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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경 (典 經)
【공사 1장 1절】시속에 말하는 개벽장은 삼계의 대권을 주재하여 비겁에 쌓인 신명과 창생을 건지는 개벽장(開闢長)을 말함이니라. 상제께서 대원사에서의 공부를 마치신 신축(辛丑)년 겨울에 창문에 종이를 바르지 않고 부엌에 불을 지피지 않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음식을 전폐하고 아흐렛동안 천지공사를 시작하셨도다. 이 동안에 뜰에 벼를 말려도 새가 날아들지 못하고 사람들이 집 앞으로 통행하기를 어려워하였도다.
【공사 1장 2절】상제께서 이듬해 사월에 김 형렬의 집에서 삼계를 개벽하는 공사를 행하셨도다. 이 때 상제께서 그에게 가라사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따라서 행할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느니라. 그것을 비유컨대 부모가 모은 재산이라 할지라도 자식이 얻어쓰려면 쓸때 마다 얼굴이 쳐다보임과 같이 낡은 집에 그대로 살려면 엎어질 염려가 있으므로 불안하여 살기란 매우 괴로운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개벽하여야 하나니 대개 나의 공사는 옛날에도 지금도 없으며 남의 것을 계승함도 아니오.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오. 오직 내가 지어 만드는 것이니라. 나는 삼계의 대권을 주재하여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의 무궁한 선운을 열어 낙원을 세우리라」하시고 「너는 나를 믿고 힘을 다하라」고 분부하셨도다.
【공사 1장 3절】상제께서 「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어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먼저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이것이 곧 삼계공사(三界公事)이니라」고 김 형렬에게 말씀하시고 그 중의 명부공사(冥府公事)의 일부를 착수하셨도다.
【공사 1장 4절】상제께서 삼계의 대권(三界·大權)을 수시수의로 행하셨느니라. 쏟아지는 큰 비를 걷히게 하시려면 종도들에게 명하사 화로에 불덩이를 두르게도 하시고 술잔을 두르게도 하시며 말씀으로도 하시고 그 밖에 풍우 · 상설 · 뇌전을 일으키는 천계대권을 행하실 때나 그외에서도 일정한 법이 없었도다.
【공사 1장 5절】상제께서 가라사대 「명부의 착란에 따라 온 세상이 착란하였으니 명부공사가 종결되면 온 세상 일이 해결되느니라.」 이 말씀을 하신 뒤부터 상제께서 날마다 종이에 글을 쓰시고는 그것을 불사르셨도다.
【공사 1장 6절】공사에 때로는 주육과 단술이 쓰이고 상제께서 여러 종도들과 함께 그것을 잡수시기도 하셨도다.
【공사 1장 7절】상제께서 김 형렬의 집에서 그의 시종을 받아 명부공사를 행하시니라. 상제께서 형렬에게 「조선명부(朝鮮冥府)를 전 명숙(全明淑)으로, 청국명부(淸國冥府)를 김 일부(金一夫)로, 일본명부(日本冥府)를 최 수운(崔水雲)으로 하여금 주장하게 하노라」고 말씀하시고 곧 「하룻밤 사이에 대세가 돌려 잡히리라」고 말씀을 잇고 글을 써서 불사르셨도다.
【공사 1장 8절】상제께서 임인년 가을 어느날에 김 형렬에게 「풀을 한 곳에 쌓고 쇠꼬리 한 개를 금구군 용암리(金溝郡龍岩里)에서 구하여 오게 하고 또 술을 사오고 그 쌓아놓은 풀에 불을 지피고 거기에 쇠꼬리를 두어 번 둘러내라」고 이르시고 다시 형렬에게 「태양을 보라」고 말씀하시니라. 형렬이 햇무리가 나타났음을 아뢰이니라. 그 말을 상제께서 들으시고 「이제 천하의 형세가 마치 종기를 앓음과 같으므로 내가 그 종기를 파하였노라」하시고 형렬과 술을 드시었도다.
【공사 1장 9절】상제께서 어느날 종도들에게 「내가 이 공사를 맡고자 함이 아니니라. 천지신명이 모여 상제가 아니면 천지를 바로잡을 수 없다 하므로 괴롭기 한량 없으나 어찌할 수 없이 맡게 되었노라」고 말씀하셨도다.
【공사 1장 10절】상제께서 계묘년 정월에 날마다 백지 두 서너장에 글을 쓰거나 또는 그림(符)을 그려 손이나 무우에 먹물을 묻혀 그것들에 찍고 불사르셨도다. 그 뜻을 종도들이 여쭈어 물으니 「그것은 천지공사에 신명을 부르는 부호이니라」고 알려주셨도다.
【공사 1장 11절】상제께서 어느날 종도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묵은 하늘은 사람을 죽이는 공사만 보고 있었도다. 이후에 일용 백물이 모두 핍절하여 살아 나갈 수 없게 되리니 이제 뜯어고치지 못하면 안되느니라」하시고 사흘 동안 공사를 보셨도다. 상제께서 공사를 끝내시고 가라사대 「간신히 연명은 되어 나가게 하였으되 장정은 배를 채우지 못하여 배고프다는 소리가 구천에 달하리라」하셨도다.
【공사 1장 12절】상제께서 김 병욱에게 「이제 국세가 날로 기울어 정부는 매사를 외국인에게 의지하게 됨에 따라 당파가 분립하여 주의 주장을 달리하고 또는 일본과 친선을 맺고 또는 노국에 접근하니 그대의 생각은 어떠하느냐」고 물으시기 그가 「인종의 차별과 동서의 구별로 인하여 일본과 친함이 옳을까 하나이다」고 상제께 대답하니 상제께서 「그대의 말이 과연 옳도다」하시고 서양 세력을 물리치고자 신명공사를 행하셨도다.
【공사 1장 13절】이제 동양(東洋) 형세가 그 존망의 급박함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있으므로 상제께서 세력이 서양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공사를 행하셨도다.
【공사 1장 14절】상제께서 을사년에 함열에 계실 때이니라. 형렬을 비롯한 종도들을 거느리고 익산군 만중리(益山郡萬中里) 정 춘심의 집에 가셔서 춘심을 명하사 선제를 지내리니 쇠머리 한 개를 사오게 하고 백지 한 권을 길이로 잘라 풀로 이어붙이고 절반을 말아 두 덩이로 만들고 한 덩어리씩 각각 그릇에 담아두셨도다. 상제께서 밤중에 앞 창문에 두 구멍을 뚫고 쇠머리를 삶아서 문앞에 놓고 형렬과 광찬으로 하여금 문 밖에 나가서 종이 덩어리를 하나씩 풀어서 창구멍으로 들여보내게 하시고 문안에서는 종이 끝을 다시 말으시더니 종이 덩어리가 다 풀리니라. 별안간 천둥과 같은 기적소리가 터지니라. 이 소리에 외인들도 놀랐도다.
【공사 1장 15절】그리고 상제께서 정 성백에게 젖은 나무 한 짐을 부엌에 지피게 하고 연기를 기선 연통의 그것과 같이 일으키게 하시고 「닻줄을 풀었으니 이제 다시 닻을 거두리라」고 말씀하시자 별안간 방에 있던 종도들이 모두 현기증을 일으켜 혹자는 어지럽고 혹자는 구토하고 나머지 종도는 정신을 잃었도다. 이 공사에 참여한 종도는 소 진섭(蘇鎭燮) · 김 덕유(金德裕) · 김 광찬(金光贊) · 김 형렬(金亨烈) · 김 갑칠(金甲七) 그리고 정 성백(鄭成伯)과 그의 가족들이었도다. 덕유는 문밖에서 쓰러져 설사를 하고 성백의 가족은 모두 내실에서 쓰러지고 갑칠은 의식을 잃고 숨을 잘 쉬지 못하는지라. 이를 보시고 상제께서 친히 청수를 갑칠의 입에 넣어주시고 그의 이름을 부르시니 바로 그는 깨어나니라. 차례 차례로 종도들과 가족의 얼굴에 청수를 뿌리거나 마시게 하시니 그들이 모두 기운을 되찾으니라. 덕유는 폐병의 중기에 있었던 몸이었으나 이 일을 겪은 후부터 그 증세가 없어졌도다. 이것은 무슨 공사인지 아무도 모르나 진묵(震黙)의 초혼이란 말이 있도다.
【공사 1장 16절】병오년 정월 초사흘에 김 형렬과 김 성화의 부자와 김 보경의 부자와 김 광찬의 숙질이 동곡에서 상제를 시좌하고 상제의 명하신 대로 하루 동안 말도 아니하고 담배도 끊고 있을 때 상제께서 이틀 후에 여러 종도들을 둘러앉히고 당부하시기를 「오늘 호소신이 올 것이니 너희는 웃지 말라. 만일 너희 중 누구 한사람이라도 웃으면 그 신명이 공사를 보지 않고 그냥 돌아갈 것이고 그가 한번 가면 어느 때에 다시 올지 모를 일이니 깊이 명심하고 주의하라.」종도들은 깊이 명심하고 조심하더니 갑자기 성백이 큰 웃음을 터뜨리니 모두 따라 웃은지라. 그날 오후에 성백은 별안간 오한을 일으켜 심히 고통하더니 사흘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노라니 상제께서 성백을 앞에 눕히고 글 한절을 읽으시니 그가 바로 쾌유하였도다. 상제께서 날마다 백지에 그림 같은 약도와 글자를 써서 불사르셨도다.
【공사 1장 17절】김 광찬 · 신 원일 · 정 성백 · 김 선경 · 김 보경 · 김 갑칠 · 김 봉규 등 여러 종도들이 이월 그믐에 동곡에 모였느니라. 다음 달 이튿날 상제께서 공사를 보시기 위하여 서울로 떠나시면서 전함은 순창(淳昌)으로 회항하리니 형렬은 지방을 잘 지키라고 이르시고 각기 자기의 소원을 종이에 기록하라고 모여있는 종도들에게 명하시니 그들이 소원을 종이에 적어 상제께 바치니 상제께서 그 종이에 안경을 싸시고 남기 · 갑칠 · 성백 · 병선 · 광찬을 데리고 군항(群港)으로 가서 기선을 타기로 하시고 남은 사람은 대전(大田)에서 기차를 타라고 이르신 후에 이것을 수륙병진이라고 부르셨도다. 그리고 상제께서 원일에게 「너는 입경하는 날로 먼저 종이에 천자 부해상(天子浮海上)이라고 정서하여 남대문에 붙이라」고 명하셨도다. 원일은 곧 여러 사람과 함께 대전으로 떠났도다.
