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
‘와일드’는 난폭하고 공격적이라는 뜻이고 ‘후드’는 비옷과 방한복 따위에 딸린 모자를 뜻한다. 하지만 책 제목이기도 한 이것은 청소년기 인생 시기와 그 안에 담긴 위험과 흥분, 취약성과 가능성까지 표현하기 위해 동물과 인간이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와일드’라는 단어가 적합하고 ‘후드’는 영어 접미사로 보이후드(소년시절), 걸후드(소녀시절)처럼 어떤 시절이나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네이버 후드(이웃)와 시스트 후드(여성공동체)와 같이 여럿이 모인 특정 집단을 의미하기도 하므로 청소년기를 겪고 있는 인간과 동물 모두 그런 청소년기도 부족(部族)의 일원이라는 점을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진화의 세월 동안에 모든 종이 경험하는 ‘유년기와 성인기 사이의 시기’를 〈와일드 후드〉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와일드 후드〉는 이 책의 저자들이 만든 신조어이고,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저자 ‘바버라 내터슨 호로위츠(Barbara Natterson-Horowitz)’는 의학박사이자 심장병 전문의로 하버드대학 인간진화생물학부 객원 교수이고, UCLA 데이비드게펜 의과대학 교수이면서 생태학ㆍ진화생물학 교수이며, 로스앤젤레스 동물원의 의료자문위원으로 동물들의 심혈관 질환 진료를 돕고 있다고 하며, 세계적인 과학ㆍ의학 저널에 논문을 발표하고 〈뉴욕타임스〉등 주요 신문과 잡지에 글을 기고기도 한다.
또 다른 한 명의 저자는 ‘캐스린 바워스 (Kathryn Bowers)’으로 과학 전문 기자로서, 뉴아메리카 퓨처텐스펠로우로 선정된 연구원이자, 애리조나 주립대학 온라인 잡지 〈소칼로퍼블릭스퀘어〉편집위원이기도 하다. 스탠퍼드대학을 졸업했고, 시사 잡지 〈애틀랜틱먼슬리〉편집자로 CNN 인터내셔널의 작가 겸 프로듀서이며, UCLA와 하버드대학에서 의학 관련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흔히 사춘기와 청소년기를 같은 뜻으로 쓰지만 정확한 의미는 다르다. 사춘기(pubety)는 생물학적 과정을 뜻하며 호르몬에 의해 시작되고 생식 능력을 갖추면서 끝이 난다. 사춘기는 신체적 발달만을 포함하는데 백상아리, 악어, 판다, 나무늘보, 심지어 곤충들도 사춘기를 겪는다. 에디오피아에서 발견된 320만 년 된 ‘루시’(인류의 조상 -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 여성 화석)도 사춘기를 겪었다. 6,700만 년 전에 살았던 ‘티라노사우루스 렉스(티렉스) 제인’역시 사춘기를 겪었다. 지금의 몬테나주에서 처음 화석이 발견되고 ‘제인’이라는 이름을 붙인 고생물학자들에 따르면 제인은 미처 사춘기가 끝나기 전에 죽었다고 한다.
지구상에서 관찰되는 대부분의 생물은 약 5억 4,000만 년 전, ‘캄브라이기’대폭발이 일어나고 탄생했다. 하지만 사춘기의 역사는 이보다도 더 오래되었다. 가장 오래된 단세포 원생동물도 사춘기를 겪었으며, 원생동물은 오늘날도 존재한다. ‘열대열원충’이라고 불리는 생명체는 모기를 통해 인간의 핏속에 들어와서 혈액을 타고 흘러 다니다가 그것이 사춘기에 접어드는 순간, 높은 치사율을 보이는 질병의 원인을 제공한다. 바로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기생충이다. 인간은 물론 공룡 역시도 사춘기를 겪으면서 두개골과 턱뼈와 치아 모양이 크게 자라고 바뀌었다. 실제로 백상아리는 사춘기가 끝날 때까지 무시무시한 이빨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사춘기는 오래전부터 지속된 신체적 변화를 겪는다. 하지만 몸이 자랐다고 청소년이 진정한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되려면 반드시 두 번째 단계를 거쳐야 한다. 신체적 변화와 행동을 조화시키는 단계다.
