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약대를 다닐 때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미국에서 십여년 거주하다가 한국으로 이주하는 바람에 한국말을 영어문장을 번역한 것처럼 말하는 교수가 한 분 계셨다. 그 당시에는 그 분이 강의를 할 때 영어식 표현을 한국어로 직역하는 바람에 무슨 의도인지 어안이 벙벙했던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어쨌든 그 분이 미국 약사시험에 대해서 언급이 기억이 난다.
그 분 왈, 한국 약사시험은 과목별로 따로따로 단편적인 지식을 사지선다형, 단답형으로 평가하지만 미국 약사시험은 종합적인 임상능력을 평가하는 문제가 나온다고. 환자의 병력 및 처방력을 주고 어떤 약물이 대체처방으로 적합한지, 복약상담을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 물어본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런 약사시험을 통과하기란 불가능할 것처럼 생각됐는데 어쨌든 그런 약사시험을 통과했으니 훈련받기 나름인가보다.)
미국에서 약사면허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한다. 첫번째는 전반적인 임상약학지식을 테스트하는 나플렉스(NAPLEX, North American Pharmacist Licensure Examination)이며 두번째는 약사법 시험이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십년 전만 하더라도 캘리포니아 약사회가 주관하는 객관식과 주관식 문항을 포함한 약사시험을 시행하다가 지금은 컴퓨터 객관식 시험인 나플렉스를 시행한다. 나플렉스는 185문항을 약 4시간 동안 풀어야하는데 컴퓨터-어댑티브 (computer-adaptive) 시험이기 때문에 정답을 계속 맞추면 문제의 난이도가 점점 높아진다. 75점이 합격점이며 미국에서 약대를 졸업한 사람이면 나플렉스는 대부분 통과한다.
75점으로 합격한 사람과 130점으로 합격한 사람에게 나플렉스가 어땠냐고 묻는다면 75점으로 합격한 사람은 시험문제가 매우 쉬웠다고 답한다. 반면 130점으로 합격한 사람은 어려웠다고 답한다. 이는 응시생의 수준에 따라 문제의 난이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75점으로 턱걸이 합격한 사람은 185문제를 푸는 동안 그 수준의 문제에서 왔다갔다했을 것이므로 당연히 쉬운 문제를 풀었을 것이고 130점으로 합격한 사람은 130점 수준의 고난이도 문제를 계속 풀었을 것이다. 나플렉스에 떨어진 외국약대 졸업생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가 말하길 마지막 문제는 “valsartan의 브랜드명이 무엇이냐”였다고 한다. 그런 쉬운 문제가 마지막으로 나왔으니 합격했을리가 없다.
내가 본 나플렉스는 첫 문제는 별로 안쓰는 항생제의 브랜드명을 묻는 것을 시작으로 단답형 계산문제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중반에 가서는 환자의 긴 프로파일을 분석하는 문제가 계속 나왔다. (거기다 megaloblastic anemia나 leukemia가 환자 진단명마다 왜 자꾸 따라 나오는 것인지.) 후반부에는 시험에 나오면 틀리리라 생각하고 대충 눈으로 훌텄던 에이즈 치료제와 항암제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 다음부터는 계속 찍었는데 (점잖게 말하면 educated guess를 했다고나 할까) 급기야 너무 절망하고 당황해서 운전면허증까지 시험장에 놓고 나왔을 정도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비교적 고득점으로 나플렉스를 통과했기 때문에 그런 이상한(?) 문제가 중반부터 계속 나온 것이었다.
나플렉스에서 다루는 환자 프로파일 문제의 아주 단순한 일례 아래와 같다. (미국 약사시험 준비에 사용하는 Appleton & Lange Review of Pharmacy에서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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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rmacy Medication Record Patient Name: Mary Smith Age: 56 Height: 5’2” Weight: 130lb Sex: F Allergies: aspirin, codeine
Diagnosis Primary: Chronic UTI, Conjunctivitis Secondary: Migraine, PMS
Lab Test Date Test & Results 5/1 Urinalysis, pyuria, C&S=1×106 E.coli Medication Record Date Drug Sig 7/15 Cipro 200mg IV q12h × 7 days 7/15 Pyridium 200mg po tid 7/23 Bactrim DS po q12h
Other information Date Comment 7/25 Discharged with Rx Bactrim DS 20 1 po q12h
This patient should be advised that Pyridium may cause (a) discoloration of the urine (b) migraines (c) temporary weight gain (d) dizziness (e) temporary infertility
On 7/28, the physician’s office calls concerning the patient’s conjunctivitis which is getting worse. The prescriber wants a fluoroquinolone ophthalmic solution. Which one of the following products could be suggested? I. Tobrex II. Levaquin III. Ciloxan (a) I only (b) III only (c) I and II only (d) II and III only (e) I, II and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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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플렉스는 쉽게 붙는 시험이라면 캘리포니아 약사법 시험(CPJE, California Pharmacist Jurisprudence Examination)은 만만하지 않다. 임상약학과 약사법을 종합적으로 묻기 때문에 시험문제 형식은 환자의 긴 프로파일이 나오는 나플렉스와는 달리 약사로 일하면서 실제로 닥칠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묻는다. CPJE의 경우 의사의 처방전을 일례로 주고 처방약을 조제할 것인가, 의사에게 연락할 것인가, 일부만 내보낼 것인가, 환자에게 돌려줄 것인가를 묻는다. 약국에서 환자가 어떤 약을 복용해왔는데 특정 부작용에 대해 문의했다면 어떻게 상담할 것인가, 약국 내 약사 수에 따른 테크니션, 엑스턴, 인턴의 비율, 지진이나 산불 등의 자연재해시 처방약 응급 조제 등의 문제 등이 다뤄진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인턴쉽을 병원 약국, 커뮤니티 약국 및 연관된 기관에서 1500 시간을 채워야 약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으므로 따로 실습을 평가하지 않는다. 대개 미국 약대의 경우 마지막 학기에는 강의는 없고 학교가 배정한 병원에서 로테이션 근무를 하므로 약대를 졸업할 즈음에는 대부분의 인턴시간이 채워지며 실무에 대한 감각도 익히게 된다.
미국에서 이렇게 실습하고 시험보고 오는 약사는 당장 현장투입이 가능할 것 같지만 실제 상황에서 신참 약사는 헤매기 마련이다. 오늘 플로터로 신참 약사가 오후에 들어왔다. 환자 불만 및 보험 처리를 할 능력이 안되고 환자 프로파일을 전체적으로 보는 눈이 아직 없었다.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바쁜데 일처리는 제대로 못하고 자꾸 질문만 하니 한편으로 짜증이 났지만 나도 그런 신참 시절이 있었음을 상기하면서 찬찬히 설명해줬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