或問子産 子曰 惠人也 어떤 사람이 자산을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은혜로운 사람이다.”라고 하셨다.
子産之政 不專於寬 然其心則一以愛人爲主 故孔子以爲惠人 蓋擧其重而言也 자산의 정치는 단지 관대함을 오로지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그 마음은 곧 한결같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위주로 하였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은혜로운 사람이라고 여기셨는데, 아마도 그 중요한 부분을 들어 말한 것 같다. 左傳昭公二十年 鄭子産有疾 謂子大叔曰 我死子必爲政 惟有德者能以寬服民 其次莫如猛 夫火烈民望而畏之 故鮮死焉 水懦弱民狎而翫之 則多死焉 故寬難 疾數月而卒 大叔爲政 不忍猛而寬 鄭國多盜 取人於萑苻之澤(萑苻音丸蒲 澤名也 於澤中劫人) 大叔悔之曰 吾早從夫子不及此 興徒兵而攻萑苻之徒盡殺之 及子産卒 仲尼聞之 出涕曰 古之遺愛也 좌전 소공 20년에 따르면, 정자산이 병이 나자, 자대숙에게 말하길, “내가 죽으면 당신이 반드시 정사를 할 것이오. 오직 덕이 있는 사람만이 관대함으로 백성을 복종시킬 수 있고, 그 다음은 사납게 하는 것만한 것이 없소. 무릇 불은 맹렬하기에 백성들이 바라보고서는 불을 무서워하니, 이 때문에 불에 죽는 사람은 드문 것이오. 물은 나약하니 백성들이 만만히 보고서 놀기에 곧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많소. 그러므로 관대한 정사는 참 어려운 것이오.”라고 하였다. 병이 난 지 수개월 만에 자산이 죽었고, 자대숙이 정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차마 사납게 하지 못하고 관대하게 하였다. 그러자 정나라에는 도적들이 많아져서, 萑苻(발음이 환부이고, 연못 이름이며, 연못 안에서 사람들을 겁박하여 재물을 탈취하였다)의 못에서 사람들의 재물을 취하였다. 자대숙은 후회하면서 말하길, “내가 일찍이 자산 선생님의 말씀을 따랐더라면 여기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많은 병사를 일으켜 환부의 도적들을 공격하여 모조리 죽여버렸다. 자산이 사망하게 되자, 중니가 그 소문을 듣고서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길, “옛날에 사랑을 남기신 분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子産心主於寬 雖說道政尙嚴猛 其實乃是要用以濟寬爾 所以爲惠人 주자가 말하길, “자산은 마음이 관대함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정사는 엄하고 사나움을 숭상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하였지만, 사실은 도리어 이를 이용하여 관대함을 이루고자 하였을 따름이다. 그래서 은혜로운 사람이라고 여긴 것이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子産爲政 黜汰侈 崇恭儉 作封洫 鑄刑書 惜幣爭要 皆以豊財足用 禁姦保民 其用法雖深 爲政雖嚴而卒歸于愛 故夫子以惠人蔽之 然孟子以爲惠而不知爲政 禮記以爲能食民而不能敎者 蓋先王之政之敎 子産誠有所未及也 호씨가 말하길, “자산이 정사를 함에 있어서, 汰侈(사치)를 축출하고, 恭儉을 숭상하며, 경작지의 두둑과 봇도랑을 짓고, 刑書를 주조하며, 비단을 아끼고 핵심을 다툰 것은 모두 이로써 재물을 재용을 풍족하게 하고 간사함을 금하고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 법의 적용이 비록 깊었고, 정사를 함이 비록 엄하였지만, 결국은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공자께서 은혜로운 사람이라고 포괄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맹자는 은혜롭기는 하지만 정사를 할 줄 모른다고 여겼다. 예기는 능히 백성을 먹일 수 있지만 능히 가르칠 줄은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대체로 선왕께서 하신 정사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자산은 진실로 다소 미치지 못함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子産之惠 夫子指其心而言之 孟子所謂惠以不知爲政 不過以其乘輿濟人之一事而言 而其愛人之心 固可知矣 운봉호씨가 말하길, “자산의 은혜로움은 공자께서 그 마음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이고, 맹자가 말한 소위 은혜롭지만 정사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은 그 수레와 가마로 사람들을 건네준 한 가지 일로써 말한 것에 불과한 것이니, 그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본래부터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子西 曰 彼哉 彼哉 자서에 대해서 묻자, 말씀하시기를, “그저 그렇다.”라고 하셨다.
