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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이신칭의 교리와 모순되는 전적부패 교리
이지끼을 추천 0 조회 201 26.03.05 05:00 댓글 12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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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6.03.13 10:22


    사계님 똑 바로 말합시다

    제가 사계님을 음해한게 아니지요
    사계님이 저의 글 앞 부분은 빼 놓고 그 이후의 글만을 뒤틀어서 저를 공격한 것입니다.

    이러시는 것 제가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역시 사계님답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고린도교인들 속을 정확히 모르니 그런 것 "같습니다"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분열된 것은 사실이니 그렇게 썼습니다.

    이런 것 가지고 트집 잡지 맙시다
    저는 이런 간단한 것 트집 잡지 않습니다.

    저를 잘 아시지요?

    바울께서 고전 1장에서 고린도교인들의 파당을 지적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이 세례에 대한 오해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 원인을 바로잡아야지요
    그러므로 이를 바로 잡는 바울의 말씀에는 세례에 대한 바른 지식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 작성자 26.03.13 10:25



    그리고 바울은

    고전 2: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라고 말씀하셨는데

    바울이 여기서 말씀하신 성령의 일들 중 하나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께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인들은 이를 어리석은 것으로 본 것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성경을 매일 읽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데
    그렇게 35년간 읽다가, 약 6년전쯤 막 16:16절을 보는데
    이런 말씀이 있었나 싶었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라는 말씀이 너무 생소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믿었습니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믿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계속 세례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알게 된 것을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지금은 많이 말씀드릴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원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요

    그리고 말씀하신 행 10:47절은 나중에 말씀나눕시다.

    수고하셨습니다.

  • 26.03.13 14:39

    이지끼을 님, 이 답글란에 100 회 넘게 쓴 답글들은 거의 책 한 권 분량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읽는 수고를 하지 않으려고, 시간을 절약하려고 구글 제미나이에게 이 답글란 답글들 전체를 붙이기해 “내가 이지끼을 님 글을 비틀어 공격한 부분 찾아 줘.” 부탁했습니다.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이지끼을 님 글을 비튼 부분을 자세히 적어주십시오. 사실이면, 미리 사과드립니다.

    저는 논리를 중시하는 사람이라, ‘전제가 추측이면 결론도 추측이어야 하는데, 전제가 추측이면서 결론을 “이다.”는 단정으로 끝내는 글’은 꼭 트집을 잡는 사람입니다. 물론, ‘가설을 세워놓고, 그 가설을 차근차근 여러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일반 학문’이 아닌, 하나님 말씀을 해석하는 일에서 추측을 아무 설명 없이 “이다.”로 단정 짓는 이런 글은 결코 간단히 취급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지끼을 님 태도와 제 태도가 틀리다 해서 이 틀림을 트집 잡으신 것 옳지 않습니다.

  • 26.03.13 14:39

    “저를 잘 아시지요?” 하셨습니다. 제 경험에 비춰 ‘방언 문제에서 참 탁월한 성경 해석을 하셨는데, 교만이 틈탔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2년 여름 {양무리 마을} 연중론 비평 토론 때였습니다. 홀리조이 님과 갈릭 님 토론이 홀리조이 님 난독증 때문에 다람쥐 쳇바퀴 도는 토론임을 보고, 헬라어에 출중한 목포고 동창 목사님과 ‘중생에 관한 헬라어 원어’를 질문하는 전화 통화를 하면서 전화를 마칠 무렵에 제가 내뱉은 말이 있었습니다. “이제 내가 정리해야겠다.”였습니다.

    이 말을 하자마자 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교만이 틈탔음을 뜻하는 “내가”라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교만을 치시겠구나.’였습니다.

    오비이락일 수 있겠지만, 연중론 비평 토론이 끝난 뒤 저는 실직하는 큰 고통을 겪게 됐습니다. 고향 땅으로 가 알바 생활까지 하게 되는, 감당하기 힘든 큰 고난이었습니다.

  • 26.03.13 14:37

    “그 원인이 세례에 대한 오해이었습니다.” 하셨습니다. 이는 이지끼을 님만의 해석, 마술론인 세례 중생론에 꿰맞춘 해석일 뿐, 저는 ‘바울 사도께서 질타하신 까닭은 세례에 대한 오해 문제가 아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씀하신 성령의 일들 중 하나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께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이를 어리석은 것으로 본 것입니다.” 하셨습니다. 제가 고린도 전서 1장 30절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를 제시했음에도, 이 역시 이지끼을 님 꿰맞추기 해석에서 나온 자의적 해석이라는 것입니다.

