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파인딩 포레스터
Story
비상한 문학적 재능을 가진 브롱스의 흑인 소년 자말 월레스(롭 브라운)는 친구와 가족 앞에서는 농구밖에 모르는 평범한 또래로 행세한다. 괴이한 소문에 감싸인 이웃의 은둔자(숀 코너리)의 집에 숨어든 자말은 주인에게 들키자 놀라 배낭을 둔 채 도망치고, 며칠 뒤 창문으로 던져진 배낭 속 일기장에서 빽빽한 수정과 조언을 발견한다. 은둔자의 제자이자 친구가 되는 자말. 학력평가에서 고득점한 자말은 영재학교로 전학가게 되고, 그곳에서 자말을 맞이하는 건 편견덩어리 교사(F. 머레이 에이브러햄)와 총명한 여자친구(안나 파퀸), 그리고 그의 은둔자 친구가 한편의 걸작을 남기고 영영 사라진 전설의 작가 윌리엄 포레스터라는 사실이다.
Review
신만이 창조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기막히게 아름답다. 천재도 그들 중 하나다. 그러나 가족과 친구들 틈에서 ‘다른’ 존재로 격리되기를 두려워하는 16살의 흑인 소년 자말은 그 아름다움을 역병으로 여긴다. 성적은 딱 튀지 않을 만큼 조절하고, 친구들의 철없는 대화에 어울리며 자말은 형이 못 이룬 농구선수의 꿈이 곧 자기의 장래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래도 은밀한 도락은 계속된다. “아이들은 꽥꽥거리고 아버지는 애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고함치고 아내는 남편더러 시끄럽다고 소리치는” 후줄근한 이웃의 소음 속에서 자말은 남몰래 키에르케고르와 카프카, 사드와 친교한다. 그러나 죽은 작가들은 소년에게 귀기울이거나 말을 걸어주진 않는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와 소통할 수 없는 조숙한 자말에게 벗이 되는 것은 단 한편의 걸작을 내고 침묵한 은둔 작가 윌리엄 포레스터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J. D. 샐린저를 주형으로 떠낸 듯한 인물 포레스터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늙어가는 <위대한 유산>의 미스 해비샴처럼 실패 혹은 성공에 대한 공포로 자신을 유폐한 지 30년째다. 이쯤에서 <파인딩 포레스터>는 재능과 불화한 두 ‘천재 소년’의 동병상련기 혹은 러브스토리가 된다. 동시에 감독의 전작 <굿 윌 헌팅>과의 혈연도 분명해진다. 천재를 타고난 노동계급 청년의 번민, 동성애적 공기를 두른 보호자-피보호자 관계의 두 남자, 상냥하고 지적인 여자친구, 고급스런 재능을 건방진 인간들의 콧대를 꺾는 ‘레크리에이션’에나 낭비하는 에피소드까지 충실한 복습이 행해진다.
적잖은 배우들로부터 그들의 베스트를 이끌어냈던 반 산트의 영화답게 <파인딩 포레스터>의 연기 화음은 수준급이다. 스카치 위스키를 홀짝이며 동굴의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는 숀 코너리의 카리스마는 영화를 흔들리지 않게 고정한다. 자전거를 타고 자말의 학교를 찾아와 진실을 밝히는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면 코너리는 마치 잠시 미행(微行) 나와 친히 신탁을 내리는 아폴로 신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심장은 어린 연기자 롭 브라운의 차지. 브라운은 그맘때 소년의 짐짓 무뚝뚝하고 단순한 표정 아래 일렁이는 단순치 않은 감정의 잔물결을 의젓하게 전달한다.
기본적으로 <파인딩 포레스터>는 장르적 관습의 메이크업 없이 맨 얼굴로 나설 만큼 대담한 영화는 아니다. 살리에리 형의 인물 크로퍼드 교수- <아마데우스>의 F. 머레이 에이브러햄이 연기하는- 는 악역용 캐리커처에 가깝고, 오로지 숀 코너리를 은신처에서 끌어내기 위해 자말의 표절 혐의를 미끼로 놓은 플롯의 덫은 작위적인 분내가 난다. 구성의 관습적 인상을 그나마 누그러뜨리는 것은 음악. 위기도 감정의 격랑도 간소한 악기로 세련되게 반주하는 마일즈 데이비스와 오넷 콜먼의 연주는 <파인딩 포레스터>에서 팝콘 냄새를 지우고 양피지 향기를 감돌게 한다.