【공사 1장 18절】상제께서 군항으로 떠나시기 전에 병선에게 「영세 화장 건곤위 대방 일월 간태궁(永世花長乾坤位 大方日月艮兌宮)을 외우라」고 명하시니라. 군항에서 종도들에게 물으시기를 「바람을 걷고 감이 옳으냐 놓고 감이 옳으냐.」 광찬이 「놓고 가시는 것이 옳은가 생각하나이다」고 대답하거늘 상제께서 다시 종도들에게 오매 다섯개씩을 준비하게 하시고 배에 오르시니 종도들이 그 뒤를 따랐도다. 항해 중 바람이 크게 일어나니 배가 심하게 요동하는도다. 종도들이 멀미로 심하게 고통하므로 상제께서 「각자가 오매를 입에 물라」고 이르시고 갑칠로 하여금 종이에 싼 안경을 갑판 위에서 북쪽을 향하여 바다 위에 던지게 하였으되 그가 북쪽을 분간하지 못하여 망서리고 있는지라. 상제께서 다시 갑칠을 불러들여 「왜 얼른 던지지 못하느냐」고 꾸짖으시니 그는 그대로 아뢰었도다. 상제께서 「번개 치는 곳에 던지라」고 이르시니 그는 다시 갑판에 올라가니 말씀이 계신 대로 한 쪽에서 번개가 치는지라 그 곳을 향하여 안경을 던졌도다.
【공사 1장 19절】이튿날 배가 인천에 닿으니 일행은 배에서 내려 기차로 바꿔 타고 서울에 이르니 광찬이 마중나와 상제를 황교(黃橋)에 사는 그의 종제 김 영선(金永善)의 집으로 안내하였는데 원일은 남대문에 글을 써 붙이고 먼저 와 있었도다.
【공사 1장 20절】상제께서 십여일 동안 서울에 계시면서 여러 공사를 보셨도다. 영선의 이웃에 사는 오 의관(吳議官)이 삼년전부터 해솟병으로 잠을 이루지 못해 매우 신고하고 있던 터에 상제의 신성하심을 전하여 듣고 상제를 뵈옵기를 영선에게 애원하기에 영선이 그것을 상제께 전하니 상제께서 의관을 불러 글을 써주시고 「이것을 그대가 자는 방에 간수하여 두라」이르시니 그는 황송하게 여기고 이르신 대로 행하였느니라. 그는 그날부터 잠에 들 수 있더니 얼마 후에 해소도 그쳐 기뻐하도다.
【공사 1장 21절】갑칠은 전주를 떠날 때부터 설사하는 것을 참다가 상제께 아뢰니 상제께서 「이로부터 설사가 멎고 구미가 돋으리라」고 말씀하시고 크게 웃으시니라. 갑칠이 상제의 신성에 대한 확신이 설사를 멎게 하였느니라. 상제께서 서울에서 여러 공사를 보시던 어느날 해솟병에서 제생(濟生)된 오 의관의 아내가 다년간의 지병인 청맹으로 앞을 잘못 보는지라. 그 여인이 또한 병을 고쳐 주시기를 애원하거늘 상제께서 그 환자의 창문 앞에 이르러 환자와 마주 향하여 서시고 양산대로 땅을 그어 돌리신 후 돌아오시더니 이로부터 눈이 곧 밝아졌으니 오 의관의 부부가 크게 감읍하고 지성으로 상제를 공양하였도다.
【공사 1장 22절】상제께서 어느날 벽력표를 땅에 묻고 나서 종도들에게 「모두들 제각기 흩어져서 돌아가라. 십년후에 다시 만나리라. 십년도 십년이요. 이십년도 십년이요. 삼십년도 십년이니라.」고 말씀하셨도다. 누가 여쭈기를 「四십년은 십년이 아니 오니까.」이에 상제께서 「사십년도 십년이나 그것을 넘지는 않으리라.」고 말씀 하시고 모두 돌려 보내시니라. 상제께서는 오직 광찬만을 데리고 며칠 더 머무시더니 광찬에게 돈 백냥을 주시면서 「네가 먼저 만경(萬頃)에 가서 나의 통지를 기다리라」이르셨도다.
【공사 1장 23절】四월 어느날 형렬이 상제로부터 말씀을 들으니라. 「내가 이제 화둔(火遁)을 쓰리니 너의 집에 화재가 나면 온 동리가 다 탈것이로. 그 불기가 커져서 세계 민생에게 큰 화를 끼치게 될지니라.」형렬이 말씀대로 앞날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놀라며 가족을 단속하여 종일토록 성냥과 화롯불에 마음을 쏟게 하였도다.
【공사 1장 24절】상제께서 이달 그믐에 동곡으로 돌아오신 다음날 형렬을 데리고 김 광찬이 가 있는 만경에 가셨을 때에 최 익현이 홍주(洪州)에서 의병을 일으키니 때는 모를 심는 시기이나 가뭄이 오래 계속되어 인심이 흉흉하여 사람들이 직업에 안착치 못하고 의병에 들어가는 자가 날로 증가하여 더욱 의병의 군세가 왕성하여 지는지라. 상제께서 수일간 만경에 머무시면서 비를 흡족하게 내리게 하시니 비로소 인심이 돌아가 농사에 종사하는 자가 날로 늘어나더라. 이때 최 익현은 의병의 갑작스러운 약세로 순창에서 체포되니라. 그가 체포된 소식을 들으시고 상제께서는 만경에서 익산 만중리 정 춘심의 집으로 떠나시며 가라사대 「최 익현의 거사로써 천지신명이 크게 움직인 것은 오로지 그 혈성의 감동에 인함이나 그의 재질이 대사를 감당치 못할 것이고 한재까지 겹쳤으니 무고한 생민의 생명만을 잃을 것이니라. 때는 실로 흥망의 기로이라 의병을 거두고 민족의 활로를 열었느니라」고 하셨도다.
【공사 1장 25절】상제께서 종도와 함께 계실 때 김 광찬에게 「네가 나를 어떠한 사람으로 아느냐」고 물으시니 그가 「촌 양반으로 아나이다」고 대답하니라. 다시 상제께서 물으시기를 「촌 양반은 너를 어떠한 사람이라 할 것이냐.」 광찬이 여쭈니라. 「읍내 아전이라 할 것이외다.」 그의 말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가라사대 「촌 양반은 읍내의 아전을 아전놈이라 하고 아전은 촌 양반을 촌 양반놈이라 하나니 나와 너가 서로 화해하면 천하가 다 해원하리라」하셨도다.
【공사 1장 26절】상제께서 개고기를 상등인의 고기로서 즐기셨도다. 종도가 그 연유를 묻기에 상제께서 「이 고기는 천지 망량(魍魎)이 즐기니 선천에서는 도가가 기(忌)하였으므로 망량이 응치 아니하였나니라.」고 말씀하셨도다.
【공사 1장 27절】상제께서 순창 농암(籠岩) 박 장근의 집에 가셔서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곳에 큰 기운이 묻혀 있으니 이제 그 기운을 내가 풀어 쓰리라. 전 명숙과 최 익현이 있었으되 그 기운을 쓸만한 사람이 되지 못하여 동학이 성공하지 못하였느니라」하셨도다.
【공사 1장 28절】하루는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오주(五呪)를 수련케 하시고 그들에게 「일곱 고을 곡식이면 양식이 넉넉하겠느냐」고 물으시니 종도들이 말하기를 「쓰기에 달렸나이다.」고 아뢰니 상제께서 다시 가라사대 「그렇다 할지라도 곡간이 찼다 비었다 하면 안 될 것이니 용지불갈(用之不渴)하여야 하리라.」 종도들이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아시고 상제께서 백지에 저수지와 물도랑의 도면을 그려 불사르시면서 가르치셨도다. 「이 곳이 운산(雲山)이라. 운암강(雲岩江) 물은 김제 만경(金堤萬頃) 들판으로 돌려도 하류에서는 원망이 없을 것이니 이 물줄기는 대한불갈(大旱不渴)이라. 능히 하늘을 겨루리라. 강 태공(姜太公)은 제(齊) 나라 한고을에 흉년을 없앴다고 하나 나는 전북(全北) 칠읍(七邑)에 흉년을 없애리라」하셨도다.
【공사 1장 29절】상제께서 어느날 종도들이 「중천신은 후사를 못둔 신명이니라. 그러므로 중천신은 의탁할 곳을 두지 못하여 황천신으로부터 물과 밥을 얻어먹고 왔기에 원한을 품고 있었느니라. 이제 그 신이 나에게 하소연 하므로 이로부터는 중천신에게 복을 주어 원한을 없게 하려하노라.」는 말씀을 상제로부터 들었도다.
【공사 1장 30절】상제께서 「하도낙서 지인지감 김 형렬, 출장입상 김 광찬, 기연미연 최 내경, 평생불변 안 내성, 만사불성 김 송환 (河圖洛書知人之鑑金亨烈 出將入相金光贊 旣然未然崔乃敬 平生不變安內成 萬事不成金松煥)」이라 쓰셔서 불사르시고 날이 저물었을 때 쌀 열말씩을 종도들에게 나누어서 덕찬과 형렬의 집에 보내셨도다.
【공사 1장 31절】또 가라사대 「앞으로 오는 좋은 세상에서는 불을 때지 않고서도 밥을 지을 것이고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서도 농사을 지을 것이며 도인의 집집마다 등대 한개씩 세워지리니 온 동리가 햇빛과 같이 밝아지리라. 전등은 그 표본에 지나지 않도다. 문고리나 옷걸이도 황금으로 만들어질 것이고 금 당혜를 신으리라.」하셨도다.
【공사 1장 32절】상제께서 「이제는 해원시대니라. 남녀의 분별을 틔워 제각기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풀어 놓았으나 이후에는 건곤의 위치를 바로잡아 예법을 다시 세우리라.」고 박 공우에게 말씀하시니라. 이때 공우가 상제를 모시고 태인읍을 지나는데 두 노파가 상제의 앞을 가로질러 지나가기에 상제께서 길을 비켜 외면하셨도다.
【공사 1장 33절】또 공우를 데리고 정읍으로 향하실 때 상제께서 「마음으로 천문지리를 찾아보라」하시기에 공우가 머리를 숙여 풍운조화를 생각하니라. 상제께서 별안간 공우를 돌아보시며 「그릇되게 생각하고 있으니 다시 찾아라.」이르시니 그는 놀라서 어찌 할 바를 모르다가 그릇되게 생각한 것을 뉘우치니라. 그는 다시 천문지리를 마음으로 찾다가 정읍에 이르니라. 이날 밤에 상제께서 눈비가 내리는 것을 내다보시면서 공우에게 「너의 한 번 그릇된 생각으로 천기가 한결 같지 못하다.」고 책망하셨도다.
