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죽음
원제 : Death of a Salesman
1966년 미국영화 (TV영화)
감독 : 알렉스 시갈
출연 : 리 J 콥, 밀드레드 더녹, 조지 시갈
제임스 파렌티노, 진 와일더, 스탠리 아담스
버니 코펠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이 1949년 발표되었을때 초연무대에서 주인공 윌리 역은 리 J 콥 이라는 배우가 연기했습니다. 리 J 콥은 당시 비교적 젊은 나이였지만 나이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무대극이라는 특성상 주인공을 연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리 J 콥은 20대 초반부터 일찌감치 연극무대에서 경험을 쌓은 탄탄한 연기자였습니다. 그러다가 영화에도 많이 출연했고 우리나라에는 거만한 악당 이미지의 조연 배우로 많이 각인되었습니다.
1951년 이 희곡이 영화화되었을때 주인공으로 캐스팅 된 인물은 리 J 콥이 아닌 프레드릭 마치 였습니다. 어쩌면 리 J 콥 보다는 30-40년대 주연급 스타로 활약한 프레드릭 마치의 인지도나 지명도가 영화흥행에나 마케팅이 더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연 배우였던 리 J 콥이 밀려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무대에서 함께 공연한 린다 역의 밀드레드 더녹이나 카메론 미첼이 영화에도 캐스팅 된 것을 감안하면 리 J 콥이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프레드릭 마치는 그 영화로 인하여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비롯해서 꽤 호평을 받았으니 그 모습을 지켜본 리 J 콥의 마음은 매우 씁쓸했겠죠.
리 J 콥
이미 공연무대에서 이 역할로 잔뼈가 굵은
리 J ,콥과 밀드레드 더녹의 물흐르는 듯한 연기가
이 무대극에 가까운 TV영화를 돋보이게 한다.
윌리의두 아들
이 희곡이 리 J 콥 주연의 TV영화로 1966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나름 리 J 콥이 원조 배우로서 보상을 받은 셈이지요. 비록 극장용 영화는 아니고 TV영화였지만 그는 당당히 주인공을 연기했습니다. 1949년 초연당시는 30대 후반이던 그는 1966년 TV영화 출연당시 50대 중반의 중견배우였습니다. 덩치가 크고 노안인 그는 이 역할을 맡기에 꽤 적격이었습니다. 그가 출연한 대표작들, '워터프론트'나 '파티 걸' 에서 보여준 조직의 거만한 악당연기나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의 고집불통 다혈질 배심원, '카라마조프의 형제'에서의 거친 아버지역할, '서부의 사나이(개봉제 : 쿠퍼의 분과 노)' 에서의 사악한 악당 등 그는 주로 다혈질적이고 고집이 세고 거만한 중년 남자 역할을 많이 연기했습니다.
1951년 영화에서 주인공이었던 프레드릭 마치와 비교하면 리 J 콥이 사실 이 역할에 더 어울립니다. 프레드릭 마치는 이 역할을 위해서 '연기'를 해야 했지만 리 J 콥은 그냥 자신의 평소에 하던 이미지와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너무 지식인 같은 이미지의 프레드릭 마치는 사실 '기업의 중역' '교수' '의사' '장교' '지휘관' '정치인' 같은 학식있고 근엄한 지식인 역할이 훨씬 어울리는 배우였습니다. 남에게 물건 팔러 다니면서 허세만 살아있는 비현실적인 성격의 낙오자 역할은 오히려 에드워드 G 로빈슨, 잭 레몬, 스펜서 트레이시, 어네스트 보그나인 같은 배우들이 훨씬 더 어울렸겠죠. 그래서 프레드릭 마치는 열정을 바쳐 혼신의 연기를 보여줘야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좋은 호흡을 보여준 리 J 콥과 밀드레드 더녹
아버지와 자주 다투는 아들을 책망하는 어머니
반면 리 J 콥은 평소 그가 가진 이미지를 100% 거의 그대로 활용했습니다. 그는 부리부리한 외모와 큼직한 덩치, 그리고 거만하고 거친 목소리를 가진 고약한 중년남자로 매우 어울렸습니다. 허세좋고 아들과 아내에게 큰소리치는 연기는 뭐 그가 늘상 영화속에서 보여주던 거만한 중년남자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냥 소리만 질러도 윌리 로만의 연기가 나오는 느낌이었습니다.
1951년 영화와 대사와 스토리는 90% 정도 닮았습니다. 아주 동일한 대사가 영화 내내 나오고 있지요. 다만 1966년 영화는 TV영화긴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100% 촬영한 스테이지 무비 입니다. 사실상 TV연극이라고 할 수 있지요. CBS방송국 내에 연극 무대같은 몇 개의 세트를 지었고, 그 한정된 세트 안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합니다. 이렇게 영화의 탈을 썼지만 실제로는 연극이나 다름없는 스테이지 무비는 드물게 등장하는 편인데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니콜 키드만 주연 '도그빌'이 대표적이고 피터 그리너웨이의 '메이콘의 아이'나 조 라이트 감독의 '안나 카레니나' 같은 영화도 그런 유사한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입니다. 물론 도그빌은 완전한 빈 공간에서 연기한 작품이고 다른 두 작품은 영화와 연극이 마치 경계선없이 넘나든 느낌을 주었는데 '세일즈맨의 죽음'은 그 중간쯤 된다고 볼 수 있지요. 연극용 세트를 몇개 지어서 거기서 나름 허술하나마 갖출 것 갖춘 배경이었으니까요.
