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시험은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저의 경우를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96년 9월에 입사원서를 접수시키고 10월초부터 한 단계 한 단계 시험을 치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첫 번째 시험은 카메라 테스트였습니다. 이 경우에는 워낙 응시자가 많기 때문에 아주 짧은 시간동안 심사위원들과 만나게 되는데 아주 간단한 원고, 예를 들면 짧은 날씨 원고나 기사의 일부분을 나누어주고 순서대로 무대에 올라가 낭독을 하게됩니다. 이 때는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기본적인 사항들을 점검하는 정도라고 할 수 있겠죠.
듣기 좋고 편안한 목소리라든지, 표준어를 정확하게 구사하는지, 또 정확한 발음을 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그리고 매스컴이 라디오만 있던 시대에서 이제는 비디오 시대로 많이 바뀐 만큼 화면에 비추어지는 모습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서 뛰어난 외모가 필요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너무 화려하고 완벽한 외모보다는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좀 더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외모를 지니고 있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2차 시험은 필기시험입니다. 일반상식과 국어, 국사, 최신 시사상식, 그리고 논술시험입니다.
3차 시험은 영어시험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시험을 치르지 않고 토익 점수를 제출했었기 때문에 영어시험이 어떤 형식으로 치러지는 지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토익과 비슷한 형식으로 치러지는 것으로 알고 있고 요 근래에는 영어시험 자체가 폐지되고 모든 응시자들이 토익점수를 제출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음 4차 시험은 또 다시 카메라 테스트입니다.
이 때는 무대 위에서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받는 시간이 더 길어집니다. 제가 응시하던 해에는 응시자 모두에게 "전국노래자랑의 연말결산"을 진행하고 있다고 상상하라는 상황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때의 저로서는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던 선배들, 손범수, 정은아, 김병찬 선배들이 저희의 시험에 함께 도우미(?)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음,..... 그러니까,..... 당신은 전국노래자랑 연말결산의 진행자인데 여기 앉아있는 이 세 선배들 중에 한 사람을 마음껏 이용해서 멋진 진행을 해 보시오. 단, 그 상황은 프로그램의 시작이어도 좋고 끝이어도 좋고 이 선배 아나운서들은 출연자여도 좋고 심사위원이어도 좋고 함께 진행하는 아나운서여도 좋습니다. 마음껏 재치를 발휘해 보십시오,.... 뭐 그런 거였죠. 아,.... 처음엔 난감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앞서 시험을 치르고 있는 동료 응시자들을 보니 하나같이 선배 아나운서와 함께 공동진행을 하는 상황에 프로그램의 오프닝을 연출해 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많은 응시자들, 그것도 다들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들인데,... 그 중에서 심사위원의 관심을 끄는 사람이 되려면 뭔가 색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전 프로그램의 클로징을 연출하기로 마음먹었고 무대에 올라서자마자 "네! 초대가수 김건모씨의 노래 잘 들었습니다!!"하고 목소리를 크게 내었습니다. 모든 심사위원들이 깜짝 놀라 "저 사람이 지금 뭐 하는 거야?"하는 표정으로 일제히 저를 쳐다보더군요. 그 때 전 다시 말을 시작했죠.
"초대가수의 노래를 듣는 동안 심사결과가 제 손에 전달되었습니다. 어떤 참가자가 연말 최고의 가수왕이 되었는지 여러분도 무척 궁금하시죠?......" 그런데 이 때 제가 그만 말을 더듬고 만 것입니다.
흔히 그런 경우에 응시자들이 당황을 하게 되고 그러면 그 뒤의 말들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그 때 정신을 바짝 차렸고 뻔뻔스럽게(?) 웃으면서 "아,... 오늘 이 추운 날씨에 야외에서 진행을 하다보니 입이 잘 움직여지지 않네요,... 게다가 오늘의 주인공, 최고의 가수왕을 소개하려니 제가 너무 떨리나 봅니다. 그러니 이 분은 얼마나 지금 떨고 계실까요? 오늘 전국~~~ 최고의 가수왕은,.... 참가번호 *번 여의도에서 오신 정은아 아주머니!!!!" 하고 얘기를 해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그 당돌함은 어디에서 왔었는지 알 수가 없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저도 모르게 그런 말들이 술술 나왔습니다. 그리고 심사위원들은 제가 말을 더듬는 순간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다음 말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 거였습니다. 그런 모습에서 전 더욱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정은아 선배가 너무나 재치있게 말을 잘 받아주셨습니다.
"아이구, 고맙구먼유,... 지가 정말 1등이여유??" " 그럼요! 축하드립니다! 상금이 100만원이나 되는데 어떻게 쓰실건가요?" "어떻게 쓰기는유,...오늘 당장 동네사람들 다 모아놓고 돼지 잡아서 잔치할꺼유..." "네, 오늘 연말결산은 최고의 가수왕이 되신 정은아 아주머니의 노래를 들으면서 인사드리겠습니다. 내년에 뵙겠습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제가 생각해도 그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말들을 다 하고 내려왔는지 잘 이해가 안되지만 아나운서가 되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명심하십시오. 당황은 절대 금물! 실수를 하더라고 끝까지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하고 오히려 그걸 잘 이용하면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아셨죠?
다음 마지막으로 5차시험은 면접입니다. 면접실에는 한사람씩 들어가게 되는데 그 때는 다섯분의 심사위원들 앞에 마주 앉게 됩니다. 참고로 이 때는 정말 떨립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절대로 보이면 안됩니다. 방송을 하다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방송을 하거나 아주 당혹스러운 생방송의 순간들을 맞을 수 있는데 그럴 때 오히려 더 침착해야 하는 것이 바로 아나운서입니다.
그래서 지금와서 그 때의 질문들을 생각해 보면 별로 큰 의미가 없는 질문들이었고 그 질문과 대답의 내용보다는 그런 긴장되는 순간에 얼마나 침착하고 진지하게 또박또박 말하는가를 더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전공에 관한 얘기를 비롯해서 대답의 내용도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너무 긴장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잘 얘기할 수만 있다면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단, 왜 아나운서 시험을 봤고 어떤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지,... 본인만의 아나운서론을 잘 생각해 두는 일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