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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가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가 지금, 중3까지 살아오면서 그처럼
기억에 남는 날들이 또 있었을까? 어쩌면, 그건 하늘이 내게 내려준 행운.
-그렇지만, 그런 행운도 이젠 후회스럽기만 하다.
[단편수필] ★사라진 성격★
그래, 내 성격이 꼭 이랬던 것만은 아니다. 언제나 나는 활기차고 뚜렷했던 성격을 가진 적이 있
었다고 늘 말씀해오시던 부모님도 있었으니까...
난 A형이다. A형들의 특징은 주로 내성적이며, 꼼꼼하고 친구를 사귀는 데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며
따라서 그렇게 사귄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도 상당히 싫어하며 꺼려한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까지 사귀어 온 친구는 열명도 채 안 되어온다. 만나온 사람은 천 명이 넘지만,
그 중에 내가 선택한 사람은 고작해야 여섯 명. 그러나, 그 여섯 명 중에서도 나는
결국 한 친구를 잃고 말았다.
그 친구의 이름은 말할 수가 없다. 내가 이 글을 올리는 데에 있어 그 이름을 말한다면 그건
그 친구에게나, 혹은 나에게나 모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친구 또한 A형이었다.
어쩌면이라고 생각했다. 나보다 더 신중을 기하며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닐까, 라고.
나는 초등학교 1,2학년 때만 해도 친구가 좀 있던 편이었다. 같은 반에서 한 명 정도의 남자친구를
또한, 동급생인 여자애 두 명을 그냥 친구 사이로서 지내왔다. 그게 2년 간의 보람이었다.
친구와 함께 노는 것이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일이었고, 그래서 나는 활발한 성격을 그대로 유지해
나갔다. 어머니께 일본어 학원에 보내달라고 말한 것도 그런 연유였다. 그 학원에 가서 내가
일본어를 잘 할 수 있게 되면 자신감이 생길 것이고, 더불어서 성격 또한 외향적이 될 것이 아닌가.
하지만 2년은 터무니없이 빨리 지나갔고, 갑작스러운 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언짢은 일이었다.
친구를 사귀었다면, 그 곳에 게속 있고 싶은 것이 내 심리였지만, 부모님의 말씀은 거역할 수가
없었고, 또한 반박할 만안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이사를 가는 시간은 실제로도 매우 짧았다. 사실, 그 곳에서 적응하는 데는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앞에 더욱 큰 문제를 두고 있었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속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인가. 내심 두려움도 없지 않아 있었다. 친구는 다시 사귀기가 어렵다.
더구나 전형적인 A형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당시는 겨울이었고, 머지않아
학교를 가야할 시기. 내가 전학온 학교는 바로 남성초등학교였다. 그러니 나는 이 곳에서
4년의 초등학교 기간을 보내야 한다.
3월달. 처음 보는 학교 속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이 그 넓은
운동장 속 휑한 바람이 부는 곳에서 3학년 입학식을 치루었다. 그리고, 그 입학식이 끝난 후,
나는 내 생활에서 가장 귀중한 친구와의 만남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서로 처음보는 얼굴인데도, 어떻게 된 건지 말을 걸어왔고 나는 그 말에 대답해 주었다.
물론, 별다른 감정이 없었고 사실 말하는 것도 싫었지만 그래도 무시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온 행동이었다. 그렇게 방과후, 그 친구와 함께 하교길을 걸었다. 우연히 집의
위치는 비슷한 곳. 때문에 나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된 것이다. 3학년 초기, 나는 친구라곤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내 성격 때문
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 상당히 불운한 시절이었다.
그래, 난 소위 '왕따'였다. 반에 있어서 공기 같은 존재. 그게 나였다. 무시되고 괴롭힘당했지만 그래도
내가 보는 친구는 단 한 명이었기 때문에 애써 견뎌낼 수가 있었다. 그 친구와 같은 반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그 여린 마음에 상당한 상처를 입고 3학년을 마쳐야 했을지도 모른다.
3학년 때 매우 친했다. 물론 그건 내 생각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그 아이는
상당히 소중하고 제일 친했던 아이였다. 내가 아는 친구는 단 한 명이라는 상태로 1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런데, 내 앞에 행운만이 펼쳐지진 않았다. 4학년, 5학년도 연달아 그 친구와 다른 반이 되었다.
4학년 때도 나는 '왕따', 5학년 때도 나는 '왕따'였다. 그러다 보니, 생긴 건지도 모른다.
내 마음 속에서 '개인주의'가 그렇게 움텄는지도 모른다.