子西 楚公子申 能遜楚國 立昭王 而改紀其政 亦賢大夫也 然不能革其僭王之號 昭王欲用孔子 又沮止之 其後卒召白公以致禍亂 則其爲人可知矣 彼哉者 外之之辭 자서는 초나라 공자 신인데, 초나라를 능히 양보하였고, 소왕을 세워서 그 정치를 개혁하였으니 이 역시 어진 대부였다. 그러나 왕을 참월하는 왕이라는 호칭을 혁파하지 못하였고, 또한 소왕이 공자님을 기용하려 하자 이를 저지하였다. 그 이후 결국 백공을 불러서 화와 난리를 초래하였으니, 그 사람됨을 가히 알 수 있다. ‘彼哉’란 것은 그를 외면하는 말이다. 左傳昭公二十六年 楚平王卒 令尹子常欲立子西(子西平王之長庶子) 曰 太子壬弱(任昭王也) 子西長而好善 立長則順 建善則治 王順國治 可不務乎 子西怒曰 國有外援(謂秦) 不可瀆也(瀆 慢也) 王有嫡嗣 不可亂也 敗親速讐(不立任 秦將來討 是速召讐也)亂嗣不祥 我受其名(惡名) 賂吾以天下 吾滋不從也 楚國何爲必殺令尹 令尹懼乃立昭王 춘추좌전에 의하면, 소공 26년에 초나라 평왕이 죽었다. 영윤 자상은 자서(자서는 평왕의 제일 큰 서자다)를 임금으로 세우고자 하여 말하길, “태자 임은 약하나(임은 소왕이다), 자서는 나이가 제일 많고 선을 좋아합니다. 장자를 세우면 이치에 맞고, 훌륭한 사람을 세우면 나라가 잘 다스려집니다. 왕위가 이치에 맞고 나라가 잘 다스려지는 일에 힘쓰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자서가 노하여 말하길, “나라에 외국의 원조(진나라를 말한다)가 있으면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고(瀆은 함부로 한다는 말이다), 왕에게 적자인 후계자가 있으면 이를 어지럽히면 안 됩니다. 어버이를 배반하고 원수를 빨리 불러들이며(임을 세우지 않으면, 진나라가 장차 와서 토벌할 것이니, 이는 원수를 빨리 불러들이는 것이다) 후사를 어지럽게 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고, 내가 그 오명을 받는 일입니다. 나에게 천하를 뇌물로 주더라도 나는 더욱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초나라는 어찌하여 반드시 영윤을 죽여야만 합니까?”라고 하였다. 영윤 자상은 두려워서 마침내 소왕을 임금으로 세웠다.
定公六年吳敗楚師 楚國大惕懼亡 令尹子西喜曰 乃今可爲矣(言知懼而後可治) 於是乎遷都於婼(音若 地名也) 而改紀其政以定楚國 노정공 6년에 오나라는 초나라 군대를 패배시켰다. 초나라는 크게 두려워서 나라가 망할까 걱정하였다. 영윤 자서는 기뻐하며 말하길, “마침내 지금 할 수 있게 되었다(두려움을 안 후에야 다스릴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婼(음은 약이고, 지명이다)으로 천도하고서 그 정사를 고치고 기강을 잡아서 초나라를 안정시켰다.
新安陳氏曰 夫子非以私外之 集註提此 見其不知人 不能爲國進人才耳 신안진씨가 말하길, “공자께서는 사사로움으로 그를 외면한 것이 아니다. 집주에서는 이를 제시함으로써, 그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여 나라를 위하여 인재를 들이지 못한 것을 보여주었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事見大學或問止至善章內 이 일은 대학의 혹문 ‘止至善’장 안에 보인다.