두 번째 단계까지가 청소년기(adolesence)라고 하는데 청소년기는 성숙한 어른으로 거듭날 때까지 지속된다. 몸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어른이 되려면 이 청소년기가 매우 중요하다. 이 시기는 경험을 통해서 성숙을 추구한다. 어른이 되기 위한 여정은 놀라운 혁신으로, 거기서는 불을 지피기도 하는데 보통 청소년기는 모험을 떠난다. 집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갈등을 피해 도망가기도 한다. 부모를 잃고 길을 나서기도 하며, 거친 세상으로 나아가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위험할 정도로 준비가 덜 된 상태다. 미숙함은 때로 우습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하다. 모험에 나서는 청소년기 동물은 포식자나 착취자와 맞서 싸워야 한다. 물론 친구도 만나고 적을 알아보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어쩌면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키우고 지키는 요령을 학습한다. 모험이 끝날 무렵에 청소년기 동물은 결정해야 한다. 태어난 집단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이것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주인공은 인간이 아닌 동물이다. 그들 모두는 청소년들이다. 그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남극 사우스조지아섬에서 태어나 자란 킹펭귄 ‘우르술라’는 부모를 떠나 독립한 첫날 무시무시한 포식자를 만나 죽음 직전의 상황에 내몰리기도 한다. 탄지니아 응고롱고로산에 살던 점박이 하이에나 ‘수링크’는 인간으로 치면 고등학교 때와 비슷한 시기에 하이에나 서열에 적응해야 하는데 괴롭히는 또래와 갈등을 겪기도 하였으나 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도미니카공화국 근처에서 태어난 북대서양 혹등고래 ‘솔트’는 매년 여름을 매인만에서 보내면서 성적 욕구를 마주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배운다. 익숙한 집을 떠난 유럽 늑대 ‘슬라브츠’는 스스로 먹이를 구하고 새로운 무리를 찾으려고 애쓰다 굶주림에 고통받고 물에 빠지기도 하면서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린다. 이들의 이야기는 GPS와 위성 무선 송신기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와 과학학술지 보고서, 연구 참여자의 인터뷰를 활용해 검증했다.
수억 년에 걸친 진화의 세월 속에 멀리 떨어져 있지만, 와일드 후드를 겪으며 같은 경험과 어려움을 공유하는 ‘4마리’야생동물은 모두 서로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남극의 무시무시한 바다와 탄지니아의 푸른 초원, 일렁이는 카리브해, 죽음의 삼각지대 등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와일드 후드는 자연을 넘어 인간의 삶까지 모두 포함한다. 때로 와일드 후드가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을 결정짓기도 한다. 와일드 후드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공통으로 물려받은 유산이자, 지금도 계속해서 전해지는 오래된 유산이다.
책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청소년기를 거쳐서 성인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1부 안전], [2부 지위], [3부 성], [4부 자립]으로 구분하였다. 물론 모두 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성장하는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거치기는 하지만, 그 과정들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이나 동물들 모두 이 시기는 포식자에게 무지(無知)하고 경험이 부족한 시기다. 공격자와 착취자의 눈에는 그들이 손쉬운 사냥감으로 보인다. 학습을 통해 공격자를 인지하고 제어하는 방법을 배워야 생존할 확률이 높아지기도 하고 자신감 있는 성인기에 접어들 수가 있다.