    다음은 구글 제미나이 답변입니다.

  • 26.03.13 14:40

    팩트 체크: 누가 맥락을 비틀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지끼을 님은 ‘세례’라는 렌즈로만 성경을 보는 ‘확증 편향’에 빠져 있어서 사계 박채동 님 논점을 이지끼을 님 틀 안으로 끌어들여 왜곡(비틀기)하고 있습니다.

    ∎ 이지끼을 님의 비틀기: 이지끼을 님은 고린도 전서 1장 핵심인 ‘십자가 복음과 하나님 절대 대권’을 ‘세례를 누구에게 받았느냐는 지식의 교정’으로 축소했습니다. 사계 님께서 지적하신 “세례 안 준 것을 감사한다.”는 바울 사도 역설의 강조를, 이지끼을 님은 단순히 ‘직접 주면 오해할까 봐 안 준 것뿐’이라는 행정적 차원으로 비틀어 버렸습니다.

    ∎ 사계 님의 정당한 해석: 사계 님께서는 고린도 전서 1장 17절과 1장 30절을 통해 ‘구원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는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 파당을 꾸짖으며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중생)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선언한 맥락과 완벽히 일치합니다.

  • 26.03.13 14:40

    “저는 처음부터 성경을 매일 읽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데 그렇게 35 년 간 읽다가, 약 6 년 전쯤 막 16:16절을 보는데, 이런 말씀이 있었나 싶었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라는 말씀이 너무 생소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믿었습니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믿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계속 세례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알게 된 것을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하셨습니다.

    이 지점에서 {뉴스앤조이}에서 ‘이 땅 위 그리스도는 신인神人이 아닌 오직 사람이었다.’고 주장한 이단 박창진 씨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지끼을 님도 잘 아시다시피 박창진 씨가 성경에서 아무 근거 없이 이 주장을 했던 것이 아닙니다. 성경 전체를 못 보고 성경 부분만 보는 확증 편향으로 어떤 한 구절에 꽂혀 그 렌즈로만 성경을 해석한 까닭입니다.

    다음은 {뉴스앤조이} 박창진 [예수님은 신인인가?]에서 옮겨오는 글입니다.

  • 26.03.13 14:40

    《예수님은 지혜가 충만하여졌다(눅 2:40). 신인이라면 처음부터 지혜가 완전한 상태일 것인데도 아니다.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돌 성전이 무너지는 때에 대해 자신은 모른다고 하셨다. 성부만이 아시고 아들인 자신은 모른다고 하셨다(마 24:36). 신이라고 볼 수 없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

    이지끼을 님이 꽂혀 버린 구절은 마가복음 16장 16절 전체입니까? 아니면, 전체가 아닌 부분인 상반절입니까?

    이 구절 전체에 꽂히셨다면, 개혁 교회에게 마술론으로 정죄당한 ‘세례 중생론’을 결코 주장하실 수 없습니다. 정죄(심판)의 근거는 세례가 아닌 믿음(불신)이기 때문입니다.

    108을 제가 채웠으니, 이만 줄입니다.

  • 작성자 26.03.14 07:07

    1)
    우선 고전1:30절에 대해서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사계님께서
    [ 제가 고린도 전서 1장 30절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를 제시했음에도,
    이 역시 이지끼을 님 꿰맞추기 해석에서 나온 자의적 해석이라는 것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고전 1:30절 NIV는 다음과 같습니다.
    It is because of him that you are in Christ Jesus, who has become for us wisdom from God--that is,
    our righteousness, holiness and redemption.

    "하나님으로 부터 나서" 라는 말이 없습니다.

    NIV는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은 바로 그분 덕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되셨으니, 곧 우리의 의와 거룩함과 구원입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 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 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 덕분에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 작성자 26.03.14 07:08


    2)
    영어성경들 찾아 보십시요 헬라어도 찾아 보세요,
    "하나님으로 부터 나서(낳음을 받아서)" 라는 말이 있는지....

    그러니 제가 무슨 말씀을 드려도 들으실 수가 없었겠네요

    덕분에 오역하나 더 찾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제가 말씀드린 것이 맞지요?