吳氏曰 當時有三子西 鄭駟夏 楚宜申 公子申也 駟夏未嘗當國 無大可稱 宜申謀亂被誅 相去又遠 宜皆所不論者 獨公子申與孔子同時 오씨가 말하길, “당시에 3명의 자서가 있었는데, 바로 정나라 사하, 초나라 의신, 공자신이다. 사하는 일찍이 국정을 담당한 적이 없었으니, 그에 걸맞을 가능성이 크게 없다. 의신은 난리를 도모하다 주살되었고, 서로 시간적 거리도 또한 멀었으니, 마땅히 2명 모두 논할 만한 바가 아니다. 유독 공자신만이 공자와 동시대였다.”라고 하였다.
問管仲 曰 人也 奪伯氏騈邑三百 飯疏食 沒齒無怨言 관중에 대해 묻자, 말씀하시기를, “관중이 백씨의 병읍 삼백 호를 빼앗았지만, 백씨가 거친 음식을 먹고 살다 죽으면서도 원망하는 말이 없었다.”라고 하셨다.
人也 猶言此人也 伯氏 齊大夫 騈邑 地名 齒 年也 蓋桓公奪伯氏之邑以與管仲 伯氏自知己罪 而心服管仲之功 故窮約以終身而無怨言 荀卿所謂與之書社三百 而富人莫之敢拒者 卽此事也 ‘사람이다’라고 한 것은 이 사람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백씨는 제나라 대부다. 병읍은 지명이고, 齒는 나이다. 아마도 제환공이 백씨의 식읍을 빼앗아 관중에게 주었고, 백씨는 자신의 죄를 스스로 알아서 관중의 공을 마음으로 복종하였던 것 같다. 그런 까닭에 곤궁하고 절약함으로써 생을 마쳤음에도 원망하는 말이 없었던 것이다. 순경이 말한 이른바 “서사 삼백을 그에게 주어도 부자들 중 어느 누구도 감히 거부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 것이 바로 이 일이다.
問管仲曰人也 范楊皆以爲盡人道 集註以爲猶云此人也 如何 朱子曰 古本如此說 猶詩所謂伊人 莊子所謂之人也 若作盡人道說 除管仲是箇人 他人便都不是人 更管仲也未盡得人道 “관중에 대하여 묻자, 말하길 사람이라고 하였다는 것에 대하여, 범씨와 양씨는 모두 人道를 다했다는 뜻이라고 여겼는데, 집주에서는 이 사람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고 여겼으니, 어떻게 된 것입니까?” 주자가 말하길, “옛날 본에서는 이와 같이 말했었다. 마치 시경에서 말한 소위 ‘이 사람이나 장자가 말한 소위 ‘그 사람’과 같은 것이다. 만약 人道를 다했다는 뜻으로 말한다면, 관중이 사람인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사람도 아니며, 더 나아가 관중조차도 人道를 다 하지 못하는 것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厚齋馮氏曰 騈邑三百 伯氏食邑三百家也 후재풍씨가 말하길, “騈邑三百이란 백씨의 식읍 300家란 뜻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周禮二十五家爲社 書社謂以社之戶口書於版圖者 凡三百社 운봉호씨가 말하길, “주례에 의하면 25家가 社가 되는데, 書社는 社의 호구를 판도에 적어놓은 것을 말한다. 모두 300社가 있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荀子仲尼篇 齊桓公見管仲之能 足以託國也 是天下之大智也 遂立以爲仲父 是天下之大決也 立爲仲父而貴戚莫之敢妬也 與高國之位而本朝之臣 莫之敢惡也(高氏國氏齊世卿也) 與之書社三百而富人莫之敢距也(距敵也 言齊之富人莫有敢敵管仲者) 貴賤少長莫不秩秩然從桓公而貴敬之 是天下之大節也 순자의 중니 편에 따르면, 제환공은 관중의 재능이 족히 나라를 맡길 수 있음을 알아보았으니, 이는 천하의 큰 지혜이고, 마침내 관중을 세워서 중부로 삼았으니, 이는 천하의 큰 결단인 것이다. 중부로 세웠지만 임금의 친인척 중에 누구도 감히 질투하지 못하였고, 고씨와 국씨의 지위를 내어주었지만 本朝의 신하들 중에 누구도 감히 미워하지 못하였다[고씨와 국씨는 제나라의 世卿(대대로 벼슬을 하는 卿)이었다]. 그에게 서사 300을 주었지만, 부자 중에 누구도 감히 그와 대적하지 못하였다(距는 대적한다는 말이다. 제나라의 부자들 중 어느 누구도 감히 관중과 대적하는 자가 없었다는 말이다). 귀하고 천하며 어리거나 나이 먹었거나 상관없이 누구도 차근차근 환공을 따라서 관중을 귀하여 여기고 공경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이것이 바로 천하의 큰 절개(大節)이다.