【공사 1장 34절】하루는 종도들이 상제의 말씀을 좇아 역대의 만고 명장을 생각하면서 쓰고 있는데 경석이 상제께 「창업군주도 명장이라 하오리까」고 여쭈니 상제께서 「그러하니라」말씀하시니라. 경석이 황제(黃帝)로부터 탕무(湯武) · 태공(太公) · 한고조(漢高祖) 등을 차례로 열기하고 끝으로 전 명숙을 써서 상제께 올리니 상제께서 그에게 「전 명숙을 끝에 돌린 것은 어찌된 일이뇨」물으시니 경석이 「글을 왼쪽부터 보시면 전 명숙이 수위가 되나이다.」고 답하였도다. 상제께서 그의 말을 시인하시고 종도들을 향하여 「전 명숙은 만고 명장이라. 백의 한사로 일어나서 능히 천하를 움직였도다.」고 일러 주셨도다.
【공사 1장 35절】상제께서 어느날 경석에게 가라사대 「전에 네가 나의 말을 좇았으나 오늘은 내가 너의 말을 좇아 공사를 처결하게 될 것인 바 묻는 대로 잘 생각하여 대답하라.」이르시고 「서양 사람이 발명한 문명이기를 그대로 두어야 옳으냐 걷어야 옳으냐.」고 다시 물으시니 경석이 「그대로 두어 이용함이 창생의 편의가 될까 하나이다.」고 대답하니라. 그 말을 옳다고 이르시면서 「그들의 기계는 천국의 것을 본 딴 것이니라.」고 말씀하시고 또 상제께서 여러가지를 물으신 다음 공사로 결정하셨도다.
【공사 1장 36절】상제께서 앞날을 위하여 종도들을 격려하여 이르시니라. 「바둑에서 한수만 높으면 이기나니라. 남이 모르는 공부를 깊이 많이 하여두라. 이제 비록 장량(張良) · 제갈(諸葛)이 쏟아져 나올지라도 어느 틈에 끼어 있었는지 모르리라. 선천개벽 이후부터 수한(水旱)과 난리의 겁재가 번갈아 끊임없이 이 세상을 진탕하여 왔으나 아직 병겁은 크게 없었나니 앞으로는 병겁이 온 세상을 뒤덮어 누리에게 참상을 입히되 거기에서 구해낼 방책이 없으리니 모든 기이한 법과 진귀한 약품을 중히 여기지 말고 의통을 잘 알아 두라. 내가 천지공사를 맡아 봄으로부터 이 동토에서 다른 겁재는 물리쳤으나 오직 병겁만은 남았으니 몸 돌이킬 여가가 없이 홍수가 밀려 오듯 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공사 2장 1절】상제께서 정미년 三월초에 광찬을 대동하고 말점도(末店島)에 들어가시려고(광찬의 재종이 말점도에서 어업을 경영하고 있었음) 갑칠과 형렬을 만경 남포(南浦)에 불러 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지금 섬으로 들어가는 것은 천지공사로 인하여 정배됨이니 너희들은 성백(成伯)의 집에 가서 그와 함께 四十九일 동안 하루에 짚신 한 켤레와 종이등 한개씩을 만들라. 그 신을 천하 사람에게 신게 하고 그 등으로 천하 사람의 어둠을 밝히리라」하셨도다. 두 사람은 명을 받들어 성백의 집에 가서 그대로 시행하였도다. 그후 상제께서 말점도로부터 나오셔서 그 짚신을 원평 시장에 가서 팔게 하시고 그 종이등에는 각기 「음양(陰陽)」두 글자를 쓰셔서 불사르시니라.
【공사 2장 2절】또 백지로 고깔을 만들어 마장군(馬將軍)이라 써서 문위에 걸고 짚을 한 아름쯤 되게 묶어 인경을 만들어 방가운데에 달아매고 백지를 바른 다음에 二十四 방위자를 둘러 쓰고 그 글자 사이에 다른 글자를 써 넣고 또 그 위에 백지를 오려서 비늘을 달아 붙이시니 그 모형이 마치 철갑옷과 같아지니라. 그 자리에 형렬 · 공신 · 광찬 · 장근 · 응종 · 원일 · 도삼 · 갑칠 · 그외 몇 사람이 있었도다.
【공사 2장 3절】또 상제께서 장근으로 하여금 식혜 한 동이를 빚게 하고 이날 밤 초경에 식혜를 큰 그릇에 담아서 인경 밑에 놓으신 후에 「바둑의 시조 단주(丹朱)의 해원도수를 회문산(回文山)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에 붙여 조선 국운을 돌리려 함이라. 다섯 신선 중 한 신선은 주인으로 수수방관할 뿐이오. 네 신선은 판을 놓고 서로 패를 지어 따 먹으려 하므로 날짜가 늦어서 승부가 결정되지 못하여 지금 최 수운을 청하여서 증인으로 세우고 승부를 결정코자 함이니 이 식혜는 수운을 대접하는 것이라」 말씀하시고 「너희들이 가진 문집(文集)에 있는 글귀를 아느냐」고 물으시니 몇 사람이 「기억하는 구절이 있나이다」고 대답하니라. 상제께서 백지에 「걸군굿 초란이패 남사당 여사당 삼대치」라 쓰고 「이 글이 곧 주문이라. 외울 때에 웃는 가자 있으면 죽으리니 조심하라」이르시고 「이 글에 곡조가 있나니 만일 외울 때에 곡조에 맞지 않으면 신선들이 웃으리라」하시고 상제께서 친히 곡조를 붙여서 읽으시고 종도들로 하여금 따라 읽게 하시니 이윽고 찬 기운이 도는지라. 상제께서 읽는 것을 멈추고 「최 수운이 왔으니 조용히 들어보라」말씀하시더니 갑자기 인경 위에서 「가장(家長)이 엄숙하면 그런 빛이 왜 있으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니 「이 말이 어디에 있느뇨」고 물으시니라. 한 종도가 대답하기를 「수운가사(水雲歌詞)에 있나이다.」 상제께서 인경 위를 향하여 두어 마디로 알아듣지 못하게 수작하셨도다.
【공사 2장 4절】상제께서 어느날 가라사대 「조선을 서양으로 넘기면 인종의 차별로 학대가 심하여 살아날 수가 없고 청국으로 넘겨도 그 민족이 우둔하여 뒤 감당을 못할 것이라. 일본은 임진란 이후 도술 신명 사이에 척이 맺혀 있으니 그들에게 맡겨주어야 척이 풀릴지라. 그러므로 그들에게 일시 천하 통일지기(一時天下統一之氣)와 일월 대명지기(日月大明之氣)를 붙여주어서 역사케 하고자 하나 한 가지 못 줄 것이 있으니 곧 인(仁)이니라. 만일 인자까지 붙여주면 천하가 다 저희들에게 돌아갈 것이므로 인자를 너희들에게 붙여주노니 잘 지킬지어다」고 이르시고 「너희들은 편한 사람이 될 것이도. 저희들은 일만 할뿐이니 모든 일을 밝게 하여주라. 그들은 일을 마치고 갈 때에 품 삯도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리니 말대접이나 후덕하게 하라」하셨도다.
【공사 2장 5절】상제께서 대신명(大神明)이 들어설 때마다 손을 머리 위에 올려 예를 갖추셨도다.
【공사 2장 6절】상제께서 「청주(淸州) 만동묘(萬東廟)에 가서 청국 공사를 행하려 하나 길이 멀고 왕래하기 어렵고 불편하므로 청도원(淸道院)에서 공사를 행하리라」하시고 청도원 류 찬명의 집에 이르러 천지 대신문을 열고 공사를 행하셨도다. 그 때에 김 송환이 그 시종을 들었느니라.
【공사 2장 7절】상제께서 정미년 四월 어느날 돈 천냥을 백 남신으로부터 가져오셔서 동곡에 약방을 차리시는데 이때 약장과 모든 기구를 비치하시기 위하여 목수 이 경문(李京文)을 불러 그 크기의 치수와 만드는 법을 일일이 가르치고 기한을 정하여 끝마치게 하시니 약방은 갑칠의 형 준상의 집에 설치하기로 하셨도다.
【공사 2장 8절】목수가 기한 내에 공사를 마치지 못하였기에 상제께서 목수로 하여금 목재를 한 곳에 모아놓게 하고 앞에 꿇어앉힌 후 크게 꾸짖고 봉서 하나를 목수에게 주고 꿇어앉은 그대로 불사르게 하시니 갑자기 번개가 번쩍이는지라. 목수가 두려워서 땀을 흘리는 것을 보고 「속히 마치라」독려하시니라. 그 목수가 수전증이 나서 한달이 넘은 후에 겨우 일을 끝내니라. 약방을 차린 후 상제께서 공우에게 「천지의 약기운은 평양에 내렸으니 네가 평양에 가서 당제약을 구하여 오라」고 명하셨도다. 그후에 다시 그에 대한 말씀이 없으시고 그날 밤에 글을 써서 불사르셨도다.
【공사 2장 9절】약방을 설치하신 후 「원형이정 봉천지 도술약국 재전주동곡 생사판단 (元亨利貞奉天地道術藥局 在全州銅谷生死辦斷)」이란 글귀를 쓰셔서 불사르셨도다. 약장은 종삼 횡오 도합 십 오 간으로 가운데에 큰 간이 둘 아래로 큰 간이 하나이니라. 상제께서는 그 위 십 오 간 중의 가운데 간에 「단주수명(丹朱受命)」이라 쓰고 그 속에 목단피를 넣고 그 아래에 「열풍 뇌우 불미(烈風雷雨不迷)」라고 횡서하고 또 칠성경을 백지에 종서하고 그 끝에 「우보 상최 등양명(禹步相催登陽明)」이라 횡서하고 약장 위로부터 뒤로 밑판까지 따라서 내려 붙이고 그 위에 「양정 유월 이십일 음정 유월 이십일(陽丁六月卄日陰丁六月卄日)」이라 쓰시니라. 궤안에 「팔문둔갑(八門遁甲)」이라 쓰고 그 글자 위에 「설문(舌文)」두 자를 낙인하신 후 그 글자 주위에는 二十四점을 홍색으로 찍고 약방에 통감(通鑑) · 서전(書傳) 각 한질씩 비치하셨도다.
【공사 2장 10절】상제께서 병욱에게 명하시어 전주에 가서 삼백냥으로 약재를 사오게 하셨는데 마침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이 비는 곧 약탕수(藥湯水)라고 이르셨도다.
【공사 2장 11절】상제께서는 약방에 갖추어 둔 모든 물목을 기록하여 공우와 광찬에게 주고 가라사대 「이 물목기를 금산사에 가지고 가서 그 곳에 봉안한 석가불상을 향하여 그 불상을 업어다 마당 서쪽에 옮겨 세우리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면서 불사르라」하시니 두 사람이 금산사에 가서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이로부터 몇 해 지난후에 금산사를 중수할 때 석가불전을 마당 서쪽에 옮겨 세우니 미륵전 앞이 넓어지느니라. 이 불전이 오늘날의 대장전이로다.