【1부】 안전
남극대륙에서 1600㎞ 떨어진 사우스조지아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킹펭귄 ‘우르술라’는 집에서 한 번도 90㎞ 이상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그는 2007년 12월 16일 처음으로 부모 품을 벗어나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그는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속력으로 멀리 헤엄쳐 갔다. 그때까지 그는 혼자 힘으로 먹이를 잡은 적도 없다. 엄마 아빠가 소화 시킨 후 되새김질해 주는 먹이를 먹었기 때문에 모든 끼니 해결은 부모 펭귄의 몫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신체적 변화가 찾아오고 나서는 행동이 바뀌기 시작했다.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부모로부터 점점 멀리 떨어진 곳까지 돌아다니고, 다른 펭귄들과 사귀고 모여서 재잘거리며 수다도 떨었다.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사회 초년생이 그렇듯 우르술라도 4가지 험난한 시험을 통과해야만 했다. 혼자 힘으로 먹이와 안전한 쉼터를 찾는 방법을 익혀야 했고, 집단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역학관계도 배워야만 했다. 뿐만아니라 짝이 될 상대도 찾아야 했다. 우르술라는 암컷이었으니, 수컷에게 제대로 구애하고 소통하는 요령도 알아야 했다. 이 모두를 망망대해에서 부모의 도움 없이 혼자 해내야만 했다. 어른 펭귄이 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살아 있어야만 가능한 일들이다. 따라서 우르술라의 첫 번째 시험은 생존이다.
펭귄의 몸에 응답기를 단 덕분에 그가 12월 16일 남극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추적 장치를 단 8마리 중, 3마리가 같은 날 집을 떠났다는 것도 알았다. 마치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동급생 3명이 신체적으로 다 자란 모습으로 더 큰 세상으로 떠날 준비를 마친 것처럼 보였지만, 청소년과 마찬가지로 펭권들도 현실 세계에서의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행동은 미숙했다. 우르술라와 부모의 동선을 추적하던 생물학자들은 부모를 떠나 멀리 헤엄쳐 가는 그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포식자들이 순찰하고 다니는 바닷속에 몸을 던지는 수천 마리의 청소년기 킹펭귄 중에서 살아남는 녀석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생존율이 고작 40%에 그쳤던 해도 있다. 운이 좋든 나쁘든 독립 후 며칠, 몇 주, 몇 달이 펭귄에게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위험천만한 시기다.
인간 청소년 역시 어른에 비하면 사고로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확률이 훨씬 높다. 미국에서는 유년기와 청소년기 사망률이 약 200%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사망 원인 중에는 거의 절반이 자동차 충돌, 추락, 음독, 총기사고 등으로 의도치 않는 비극적 결과를 낳는다. 청소년은 과속하는 경우가 많고 전반적으로 무모하다. 청소년 범죄율이 전체 사건 중 가장 높으며 35세 어른보다 살인사건 피해자가 될 확률도 5배 높다. 물에 빠져 죽는 경우도 5세 미만 유아를 제외하면 15세에서 24세까지가 가장 높다. 난폭운전이나 약물 남용, 부주의한 성관계 등 10대가 자초한 위험이 어른의 눈에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숲에서 모닥불을 피우거나 남의 오토바이를 훔쳐 타는 일처럼 비교적 수위가 낮다고 할 수 있는 행동에도 부모들은 밤새 걱정하고 뜬눈으로 지새운다. 위험을 무릅쓰는 청소년들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고 이것은 생존본능과도 정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안전에 관한 지식은 배우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도 있다. 야생어류, 파충류, 양서류, 조류, 포유류에게는 험한 세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위험에 최적화된 선천적 방어본능이 있다. ‘빨간눈청개구리’배아는 대개 7일에 걸쳐 서서히 자란 다음 부화하지만 말벌이나 뱀, 심지어 홍수와 같은 외부 위험을 감지하는 순간 발달 속도를 끌어 올려 평소보다 빨리 부화한다. 그리고 안전한 장소로 헤엄쳐 스스로를 보호한다. 선천적으로 습득하지 못한 안전 지식이 있다면 반드시 배워야 한다. 동물은 평생 안전에 대해 학습하는데, 대부분 청소년기에 심화한다. 놀람반사를 포함하여 몇 안 되는 선천적 본능에 의존하여 처음 겪는 위험을 극복하고,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안다.