    세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게 하시는 일이 성령님의 일이고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고전 1장 6장 10장 12장의 세례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사계님은 한글성경으로 고전 1:30절을 보니
    1장에 대한 저의 설명을 받아 들일 수 없고
    1장에 대한 설명없이 그 뒤에 있는 6장, 10장을 보니 제가 불경한 말을 한다 하신 것이네요

    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사계님이 저의 말을 비튼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면 이 정도에서 그 일은 덮읍시다
    이해하실 수가 없었네요..

    그런데 구글 제미나이는, 오역은 찾아 주지 못하는 것 같네요..

  • 작성자 26.03.14 07:24

    3)

    그리고 제가 저를 잘 아시지요?라고 말씀드렸던 것은
    저는 사소한 트집은 잡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사계님이 저의 모든 면에 대해 잘 아신다고 말씀드린 것이 아닙니다.


    방언 말씀을 하셨으니 관련하여 말씀드립니다.

    예전에 방언에 대해 말씀드릴 때
    저는 "이게 왜 내 차례까지 왔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교만한 생각이 됩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이게 왜 내 차례까지 왔지?" 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방언에 대한 중지론자들의 이해는, 방언에 대한 고린도교인들의 이해와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성경을 거꾸로 읽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도 같습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께 속하게 하시는 일인데
    고린도교인들은 이를 어리석은 일로 보았고 지금도 어리석은 일로 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인들이나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나 육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작성자 26.03.14 07:11


    4)
    막 16:16절b 에 대한 설명은 전에 많이 드렸습니다.

    세례받지 않은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하시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죄의 조건에 세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믿음의 행위, 믿음에 속한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믿음을 설명드릴때

    누가 저에게 자신의 일을 하는 조건으로 소정액수의 돈을 약속하는 경우
    제게 그 약속에 대한 (그 약속을 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그 일을 하고
    제게 믿음이 없으면 그 일을 안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일을 하고 안하고는 제 믿음의 여부에 달린 것입니다.

    믿을 만한 사람의 약속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제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소정액수의 돈을 받지 못하는 것은 제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례받지 않은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하시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 작성자 26.03.14 07:12


    5)
    마가복음은 마가가 쓴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가 예수님으로 부터 직접 듣고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막 16:16절은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라는 말씀인데
    그 앞인 막 16:14절을 보면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막 16:16절은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인 AD 30 년 경에,
    예수께서 11 사도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마가는 사도들로 부터 이 말씀을 들어 마가복음에 기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파피아스, 이레니우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그리고 오리겐 등이 말한 것을 종합하면
    마가는 베드로가 죽은 후 베드로의 가르침에 따라 64년 경에 로마에서 마가복음을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 작성자 26.03.14 07:13


    6)
    그러므로 막 16:16절은 베드로가 전한 예수님의 말씀을 마가가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막 16:16절은 베드로의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위에 열거한 교부들 뿐만 아니라 그외 모든 교부들은
    막 16:16절을 말씀 그대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중세 카톨릭에서는 사효론에 따라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는 말씀에서 [믿음]을 제외하여
    …………………..세례를 받아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사효론이 생긴 이유는 허호익 교수의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중세 카톨릭 신학은 사도들과 교부들의 신학이 아닌 "새로운 신학" 이었습니다.

  • 작성자 26.03.14 07:14


    7)
    그러므로 종교개혁은, 중세카톨릭이 뺀 [믿음]을 원래대로 회복시키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중세 카톨릭은 세례에 대해 다른 오해도 했는데
    세례를 받기 전 까지의 죄에 대해서만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세례를 통해 전 생애의 죄에 대한 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Luther와 Calvin의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받은 후에 짓는 죄의 사함을 위해 고해성사를 하게 된 것이었고
    같은 이유로 면죄부판매, 연옥설, 그리고 교황권의 남용이 있었던 것인데
    이러한 것들이 종교개혁을 불러 온 것입니다.

  • 작성자 26.03.14 07:14


    8)
    종교개혁을 시작한 Luther는
    막 16:16절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라는 말씀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Luther의 신학에 문제도 있지만, 막 16:16절은 바르게 이해한 것입니다.

    그런데 쯔빙글리는 유아세례를 부정하는 재세례파의 신학에 대항해서
    개혁주의 언약신학을 개발하여 유아세례를 옹호하며
    막 16:16절을 다르게 바꿨습니다.