【공사 2장 12절】상제께서 용두리 주막에 계실 때 광찬에게 한방의서(漢方醫書) 방약합편(方藥合編)을 사오게 하시고 네가 병욱의 집에 가서 「주묵(朱墨)으로 이 책중에 있는 약명에 비점을 찍으라」이르시니 광찬이 명대로 시행하여 올리니 상제께서 열람하시고 그 책을 불사르셨도다.
【공사 2장 13절】상제께서 농암에서 공사를 행하실 때 형렬에게 이르시기를 「허미수(許眉叟)가 중수한 성천(成川) 강선루(降仙樓)의 일만 이천 고물은 녹줄이 붙어있고 금강산(金剛山) 일만 이천봉은 겁기가 붙어있으니 이제 그 겁기를 제거하리하」하시고 「네가 김 광찬 · 신 원일과 함께 백지 일방촌씩 오려서 시(侍)자를 써서 네벽에 붙이되 한 사람이하루 사백자씩 열흘에 쓰라. 그리고 그 동안 조석으로 청수 한동이씩 길어 스물 네 그릇으로 나누어 놓고 밤에 칠성경(七星經) 삼칠편을 염송하라」명하시니라. 형렬은 명을 좇았으되 신 원일이 즐거이 행하지 아니하므로 상제께 아뢰이니 상제께서는 「정읍 이 도삼을 불러서 행하라」분부하시니라. 형렬은 그를 데려다가 열흘 동안 분부 대로 행한 후에 김 갑칠을 보내어 일을 마쳤음을 상제께 아뢰게 하였더니 상제께서 갑칠에게 양(羊) 한 마리를 사주며 「내가 돌아가기를 기다리라」고 이르셨도다.
【공사 2장 14절】상제께서 십일월에 사기를 옮기는 공사를 보시고자 동곡에 돌아오셔서 전일에 주었던 양을 잡게 하고 그 양피를 손가락 끝에 묻혀 일만 이천 시(侍)란 글자에 바르시니 양 피가 다한지라. 상제께서 「사기(沙器)를 김제(金堤)로 옮겨야 하리라」하시니라. 이때 김제 수각(水閣) 임 상옥(林相玉)이 왔기에 상제께서 청수를 담던 사기 그릇을 개장국에 씻어 그에게 주시니라. 그는 영문을 모르고 주시는 대로 그 그릇을 받았도다. 그는 며칠 후에 그 사기 그릇의 용처를 여쭈었더니 「인부를 많이 모아 일할 때 쓰라」하셨도다.
【공사 2장 15절】상제께서 십일월에 동곡에 머무시면서 금강산 공사를 보고 형렬에게 「내가 삭발하리니 너도 나를 따라 삭발하라」고 분부하시나 형렬이 속으로 달갑게 생각하지 아니하였으나 부득이 응락하니라. 또 갑칠을 불러 「내가 삭발하리니 내일 대원사에 가서 중 금곡을 불러오라」하시므로 형렬은 크게 근심하였으되 이튿날 다시 그것에 대한 말씀이 없었도다.
【공사 2장 16절】상제께서 어느날 후천에서의 음양도수를 조정하시려고 종도들에게 오주를 수련케 하셨도다. 종도들이 수련을 끝내고 각각 자리를 정하니 상제께서 종이쪽지를 나누어 주시면서 「후천 음양도수를 보려하노라. 각자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점을 찍어 표시하라」고 이르시니 종도들이 마음에 있는 대로 점을 찍어 올리니라. 「응종은 두 점, 경수는 세 점, 내성은 여덟 점, 공신은 한 점을 찍었는데 아홉 점이 없으니 자고로 일남 구녀란 말은 알 수 없도다」고 말씀하시고 내성에게 「팔 선녀란 말이 있어서 여덟 점을 쳤느냐」고 묻고 응종과 경수에게 「노인들이 두 아내를 원하나 어찌 감당하리오」라고 말씀하시니 그들이 「후천에서는 새로운 기력이 나지 아니하리까」고 되물으니 「그럴 듯 하도다」고 말씀하시니라. 그리고 상제께서 경석에게 「너는 무슨 아내를 열 둘씩이나 원하느뇨」고 물으시니 그는 「열두 제국에 하나씩 아내를 두어야 만족하겠나이다」고 대답하니 이 말을 듣고 상제께서 다시 「그럴 듯 하도다」고 말슴을 건너시고 공신을 돌아보면서 「경석은 열 둘씩이나 원하는데 너는 어찌 하나만 생각하느냐」고 물으시니 그는 「건곤(乾坤)이 있을 따름이오 이곤(二坤)이 있을 수 없사오니 일음 일양이 원리인 줄 아나이다」고 아뢰니 상제께서 「너의 말이 옳도다」고 하시고 공사를 잘 보았으니 「손님 대접을 잘 하라」고 분부하셨도다. 공신이 말씀대로 봉행하였느니라. 상제께서 이 음양도수를 끝내고 공신에게 「너는 정음 정양의 도수니 그 기운을 잘 견디어 받고 정심으로 수련하라」고 분부하시고 「문왕(文王)의 도수와 이윤(伊尹)의 도수가 있으니 그 도수를 맡으려면 극히 어려우니라」고 일러주셨도다.
【공사 2장 17절】종도들의 음양도수를 끝내신 상제께서 이번에는 후천 五만년 첫 공사를 행하시려고 어느날 박 공우에게 「깊이 생각하여 중대한 것을 들어 말하라」하시니라. 공우가 지식이 없다고 사양하다가 문득 생각이 떠올라 아뢰기를 「선천에는 청춘 과부가 수절한다 하여 공방에서 쓸쓸히 늙어 일생을 헛되게 보내는 것이 불가하오니 후천에서는 이 폐단을 고쳐 젊은 과부는 젊은 홀아비를, 늙은 과부는 늙은 홀아비를 각각 가려서 친족과 친구들을 청하고 공식으로 예를 갖추어 계가케 하는 것이 옳을 줄로 아나이다」고 여쭈니 상제께서 「네가 아니면 이 공사를 처결하지 못 할 것이므로 너에게 맡겼더니 잘 처결하였노라」고 이르시고 「이 결정의 공사가 오만년을 가리라」고 말씀하셨도다.
【공사 2장 18절】十二월 초하룻날 부인은 상제의 분부대로 대흥리에서 백미 한 섬을 방에 두고 백지로 만든 고깔 二十여개를 쌀 위에 놓고 종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니라. 이 때 상제께서 「불과 물만 가지면 비록 석산바위 위에 있을지라도 먹고 사느니라」고 말씀하시고 그 백미로 밥을 지어 이날 모인 사람들에게 배불리 먹이셨도다.
【공사 2장 19절】상제께서 十二월에 들어서 여러 공사를 마치고 역도(逆道)를 조정하는 공사에 착수하셨도다. 경석 · 광찬 · 내성은 대흥리로 가고 원일은 신 경원의 집으로 형력과 자현은 동곡으로 떠났도다. 상제께서 남아 있는 문 공신 · 황 응종 · 신 경수들에게 가라사대 「경석은 성(誠) · 경(敬) · 신(信)이 지극하여 달리 써 볼까 하였더니 스스로 청하는 일이니 할 수 없도다」고 일러주시고 또 「본래 동학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주장하였음은 후천일을 부르짖었음에 지나지 않았으나 마음은 각기 왕후장상(王侯將相)을 바라다가 소원을 이룩하지 못하고 끌려가서 죽은 자가 수만명이라. 원한이 창천하였으니 그 신명을 그대로 두면 후천에는 역도(逆道)에 걸려 정사가 어지러워지겠으므로 그 신명들의 해원 두목을 정하려는 중인데 경석이 십 이 제국을 말하니 이는 자청함이니라. 그 부친이 동학의 중진으로 잡혀 죽었고 저도 또한 동학 총대를 하였으므로 이제부터 동학 신명을 모두 경석에게 붙여보냈으니 이 자리로부터 왕후장상(王侯將相)의 해원이 되리라」하시고 종이에 글을 쓰시며 외인의 출입을 금하고 「훗날에 보라. 금전소비가 많아질 것이며 사람도 갑오년보다 많아지리라. 풀어두어야 후천에 아무 꺼리낌이 없느니라」고 말씀을 맺으셨도다.
【공사 2장 20절】상제께서 「선천에서 삼상(三相)의 탓으로 음양이 고르지 못하다」고 하시면서 「거주성명 서신사명 좌상 우상 팔판 십 이백 현감 현령 황극 후비소(居住姓名西神司命 左相右相八判十二伯縣監縣令皇極後妃所)」라 써서 광찬에게 「약방의 문지방에 맞추어 보라」고 이르시니라. 그가 「맞지 않는다」고 아뢰니 「일이 헛 일이라」고 말씀하시기에 경학이 「여백을 오려버리고 글자 쓴 곳만 대여보는 것이 옳겠나이다」고 말하기에 그대로 행하니 꼭 맞으니라.
【공사 2장 21절】한번은 상제께서 임 상옥에게 사기 그릇을 주신 뒤에 공우를 대동하고 전주로 가시는 도중에 세천에 이르시니 점심 때가 되니라. 공우가 상제를 고 송암(高松菴)의 친구 집에 모시고 상제께 점심상을 받게 하였도다. 상제께서 문득 「서양 기운을 몰아내어도 다시 몰려드는 기미가 있음을 이상히 여겼더니 뒷 골방에서 딴전을 보는 자가 있는 것을 미쳐 몰랐도다」하시고 「고 송암에게 물어보고 오너라」고 공우에게 이르시고 칠성경에 문곡(文曲)의 위치를 바꾸어 놓으셨도다.
【공사 2장 22절】상제께서 최 익현과 박 영효(朴泳孝)의 원을 풀어 주신다고 하시면서 「천세 천세 천천세 만세 만세 만만세 일월 최 익현 천포 천포 천천포 만포 만포 만만포 창생 박 영효(千歲千歲千千歲 萬歲萬歲萬萬歲 日月崔益鉉 千胞千胞千千胞 萬胞萬胞萬萬胞 蒼生朴泳孝)」라 쓰고 불사르셨도다.
【공사 2장 23절】상제께서 만국 창생들의 새 생활법으로써 물화상통을 펼치셨도다. 종도들이 상제의 명을 좇아 공신의 집에 밤중에 서로 번갈아 그 집의 물독 물을 반 바가지씩 퍼내 우물에 쏟아 붓고 다시 우물 물을 반 바가지씩 독에 붓고 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여러 우물과 독의 물을 번갈아 바꾸어 갈아 부었도다.