수억 년 전부터 지구의 수많은 동물은 굶주린 이웃과 공존하는 방법을 배워왔다. 이 과정에서 포식자와 먹잇감의 행동을 알려주는 일종의 교전규칙이 생겨났다. 규칙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배불리 먹느냐 혹은 굶느냐가 결정되고, 반대로 사냥감 대상인 동물은 교전규칙에 생사가 달려 있다. 위험과 안전을 학습하는 청소년기 동물들은 포식자와 사냥감의 입장을 모두 이해해야 한다. 우르술라 같은 킹펭귄은 레오파드바다표범을 비롯한 포식자에게 공격적으로 사냥당하기도 하지만, 자신도 마치 표범 미사일처럼 생선이나 크릴새우를 노리는 노련한 포식자로 성장한다.
포식자 행동 뒤에 감춰진 비밀을 「포식자 행동 시퀸스」라고 하는데, ‘모든 포식자가 희생양을 성공적으로 사냥하고, 죽이기 위해서 하는 예측 가능한 일련의 공격적인 움직임’을 말한다. 포식자가 행동 시퀸스를 안다는 것은 곧 상대의 전술을 몰래 들여다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쫓기는 동물은 포식자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고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힌트를 얻게 되는 것이다. 사냥은 고전발레처럼 잘 짜인 안무를 따른다. 단계별로 다음 단계로 이어진다. 원대한 포부를 지닌 젊은 무용수처럼 육식동물이라면 포식자는 반드시 사냥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그렇게 정교하게 짜인 순서는 어떤 경우든 잘 바뀌지 않는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딱 한 가지 ‘최대한 빨리 상황을 종료하는 것’이다. 포식자는 감지하고 평가하고 공격한 다음 사냥감을 죽이지만, 희생의 대상은 즉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둘은 주어진 상황에 따라 리듬을 바꾸고 흐름을 벗어나기도 하며 갑자기 또는 동시에 멈추기도 한다.
포식자의 행동 시퀸스에서 공격과 죽이는 단계는 그전 단계인 감지나 평가보다 훨씬 끔찍하다. 공격이 시도되고 나면 포식자를 물리치기 어렵다. 싸우거나 도망치는 행동은 ‘반反포식’전략이다. 최후의 수단인 이 반포식 전략은 청소년기 동물은 느리고 약하며 경험과 자신감이 부족할 뿐 아니라, 어금니와 발톱 등 신체적 방어 수단이 어른 동물의 수준에는 못 미친다. 그래서 훨씬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렇듯 야생동물들은 최후의 수단까지 가기 전에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스스로를 보호하고 지킨다.
포식 대상자에게는 은밀한 최후 수단이 있다. 1단계 ‘눈에 띄지 마라’, 2단계 ‘능력을 과시하라’, 3단계 ‘졸도하라’, 4단계 ‘끝까지 기회를 놓치지 마라’가 그것이다. 먹이로 잡히는 순간이 되면 경기 종료다. 먹히는 단계에서 살아남는 경우는 흔치 않다. 야생에서 어린 동물이 목숨을 걸고 위험을 벗어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나 다큐멘터리가 인기 많은 이유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올빼미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박쥐를 움켜쥔다. 원래대로라면 박쥐의 숨통을 끊어서 날카로운 부리로 물어뜯는다. 이때 박쥐는 쿵쾅거리던 심장이 갑자기 느려지면서 뇌로 공급하던 혈액이 줄어들고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죽은 채 늘어진다. 변화를 감지한 올빼미가 발톱의 힘을 살짝 빼는 순간 박쥐의 심장이 다시 세차게 뛰기 시작하고, 시간당 160㎞에 달하는 엄청난 비행 속도를 십분 발휘해 안전한 곳으로 도망쳐 날아간다. 몸에 상처가 생기기는 했지만 박쥐는 올빼미로부터 이렇게 도망치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박쥐에게만 해당된다.
