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요
고린도전서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찬송가 364장(내 기도하는 그 시간)
고린도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분열이었습니다. 그 분열은 인간 자체 내부에 있는 자만심이요 불화와 다툼을 좋아하는 타락한 본성에서 기인합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내부에서 분열을 촉발하는 계기는 놀랍게도 하나님이 쓰시는 거룩하고 충성스러운 영적 지도자들 때문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분열하게 된 표면적인 이유가 뭐냐면 어떤 교인들은 바울에게 속하였고, 또 어떤 교인들은 아볼로에게 속하였고, 어떤 교인들은 게바 곧 베드로에게 속하였고, 다른 어떤 교인들은 자기는 오직 그리스도께 속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그의 이차 전도 여행 때에 가서 처음 개척하여 세워 그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약 2년 정도 머물면서 애를 썼었습니다. 젊은 교사 아볼로는 그 후에 그곳에 도착하여 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을 증거하여 많은 영적 유익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게바 곧 사도 베드로가 그곳에 도착하여 잠시 동안 그들을 가르쳤던 것 같습니다. 그 시기는 아마도 사도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이 끝나 안디옥에 머물 때쯤이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도 베드로는 종종 전도 여행을 다니곤 했는데, 그의 행적을 보면 욥바를 거쳐 가이사랴에서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서 전도하여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기도 하면서 점점 이방 지역의 복음 전도에 힘을 기울인 것이 분명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에서도 보면 그가 편지를 써서 읽도록 보낸 수신자들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니가,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신자들인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사도 베드로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영역에서 이방 전도에 힘을 기울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가 베드로전서 편지를 써 보내는 장소를 ‘바벨론’이라고 하였는데, 바벨론은 아마도 그 당시 로마를 상징적으로 이르는 말로 이해하기 때문에 로마에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런 베드로가 고린도 교회에 들른 것이 분명하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추측입니다. 사도 베드로가큰 항구 도시인 고린도에 와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가르침을 주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사도적 지위와 그의 영적 영향력은 상당한 것이었기 때문에,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 그에게 감화를 받은 분들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지적 영적 감동과 아볼로의 가르침으로 인한 성경적 지식과 사도 베드로의 영적 은혜를 많이 받았으니, 그런 만큼 더 겸손하고 더 열렬하게 주님과 교회와 성도님들을 사랑하여 섬겨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도리어 인간적인 분파를 만들고 자기네가 더 잘났다고 서로를 비판하고 교회 안에서 주도권 싸움을 하였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도, 성경 교사 아볼로도, 사도 베드로도 다 귀하고 아름답게 겸손히 헌신하였지만, 인간 자신의 타락성은 이처럼 얼마든지 빗나갈 수 있고 은혜를 바꾸어 교만과 분열의 죄악의 열매로 바꾸어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의 이러한 분열을 치유하고자 고린도전서 1장에서 4장까지 상당 분량의 편지에다가 여러 영적 교훈들을 써 보냈습니다. 이 내용을 요약해서 살펴보면, 우리를 살리려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과 베드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인간의 탁월한 지혜도 아니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위대한 표적도 아니요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희생인 것입니다. 참으로 가장 위대한 능력과 가장 완전한 지혜는 바로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랑은 어떤 사도도 아닙니다. 어떤 탁월한 교사도 아닙니다. 어떤 위대한 은사를 나타내는 전도자도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하나님께서 보내시어 사람을 살리도록 쓰임받는 하나님의 종들, 하나님의 심부름꾼에 불과한 것입니다. 밭으로 표현하면 씨를 뿌리는 자가 있고 물 주는 자가 있고 밭을 기경하여 고르는 자가 있지만, 결국 뿌려진 씨앗을 발아하게 하고 싹이 나오고 이파리가 커지고 자라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농부가 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능력을 힘있게 하여 잘 자라나 열매 맺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집을 짓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멋진 집을 지어보아야 그 집의 터가 만약 모래밭이라고 한다면 홍수가 나고 태풍이 불면 결국 순식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그래서 터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백성과 교회의 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화려한 언변과 놀라운 표적 이적으로 사람을 모았다 해도 만일 그들이 서 있는 영적인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그들의 수고는 헛 것이 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주의 종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복음과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 자랑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살리시려고 죽으시고 부활하사 대속의 희생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해야 하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사람만 자랑하고 사람에게 집중해서 이리 저리 끌려다니는 사람이 될진대, 자칫하면 시험에 들게 되고 교만하게 되고 분열을 일으키게 되고 신앙의 성숙을 이루지 못하게 육신에 속한 자로 남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가 가르친 바대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갑시다. 사람들에게 판단받는 것도 작은 일로 여기고 오직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힘쓰는 충성된 자가 됩시다. 장차 주님께서 온 세상을 심판하는 그 날에 심판대 앞에 우리가 서게 될 그 때에 주님께서 우리를 판단하실 때에 인정과 칭찬을 받으면 족하다는 생각을 가장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럴진대 우리는 사람에게 끌려 이리 저리 다니지 아니할 것입니다. 오직 한평생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만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자기를 비우고 겸손히 주님과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충성된 자로 남은 생애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