아들에게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윌리
회사에서 사정도 하고 큰 소리도 쳐보지만
이미 젊은 사장은 윌리를 필요없는 존재로 여긴다.
이웃이자 친구인 찰리는 윌리에게 자기 회사로
오라고 권유하지만 윌리는 자존심에 응하지 않는다.
모처럼 마련된 부자간의 저녁식사
하지만 윌리와 비프는 여전히 다투는데...
리 J 콥의 연기는 꽤 무난합니다 프레드릭 마치 보다는 좀 더 권위적으로 좀 더 사납게 연기를 하지요. 좀 더 상대하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목청도 더 크고 더 괴팍한 느낌이지요. 장남 비프가 아버지 앞에서 매우 숨막혀 할 것 같은 느낌. 실패한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허세가 당당한 윌리 역을 좀 더 강하게 연기하고 있습니다. 비프 역은 '레마겐의 철교' '건파이터의 초대'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등에서 비중있는 역으로 출연한 조지 시갈이 연기합니다. 비프의 친구이자 윌리의 이웃 찰리의 아들인 버나드 역으로는 뜻밖에도 70년대 코믹스타로 활약한 진 와일더가 등장하는데 모처럼 진지하고 엘리트같은 역할이라서 낯선 느낌입니다. 무대공연과 1951년 영화에서 모두 린다역을 했던 밀드레드 더녹은 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린다 역으로 재등장하는데 15년 간격을 두고 같은 역할을 한 셈입니다. 여러번 연기를 한 작품이라서 그런지 대사가 아주 자연스럽게 술술 나온 느낌입니다. 긴 대사를 무척 빠르게 연기하기도 하고. 그냥 물 흐르듯 연기한다고 할까요? 51년 작품보다 월등히 자연스러운 연기를 합니다. 굉장히 적역 캐스팅이 된 셈입니다.
무대처럼 만든 스튜디오 촬영 영화다 보니 카메라나 공간의 움직임은 제한이 있고, 대신 배우들의 연기에 상당히 의존도가 있는 영화입니다. 리 J 콥이나 밀드레드 더녹을 비롯하여 대체적으로 무난하고 좋은 연기들을 보입니다. 51년 영화와 동일한 스토리로 같은 희곡 작품인 만큼 희곡의 대사를 그대로 가져와서인지 판박이처럼 동일한 대사가 많았고, 흑백에서 칼라로 전환된 작품이 배우를 교체하여 리메이크한 셈입니다. 물론 51년 영화는 연극무대 방식 제작이 아니므로 움직임이나 화면의 폭이 좀 더 여유롭고 컸죠.
리 J 콥은 영화, 무대, TV를 병행하는 배우였는데 TV보다는 영화에 훨씬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다 50년대 후반부터는 TV 활동을 더 많이 했는데 이 영화에 출연한 60년대 중반부터 다시 몇년동안 극장용 영화활동에 더 많이 주력합니다. 그 기간동안 두 편의 코믹 첩보물 '전격 플린트 고고작전' 전격 플린트 특공작전' 등에서 다소 우스꽝스런 연기도 하여 그간의 강하고 거만한 이미지를 다소 완화시키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에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호소하는 아들
윌리의 쓸쓸한 장례식
아무튼 소품 TV영화이고 무대극 형식의 작품이긴 했지만 리 J 콥은 프레드릭 마치에게 빼앗겼던 '세일즈맨의 죽음'의 주인공 윌리 역을 맡아서 그나마도 소정의 보상을 받은 셈입니다. 아서 밀러의 이 원작을 각색하여 몇 차례 만들어진 극장용, TV용 영화들중 그가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린 작품을 하나 남겼으니까요. 그리고 좋은 연기로 그런 기회에 대한 보답을 하였습니다. 두 주축 캐릭터를 연기한 리 J 콥과 밀드레드 더녹의 노련하고 자연스런 연기는 다른 배우들에게도 시너지가 되어 불꽃튀는 연기경연을 마치 실시간 연극무대처럼 보여준 작품이 되었습니다. 무대극 방식의 소품이라는 독특한 방식의 60년대 TV영화를 보기 드물게 만난 흥미로운 영화이기도 했고요.
ps1 : 프레드릭 마치가 리 J 콥보다 확실히 더 각인시킨 부분은 주인공 윌리를 훨씬 더 가엾고 불쌍하게 보였다는 점입니다. 프레드릭 마치는 그야말로 지치고 쇠락한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리 J 콥은 너무 센 연기라서 그런지 아직 죽기에는 너무 팔팔한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그는 궁지에 몰려도 쉽게 인정을 안하고 여전히 큰소리치는 악당을 많이 연기해서 더욱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ps2 : 부부로 등장했지만 밀드레드 더녹이 리 J 콥 보다 무려 10살이나 연상이지요.
ps3 : 이 원작이 이순재, 전무송 연기로 우리나라에서 몇년전에 공연될때는 제목이 '아버지'였습니다.
ps4 : 감독 알렉스 시갈은 전형적인 TV전문 감독입니다.
ps5 : 원작자 아서 밀러는 리 J 콥을 윌리 역으로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합니다.
[출처]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 66년) 원조 초연배우 주연작|작성자 이규웅