【공사 2장 24절】신 원일이 개벽공사를 빨리 행하시기를 상제께 간청하니라. 상제께서 「인사는 기회가 있으며 천시는 때가 있으니 그 기회와 때를 기다릴 것이니 이제 기회와 천시를 억지로 쓰면 그것은 천하에 재화를 끼치게 될 분이며 억조의 생명을 억지로 앗아가는 일이 되리라. 어찌 차마 행할 바이냐」고 말씀하셨으되 원일이 「방금 천하가 무도하여 선악을 분별하기 어려우니 속히 이를 잔멸하고 후천의 새 운수를 열어주시는 것이 옳을까 하나이다」고 말하면서 간청하니 상제께서 심히 괴로와 하셨도다.
【공사 2장 25절】공신의 집에서 또 어느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이 뒤에 전쟁이 있겠느냐 없겠느냐」고 물으시니 혹자는 있으리라고도 하고 혹자는 없으리라고도 아뢰니라. 상제께서 가라사대 「천지 개벽시대에 어찌 전쟁이 없으리오」라고 하시고 전쟁 기구를 챙겨 보신다면서 방에 있는 담뱃대 二十여개를 거두어 모아 거꾸로 세우고 종도들로 하여금 각기 수건으로 다리와 머리를 동여매게 하시고 또 백지에 시천주를 써서 심을 부벼 불을 붙여 들게 하고 문창에 구멍을 뚫어 놓은 다음에 모두 담뱃대를 거꾸로 메게 하고 「행오를 잃으면 군사가 상하리라」이르고 종도들로 하여금 뒷문으로 나가서 부엌으로 돌아와서 창 구멍에 담뱃대를 대고 입으로 총소리를 내게 하고 또 헛청으로 돌아들어 그와 같이 하되 궁을(弓乙)형을 지어 빨리 달리게 하니 늙은 사람이 씨근덕 거리더라. 다시 상제께서 이르시기를 「이 말세를 당하여 어찌 전쟁이 없으리오. 뒷날 대전쟁이 일어나면 각기 재조를 자랑하리니 재조가 월등한 나라가 상등국이 되리라.」 이 공사가 끝나자 천고성이 사방에서 일어났도다.
【공사 2장 26절】그리고 그림을 그려 문 공신의 집 벽에 붙이고 이를 정의도(情誼圖)라고 이름하셨도다.
천지지주장(天地之主張) 사물지수창(事物之首倡) 음양지발각(陰陽之發覺) 인사각지(人事刻之) 정의(情誼) 정의(情誼) 정의(情誼) 정의(情誼) 홀생홀유(忽生忽有) 정의(情誼) 戊申四月十一日
【공사 2장 27절】무신년 七월에 이르러 상제께서 원일을 이끄시고 부안 변산 우금암(遇金岩) 아래에 있는 개암사(開岩寺)에 가시니라. 그때 상제께서 원일에게 삶은 쇠머리 한개와 술 한병과 청수 한 그릇을 방안에 차리고 쇠머리를 청수 앞에 진설하게 하신 후에 원일을 그 앞에 꿇어앉히고 성냥 세 개비를 청수에 넣으시니라. 이 때 갑자기 풍우가 크게 일어나고 홍수가 창일하는도다. 상제께서 원일에게 「이제 청수 한 동이에 성냥 한 갑을 넣으면 천지가 수국(水國)이 될지니라. 개벽이란 이렇게 쉬우니 그리 알지어다. 만일 이것을 때가 이르기 전에 쓰면 재해만 끼칠 뿐이니 그렇게 믿고 기다려라」고 일러주시고 진설케 하신 것을 모두 거두니 곧 풍우가 그쳤도다.
【공사 2장 28절】상제께서 원일을 곧 자기 집으로 돌려보냈도다. 원일이 집에 돌아와서 보니 자기 동생의 집이 폭우에 파괴되고 그 가족은 원일의 집에 피난하였도다. 원래 원일의 아우는 상제를 믿지 아니하였으며 언제나 불평을 품었도다. 그러나 그는 이 일을 당한 후부터 두려워서 무리한 언사를 함부로 쓰지 아니하였도다.
【공사 3장 1절】상제께서 무신년 봄 백암리 김 경학 · 최 창조의 두 집으로 왕래하시며 성복제와 매화(埋火) 공사를 보셨도다. 김 광찬의 양모의 성복제가 최 창조의 집에서 거행되었느니라. 창조는 상제의 지시에 좇아 돼지 한 마리를 잡고 그 고기에 계란을 입혀 전을 만들고 대그릇에 담아서 정결한 곳에 두고 또 상제의 분부에 따라 상제의 의복 한 벌을 지어 두었도다. 저육전이 다 썩었으므로 창조가 동곡으로 사람을 보내서 상제께 아뢰이니 상제께서 그 사람을 좀 기다리게 하시고 형렬에게 이르시니라. 「네가 태인에 가서 최 내경 · 신 경원을 데리고 창조의 집에 가라. 오늘 밤에 인적이 없을 때를 기다려 정문 밖에 한 사람이 엎드릴 만한 구덩이를 파고 나의 옷을 세 사람이 한 가지씩 입고 그 구덩이 앞에 청수 한 그릇과 화로를 놓고 작은 사기 그릇에 호주를 넣고 문어 전복 두부를 각각 그릇에 담아 그 앞에 놓아라. 그리고 한 사람은 저육전 한 점씩을 집어서 청수와 화로 위에 넘기고 한 사람은 연달아 넘긴 것을 받고 다른 한 사람은 다시 받아서 구덩이 속에 넣고 흙으로 덮어라. 그리고 빨리 돌아오너라」고 일러주시니 형렬이 그대로 시행케 한 후 시급히 상제께 돌아가는 길에 돌연히 검은 구름이 일더니 집에 이르자 폭우가 쏟아지고 뇌전이 크게 치는지라. 상제께서 형렬에게 「이 때 쯤 일을 행할 때가 되었겠느냐」고 물으시니 그는 「행할 시간이 되었겠나이다」고 여쭈었도다. 상제께서 가라사대 「뒷날 변산 같은 큰 불덩이로 이 세계가 타버릴까 하여 그 불을 묻었노라」하셨도다.
【공사 3장 2절】상제께서 사명기(司命旗)를 세워 전 명숙과 최 수운의 원을 풀어주셨도다. 상제께서 피노리(避老里) 이 화춘(李化春)의 집에 이르셔서 그에게 누런 개 한 마리를 잡고 술 한 동이를 마련하게 하고 뒷산의 소나무 숲에서 가장 큰 소나무 한 그루와 남쪽 양달에 있는 황토를 파오게 하고 백지 넉 장을 청 홍 황의 세 색깔로 물들여서 모두 잇고 베어 온 소나무의 한 윗가지에 달게 하고 백지 석장에 각각 시천주를 쓰고 그 종이 석장에 황토를 조금씩 싸서 함께 잇고 또 소나무 가지에 달고 그 나무를 집 앞에 세우시니 마치 깃대와 같은지라.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 곳에서 전 명숙이 잡혔도다. 그는 사명기(司命旗)가 없어서 포한(抱恨) 하였나니 이제 그 기를 세워주고 해원케 하노라.」 다시 상제께서 사명기 한 폭을 지어 높은 소나무 가지에 달았다가 떠어 불사르시고 최 수운을 해원케 하셨도다.
【공사 3장 3절】상제께서 어느날 공우에게 「고부에 가서 돈을 주선하여오라」하시더니 마련된 돈으로써 약방의 수리를 끝마치시고 갑칠로 하여금 활 한 개와 화살 아홉 개를 만들게 하고 그것으로써 공우로 하여금 지천(紙天)을 쏘아 맞추게 하시고 가라사대 「이제 구천을 맞췄노라」하시고 또 말씀을 잇기를 「고부 돈으로 약방을 수리한 것은 선인포전(仙人布氈)의 기운을 쓴 것이니라」하셨도다.
【공사 3장 4절】상제께서 七월에 「예로부터 쌓인 원을 풀고 원에 인해서 생긴 모든 불상사를 없애고 영원한 평화를 이룩하는 공사를 행하시니라. 머리를 긁으면 몸이 움직이는 것과 같이 인류의 기록에 시작이고 원(冤)의 역사의 첫 장인 요(堯)의 아들 단주(丹朱)의 원을 풀면 그로부터 수천년 쌓인 원의 마디와 고가 풀리리라. 단주가 불초하다 하여 요가 순(舜)에게 두 딸을 주고 천하를 전하니 단주는 원을 품고 마침내 순을 창오(蒼梧)에서 붕(崩)케 하고 두 왕비를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게 하였도다. 이로부터 원의 뿌리가 세상에 박히고 세대의 추이에 따라 원의 종자가 퍼지고 퍼져서 이제는 천지에 가득 차서 인간이 파멸하게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인간을 파멸에서 건지려면 해원공사를 행하여야 되느니라」고 하셨도다.
【공사 3장 5절】또 상제께서 가라사대 「지기가 통일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속에서 살고 있는 인류는 제각기 사상이 엇갈려 제각기 생각하여 반목 쟁투하느니라. 이를 없애려면 해원으로써 만고의 신명을 조화하고 천지의 도수를 조정하여야 하고 이것이 이룩되면 천지는 개벽되고 선경이 세워지리라」하셨도다.
【공사 3장 6절】상제께서 각 처에서 정기를 뽑는 공사를 행하셨도다. 강산 정기를 뽑아 합치시려고 부모산(父母山)의 정기부터 공사를 보셨도다. 부모산은 전주 모악산(母岳山)과 순창(淳昌) 회문산(回文山)이니라. 회문산에 이십 사혈이 있고 그 중에 오선위기형(五仙圍碁形)이 있고 기변(碁變)은 당요(唐堯)가 창작하여 단주를 가르친 것이므로 단주의 해원은 오선위기로부터 대운이 열려 돌아날지니라. 다음에 네 명당(明堂)의 정기를 종합하여야 하니라. 네 명당은 순창 회문산(淳昌回文山)의 오선위기형과 무안(務安) 승달산(僧達山)의 호승예불형(胡僧禮佛形)과 장성(長城) 손룡(巽龍)의 선녀직금형(仙女織錦形)과 태인(泰仁) 배례밭(拜禮田)의 군신봉조형(君臣奉詔形)이니라. 그리고 부안 변산에 二十四 혈이 있으니 이것은 회문산의 혈수의 상대가 되며 해변에 있어 해왕(海王)의 도수에 응하느니라. 회문산은 산군(山君), 변산은 해왕(海王)이니 상제께서 그 정기를 뽑으셨도다.