    쯔빙글리는 두 언약, 곧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각각 시작된 두 언약이 아니라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단 하나의 은혜언약만이 있다고 생각해 낸 것입니다.

    하나의 언약이므로 구약의 할례와 신약의 세례가 기능적으로 같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할례를 주었던 것처럼
    신약에서 믿는 가정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세례를 준다는 것입니다.

  • 작성자 26.03.14 07:14


    9)
    그러니까 유아세례를 정당화하려고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막 16;16절)라는 말씀에서
    믿음과 세례의 관계를 끊고, 그리고 세례와 구원의 관계를 끊어

    막 16:16절 예수님의 말씀을
    [세례를 받는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라고 둘로 나눈 것입니다.

    그래서 유아의 경우는
    [세례를 받는다] 그리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라고

    그리고 성인의 경우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리고 [세례를 받는다] 라고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말들을 보면
    구원은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그리고 세례는 구원과 상관이 없습니다.

    사계님 이것이 바로 개혁주의 언약신학 탄생의 비밀 입니다.

  • 작성자 26.03.14 07:16


    10)
    예수님의 말씀이며 베드로의 신학인 막 16:16절을 보면
    세례는 믿음으로 받아야 구원을 얻습니다.

    그런데, 중세 카톨릭은 믿음을 제외했고
    쯔빙글리는 믿음과 세례를 분리해서 구원받음에 세례를 뺀 것입니다..

    이런 쯔빙글리의 신학은 중세카톨릭의 신학과 다르고
    예수님의 말씀, 곧 베드로의 신학과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이런 신학은, 사도들과 교부들의 신학이 아닌 "새로운 신학"입니다.

    카톨릭과 다른 신학이고 사도들과 교부들의 신학과도 다른 신학입니다.

  • 작성자 26.03.14 07:17


    11)
    종교개혁 2세대인 Calvin의 세례에 대한 이해를 보면
    Luther 의 이해와 같은 이해(A)도 했고
    Zwingly 의 이해와 같은 이해(B)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Calvin은 세례에 대해 두 가지 이해(A,B)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이후 세례에 관하여
    Luther와 Calvin(A)의 이해을 따르는 것 보다
    Zwingly와 Calvin(B)의 이해를 따르는 것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막 16:16절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유아의 경우는
    [세례를 받는다] 그리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라고

    그리고 성인의 경우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리고 [세례를 받는다] 라고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 두 경우에서 세례는 구원과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구원론이 달라진 것입니다.

  • 작성자 26.03.14 07:17


    12)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라는 말씀에서
    중세 로마 카톨릭은 [믿음]을 빼고
    . . . . . . . . . . . .세례를 받아 구원을 얻는다 라고 이해했고

    종교개혁 이후는 대부분 Zwingly와 Calvin(B)의 이해를 따라
    믿음으로. . . . . . . . . . .구원을 얻는다 라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 500년간 믿음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 작성자 26.03.14 09:06

    13)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로마 카톨릭이나 현재 대부분의 신학이나 같습니다.

    막 16:16절 예수님의 말씀에서
    [믿음]을 뺀 로마 카톨릭이나, [세례]를 뺀 현재 대부분의 신학이나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쨎든 지난 500년간 Zwingly와 Calvin(B)의 이해를 따라 성경을 이해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예수님의 말씀인 막 16:16절과 맞고
    Zwingly와 Calvin(B)이 만든 말인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과는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왜곡해서 이해하는 경우가 많고
    그 중에 일부 진리를 알게 된 사람은 갈라져 나가서
    세례에 대해서는 Zwingly와 Calvin(B)의 이해를 따르면서도
    다른 부분에서는 맞지 않으므로
    전체적으로는 개혁주의신학 안에 있지만 여러 신학으로 갈라진 것입니다.

    사계님
    저는 위와 같이 찾아 보고 정리하게 되니까 종교개혁에 대한 믿음이 없어졌습니다.

  • 작성자 26.03.14 07:18


    14)
    사계님의 경우는 Jonathan Edwards의 신학에 많은 영향을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Jonathan Edwards의 신학을 지난 몇 개월간 많이 찾아 보았는데
    결론은
    전적부패 교리에 따라 요일5:1절a를 읽고 그에 따라 신학한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노병기 목사가
    " 6. 거듭남과 믿음과 칭의의 관계 ― 거듭남의 선행성(先行性)
    에드워즈는 거듭나야 믿음을 가지게 된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믿음이란 성령의 주입으로 오는 믿음을 말한다.