우리는 아마 <파인딩 포레스터>를 ‘뉴욕판 <굿 윌 헌팅>’으로 딱지 붙인 뒤 서랍에 던져넣고 잊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하기가 지나치게 수월하다는 점이다. 심지어 반 산트는 왕년의 윌 헌팅 맷 데이먼을 에필로그에 초대한다. <사이코>의 리메이크 이후, 구스 반 산트 감독에게 독창성과 재기의 순도를 채점받는 문제는 더이상 중대한 고려가 아닌 듯하다. <파인딩 포레스터>의 참다운 클라이맥스는 스타일과 내러티브 노선 외곽에 존재한다. 영화는 두 사람이 아무 대화없이 타자기를 두드리고 음악을 들으며 고요한 공존을 즐기는 실내 시퀀스에서 가장 풍부해 보이고, 엘리트 사립고교에 등교하는 첫날 아침 지하철 안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자말의 얼굴을 지켜보는 짧은 숏에 이르러 최고의 순간을 맞는다. 반 산트는 소더버그가 그렇듯 점점 장식에 무관심해지고 그 이면에 눈을 빼앗기고 있다. 감독은 언제까지나 소년을 다정히 내려다보고 있을 포레스터의 창가 자리에 카메라를 다시 세우고 영화의 뒷장을 덮는다. 그 창가에서는 주인공들이 쓴 에세이의 제목대로 ‘삶에 대한 믿음이 익어가는 계절’의 훈풍이 커튼을 흔들고 있다.
김혜리 기자 vermeer@hani.co.kr
“구도가 멋진 각본이었다”...주연 숀 코너리-롭 브라운 인터뷰
<파인딩 포레스터>가 공식 경쟁부문에서 상영된 지난 2월 제51회 베를린영화제. 보통은 시간이 귀한 스타들이 결석하고 감독이 회견장을 외롭게 지키는 일이 흔하지만, <파인딩 포레스터>의 공식 회견장에서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의 결석한 자리를 관록의 숀 코너리와 신예 롭 브라운이 나란히 채웠다. 숀 코너리는 “사람이 누구와 대화를 하려고 할 때는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겠냐”며 사진기자들의 의욕을 위엄으로 제압한 뒤, 자신에게 몰리는 기자들의 질문과 주의를 신인 롭 브라운에게 돌리려고 노력했다.
-서로를 상대로 연기한 소감.
=숀 코너리: 롭의 나이에 나는 결코 그런 연기를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만났던 최고의 공연배우 중 한 사람이다.
=롭 브라운: 나의 첫 영화 연기에서 숀 코너리, 그리고 구스 반 산트 감독과 다른 조연자들을 만난 건 축복이다.
-직접 출연도 하고 제작도 했는데.
=코너리: 내가 제작자로 나선 것은 오래된 일이다. 영화 만들기에서 더 많은 통제력을 내 손 안에 두기 위해서였다. 구도 자체가 재미있는 각본이어서 <파인딩 포레스터>에 출연을 결정했다. 아주 지적이고 유머러스한 시나리오였다. 자말 역 오디션에 수천명이 참석했는데 우리는 결국 직소 퍼즐의 가장 멋진 한 조각을 발견했다.
-최초의 영화 경험에 대한 기억은.
코너리: 생각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다. <신은 그에게 개 한 마리를 주셨다>다. 어느 소년이 몽그렐종 개에게 포인터되는 법을 억지로 가르치는 이야기였다.
브라운: 이 영화가 최초다. 처음 포레스터에게 다가가는 장면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전에 경험한 연기는 8, 9학년 때쯤 공연한 연극 <포카혼타스>가 가장 큰 무대였다. 이번 오디션에는 300달러의 집세를 벌기 위해서 참가했다.
-가장 맘에 드는 작품은.
=숀 코너리: 어려운 질문이다. 완전히 만족한 적은 한번도 없다. 스필버그와 만든 <인디아나 존스>를 매우 좋아한다.
-누가 최고의 007이라고 보나.
=코너리: 나만 빼면 다른 모든 배우가 최고다.
-정치 활동과 기사작위에 관해.
=코너리: 하던 일을 계속 하다보니 그냥 기사작위 제안을 받았고 딸려온 조건은 없었다. 나의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한 관심, 정치적 예술적 견해에는 변화가 없다. 그래서 좋은 낯으로 받기로 했다.
자료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