【공사 3장 7절】상제께서 여름 어느날에 황 응종의 집에서 산하의 대운을 거둬들이는 공사를 행하셨도다. 상제께서 밤에 이르러 백지로 고깔을 만들어 응종에게 씌우고 「자루에 든 벼를 끄집어 내서 사방에 뿌리고 백지 백 이십장과 양지 넉장에 글을 써서 식혜 속에 넣고 인적이 없을 때를 기다려 시궁 흙에 파묻은 후에 고깔을 쓴 그대로 세수하라」고 명하시니 그는 명하신 대로 행하였더니 별안간 인당에 콩알과 같은 사마귀가 생겼도다. 응종이 그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벼를 뿌린 것을 보았으나 한 알도 보이지 않고 않고 없어졌도다.
【공사 3장 8절】이 도삼이 어느날 동곡으로 상제를 찾아 뵈니 상제께서 「사람을 해치는 물건을 낱낱이 세어보라」하시므로 그는 범 · 표범 · 이리 · 늑대로부터 모기 · 이 · 벼룩 · 빈대에 이르기까지 세어 아뢰었도다. 상제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사람을 해치는 물건을 후천에는 다 없애리라」고 말씀하셨도다.
【공사 3장 9절】상제께서 대흥리에서 三十장의 양지 책의 앞장 十五장 마다 「배은망덕 만사신 일분명 일양시생(背恩忘德萬死神 一分明一陽始生)」을, 뒷장 十五장마다 「작지불지 성의웅약 일음시생(作之不止聖醫雄藥 一陰始生)」을 쓰고 경면주사와 접시 한개를 놓고 광찬에게 가라사대 「이 일은 생사의 길을 정함이니 잘 생각하여 말하라」고 하시니 광찬이 「선령신을 섬길 줄 모르는 자는 살지 못하리이다」고 여쭈니 상제께서 말씀이 없으시다가 잠시 후에 「네 말이 가하다」하시고 접시를 종이에 싸서 주사(朱砂)를 묻혀 책장 마다 찍으셨도다. 「이것이 곧 마패(馬牌)라」고 이르셨도다.
【공사 3장 10절】상제께서 궤 두개를 만들어 큰 것을 조화궤라 이름하고 동곡 약방에 두고 작은 것을 둔(遁)궤라 이름하고 공부하실 때에 七十二현(賢)의 七十二둔궤로 쓰시다가 신 경수의 집에 두셨도다.
【공사 3장 11절】그후에 응종이 상제의 분부를 받고 식혜 아홉 사발을 빚고 태인 신 경원의 집에 가서 새 수저 한 벌을 가져오고 단지 한 개를 마련하여 상제께 드리니 상제께서 식혜를 단지에 쏟아넣으시니 단지가 꼭 차는지라. 또 상제께서 양지와 백지와 장지를 각각 준비하여 놓으시고 가라사대 「비인복종(庇仁覆鐘)이 크다 하므로 북 도수를 보노라. 북은 채가 있어야 하나니 수저가 북채라. 행군할 때 이 수저로 북채를 하여야 녹이 진진하여 떨어지지 아니하리라」하시고 양지와 백지와 장지를 각각 조각조각 찢으시고 조각마다 글을 써서 단지에 넣고 그 단지 입을 잘 봉하여 깨끗한 곳에 묻으셨도다.
【공사 3장 12절】상제께서 남쪽을 향하여 누우시며 덕겸에게 「내 몸에 파리가 앉지 못하게 잘 날리라」고 이르시고 잠에 드셨도다. 반시간쯤 지나서 덕찬이 점심을 먹자고 부르기에 그는 상제의 분부가 있음을 알리고 가지 아니하니라. 덕찬이 「잠들고 계시니 괜찮을 것이라」고 말하기에 덕겸이 파리를 멀리 쫓고 나가려고 일어서니 상제께서 문득 일어나 앉으시며 「너는 밥을 얻어 먹으러 다니느냐. 공사를 보는 중에 그런 법이 없으니 번갈아 먹으라」고 꾸짖으셨도다. 이 공사를 끝내시고 상제께서 양지에 무수히 태극을 그리고 글자를 쓰셨도다. 그리고 상제께서 덕겸에게 동도지(東桃枝)를 꺾어오라 하시며 태극을 세되 열번째 마다 동도지를 물고 세도록 이르시니 마흔 아홉개가 되니라. 상제께서 「맞았다. 만일 잘못 세었으면 큰일이 나느니라」고 말씀하시고 동도지를 들고 큰 소리를 지르신 뒤에 그 문축(文軸)을 약방에서 불사르시니라. 그후 상제께서 다시 양지에 용(龍) 자 한자를 써서 덕겸에게 「이것을 약방 우물에 넣으라」하시므로 그가 그대로 하니 그 종이가 우물 속으로 가라앉았도다.
【공사 3장 13절】상제께서 와룡리 신 경수의 집에서 공우에게 「너의 살과 나의 살을 떼어서 쓸 데가 있으니 너의 뜻이 어떠하뇨」고 물으시기에 그가 대하여 말하기를 「쓸 곳이 있으시면 쓰옵소서」하였도다. 그후에 살을 떼어 쓰신 일은 없으되 다음날부터 상제와 공우가 심히 수척하여지는도다. 공우가 묻기를 「살을 떼어 쓰신다는 말씀만 계시고 행하시지 않으셨으나 그후로부터 상제와 제가 수척하여 지오니 무슨 까닭이 오니까.」상제께서 「살은 이미 떼어 썼느니라. 묵은 하늘이 두 사람의 살을 쓰려하기에 만일 허락하지 아니하면 이것은 배은이 되므로 허락한 것이로다」고 일러주셨도다.
【공사 3장 14절】상제께서 전주 봉서산(全州鳳棲山) 밑에 계실 때 종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시니라. 김 봉곡(金鳳谷)이 시기심이 강한지라. 진묵(震黙)은 하루 봉곡으로부터 성리대전(性理大典)을 빌려 가면서도 봉곡이 반드시 후회하여 곧 사람을 시켜 찾아가리라 생각하고 걸으면서 한 권씩 읽고서는 길가에 버리니 사원동(寺院洞) 입구에서 모두 버리게 되니라. 봉곡은 과연 그 책자를 빌려주고 진묵이 불법을 통달한 자이고 만일 유도(儒道)까지 통달하면 상대할 수 없게 될 것이고 또 불법을 크게 행할 것을 시기하여 그 책을 도로 찾아오라고 급히 사람을 보냈도다. 그 하인이 길가에 이따금 버려진 책 한 권씩을 주워 가다가 사원동 입구에서 마지막 한 권을 주워 돌아가니라. 그후에 진묵이 봉곡을 찾아가니 봉곡이 빌린 책을 도로 달라고 하는지라. 그 말을 듣고 진묵이 그 글이 쓸모가 없어 길가에 다 버렸다고 대꾸하니 봉곡이 노발 대발하는도다. 진묵은 내가 외울터이니 기록하라고 말하고 잇달아 한 편을 모두 읽는도다. 그것이 한자도 틀리지 않으니 봉곡은 더욱 더 시기하였도다.
【공사 3장 15절】그후에 진묵이 상좌에게 「내가 八일을 한정하고 시해(尸解)로서 인도국(印度國)에 가서 범서와 불법을 더 익혀 올 것이니 방문을 여닫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고 곧 입적(入寂)하니라. 봉곡이 이 사실을 알고 절에 달려가서 진묵을 찾으니 상좌가 출타 중임을 알리니라. 봉곡이 그럼 방에 찾을 것이 있으니 말하면서 방문을 열려는 것을 상좌가 말렸으나 억지로 방문을 열었도다. 봉곡은 진묵의 상좌에게 「어찌하여 이런 시체를 방에 그대로 두어 썩게 하느냐. 중은 죽으면 화장하나니라」고 말하면서 마당에 나뭇더미를 쌓아 놓고 화장하니라. 상좌가 울면서 말렸으되 봉곡은 도리어 꾸짖으며 살 한점도 남기지 않고 태우느니라. 진묵이 이것을 알고 돌아와 공중에서 외쳐 말하기를 「너와 나는 아무런 원수진 것이 없음에도 어찌하여 그러느냐.」 상좌가 자기 스님의 소리를 듣고 울기에 봉곡이 「저것은 요귀(妖鬼)의 소리라. 듣지 말고 손가락뼈 한마디도 남김없이 잘 태워야 하느니라.」고 말하니 진묵이 소리쳐 말하기를 「네가 끝까지 그런다면 너의 자손은 대대로 호미를 면치 못하리라」하고 동양의 모든 도통신(道通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옮겨갔도다.
【공사 3장 16절】상제께서 일정한 법에 따라 공사를 보시지 않고 주로 종이를 많이 쓰시기에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리켜 종이만 보면 사지를 못 쓴다고 비방하니라. 상제께서 그 말을 듣고 종도들에게 「내가 신미(辛未)생이라. 옛적부터 미(未)를 양이라 하나니 양은 종이를 잘 먹느니라」고 비방을 탓하지 않으셨도다.
【공사 3장 17절】경석이 상제의 명을 받들어 양지 이십장으로 책 두 권을 매니 상제께서 책장마다 먹물로 손 도장을 찍고 모인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것이 대보책(大寶冊)이며 마패(馬牌)이나라.」또 상제께서 한 권의 책명을 「의약복서 종수지문(醫藥卜筮種樹之文)」이라 쓰시고 「진시황(秦始皇)의 해원도수이니라」하시고 한 권을 신 원일의 집 뒷산에 묻고 또 한 권을 황 응종의 집 뒤에 묻으셨도다.
【공사 3장 18절】상제께서 원일과 덕겸에게 「너희 두 사람이 덕겸의 작은 방에서 이레를 한 도수로 삼고 문밖에 나오지 말고 중국일을 가장 공평하게 재판하라. 너희의 처결로써 중국 일을 결정하리라」이르시니 두 사람이 명하신 곳에서 성심 성의를 다하여 생각하였도다. 이렛날에 원일이 불리워서 상제께 「청국은 정치를 그릇되게 하므로 열국의 침략을 면치 못하며 백성이 의지할 곳을 잃었나이다. 고서(古書)에 천여불취 반수기앙(天與不取反受其殃)이라 하였으니 상제의 무소불능하신 권능으로 중국의 제위에 오르셔서 백성을 건지소서. 지금이 기회인 줄 아나이다」고 여쭈어도 상제께서 대답이 없었도다. 덕겸은 이렛동안 아무런 요령조차 얻지 못하였도다. 상제께서 「너는 어떠하뇨」하고 물으시는 말씀에 별안간 생각이 떠올라 여쭈는지라. 「세계에 비할 수 없는 물중지대(物衆地大)와 예락문물(禮樂文物)의 산하(山河)와 백성이 이적(夷狄···오랑캐)의 칭호를 받는 청(淸)에게 정복되었으니 대중화에 어찌 원한이 없겠나이까. 이제 그 국토를 회복하게 하심이 옳으리라 생각하나이다.」상제께서 무릎을 치시며 칭찬하시기를 「네가 재판을 올바르게 하였도다. 이 처결로써 중국이 회복하리라」하시니라. 원일은 중국의 해원공사에만 치중하시는가 하여 불평을 품기에 상제께서 가라사대 「순망즉치한(脣亡則齒寒)이라 하듯이 중국이 편안하므로써 우리는 부흥하리라. 중국은 예로부터 우리의 조공을 받아 왔으므로 이제 보은신은 우리에게 쫓아와서 영원한 복록을 주리니 소중화(小中華)가 곧 대중화(大中華)가 되리라」일러주셨도다.