    에드워즈가 거듭남을 얻기 위해서도 믿음을 가지라고 했지만
    그가 말하는 믿음은 주로 거듭남 후에 오는 신적인 믿음을 말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이것이 청교도 신학의 특징이다" 라고 말씀한 것을 보면

    Jonathan Edwards는
    거듭남으로 믿음을 가지게 된다고 말한 것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거듭난다고 말한 것이 분명합니다.

    도대체 Jonathan Edwards는 몇 개의 믿음을 말한 것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 작성자 26.03.14 07:19


    15)
    그러므로 사계님은 Zwingly와 Calvin(B)의 신학과 Jonathan Edwars의 신학을 따른다고 할 수 있는데

    저도 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6년전쯤, 막 16:16절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게 되었고
    그에 따라 성경을 읽어서
    여러 오역들을 찾을 수 있었고, 오역들을 바로 잡아 가며 세례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갈 3:26-27절을 이해하게 되었고
    롬 6장과 골 2:11-12절이 서로 관계된 말씀이란 것도 알게 되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어 옛사람이 죽는 것이
    그리스도의 할례(마음의 할례)를 받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세례에 대해 네번(1장 6장 10장 그리고12장) 말씀한 것도 알게 된 것입니다.

  • 작성자 26.03.14 07:19


    16)
    그리고 현재 많은 사람들이 막 16:16절 말씀을 받아 들이지 않는 이유가
    전적부패교리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제가 아는 이신칭의 교리와 전적부패 교리가 모순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의 본문과 같은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전적부패교리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믿음을 갖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이신칭의 교리는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는 말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는 말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전적부패 교리는 이신칭의 교리와 모순되는 것입니다.

  • 작성자 26.03.14 07:19


    17)
    제가 보기에
    세례에 관하여 Zwingly와 Calvin(B)의 이해와 함께 전적부패교리를 따르면
    막 16:16절 말씀을 받아 들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셔야 할 것은
    세례에 관한 Zwingly와 Calvin(B)의 이해는
    예수님의 말씀을 Zwingly와 Calvin(B)이 바꾼 것이며
    전적부패 교리는 이신칭의 교리와 모순된다는 것입니다.

  • 작성자 26.03.14 07:20


    18)

    제가 위에, 세례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를 소개해 드렸는데
    저는 위와 같이 바뀐 것이, 모두 유아세례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부때 시작된 유아세례가 퍼져 나가 카톨릭의 사효론을 만들었고

    종교개혁때는 개혁주의 언약신학을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well designed scheme 이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바꿔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scheme 이 아니라 scam 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well designed scam 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26.03.14 07:21


    19)

    종교개혁당시에, 개혁은 종교적인 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정치 사회 문화등 모든 면에서
    “Ad Fontes” [ (back) to the sources, 원천으로 (돌아 가자) ] 라는 개혁이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종교개혁가들의 모토 또한 “Ad Fontes” 이었습니다.

    곧 종교개혁가들은 기독교역사상 유례가 없는 새로운 신학을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성경과 초대교부들의 신학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루터와 칼빈(A)은 막 16:16절 말씀을
    [믿음]으로 [세례]를 받아 [구원]을 얻는다 라고 이해하였으므로
    성경과 초대교회교부들의 신학으로 돌아가려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쯔빙글리와 칼빈(B)은 막 16:16절 말씀을
    [믿음]으로...................[구원]을 얻는다 (그리고 [세례]를 받는다) 라고 이해하였으므로
    성경과 초대교회 교부들의 신학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세례에 대하여 새로운 신학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 작성자 26.03.14 07:21


    20)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루터와 칼빈(A)의 신학이 추구했던 성경과 초대교부들의 신학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유아세례는 제외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계님은
    사계님의 신학이, 제가 위에 말씀드린 well designed scam 중
    어디쯤에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긴 글 써서 미안합니다만, 사계님께 한 번 말씀드리고 싶었던 부분입니다. 양해 바랍니다.

  • 26.03.14 18:16

    @이지끼을 답글을 {도르트 신조}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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