4학년 어떤 더운 여름날 오후, 수업이 모두 끝나고 주번이 납게 되었다. 그 날은 내가 주번이었기에
문단속을 철저하게 해야 했다. 사명감이 유난히 두터운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 때문에 일어나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마음이 괴로워지기 마련이다. 바로 내가 그런 유형이었다.
그런데 그 날에 나는 참고 또 참아온 설움의 눈물을 흘려야했다. 왕따는 왕따. 그렇다면 반에서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것이다. 그건 누가 뭐래도 사실. 그러나 내 책가방을 빼앗은
채로 나를 괴롭히고 있는 2명이 아직 교실 안에 있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상당히
괴롭다. 정신적인 충격이 머릿속을 강타해왔다. 피가 머리로 몰렸고, 주먹을 꽉 쥐었다. 왜일까?
그 때 나는 살인충동까지 일어났다. 지금도 생각해보건대, 만일 그 때 내 손에 칼이 쥐어져 있었다면
나는 필시 그 칼을 쥐고 두 명을 죽였을 것이다.
"어?" 입에서 갑자기 무의미적인 소리가 흘러나왔다. 친구가 들어온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밖에서 참다못해 교실로 들어와서는 내가 우는 것을 보자, 그 책가방을 빼앗아 돌려준 것이다.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히면서 나란히 하교길을 걸어갔다. 때는 늦은 오후, 벌써 땅이 뜨거워지는
때라 그런지, 머리에 땀이 줄줄 흐르는데도 상관할 틈도 없었다. 친구 보기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날 도와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불운의 연속이 스쳐지나갔던 4학년 때를 마칠 무렵인 12월의 추운 겨울. 눈이 펑펑 쏟아졌던 때이
기도 하다. 그 날은 잊을 수가 없다. 아침부터 아파트 단지 주변의 눈이라는 눈은 모두 긁어모아
조그만 요새를(조그만하다고 하지만, 그 때 내 키의 반, 즉 약 50cm 정도였다.) 짓고는 눈싸움을
벌였다. 단 둘이 하는 눈싸움이었지만 그 눈이 얼마나 단단하게 뭉쳤던지 얼굴에 한 번 맞자,
눈 언저리가 매우 아파왔다.
난 태어날 때부터 승부욕이 상당히 강했다, 때문에 내가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하지만 이건
인정해야 했다. 그날 난 분명히 눈몰매를 맞고 항복해야 했다.
5학년은 그다지 의미없었다. 지금 기억에 남는 일도 별로 일어나지 않았고 그래서 더욱 기분이
나쁘다. 그만큼 불운한 학교생활을 보냈다는 말과 다를 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때 나는 친구를 하나 더 만날 수 있었다.
6학년 때 들어서 5학년 때의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 물론 이번엔 같은 반의 친구로서 만난 것이다.
그렇게 되자, 자연히 그 친구와의 사이가 깊어져, 마침내 허물없는 사이가 될 수 있었다.
친구의 생일 때면 가서 축하해주기도 했고, 같이 놀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알 수 있었다.
그 친구는 뛰어노는 것을 싫어했다. 그저 집에서 깊게 생각을 하거나 아니면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이
그 친구의 놀이였다. 그렇게 한 친구를 유난히 가까이하다보니, 다른 친구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때부터 그 친구와는 같이 놀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사라져 버렸다.
중학교에 들어가는 사람은 모두 알다시피, 상당히 떨린다. 주변에 있는 어떤 중학교를 1지망에 써넣
어도 그 것이 안 될 경우도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제 막 사귄 두 명의 친구와 학교마저
떨어진다면, 또다시 친구 없는 때를 고민해봐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런 불운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두 친구와 난 같은 중학교에 입학했고 잘 된 일이라고
믿었다. 그 때도 2월달, 아직 찬바람이 가시지 않은 늦겨울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레 코가 추위를
못 이겨, 쉴 새 없이 아려와도 웃으면서 올 수가 있었다.
친구와 헤어지지 않아도 되니까... ,라고 믿으면서.
중1 때, 이번에는 다시 체인지되어 버렸다. 한 쪽으로 기울어진 마음을 다시 평형하게 맞출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괴로웠다. 예전에 소홀히 했던 친구를 앞에 두고 미안해져서
말도 제대로 덧붙이지 못했다. 그런 미안함 때문일까. 역시 왕따당하는 그 학교 생활에서도
나는 그 친구를 괴롭혔다. 내 주장은 장난이라는 것이지만, 그렇다면 나도 장난을 당하는 것인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논리에 사로잡혀서 쭉 가던 1년의 막 속에서 나는 두 가지 큰일을 알게 되었다.