【공사 3장 19절】종도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어느날 상제께서 「일본 사람이 조선에 있는 만고 역신(逆臣)을 거느리고 역사를 하나니라. 이조 개국 이래 벼슬을 한 자는 다 정(鄭)씨를 생각하였나니 이것이 곧 두 마음이라. 남의 신하로서 이심을 품으면 그것이 곧 역신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역신이 두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들도 역신인데 어찌 모든 극악을 행할 때에 역적의 칭호를 붙여서 역신을 학대 하느뇨. 이러므로써 저희들이 일본 사람을 보면 죄지은 자와 같이 두려워 하니라」고 말씀하셨도다.
【공사 3장 20절】또 하루는 상제께서 공우에게 「태인 살포정 뒤에 호승예불(胡僧禮佛)을 써주리니 역군(役軍)을 먹일만한 술을 많이 빚어 넣으라」이르시니라. 공우가 이르신 대로 하니라. 그후에 상제께서 「장사를 지내주리라」고 말씀하시고 종도들과 함께 술을 잡수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셨도다. 상제께서 「지금은 천지에 수기가 돌지 아니하여 묘를 써도 발음이 되지 않으리라. 이후에 수기가 돌 때에 땅기운이 발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공사 3장 21절】또 어느날 상제의 말씀이 계시었도다. 「이제 천하에 물기운이 고갈하였으니 수기를 돌리리라」하시고 피란동 안씨의 재실(避亂洞安氏齋室)에 가서 우물을 대(竹)가지로 한 번 저으시고 안 내성에게 「음양이 고르지 않으니 재실에 가서 그 연고를 묻고 오너라」고 이르시니 그가 명하신 대로 재실에 간즉 재직이 사흘 전에 죽고 그 부인만 있었도다. 그가 돌아와서 그대로 아뢰이니 상제께서 들으시고 「딴 기운이 있도다. 행랑에 가보라」고 다시 안 내성에게 이르시니 내성은 가보고 와서 「행랑에 행상(行商)하는 양주가 들어있나이다」고 아뢰니라. 그 말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재실 청상에 오르셔서 종도들로 하여금 서천을 향하여 만수(萬修)를 크게 외치게 하시고 「이 중에 동학가사를 가진 자가 있느냐」고 물으시는도다. 그 중의 한 사람이 그것을 올리니 상제께서 책을 중간을 갈라 「시운 벌가 벌가 기측불원(詩云伐柯伐柯其則不遠)이라. 내 앞에 보는 것이 어길 바 없으나 이는 도시 사람이오. 부재어근(不在於近)이라. 목전의 일만을 쉽게 알고 심량없이 하다가 말래지사(末來之事)가 같지 않으면 그 아니 내 한(恨)인가」를 읽으시니 뇌성이 대발하며 천지가 진동하여 지진이 일어나고 또한 화약내가 코를 찌르는도다. 모든 사람이 혼몽하여 쓰러지니라. 이들을 상제께서 내성으로 하여금 일으키게 하셨도다.
【공사 3장 22절】상제께서 어느날 고부 와룡리에 이르사 종도들에게 「이제 혼란한 세상을 바르려면 황극신(皇極神)을 옮겨와야 한다.」고 말씀 하셨도다. 「황극신은 청국광서제(淸國光緖帝)에게 응기하여 있다.」하시며 「황극신이 이땅으로 옮겨 오게 될 인연은 송 우암(宋尤庵)이 만동묘(萬東廟)를 세움으로부터 시작되었느니라.」하시고 밤마다 시천주(侍天呪)를 종도들에게 염송케 하사 친히 음조를 부르시며 「이 소리가 운상(運喪)하는 소리와 같도다.」하시고 「운상하는 소리를 어로(御路)라 하나니 어로는 곧 군왕의 길이로다. 이제 황극신이 옮겨져 왔느니라」고 하셨도다. 이때에 광서제가 붕어하였도다.
【공사 3장 23절】그후에 상제께서 응종이 돌아갔다가 다시 오는 것을 보고 말씀하시니라. 「황천신(黃泉神)이 이르니 황건역사(黃巾力士)의 숫대를 불사르리라」하시고 갑칠로 하여금 짚 한 줌을 물에 축여 잘라서 숫대를 만들게 하고 그것을 화로에 불사르셨도다.
【공사 3장 24절】상제께서는 류 찬명으로 하여금 두루마리 종이에 二十八수(宿) 자를 좌로부터 횡서하게 하시고 그 종이를 끊어서 자로 재니 한자가 차거늘 이를 불사르셨도다.
【공사 3장 25절】하루는 공사를 행하시는데 양지에 글을 많이 쓰시고 종도들로 하여금 마음대로 그 양지를 자르게 한 후 차례로 한 쪽 씩을 불사르시니 그 종이쪽지가 도합 三백八十三매라. 상제께서 그 수효가 모자라기에 이상히 여겨 두루 찾으니 한 쪽이 요 밑에 끼어있었도다.
【공사 3장 26절】어떤 대신(大臣)이 어명(御名)을 받고 그 첫 정사(政事)로써 장안(長安)에 있는 청루(靑樓)의 물정(物情)을 물었도다. 이것을 옳은 공사라고 상제께서 말씀하셨도다.
【공사 3장 27절】어느날 상제께서 몇 종도들과 함께 기차기운을 돌리는 공사를 보셨도다. 상제께서는 약방에서 백지 한 권을 가늘게 잘라서 잇은 후 한 끝을 집 앞에 서있는 감나무의 높이에 맞춰서 자르고 그 끝을 약방의 문구멍에 끼어놓고 종이를 방안에서 말아 감으시고 또 한편 원일은 푸른 소나무 가지를 태우고 부채로 부쳤도다. 이때 집이 몹시 흔들리니 종도들은 모두 놀라서 문밖으로 뛰어나가니라. 상제게서는 종이를 다 감으신 후에 경학을 시켜 그것을 뒷간 보꾹에 달아매고 그 종이에 불을 지피게 하고 빗자루로 부치게 하시니 뒷간이 다 타버리니라. 경학은 상제의 말씀에 따라 다 탔는가를 살피다가 한 조각이 뒷간 옆의 대가지에 걸려있는 것을 보고 그것 마저 태웠도다. 이때 상제께서 하늘을 바라보시고 「속하도다」고 말씀하시기에 종도들도 따라 하늘을 쳐다보았도다. 햇무리가 서다가 한 쪽이 터지더니 남은 종이 쪽지가 타는데 따라 완전히 서는도다. 이것을 보시고 상제께서 「기차 기운을 돌리는 공사라」고 말씀하셨도다.
【공사 3장 28절】태을주가 태인 화호리(禾湖里) 부근 숫구지에 전파되어 동리의 남녀 노소가 다 외우게 되니라. 상제께서 이 소문을 전하여 들으시고 「이것은 문 공신의 소치이니라. 아직 때가 이르므로 그 기운을 거두리라」고 말씀하시고 약방 벽상에 「기동북이 고수 이서남이 교통(氣東北而固守 理西南而交通)」이라 쓰고 문밖에 있는 반석 위에 그림을 그리고 점을 찍고 나서 종이에 태을주와 김 경흔(金京訢)이라 써서 붙이고 일어서서 절하며 「내가 김 경흔으로부터 받았노라」하시고 칼 · 붓 · 먹 · 부채 한개씩을 반석 위에 벌려 놓으셨도다.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뜻이 가는 대로 집으라」하시니 류 찬명은 칼을, 김 형렬은 부채를, 김 자현은 먹을, 한 공숙은 붓을 집으니라. 그리고 상제께서 네 종도를 약방 네 구석에 각각 앉히고 자신은 방가운데 서시고 「二七六 九五一 四三八」을 한번 외우시고 종도 세 사람으로 하여금 종이를 종이 돈과 같이 자르게 하고 그것을 벼룻집 속에 채워넣고 남은 한 사람을 시켜 한쪽씩 끄집어 낼 때 등우(鄧禹)를 부르고 끄집어 낸 종이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하고 또 그 종이쪽을 받는 사람도 역시 등우(鄧禹)를 부르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 받은 그 사람은 역시 청국지면(淸國知面)이라 읽고 또 그와 같이 반복하여 마성(馬成)을 부르고 다음에 일본지면(日本知面)이라 읽고 또 그와 같이 재삼 반복하여 오한(吳漢)을 부르고 다음에 조선지면(朝鮮知面)이라 읽게 하시니라. 이십 팔장과 이십 사장을 마치기까지 종이쪽지를 집으니 벼룻집 속에 넣었던 종이 쪽지가 한 장도 어기지 않았도다.
【공사 3장 29절】상제께서 기유(己酉) 년에 들어서 매화(埋火) 공사를 행하고 사십 구일간 동남풍을 불게 하실 때 사십 팔일 되는 날 어느 사람이 찾아와서 병을 치료하여 주실 것을 애원하기에 상제께서 공사에 전념하시는 중임으로 응하지 아니 하였더니 그 사람이 돌아가서 원망하였도다. 이로부터 동남풍이 멈추므로 상제께서 깨닫고 곧 사람을 보내어 병자를 위안케 하시니라. 이때 상제께서 「한 사람이 원한을 품어도 천지기운이 막힌다」고 말씀하셨도다.
【공사 3장 30절】상제께서 군산에 가셔서 공사를 보실때 「지유군창지 사불천하허 왜만리 청만리 양구만리 피천지허 차천지영(地有群倉地使不天下虛 倭萬里淸萬里洋九萬里 彼天地虛此天地盈)」이라고 써서 불사르셨도다.