생존을 위해 배운다는 것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또 그것은 부모나 선생이 가르치기보다 또래들과의 놀이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우리는 흔히 또래 압력이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동물의 사회학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또래 압력은 보편적 행동이며 청소년기 동물에게 위험과 안전을 가르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전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야생에서 죽을 고비는 피할 수 있는 삶의 일부다. 어디에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순진하고 미숙한 청소년들은 왜 불필요한 위험을 추구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더 안전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다. 청소년기 동물은 일부러 위험에 다가가기도 하는데, 위험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직관적 습성을 ‘포식자 탐색(predator insption)’이라고 하며,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인간 청소년과 마찬가지로 동물 청소년 역시 위험을 제대로 감지하고 판단할 수 있는 경험이 충분하지 않다. 이런 경험을 축적하는 방법이 포식자 탐색이다.
동물은 배가 고플수록 더 많은 위험을 무릅쓴다. 은신처를 벗어나 밖으로 나오는 이유가 바로 굶주림 때문이다. 더 나은 먹잇감을 찾는 방법을 모른다면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 무리 내 강하고 나이 많은 동물이 좋은 먹이를 독차지할 때도 그렇다. 내가 의령서 근무할 때 절에서 키우던 염소가 초봄에 독초를 먹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경우를 보았는데 독이 든 먹이를 모르고 먹기도 한다. 당연히 경험이 없는 청소년기 동물이었을 것이고 청소년기 동물은 언제나 가장 배가 고프다.
킹펭귄 우르술라도 그의 친구들과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고 혼자 먹이를 찾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집을 떠났다. “어린 펭귄은 반드시 배워야 한다. 잠수도 먹이 찾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숨을 참거나 수면 위로 올라가는 등 생리적 기술도 배워 익혀야 한다.”클라멘스 펭귄연구소 연구원 퓌츠의 말이다. 비록 레오파드바다표범에게 쫓기는 신세지만 사실 펭귄은 훌륭한 사냥꾼이다. 그러나 노련한 솜씨로 물고기를 낚아채거나 크릴새우를 퍼 올리려면 장시간 연습해야 한다. 자신과 다른 펭귄을 위해 먹이를 구하는 실력 있는 어른 사냥꾼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르술라 부모는 집을 떠나는 다 큰 아이에게 손을 흔들며 기대와 상실감에 빠지는 우리 인간과는 정반대였다. 떠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지도, 점점 작아지는 모습을 눈에 담지도,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을 느끼며 머릿속으로 ‘조심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양육의 고통스런 진실은 자식이 신경 쓰고 보호해야 할 시기를 지나는 순간 부모는 자식의 운명을 거의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영원히 보호할 정신적, 신체적 힘이 없다. 자식을 너무 오래 보호하느라 포식자의 위험 죽음 등, 때로 적절한 학습 시기를 놓치면 동물이나 인간의 부모는 할 수 있는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잉보호를 받고 자라면 어른으로서 안정감을 갖는데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다.
통계적으로는 우르술라와 같은 킹펭귄 무리의 1/3은 안타까운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그의 동료 세 마리는 모두 첫 번째 시도에 안전하게 레오파드바다표범을 통과했다. 퓌츠는 전자추적 장치를 통해 이후 3개월 동안 우르술라가 지나는 곳을 빠짐없이 지켜 보았다. 우르술라는 먹이가 풍부한 남극의 남쪽으로 향했다. 하루에 10㎞ 가량 헤엄쳤다. 다른 청소년기 펭귄과 무리를 이루어 움직였는데, 또래와 함께 물고기와 크릴새우 사냥 법을 배웠다. 3개월 후에 우르술라의 신호가 끊겼다. 이후 우르술라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퓌츠는 아마도 무선 송신기의 수명이 다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포식자에게 무지하지 않은 우르술라는 성년으로 접어드는 시기를 향해 성공적인 첫발을 뗐다. 친구와 함께 잠수와 먹이 사냥법을 배운 킹펭귄은 대개 4∼5년 동안 남극해를 돌아다니며 경험을 쌓은 후 짝을 만나 새끼를 낳는다.
【2부】 지위
【3부】 성
【2부】 자립
|
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