첫째는, 또 다른 친구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상당히 활달하고 다른 사람의 비평에도
크게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는 듯 싶었다. 그래서 내 시선에서 봤을 때 참 대범하다고 보여졌다.
하지만, 학교 성적은 거의 턱걸이 수준. 내내 20등 밖으로 밀려났는데도 열심히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내 10등 안에 들지 못하는 나도 친구와 노는 일에만 빠져서 공부에는
별다른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내내 평균이 70대였다.
둘째는, 9월달에 벌어졌던 일이었다. 지금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악몽의 순간. 또한 적기도 매우
부끄러우니 그냥 넘어가도록 한다.
그 때쯤 나는 심각한 폐쇄주의적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아마도 환경의 영향. 그도 그럴 것이, 5년 동안
반 내부에서 계속 왕따 취급, 공기 취급받았다면 그 사람이 과연 폐쇄적이 아니게 될 수 있을까?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도 그 범주 속에 들어가 있다. 이미 왕따당해서 성격에
많은 상처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마음은 이곳 저곡 찢어지고 뜯겨져 마침내 굴러가지 않는 그대로
멈추어 차가운 시선으로 주위를 의심하는 마음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1년은 지나갔다. 그리고 남은 2년, 그 세월 동안 나는 그 친구와 떨어져 버렸다. 다른 반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9월달의 그 사건 이후에는 서로 대화도 잘 하지 않았다.
그 증세는 2학년 때 들어와 훨씬 심해졌고, 덕분에 친구 하나 잃었다는 매우 큰 상처를 입어서
결국은 극상의 폐쇄적 성격이 되어버렸다. 그 이후, 나는 세 명의 아주 극소수적인 사람들을 제외하곤
대화를 극도로 피하지만, 언젠가 내가 다시 원래의 활발한 성격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다시 사귀고 싶다. 내가 5년 동안이나 사귀어 온 그 친구를...
초등학교 시절 나의 유일한 지음이 되어준 그 친구를...
-END-
흠흠, 제 경험입니다. 사실 제목이 내용에 그다지 연관되진 않지만... 이건 수필이고, 전 여기에서
저의 시선으로 사람들을 사실적으로 봐 왔습니다. 지금 전, 중3이지만, 여전히 폐쇄적인 사람이며
아직도 그 따돌림당한 휴유증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하나 명심하십시오.
저의 장래희망은 선생님이지만, 6년이 넘도록 저는 폐쇄되어왔고 외부의 다른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더욱이 지금은 낯선 사람을 보고 대화하는 것도 두렵고 무서울 지경입니다.
여러분, 왕따나 따돌림 같은 것, 절대 하지 마십시오. 혹시 여러분 학급에 공부를 좀 못한다거나,
말에 대답을 잘 하지 않는다거나 해서 따돌림시키거나 때리거나 하는 짓은 정말 멍청한 짓입니다.
거기에 따른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서 지구상에 태어난 한 아이가 인생에 처절한 고통을 받을 수
있으며 그 고통이 당신에게 그대로 보복되어질 수도 있습니다. 또한 실제로 이 글을 올린 당사자가
그런 경험을 겪었습니다.
누구나 늙으면 과거의 잘못을 후회한다고 합니다. 차라리, 후회하느니 후회할 행동을 하지 않는 것
이 낫지 않겠습니까?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을 중요시했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라는 말입니다. 매우 간단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실행하기 매우 어려운
말이기도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왕따나 괴롭힘, 따돌림 등을 당한다고 생각할 때 여러분은 좋을까요?
아뇨, 전혀 좋지 않을 겁니다. 그건 제가 잘 압니다. 인간의 욕구 중에 3차원적인 욕구가 바로
'타인의 인정'이라고 합니다. 즉, 타인이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이라고 하는데, 만일 따돌림을
당한다면, 여러분은 인정받는다는 욕구에서 이미 멀어진 것입니다. 그건 불행이고 고쳐야 할 일입니다.
그 아이에게 잘못이 있어서 그런다고요. 아니요, 그건 그 아이를 괴롭히는 바로 당신이, 그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일 뿐입니다. 자신의 가치관에서 남마저 판단하려 하지 마세요.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고 그 수많은 사람에게 각각의 개성이 존재합니다. 그 개성을 존중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이미 낙오자입니다.
-칭찬은 한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지만, 괴롭힘은 한 사람에게 정신적 고통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