【공사 3장 31절】상제께서 무더운 여름 날에 신방축 공사를 보시고 지기를 뽑으셨도다. 종도들이 상제께서 쓰신 많은 글을 태인 신방축의 대장간에 가서 풍굿불에 태웠나니라. 며칠 후에 상제께서 갑칠을 전주 김 병욱에게 보내여 세상의 소문을 듣고 오게 하셨도다. 갑칠이 병욱으로부터 일본 신호(神戶)에 큰 화재가 났다는 신문 보도를 듣고 돌아와서 그대로 상제께 아뢰이니 상제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일본의 지기가 강렬하므로 그 민족성이 탐욕과 침략성이 강하고 남을 해롭게 하는 것을 일삼느니라. 옛적부터 우리나라는 그들의 침해를 받아왔노라. 이제 그 지기를 뽑아야 저희의 살림이 분주하게 되어 남을 넘보는 겨를이 없으리라. 그러면 이 강산도 편하고 저희도 편하리라. 그러므로 내가 전날 신방축 공사를 보았음은 신호(神戶)와 어음이 같음을 취함이었으니 이제 신호에 큰 불이 일어난 것은 앞으로 그 지기가 뽑힐 징조이로다」고 하셨도다.
【공사 3장 32절】하루는 상제께서 경학의 집에서 사지를 오려내는 듯이 백지(白紙)를 두 기장으로 오려 벽에 붙이고 물을 뿜으시니 빗방울이 떨어지는지라. 그리고 청수 한 동이를 길어오게 하고 그 동이 물 한 그릇을 마시다가 남은 물을 다시 동이에 붓고 모인 여러 종도들에게 그 동이 물을 한 그릇씩 마시게 하셨도다.
【공사 3장 33절】상제께서 하루는 무당도수라 하시며 고부인(高夫人)에게 춤을 추게 하시고 친히 장고를 치시며 「이것이 천지(天地) 굿이니라」하시고 「너는 천하 일등 무당이요 나는 천하 일등 재인이라 이당 저당 다 버리고 무당의 집에서 빌어야 살리라」고 하셨도다.
【공사 3장 34절】또 어느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절후문(節候文)이 좋은 글인 줄을 모르고 있나니라. 시속말에 절후(節候)를 철이라 하고 어린 아이의 무지 몰각한 것을 철부지라 하여 어린 소년이라도 지각을 차린 자에게는 철을 안다 하고 나이 많은 노인 일지라도 몰지각하면 철부진한 어린 아이와 같다 한다」고 말씀하셨도다.
【공사 3장 35절】상제께서 하루는 구릿골에서 밤나무로 약패(藥牌)를 만들어 패면(牌面)에다 만국의원(萬國醫院)이라고 글자를 새겨 그 글자획에다 경면주사(鏡面朱砂)를 바르시고 이 약패를 원평(院坪) 길거리에 갖다 세우라고 공우(公又)에게 명하셨도다. 공우가 약패를 갖고 원평으로 가려고 하니라. 상제께서 가라사대 「이 약패를 세울 때에 경관이 물으면 대답을 어떻게 하려하느뇨」하시니 공우 여쭈길 「만국의원(萬國醫院)을 설치하고 죽은 자를 재생케 하며 눈먼자를 보게 하고 앉은뱅이도 걷게 하며 그밖에 모든 질병을 다 낫게 하리라고 하겠나이다」고 아뢰니 「네 말이 옳도다. 그대로 시행하라」하시고 그 약패를 불사르셨도다.
【공사 3장 36절】상제께서 김 형렬의 집에 이르시니 형렬이 식량이 떨어져서 손님이 오는 것을 괴롭게 여기는 기색이 보이므로 가라사대 「개문납객(開門納客)에 기수기연(其數其然)이라 하나니 사람의 집에 손님이 많이 와야 하나니라」하셨도다.
【공사 3장 37절】상제께서 六월 어느날 천지공사를 마치신 후 「포교 오십년 공부종필(布敎五十年工夫終畢)」이라 쓰신 종이를 불사르시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이윤(伊尹)이 오십이 지 사십구년지비(五十而知四十九年之非)를 깨닫고 성탕(成湯)을 도와 대업을 이루었나니 이제 그 도수를 써서 물샐틈 없이 굳게 짜놓았으니 제 도수에 돌아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하셨도다.
【공사 3장 38절】다시 말씀을 계속하시기를 「九년간 행하여 온 개벽공사를 천지에 확증하리라. 그러므로 너희들이 참관하고 확증을 마음에 굳게 새겨두라. 천리는 말이 없으니 뇌성과 지진으로 표명하리라.」상제께서 모든 종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별안간 천둥치고 땅이 크게 흔들렸도다.
【공사 3장 39절】상제께서 공사를 행하실 때 대체로 글을 쓰셨다가 불사르시거나 혹은 종도들에게 외워두도록 하셨도다.
천하자기신 고부운회(天下自己神古阜運回)
천하음양신 전주운회(天下陰陽神全州運回)
천하통정신 정읍운회(天下通情神井邑運回)
천하상하신 태인운회(天下上下神泰仁運回)
천하시비신 순창운회(天下是非神淳昌運回)
불지형체 선지조화 유지범절(佛之形體仙之造化儒之凡節)
도전어야 천개어자(道傳於夜天開於子) 철환천하 허령(轍環天下虛靈)
교봉어신 지벽어축(敎奉於晨地闢於丑) 불신 간아족 지각(不信看我足知覺)
덕포어세 인기어인(德布於世人起於寅) 복중팔십년 신명(腹中八十年神明)
궐유사상 포일극(厥有四象包一極) 구주운조 낙서중(九州運祖洛書中)
도리불모 금수일(道理不暮禽獸日) 방위기맹 초목풍(方位起萌草木風)
개벽정신 흑운월(開闢精神黑雲月) 편만물화 백설송(遍滿物華白雪松)
남아숙인 선삼재(男兒孰人善三才) 하산불양 만고종(河山不讓萬古鐘)
귀마일도 금산하(龜馬一道金山下) 기천년간 기만리(幾千年間幾萬里)
포련태련 양세계(胞連胎連養世界) 대도일월 왕성령(帶道日月旺聖靈)
원형이정 도일월(元亨利貞道日月) 조인장부 통명명(照人腸腑通明明)
경지영지 불의쇠(經之營之不意衰) 대곡사로 결대병(大斛事老結大病)
천지권우 경지사(天地眷佑境至死) 만사아손 여복장(慢使兒孫餘福葬)
면분수구 심생신(面分雖舊心生新) 지원급사 속망망(只願急死速亡亡)
허면허소 거래간(虛面虛笑去來間) 불토심정 견여의(不吐心情見汝矣)
세월여류 검극중(歲月如流劍戟中) 왕겁망재 십년후(往劫忘在十年後)
부지이지 지부지(不知而知知不知) 엄상한설 대홍로(嚴霜寒雪大洪爐)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正心修身齊家治國平天下) 위천하자 불고가사(爲天下者不顧家事) 걸악기시야 탕선기시야(桀惡其時也湯善其時也) 천도교 걸어악 천도교 탕어선(天道敎桀於惡天道敎湯於善) 걸지망 탕지흥 재이윤(桀之亡湯之興在伊尹)」
「속수지지 갈공모계 불능선사(束手之地葛公謀計不能善事) 와해지여 한신병선 역무내하(瓦解之餘韓信兵仙亦無奈何)」
아득장생 비태청(我得長生飛太淸) 중성조아 참요장(衆星照我斬妖將)
악역최절 사마경(惡逆摧折邪魔驚) 섭강이두 제구령(躡罡履斗濟九靈)
천회지전 보칠성(天回地轉步七星) 우보상최 등양명(禹步相催登陽明)
일기혼돈 간아형(一氣混沌看我形) 음음급급 여율령(唵唵急急如律令)
【공사 3장 40절】상제께서 어떤 공사를 행하셨을 때
소원인도(所願人道) 원군불군(願君不君) 원부불부(願父不父) 원사불사(願師不師)
유군무신 기군하립(有君無臣其君何立) 유부무자 기부하립(有父無子其父何立)
유사무학 기사하립(有師無學其師何立) 대대세세 천지귀신 수찰(大大細細天地鬼神垂察)
의 글을 쓰시고 이것을 천지 귀신 주문(天地鬼神呪文)이라 일컬으셨도다.
【공사 3장 41절】상제께서 무신년에 무내팔자 지기금지 원위대강(無奈八字至氣今至願爲大降)의 글을 지으시니 이러하도다.
욕속부달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欲速不達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구년홍수 칠년대한(九年洪水七年大旱) 천추만세 세진(天秋萬歲歲盡)
불선유 일원수 육십(佛仙儒一元數六十) 삼합위 길흉도수(三合爲吉凶度數)
십이월 이십육일 재생신(十二月二十六日再生身) 〇〇
또 무신년에
일삼오칠구(一三五七九)
이사육팔십(二四六八十)
성기국(成器局) 봉묘천지신(塜墓天地神) 기지천지신(基址天地神)
운(運) 영대사해박(靈臺四海泊) 득체(得體) 득화(得化) 득명(得明)
【공사 3장 42절】이해 섣달에 공사를 보실 때 체면장(體面章)을 지으셨도다.
유세차 무신 십이월 칠일(維歲次戊申十二月七日)
도술(道術) 감소고우(敢昭告于)
황공복지 문안(惶恐伏地問安) 기체후 만사불충불효무서 신읍(氣體候萬死不忠不孝無序身泣)
축 어군어부어사 기체후 대안천만(祝於君於父於師氣體候大安千萬) 복망복망(伏望伏望)
첫댓글 제 종교는 대순진리회(이문 1방면, 정리)입니다. 카페 개설 초기에 저는 이 점을 명확히 밝혔습니다. 저는 카페활동에 종교를 결부시킬 의도는 없습니다. 2011년도에 교통사고(사망사고)를 내고, 저는 심한 죄책감과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처음 4개월 동안은 매일 천태종 절에 다니며 거의 온종일 "관세음보살" 염불을 외웠습니다. 이후 1988-1995년까지 믿었던 대순진리회를 다시 제 종교로 삼았습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며, 나머지 시간에는 "전경"을 타이핑했습니다. 오늘 우연히 그 파일을 발견했기에, 카페 검색유입이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게시글로 올립니다. 용량초과로 부득이 여러개 게시글로 나누어 올립니다.
<공사>는 강증산께서 1901-1909년까지 9년간 행하셨던 <천지공사>를 기록한 내용입니다. <천지공사>란 "천지의 운행도수를 새롭게 뜯어고친 공적인 일"을 의미합니다. 대순진리회는 이 분이 행하신 천지공사로 인해, 삼계(자연계, 인간계, 신명계)의 운행법칙이 바뀌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즉 선천(이전 세상)은 "상극의 원리"에 의해 운행되었으나, 후천(이후 세상)은 "상생의 원리"에 의해 운행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각 개인은 후천세상에 적합한 사람이 되려고 힘써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