로 잘라내는 작업을 했는데 그 풋사과가 시고떫은것을 따면서 두 서너개를
몸빼바지가랭이다 넣어서 집으로 갖고 오곤 했습니다.
나무위에 올라가서 일하며 노래도 하고 즐겁긴 했지요.
그러자 우리집에서는 疎開(피란)를 춘천으로 갔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百貨店을 운영을 하시기 때문에 서울에 자주 출장을 가셔야 하기 때문에 서울에서 가까운(가깝지도 않은)
춘천으로 간 것이였지요.
춘천에 가자마자 8월15일이 되어 종전이 되었습니다.
저는 나 자신이 大日本帝國의 臣民인줄만 알고 있었으니 일본 천황이 패전 선언을 듣고
나는 울었습니다. 이 바보~~~!! 너무 슬펐습니다.
거리에서는 춘천시민들이 태극기를 휘둘으며 해방만세를 소리치며 나옵니다.
태극기도 처음 봤습니다.
제 아버지는 해방소식을 듣고 바로 대구로 돌아 가신다고 집을 나스셨지요.
그러나 대구에 가신 아버자는 한달이 넘어도 돌아 오시지 않습니다.
우리母女는 매일 강가(소양강인지 어데인지는 지금도 모릅니다)에 나가서 아버지를 기다렸지요.
한달이 훨신지난 어느날 아버지께서 쉬엄이 가득하신 모습으로 지팡이를 짚고 오셨습니다.
말씀 하시기를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는데 혼란한 틈에 모두 기차 차창으로 기어 올라 타고 있엇데요.
그래서 아버지도 기차차창으로 올라 탔셨답니다.
기차가 떠나 용선쯤 왔을 때 보니 흰백색 반바지에 피가 흥겅하게 흘렀데요.
일본헌병이 총끝에 달린 단검으로 아버지 응댕이를 찔른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기차에 앉아 계셨던 것이지요.
그래 기차에서 내려 정동에 있는 아버지 친구댁으로 가서 치료를 받고 겨우 돌아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대구에 돌아 갈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구에서 춘천으로 소개를 오며 집안 살림을 모두 화차에 하나가득 화차에 싣고
떠났으니 살림은 청량리에서 ALL STOP!!입니다.
그 화차를 그시절엔 열쇄로 잠근 것도 아니고 종이에 도장 하나를 찍고 묶어 놨으니
집안 살림은 몽땅 도둑맞고 큰가구, 피아노등은 그대로 있었스니
그 많은 살림을 당장 우리가 임시로 아버지 친구(정동에 계신)집을 빌려 이사를 하게 되어
그리 다 옮겼는데 소달구지밖에 짐을 옮길 길이 없었으니 12개 소달구지로 짐을 옮기고
서대문 교남동에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으니 대구사람이 (낳은곳이 고향)서울내기가 된거지요.
거기에서 학교도 전학을 하고 나의 여학생 생활이 시작이 되엇습니다.
오늘 생각난 종달새의 70년 전 얘기입니다. ㅎㅎ
첫댓글 그런 일이 다 있으셨군요.
격동의 시대를 직접 겪어낸 분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
잘 읽었습니다.
늘 건강 하십시요.
너저분하게 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용궁가실뻔 했네요
천만다행 입니다..
용궁이라니?
어데인 줄 알아야 가지요.ㅋㅋ
세상 살아오신 이야기, 정말 실감나게 잘 써주셨네요. 곱게 자라오신 옛 이야기 웃으며 하실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ㅎ 잘 읽었습니다.^^*
실감나게 썼다니 감사합니다.
그야말로 옛이야기지요.ㅎㅎ
종달새님, 글 잘 읽었습니다.
식민지 시대를 거치고, 해방을 맞이하고, 피난을 하고
감수성 좋은, 꿈많던 여학교 시절을 얘기할 수 있는 분은
이 카페에선 종달새님 뿐인가 합니다.
그런 기억이 없는 후배들에겐,
종달새님의 이야기가 전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청춘은 언제나 전쟁만~~~!!
꿈같았어야할 시절은 없었지여.
영도에서 거적을 깔고 앉아서 공부했고
거기에서 졸업을 했었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