雙峯饒氏曰 此篇凡說管仲夫子每護之 孟子排管仲 皆是救時而然 夫子之時 人不知有王 仲尊王亦是有功 夫子所以護之 孟子之時天下之人 皆知尊伯術而賤王道 孟子恐功利之說熾 故於桓文管晏 一切抑之 쌍봉요씨가 말하길, “이 편에서 무릇 관중을 말함에 있어, 공자께서는 그를 매번 비호한 반면에, 맹자가 관중을 배척하였지만, 이는 모두 시대를 구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이다. 공자님의 시대에는 다른 사람들이 천자가 있음을 알지 못하였지만, 관중이 천자를 높인 것에 또한 공이 있었으니, 이 때문에 공자께서 그를 비호하신 것이다. 맹자의 시대에는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전부 霸術을 높일 줄 알아서 왕도를 천하게 여겼으니, 맹자는 功利의 설법이 치열하게 성행할까 걱정하여, 환공, 문공, 관중, 안영에 대하여 전부 억눌렀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 或問 管仲子産孰優 曰 管仲之德 不勝其才 子産之才 不勝其德 然於聖人之學 則槩(槪)乎其未有聞也 어떤 사람이 묻기를, “관중과 자산 중 누가 더 나은가요?”라고 하였다. 이에 내가 대답하길, “관중의 덕은 그 재주를 이기지 못하고, 자산의 재주는 그 덕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나 성인의 학문에 있어서는 곧 들은 바가 없었던 것에 있어서는 똑같다.”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槩平斗斛之物 謂二人平等皆未有聞於聖學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槩(槪: 평목)은 말과 곡을 평미레질하는 물건이니, 두 사람이 평등하게 모두 성학에 대하여 들은 바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管仲德不勝才 子産才不勝德 皆以資質言也 故其事業亦各隨其資以爲之 使其知聖賢大學之道 循序而漸進 成己以成物 則子産之德當與顔閔同科 而仲之才當與伊吕並駕矣 경원보씨가 말하길, “관중은 덕이 그 재주를 이기지 못하였고, 자산은 그 재주가 덕을 이기지 못하였는데, 이는 모두 자질로서 말한 것이다. 그래서 그 사업은 또한 각자 자기의 자질에 따라서 행한 것이니, 만약 그들이 성현의 대학지도를 알아서 순서에 따라 점진적으로 자신을 이룸으로써 외물을 이루어주었다면, 자산의 덕은 마땅히 안연이나 민자건과 더불어 같은 과였을 것이고, 관중의 재주는 마땅히 이윤이나 여상과 더불어 나란히 섰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陳氏曰 二子皆無大學規模 須是有大學規模 乃爲王佐才而伊吕 周召其人也 진씨가 말하길, “관중과 자산, 두 분은 모두 대학 규모의 德이 없었으니, 반드시 대학의 규모가 있어야만, 마침내 천자를 보좌할 재주를 갖춘 사람이 되는데, 이윤, 여상, 주공, 소공석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子産才不及仲 然却正當過之 如有君子之道四之類 是也 쌍봉요씨가 말하길, “자산은 그 재주가 관중에 미치지 못하였지만, 그러나 도리어 정당한 것은 그를 능가하였으니, 예컨대 군자의 도는 네 가지가 있다는 부류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