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임승차 나들이
/김순자
인생은 여행이다.
지금껏 바쁘게 살아온 날들에 대한 이젠 조금은 여유롭게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수 있는 내겐 무임승차 티켓이 있으니까.
해를 거듭할수록 여름의 더위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은 기후온난화로 인한 환경의 위기가 온 것인지 옛날엔 아무리 더워도 시원한 수박 한 덩이나 얼음물에 미숫가루 한사발이면 선풍기 바람을 쐬면서도 잘 지나왔던 한 철 이었는데…
한여름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혼자 놀기도 지루한 것 같아 가성비 좋은먼 곳으로 가볼 양으로 친구에게 카톡 했더니 바로 연락이 왔다. 여름날 시원한 지하철을 타고 갈수 있는 곳을 찾다가 용문사로 결정 산채나물 비빔밥과 바람을 쐬고 오자는 답장에 잠간 망설여지긴 했으나 무릎이 아프다는 핑계로 함께 하지 않으면 친구들에게 소외될 수도 있으니 아직은 수술도 하기 전이니 마음 움직이는 데로 조심하면서 걸어보자 라며 내심 나에게 다짐을 했다.
전날 배낭을 꺼내 이것저것, 돗자리, 얼음물, 과일 보냉팩. 먹거리를 챙기고 공통경비 식대는 각자 부담으로 마음을 정하고 나니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부천서 용산까지 가서 용문행 경의 중앙선을 환승해야 하는데 주말인 것을 생각 못하고 약속하고 나갔더니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승강장에 가득 차 있었다. 출발지도 아니니 1시간 반 정도 서서 갈일이 벌써부터 걱정, 배낭도 무거운데 행운의 여신이 내게 허락하신다면 하는 바램 으로 친한 친구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내가 예전 같지 않으니 교통약자 편의시설을 이용해야 한다며 슬쩍 내비췄더니 승강기 있는 번호까지 챙겨가며 마음 써 주었다
용산역 경의중앙선은 항상 붐비는 곳이다. 춘천, 용문 등 지하철로 연결되어 있어 무임승차하며 여유롭게 다닐 수 있는 노인들의 데이트 코스이기도 하다. 자리를 잡아야 할 텐데.. 친구중 하나는 키가 크고 하나는 잽싸다, 난 생각 없이 움직이다간 어느 순간 무릎이 잘못 될까봐 나름 조심스럽게 천천히 주변을 살피니 만 차다. 이럴 땐 분위기나 느낌으로 일찍 내릴만한 사람 앞자리에서 잘서야 하는데 쉽지 않은 순간의 선택이다. 포기하고 용문까지 버틸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으로 손잡이를 잡고 섰더니 눈치 빠른 친구가 그사이 경로석을 차지해 내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센스에 이제야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으로 차창을 바라보며 경의 중앙선 매력에 빠져보기로 용문행 무임승차 여행이 시작되었다.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전원주택, 들판, 계곡, 도시를 떠나 경기도 외곽의 평화로움이 풍경으로 다가왔다, 구리, 덕소, 팔당, 양평 등 물 맑고 산 좋은 자연의 푸르름을 시원한 차안에서 달리는 것만으로도 폭염을 날리며 더 할 수 없이 시원한 에어컨 바람, 널따란 창으로 보이는 끝없는 그림 같은 전원주택 녹색지대는 파노라마처럼 펼쳐 눈 호강까지 마치 알프스의 산악지대를 보는 듯 했다.
점심때가 되어 용문역에 관광객을 마중 나온 식당차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15분정도 달리니 용문사 입구까지 안전한 드라이브와 가이드까지 해주는 친절함에 차가 없어도 걱정이 필요 없는 대한민국의 시니어들이 살만한 나라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올 때와 갈 때 다른 길로 드라이브까지 하며 지하철 시간까지 맞춰주는 식당차 서비스 한번 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사람은 없는 곳이 용문사가 아닐까?
주 메뉴인 산채비빔밥과 시골된장국의 향이 아직도 입안을 맴돌 듯 시장이 반찬이라고 하나 야들야들하면서 나물향이 살아있는 비빔밥에 콩이 살아있는 듯 시골된장 맛이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정감으로 다가왔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목적지에 왔으나 입장료가 아까워 들어가지 않는 우리들이야 말로 시니어들의 부루스 주변에 마치 용문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개울가에 앉아 발을 담그니 시원한 여름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용문사에 수령이 1,100년 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와 계곡은 여러 차례 돌아본 우리들에겐 그리 큰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냥 마음 맞는 친구와 무임승차로 쾌적한 시간을 보내며 오늘 하루 즐거우면 이것이야 말로 행복이기에, 여름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길가에 이름 모를 풀꽃들의 풀냄새 까지 맡을 수 있다니 오감만족하기에도 충분한 여행이었다. 시골집 화단에 고고하게 자태를 자랑하는 분홍 글라디올라스 앞에서 사진도 한 컷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추억을 남기기도 했다.
주변엔 용문산의 경관을 살려 멎진 카페들이 관광객들을 유혹했다. 벌떼들이 왕왕거리듯 즐거운 담소가 끓이지 않는 인생이야기, 우리도 확 트인 창가에 앉아 배낭에 챙겨온 먹거리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소소한 수다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인생앨범에 새로운 기억들을 남기며 아직도 끝나지 않은 무임승차의 행운이 기다리는 여름 속으로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지금껏 우리네 삶은 “세상엔 공짜는 없다”라고 하지만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마음만 먹으면 갈수 있는 자유여행권이 있으니까……
2022년 7월 9일(토) 용문사를 다녀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